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렝고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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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Battle of Marengo
프랑스어: Bataille de Marengo

1 개요

제2차 이탈리아 전쟁 중이던 1800년 6월 14일 이탈리아 피에몬테 지방의 도시인 알렉산드리아 근처에서 오스트리아의 멜라스 장군이 이끄는 오스트리아군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프랑스군을 기습하면서 벌어진 전투.

2 전개

나폴레옹이 이탈리아 원정에서 가장 걱정한건 오스트리아군과의 정면승부가 아닌 멜라스가 군대를 제노바로 후퇴시킨 뒤 제노바를 요새화하는 것이었다. 아크레의 트라우마가 좀 컷나보다 과연 멜라스와 오스트리아군은 프랑스군 앞에 단 한번도 나타난 적이 없었고 이에 나폴레옹은 멜라스가 제노바로 후퇴하고 있다고 판단, 드제와 부뎃에게 각자 한개 사단을 맡기고 빅토르 휘하 부대를 지원하는 동시에 제노바를 차단해 궁극적으로는 오스트리아군을 포위섬멸하기 위해 그의 소중한 병력을 분산 사용한다. 그러나 모든건 사실 멜라스의 계획대로! 부뎃과 드제의 병력이 출발하자 갑자기 튀어나온 멜라스가 프랑스군을 공격하기 시작했고 이미 전투는 시작부터 압도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놓여있었다.[1] 또한 나폴레옹이 받은 쇼크또한 컸는데 과거 본인이 지휘했던 1차 이탈리아 원정당시 자신이 오스트리아의 병력이 분산된 틈을타 분쇄하던 기술을 구사했는데 자신이 반대로 분산된 상태로 분쇄당하는 처지에 놓인것

결국 프랑스군의 중앙이 붕괴되었고 전투는 오스트리아군이 발로 지휘해도 이길 수 있는 그런 상황이 되었다. 나폴레옹은 최대한 전투를 수습해보려고 했지만 더이상 어찌할 수 없었고 대대적인 후퇴를 개시하여 인근의 포도밭으로 후퇴하며 버티지만 결국 통령근위대까지 괴멸되고 만다. 후에 이 전투에 참가했던 군인의 증언을 통하면 나폴레옹은 대포가 날라다니는 상황에서도 가만히 앉아서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해 역시 영웅은 이런 상황에서도 대담함을 잃지 않는다고 생각했다고. 그런데 사실은 그냥 페닉에 빠져 대포가 본인을 좀 죽여줬으면 하는 심정이였다는게 더 현실적이다[2] 특히 러시아 원정당시도 만약 본인이 모스크바에서 사망했다면 위대한 정복자로 남았을텐데 라던지 워털루때도 그냥 죽으려고 전쟁터에서 죽으려고 하는등..[3]

그렇게 혁명 프랑스가 망하기 직전에 몰린 그때...

느닷없이 제노바를 차단하기 위해 파견되었던 드제 장군과 병력들이 도착하고 나폴레옹은 참담한 심정으로 어떻게 생각하냐는 짧은 말을 뱉는다. 그리고 드제가 이때 남긴 대답이 "분명히 이 전투는 패배했습니다. 이젠 우리가 이길 차례입니다."라는 짧은 코멘트를 남긴 후 전열을 정비해 마르몽, 켈레르만 등을 내세워 대포로 기습적인 반격을 가하면서 전세는 역전되고 느닷없이 등장한 지원군과 전의를 회복한 프랑스군에 압도된 멜라스가 후퇴를 결정하게 되면서 오스트리아의 패배로 전투가 마무리된다. 여기서 멜라스를 변호하자면 멜라스 본인은 백발이 무성할정도로 늙은 노장이였고 부상까지 입은 상태였다. 때문에 승기를 잡았다고 판단해 부하에게 지휘권을 맡긴후 승전보를 기다리며 쉬고있었는데 난데 없이 몇시간만에 대포소리가 터지고 병사들이 죽어나가는 정신나간 광경을 보게 된 것..아 어르신

그러나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던 주역 드제는 선두에 서서 지휘하다 가슴에 총탄을 맞고 전사했다.[4] 게다가 전투직후까지도 드제는 발견되지않았는데 이유는 전쟁직후 마을사람들이 사상자들의 옷을 뒤져 귀중품을 빼앗는 일이 비일비재했기 때문에 벗겨진 시체들이 잔득 쌓여있었다. 그러던중 드제가 사라진걸 확인하고 급하게 수색했는데 가슴에 흉탄을 입은채 벗겨져 있었다고한다... 나폴레옹의 반응은 승리의 일등공신이 처참하게 발견됐으니... 그후 드제의 장례는 성당에서 성대하게 치뤄지고 기념비가 세워지므로써 끝마쳐지게 된다.

