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토

1 유대인 거주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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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hetto

유대인이 모여 살도록 법으로 강제한 도시의 거리나 구역을 가리킨다. 13세기 모로코에서 처음 등장했고, 14~15세기부터는 유럽 전역에서 이런 거주제한규정이 생겨났다. 게토라는 이름은 1516년경 베네치아에서 처음 등장했다.

게토는 높은 벽으로 둘러싸여 있어 바깥 사회와 격리되어 있었다. 게토에서는 유대인 공동체로서 어느 정도의 자치를 허용했으나 시민권을 절대 주지않았다. 게다가 게토를 나갈때 유대인임을 증명하는 노란색 옷과 모자를 입고 마크까지 달아야 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게토안에서는 화려한 옷을 입고 다녔다. 특히 상거래외에는 게토를 나가지도 못하게 하니 게토의 유대인들은 건물을 높이 지을수밖에 없었다.[1]

서유럽에서는 19세기부터 점점 없어져 1870년 로마를 마지막으로 폐지되었다. 러시아에서는 이른바 "체르타 오세들로스티[2]"라는 유대인 집중거주구역[3]이 있었으나 러시아 혁명 후 사라졌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 독일이 부활시켜 유대인을 몰아넣을 거주구역으로 이용, 악명을 떨쳤다. 이 게토와 이전의 역사적 의미의 게토의 다른 점은 역사적 게토는 유대인들을 유럽의 다른 토착 기독교도들과 분리시키기 위해 좁은 구역에서 거주하게 한 반면, 나치가 부활시킨 게토는 이후에 있을 유대인 대학살, 즉, 홀로코스트을 위해 세웠다는 점. 당연히 이전의 게토와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인구 밀도가 높고 비위생적이었으며 사망률도 비할 수 없이 높았다. 게토에서 굶어죽거나 병사하지 않은 이들은 거의 대부분이 아우슈비츠 등의 절멸수용소로 끌려가서 학살당했다. 몇몇 이슬람 국가에서는 2차 대전 이후에도 유대인들이 이스라엘로 집단이주하기 전까지 남아있었다.
2차 대전 당시의 게토는 유럽 뿐만 아니라 아시아 지역에도 있었다. 상하이일본군의 점령 지역에 거주하던 유대인 또한 일정 구역의 게토에 강제로 수용되었다. 이 곳의 주거 환경 역시 유럽과 비슷한 수준이었으나 그나마 홀로코스트에 끌려가지는 않았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자기네 나라가 세워진 후엔 이런 슬프고 끔찍했던 과거를 싹 잊고 요르단강 서안지구와 가자 지구에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몰아넣고 온갖 악행을 저지르고 있다.

2 빈민 거주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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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많이 쓰이는 용어로 빈민 거주지역(슬럼)을 의미한다. 일종의 속어지만 미국의 흑인 밀집 빈민가가 흑인 특유의 스웨거 문화와 맞물리면서 독특한 문화권을 형성했기에 미국에선 이미 고유명사화된 상황이다. 예를 들어 싸구려 음식 앞에는 게토-라는 접두사가 붙는다든지 게토레이[4] 뭔가 좀 허접한 물건으로 스웨거를 나타낸 경우 That's ghetto라고 한다든지. UC 버클리가 위치한 버클리에선 Asian Ghetto가 존재한다. 아시안 식당들이 모인 골목길(...).

아래는 그러한 게토 문화의 예제.


좋아하는 농구팀 로고가 들어간 웨딩 드레스라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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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찍어준(...) 매춘부 사진이라든지,


차체를 무지하게 올린(...) 차라든지. 게다가 차에 뉴포트는 흑인들이 많이 피운다는 편견이 있는 담배 브랜드다(...).

하여간 이러한 것이 일종의 으로 자리잡아 아예 그런것만 모아둔 사이트도 있다.[1]
  1. 그래서 중세 유럽의 도시에서 높은 건물이 게토의 건물밖에 없었다.
  2. Черта́ осе́длости, 속칭 Pale
  3. 유대인들은 주로 폴란드벨라루스, 리투아니아, 우크라이나 사이의 접경지대에 집중거주하고 있었다. 여담이지만 이 때문에 19세기20세기의 유대인들이 좀 더 국제주의적인 사회주의 운동을 했다고. 독립 민족국가가 세워지면 유대인 거주구역이 죄다 쪼개져버리니까. 유대인들의 이러한 불안은 제1차 세계 대전 후 현실이 되었다.
  4. 싸구려 냉동 부리또를 보통 Ghetto Burrito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