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쿠스 살비우스 오토

로마의 역대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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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바오토 비텔리우스

성명마르쿠스 살비우스 오토(Marcus Salvius Otho, 재위기간: 69년 1월 15일 ~ 4월 15일).

갈바의 뒤를 이어 로마의 황제가 된 인물. 아버지는 티베리우스 황제에게 기용되어 많은 요직을 거쳤고 그런덕에 오토는 어릴때부터 상류층 자제로서 부족할것 없이 자랐다. 특히나 네로 황제와는 어릴때부터 친한 친구였고 함께 밤이슬을 맞으며 다니던 사이였다고 한다. 그러나 두 사람의 관계는 네로가 오토의 아내 포파이아를 사랑하게 되면서 깨지게 된다. 네로는 포파이아를 차지하기 위해 오토를 루시타니아 속주 총독으로 쫓아내버렸다.

그러나 이게 오토에게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된다. 루시타니아 속주 총독으로 부임한 오토는 네로와 밤이슬을 맞으며 다니던 시절과는 정반대로 성공적으로 속주를 통치해 플레이보이의 변신으로 수도 로마에까지 소문이 파다하게 날 정도였다고 한다.

10년 동안 루시타니아 속주 총독으로 지내던 오토는 갈리아 속주 총독 빈덱스로 시작된 반 네로운동에서 자기 속주 옆의 타라코넨시스 속주 총독 갈바를 맨 처음 지지하며 반 네로운동에게 가세한다.[1] 결국 궁지에 몰린 네로는 자결하고 갈바가 원로원으로부터 황제로 추대되자 오토는 갈바와 함께 로마로 돌아간다.

그러나 갈바는 오토가 맨 처음 지지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합당한 대우를 해주지 않았고 이에 실망한 오토는 근위대 병사들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여 갈바를 암살하고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오토는 즉위하자 마자 라인강 군단들을 이끌고 쳐들어오는 비텔리우스를 상대해야 했다는 점에서 비극적인 결말이 예고되어 있었다.

그나마 라인강 군단의 남하에 자극 받은 도나우 군단의 적극적 지지 표명으로 오토는 라인강 군단을 어떻게든 막아보려 한다. 여기서 가이우스 수에토니우스 파울리누스[2]라는 유능한 사령관이 오토에게 가세하여 그가 지휘하는 군대가 라인강 군단을 서전에서 격파하는 성과를 거둔다. 그러나 전투 뒤 그들을 추격 섬멸하는 명령을 내리지 않아 라인군 군단은 재편성할 수 있었다. [3] 이후 라인강 군단이 속속 합류하여 남하하였고, 여기서 파울리누스의 만류에도 불구 오토는 회전을 치루기로 결심하고, 4월, 베드리아쿰에서 격돌한 오토와 비텔리우스의 군대의 전투에서 오토의 군대가 패하자 깨끗하게 자살로 석달의 치세를 마감한다.

루시타니아 속주를 10년동안 잘 통치했던 전력을 감안해본다면, 오토는 비텔리우스와의 내전에 휘말리지만 않았다면 나름 괜찮은 통치를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예로부터 로마황제는 최고 군사령관으로서의 자질도 필요했으며 오토는 이 능력이 딸리지 않았나 하는 의심을 지울 수 없고, 결국 단명의 운명도 오토 스스로의 한계로 기인했을 듯하다.
  1. 아마 포파이아로 인한 개인적 원한도 전혀 없지는 않았을 듯하다.
  2. 황제열전으로 유명한 수에토니우스(이쪽은 가이우스 수에토니우스 트란퀼리우스)와 같은 씨족명을 쓰고 있기는 하지만 서로의 정확한 연관성에 대해서는 분명하지 않다(아시는 분이 추가 바람). 다만 수에토니우스의 아버지가 오토의 군단에 편입되어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3. 파울리누스의 경력이 재밌는데 그는 브리튼 총독으로 있는 도중 군단을 이끌고 인신공양을 일삼는 드루이드를 청소하러 가다 부디카 여왕의 대규모 반란에 직면한다. 이 반란 소식을 듣고 즉시 런던으로 진입하나 1만명의 병력밖에 없어 도시를 버리고 달아났고, 가는 도중 브리튼인들에게 따라잡힌다. 여기서 1만 명의 병력으로 적진이나 다름없는 곳에 남겨진 그는 10만이 훌쩍 넘는 달하는 브리튼인들과 회전을 요청하고 (카시우스 디오는 무려 23만이라는 병력을 제시한다) 이것이 받아들여진 상황에서 벌어진 회전(왓틀링 길가의 전투)에서 그들을 궤멸시키는 충공그깽한 전과를 거두어 브리튼의 상실을 막아낸 공을 세우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