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어: السلطنة الأيوبية (al-Salṭanah al-ʾAyyūbiyyah), الأيوبيون (al-ʾAyyūbiyyūn)
영어: Ayyubid dynasty
이슬람 제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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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4-1250
흔히 살라딘으로 알려진 살라흐 앗 딘에 의해 창설되었으며 12세기 말과 13세기 초에는 이집트, 나중에는 북부 이라크가 된 지역, 시리아 지역 대부분과 예멘을 통치했다.
살라딘의 아버지 아이유브(나짐 앗 딘 아이유브 이븐 샤디)는 12세기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셀주크 튀르크의 통치자 밑에서 활동했던 쿠르드족 용병 가문 사람이었으며, 바로 그의 이름에서 왕조의 명칭이 유래했다.
아이유브는 다마스쿠스 총독에 임명되자, 그의 형제 시르쿠와 함께 십자군과의 전쟁에 대비해 시리아를 통일했다. 삼촌 시르쿠가 죽은 후 살라흐 앗 딘은 재빨리 이집트를 장악하고 1169년 다미에타를 침공한 십자군을 몰아내는 데 성공하고 1171년 파티마 왕조의 마지막 칼리프 알 아디드가 죽자 파티마 왕조를 멸망시켰다. 나아가 열성 무슬림들을 동원해 십자군에 대항하는 통일전선을 구축했으며. 이집트를 당대 세계 최강의 이슬람 국가로 만들었다. 이후 예루살렘 왕국을 침공하여 하틴전투에서 그 주력군을 괴멸시키고 예루살렘을 탈환하는 업적을 세우기도 했다.
살라딘의 통치하에서 유지되었던 유대감은 그의 죽음(1193) 직전에 사라졌으며, 그가 친척 가신들에게 토지를 분배한 데 따라, 그 가신들이 각자의 속주에서 자치적 성격의 내정을 시행함으로써 아이유브 왕조는 분권화하고, 반봉건적 성격의 가문 연합체로 변모했다.
살라딘의 형제인 알 아딜과 조카인 알 카밀의 통치기에 신성 로마 제국과 아이유브 왕조의 긴장관계가 완화되었다. 잠시 예루살렘이 다시 기독교의 수중에 들어간적도 있으며[1], 아이유브 왕조의 분파주의도 잠잠해졌다.
그러나 알 카밀의 죽음(1238)으로 오랜 가문의 분쟁이 재연되었으며, 1250년 맘루크가 권력을 승계하는 것으로 왕조는 완전히 몰락했다.
열렬한 수니파였던 아이유브 왕조는 시아파 무슬림과 기독교도들을 개종시키고자 했으며, 이집트와 예루살렘에 신학교의 일종이었던 마드라사(madrasah)를 설치했다.
문화적으로 파티마 왕조를 계승·발전시킨 아이유브 왕조는 카이로에 성채를, 알레포에 요새를 건설하는 등 뛰어난 군사 기술을 보유했다.- ↑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1244년) 다시 아이유브 왕조의 손에 들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