흔히 마렝고 전투는 나폴레옹의 가장 위대한 승리중 하나로 알려져 있지만 그건 선전효과로 인해 많이 과장된 것이고, 사실 마렝고 전투의 군사적 업적은 나폴레옹의 여러 전투들에 비해 크게 나폴레옹의 군사적 재능을 빛낸 전투는 아니다.[5] 마렝고 전투는 바그람 전투아우스터리츠 전투처럼 적군을 섬멸한, 나폴레옹 본인이 흔히 말하는 '완벽한 승리'가 아니었다. 마렝고 이후로도 사실 오스트리아군은 충분히 전쟁을 계속할 수 있던 상태였으며 오히려 프랑스군은 죽다 살아난 상태에 지나지 않았다. 즉, 마렝고 전투의 업적은 상당수가 과장되어있을 뿐만 아니라 사실 나폴레옹의 실수로 1개 군단이 박살날 뻔한, 만약 졌다면 그대로 나폴레옹의 흑역사로 치부될 전투였던 것. 그러나 드제의 적절한 개입이 전투의 흐름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하더라도, 그 기회가 생길 때까지, 그리고 그 기회가 생긴 뒤에도 군에 대한 통솔을 유지했던 나폴레옹의 통솔력과 반격을 가능하게 했던 순간적인 판단 능력은 충분히 높이 평가할 만하다.[6]

더군다나 나폴레옹은 이 전투를 전략적인 차원에서 충분히 활용하는 모습도 보여준다. 프랑스에 적대하는 제국들에 대해서는 물론, 프랑스 국내에서 나폴레옹의 실각을 노리던 불만세력들에 대해서도 정치적으로 굉장한 영향력을 발휘했고 결과적으로 나폴레옹의 권력을 더욱 튼튼하게 만들었다. 이후 나폴레옹이 원하던 완벽한 승리는 그의 손이 아닌 모로의 손에 의해 호엔린덴 전투에서 이루어지게 된다. [7]

이 전투를 마치고 나서 지친 나폴레옹의 기력을 보충하기 위해 그의 요리사가 만들어 올린 닭고기 요리가 '치킨 마렝고'다. [8]

  1. 당시 오스트리아에겐 대포가 무려 100문이나 있었고 나폴레옹에겐 고작 24문뿐이었다.
  2. 실제로 나폴레옹은 군인답게 전쟁터에서 죽기를 바라기도 했다.
  3. 전쟁터에서 죽어서 위대한 정복자로 역사에 남으려면 승전에서 죽어서 패전의 가능성을 원천 차단해야한다. 그 위대한 알렉산드로스 3세도 만약 로마 정치가들 말대로 살아서 로마침공후 고전 혹은 패배를 했다면 지금의 위상과는 분명 차이가 있었을것이다.
  4. 나중에 워털루 전투가 마렝고와 살짝 비슷하게 진행되는데 아쉽게도 이미 드제가 죽어버려서 황제가 위급할 때 그루시는 3만이라는 예비병력을 들고 숲속탐험을 하고 있었다(…).
  5. 어찌보면 순간적인 판단으로 별동대를 끌고와 역전시킨 드제의 능력이 더 돋보여야 정상...
  6. 아닌 말로 아무리 드제가 적시에 당도했다 해도 나폴레옹의 판단력이 보통 이하였다면 철퇴해야 정상인 상황이었고, 그 상황에서 드제 혼자 닥돌했다면 그건 산가리에 불과한 것. 그런데 결과적으로 나폴레옹은 이 전투에서 이겼다.
  7. 그리고 견제받고 거의 쫓겨나듯이 미국으로 망명하게된다.
  8. 치킨 마렝고가 이 때 나왔다는 것은 만들어진 이야기란 설도 있다. 마렝고 치킨을 만들었다는 뒤낭이란 요리사는 마렝고 전투가 끝난 후 5년 후에 나폴레옹의 요리사가 되었다고 한다. 게다가 학자들은 치킨 마렝고에 들어가는 토마토도 6월의 이탈리아 북부에서 구하기 힘들었을 것이라 본다. 자세한 것은 http://v.daum.net/link/1993469 마렝고 전투 부분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