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u Librescu, 1930년 8월 18일 ~ 2007년 4월 16일
1 개요
루마니아 출신의 유대인 공학자. 홀로코스트 생존자이며, 공력탄성학과 공기역학 분야의 권위자이기도 했다.
2 생애
2.1 어린 시절
루마니아의 플로에슈티에서 태어났다. 제2차 세계대전 시기 루마니아가 나치 독일과 동맹을 맺고 홀로코스트 정책을 실시하자, 리브레스쿠 가족은 다른 유대인들과 함께 강제노동 수용소에 갔다가 루마니아 Focșani의 게토로 추방되었다. 그의 아내 Marlena 역시 홀로코스트 생존자이다.
2.2 학자로서
홀로코스트에서 생존한 리브레스쿠는 공산정권 루마니아로 강제송환 되었다. 리브레스쿠는 항공우주공학을 전공하여 부쿠레슈티 폴리테크닉 대학(Polytechnic University of Bucharest)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얻었다. 1953에서 1975에 걸쳐서 연구원으로 일했다.
리브레스쿠는 공산당에 대한 충성 맹세를 거부했고, 이스라엘에 공감하고 있었기 때문에 루마니아 학계에서의 입지가 좋지 않았다. 리브레스쿠는 이스라엘로 이주하고자 했으나, 루마니아 과학 아카데미에서는 그를 해고했고, 루마니아 정부에서는 리브레스쿠의 해외 이민을 거부했다.
학자로서 리브레스쿠의 명성이 높았기 때문에 이스라엘 총리 메나헴 베긴은 니콜라에 차우셰스쿠에게 개인적으로 직접 요청하였다. 1978년에 리브레스쿠와 그 가족은 이스라엘로 망명할 수 있었다.
1979년에서 1986년 까지 리브레스쿠는 텔아비브에서 강의를 하였다. 1986년에 미국의 버지니아 공대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나...
2.3 최후
2007년 4월 16일 버지니아 공대 총기난사 사건에서 희생자가 되었다.
수업 중 건물에 들어온 조승희가 총기난사를 시작하자, 리브레스쿠 교수는 문 앞에서 조승희를 가로막고 학생들에게 창문으로 도망치라고 소리쳤다. 교수는 조승희가 문 너머에서 총을 쏘는데도 불구하고 계속 문을 가로막고 있었고, 5발의 총을 맞았으며 머리에 맞은 탄환이 치명상이었다.
이 때 교실에 있었던 학생들은 교수가 시간을 벌어준 덕분에 창문을 깨고 뛰어내려 살아날 수 있었지만 교수는 조승희의 총에 맞아 희생자가 되었다. 생존한 학생들은 리브레스쿠 교수 덕분에 목숨을 건졌으며, 교수는 영웅이었다고 회상했다.
공교롭게도 이 날은 홀로코스트 추모일이었다. 교수의 유해는 고국 이스라엘로 옮겨져 전통 유대인 장례식을 치렀으며 루마니아에서는 교수에게 훈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