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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방택(柳方澤)
(1320년 ~ 1402년)
소개
고려말, 조선 초 천문학자. 호는 금헌(琴軒). 금헌의 금은 거문고 금(琴)자로, 실제로도 거문고를 매우 사랑하고 연주하는 것을 즐겼다고 한다.
고려 공민왕 10년(1361년)때, 그간 연구했던 자료를 토대로 역서(曆書)를 제작했는데 이 공로로 공민왕 11년(1362년) 밀직부사(密直副使, 정3품) 겸 판서운관사(判書雲觀事, 현재의 기상청장)에 등용되었으나 곧 사임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1]
천상열차분야지도의 주요 천문 계산을 맡았으며 전체 감독을 했다. 류방택은 천상열차분야지도 제작(천문계산)에 공헌한 공로로 이성계가 개국일등공신을 주려 했지만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 이후 개성(고려의 옛 수도)으로 떠나 취령산(鷲嶺山)아래 숨어서 지냈다. 그곳에서 옛 궁궐을 향해 매일 절을 하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죽는 날에는 그 두 아들에게 “나는 고려 사람으로 개성에서 죽으니, 내 무덤을 봉(封)하지 말고, 비석도 세우지 말라”고 했다 전해진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