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물루케 소드

마멜루케 소드(Mameluke sword)

이슬람 도검의 영향을 받은 세이버의 한 종류. 또는 유럽인들이 킬리지샴쉬르를 그렇게 부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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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원

1680년 오스만 제국이 빈 공방전에서 패배하여 유럽에 대한 진출을 포기한 이후로 유럽세계와 이슬람세계의 교류는 줄어들었으며, 유럽의 군용 도검들은 전통적인 아밍 소드의 후계자인 브로드 소드와, 동유럽에서 전래된 세이버 2가지로 압축되었다. 자연히 그 디자인에 있어서 유럽세계 이외의 디자인이 수용되는 경우는 없었으나,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에 의해 전혀 새로운 디자인이 유럽 세이버에 수용되게 된다.

나폴레옹이 감행한 이집트 원정 당시 그곳을 지배하는 것은 맘루크들로써, 이는 본디 이슬람세계의 백인 전투노예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 말대로 이집트의 맘루크 왕조란, 본디 자신들의 주인이었던 아이유브 왕조를 멸망시키고 스스로가 지배자가 된 백인 전투 노예들이었다. 이들은 총을 경시하고 검과 창 등의 옛 무술을 높이 평가했으며 어려서부터 무예를 닦아 놀라운 무공을 지닌 전사들이었는데, 비록 나폴레옹에게 피라미드 전투에서 패배하기는 하였지만 그 과정에서 보인 놀라운 검술과 실력으로 나폴레옹에게 큰 인상을 주었으며, 나폴레옹은 맘루크들로 구성된 맘루크 황제근위대를 창설하고 그들의 검의 디자인을 정식 채용하여 샴쉬르, 킬리지의 디자인이 유럽으로 도입되는 계기가 된다. 이들의 검의 디자인이 맘루크들에게서 나왔다고 하여 마멜루케 소드라고 부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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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루크 황제근위대)

영국의 경우 나폴레옹에 대항하여 오스만 제국과 연합하여 이집트의 프랑스군을 저지하기 위해 나섰으며, 이 과정에서 중동의 도검을 경험하게 된다. 또한 미군의 경우 지중해에서 극심한 북아프리카 이슬람 해적들에 대한 공격을 수행하면서 마멜루케 소드를 경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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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만 제국을 돕는 영국해군의 윌리엄 시드니 스미스 경, 그의 손에 마멜루케 소드가 들려 있다)

2 형태

마멜루케 소드가 다른 세이버들과 구분되는 몇가지 특징은 샴쉬르와 같은 콩나물 대가리를 연상하게 하는 굽은 손잡이와, 단순한 형태의 크로스가드로 규정지어진다고 할 수 있다. 다른 모든 디자인을 제쳐놓고서라도 이러한 힐트(손잡이)디자인이야말로 마멜루케 소드냐 아니냐를 결정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디자인 포인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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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마물루케 소드)

3 전파

프랑스 군대는 나폴레옹의 지휘 아래 전 유럽을 석권했고 유럽국가들은 나폴레옹을 모델로 하여 자신의 군대를 개혁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19세기 내내 프랑스는 많은 국가들이 자신의 군대를 개혁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중요한 벤치마킹 대상이었고 미국의 경우 아예 프랑스의 세이버 디자인을 그대로 베껴 쓸 정도였다.

이 과정에서 미 해병대는 해적의 본거지였던 북아프리카 트리폴리 지방을 지배하는 오스만제국의 총독과의 전투에서의 승리를 기념하여 1875년에 M1875 미해병대 장교도를 채용하게 되고 영국군의 경우 워털루 전투 때에 이미 웰링턴 장군이 개인적으로 마멜루케 소드를 소장하고 있었다고 하며, 1831년에 마멜루케 소드를 전군의 모든 장교에 채용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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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P1831 장교도)

현재 미 해병대와 영국군의 마멜루케 소드는 의장용 예도로써 옛 디자인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