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데부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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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데부르크
Magdebu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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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데부르크시의 문장
위치Lage_der_kreisfreien_Stadt_Magdeburg_in_Deutschland.png
국가독일
작센-안할트
시간대UTC+1 (서머타임 준수)
한국과의 시차-7시간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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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데부르크 대성당. 막데부르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중 하나이자 시의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독일의 도시이자 작센-안할트주의 주도이다. 엘베강을 끼고 자리잡고 있다. 자그마치 1200년이나 된 매우 유서깊은 중세 도시이며 프랑크 왕국 시절부터 신성 로마 제국 그리고 30년 전쟁까지 독일의 굵직한 역사를 함께했으며 한자 동맹의 맹주로서 오랫동안 지역의 중심도시로 활약했다. 30년 전쟁을 거치면서 많이 쇠약해졌으며 제 2차 세계대전, 동독 시절을 거치면서 많은 문화유산들이 소실되고 옛 모습을 많이 잃었으나 아직도 곳곳에 1200년간의 역사를 품은 유산들이 의외로 많이 남아있다.

2 역사

막데부르크는 중세 독일 역사에서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2.1 중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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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 대제와 왕비 에디스의 조각상. 막데부르크 대성당. 1250년경

그 유명한 카롤루스 대제 (샤를마뉴)가 805년 이 지역에 거주지를 세우면서 막데부르크의 역사는 시작된다. 중세 상부 독일어로 '크고 튼튼한 요새'라는 뜻의 'Magadoburg'에서 오늘날의 도시 이름이 유래된다. 이 도시는 본래 인근 마자르족과 슬라브 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세워졌는데 이후 962년 오토 1세신성 로마 제국 성립하면서 이곳을 수도로 삼게되고 사후에는 막데부르크 대성당에 안장되었으니 신성 로마 제국은 사실상 이도시 에서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시기부터 막데부르크는 매우 강성해졌으며 13세기 한자 동맹에 가입할 당시에는 신성 로마 제국의 2만여 도시 중에서 가장 큰 도시 중 하나였다. 마르틴 루터도 여기서 잠시 활동했었으며 이에 따라 막데부르크에도 개신교가 들어오게 된다. 이렇게 중세를 거쳐 근세에 이르기까지 막데부르크는 독일 내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그 영향력은 한동안 꺼지지 않을 듯 했다.

그러나...

2.2 30년 전쟁

30년 전쟁 와중이던 1631년 틸리 장군이 이끌던 카톨릭 황제군은 막데부르크를 점령하는데 이때 대학살극이 벌어진다. 황제군이 막데부르크를 장악한 1630년 11월부터 이듬해 5월 20일까지 황제군은 막데부르크 내의 식량을 닥치는대로 약탈하고 시민들까지 무차별 학살한다. 황제군은 당시 반역자로 낙인찍혀있던 알브레히트 폰 발렌슈타인의 공작으로 인해 제대로 된 식량과 물자를 보급받지 못해 매우 굶주려있던 상태였고 이 같은 상태가 엉뚱한 막데부르크에까지 영향을 끼치게 된 것이다. 결국 6달만에 3만명에 달하던 막데부르크의 인구가 불과 5천명으로 줄어드는 대참극이 일어났다. 이 사건은 결국 개신교 세력을 결집시켜 30년 전쟁의 판도를 바꾸게 된다. 그러나 이에 상관없이 막데부르크는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받았으며 이후 한자 동맹 시기의 영향력을 회복하지 못한다.

2.3 근대

이러한 참변 이후 막데부르크의 시장이었던 오토 폰 게리케(Otto von Guericke)는 폐허가 된 막데부르크의 재건에 힘을 쏟았으며 그에 의해 대기압의 세기를 나타낸 것으로 유명한 '막데부르크의 반구' 실험이 1654년 행해졌고 이 실험은 기체 역학 연구의 선구적 역할을 했다. 1806년 나폴레옹 전쟁 당시 프랑스 군에 의해 일시적으로 점령되었으며 틸지트 조약에 의해 프랑스의 괴뢰 왕국인 베스트팔렌 왕국의 일부가 되었으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패배한 1815년 프로이센 왕국의 일부가 되고 이후 독일 제국에 편입된다.

2.4 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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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막데부르크는 막대한 피해를 입는다. 드레스덴 폭격이 이루어지기 1달전인 1945년 1월 16일 영국 공군에 의해 주도된 폭격으로 인해 1만 6000여명이 목숨을 잃는다. 이 과정에서 막데부르크에 남아있던 문화 유산의 대부분이 소실된다. 전쟁 이후 소련군 점령에 막데부르크가 포함되고 곧이어 동독정권이 수립되면서 재건 계획에 의해 남아있던 문화 유산들의 잔해가 철거되고 그 자리에는 소비에트 식 건축물들이 들어선다. 이렇게 동독 시절을 거치면서 막데부르크는 그 외형이 이전에 비해 크게 달라지지만 오토 대제가 대관식을 올렸던 막데부르크 성당 등 중요한 건축물들은 일부 보존되었다. 공산주의의 붕괴 그리고 독일 통일과 함께 막데부르크는 부활한 작센-안할트 주의 주도로 새롭게 출발한다. 2005년 도시 설립 1200주년 기념 행사가 막데부르크에서 열렸다.

3 볼거리

  • 막데부르크 대성당

937년 처음 세워진 매우 유서깊은 성당이다. 이곳에 오토 대제가 묻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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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rüne Zitadelle

오스트리아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 프리덴스라이히 훈데르트바서(Friedensreich Hundertwasser)에 의해 설계되었다. 건물 자체는 훈데르트바서가 2000년 타계한 이후 착공되었으나 설계는 그가 했기 때문에 그의 작품으로 간주된다.

나머지는 추가바람

4 여담

많은 구동독 지역이 그렇지면 이곳도 네오나치가 상당히 날뛰는 곳이다. 2006년 이곳에 유학중이던 한국인 학생이 네오나치로부터 폭행을 당해 가벼운 부상을 입은 적이 있다. 혹시 이곳을 방문할 위키러라면 유념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