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Motörhead
좌측에서 부터 미키 디(드럼), 레미 킬미스터(보컬&베이스), 필 켐벨(기타)
밴드의 프론트맨인 레미 킬미스터1200명의 여자와 잤다고 한다.[1][2]
We are Motörhead, and we play rock & roll![5]
Born to lose, Live to win
쥬다스 프리스트,아이언 메이든과 함께 NWOBHM을 이끈 삼두마차.
지구 상에서 가장 마초적인 음악을 했던 레전드급 밴드.
모터헤드는 1975년 결성된 영국의 헤비메탈/스피드 메탈 밴드이다. 그러나 레미 킬미스터는 모터헤드를 조금 빡센 락앤롤 밴드라고 스스로 정의했으며[6], 외국에서도 모터헤드는 본격적인 스피드메탈 밴드라기보단 파워풀한 락앤롤 밴드로 인식되는 경향이 강하다. 밴드명은 레미 킬미스터가 모터헤드 결성 전에 활동했던 밴드인 호크윈드의 6집 앨범 Warrior On The Edge Of Time의 마지막 곡 Motorhead [7]에서 따온 것. 1976년 밴드명과 동일한 이름의 앨범으로 데뷔하였고, 1980년대 초반 Ace of Spades라는 음악계에 길이 남은 곡을 발표하면서 최전성기를 달렸다.
참고로 Mötorhead의 정식 발음은 모퇴르헤드(...)가 아니고 그냥 모터헤드다. [8]
모터헤드의 사운드는 스래쉬 메탈의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속도감 있는 피킹과 마샬 앰프로 퍼즈 톤을 잔뜩 먹인 금속 사운드를 핵심으로 하는 레미의 베이스 연주는 메탈 베이시스트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고 무엇보다 특유의 흉내낼 수 없는 가래 끓는 목소리가 일품이다.[9] 다만 현재 창법은 호크윈드 재적 시절에는 쓰지 않았고 모터헤드를 결성한 뒤 바꿨다. 밴드 전성기의 드러머였던 필 테일러는 스래쉬 메탈 드러밍의 원형을 개척해 본격적인 스래쉬메탈의 부흥을 예고했다. 기타리스트였던 에디 클락 또한 메탈헤드들 사이에서 자주 회자되곤 하는 영향력 있는 기타리스트였다. 무엇보다도 밴드의 리더 레미 킬미스터는 모든 메탈헤드들의 우상이자 신적인 존재였다.[10] 그는 자신의 목소리만큼이나 마초적이고 진솔한 락의 거인으로서 일생 내내 존중받았다.
암만 스스로 메탈 밴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해도 모터헤드는 현존하는 거의 모든 메탈 장르의 성립에 크게 기여한 밴드이다. 그들이 장르 전반에 끼친 영향력은 메탈리카와 견주어도 결코 덜하지 않다. 흥미롭게도 이 메탈리카는 자신들이 가장 존경하는 밴드로 모터헤드를 꼽는다. 그들은 모터헤드의 곡을 4곡이나 커버해서 앨범에 실었고(Overkill, Damage Case, Too Late Too Late, Stone Dead Forever), 최근까지도 라이브에서 심심찮게 이 곡들을 커버하고 있다. 메탈리카의 리더인 라스 울리히는 아예 모터헤드의 팬클럽 회장 노릇을 한 적도 있다. 그리고 2009년 라이브 투어 때는 레미 킬미스터를 초청해 함께 공연도 했다.
모터헤드가 메탈리카 트리뷰트 앨범에 참여하면서 메탈리카의 대표곡인 Enter Sandman을 묘하게 비틀어 부르는 바람에 모터헤드 쪽에서는 메탈리카를 싫어했다는 식의 루머가 퍼졌던 적이 있다. 실제로 모터헤드가 Enter Sandman의 제목을 Fuck Metallica라 바꾸어 수록하기도 했고. 그러나 이는 장난의 일종이지 진지한 악의의 표현과는 거리가 멀었다. 사실 레미는 메탈리카와 같이 공연을 할 만큼 친한 사이였다.
이렇게 메탈리카 대단하다, 존나짱! 츤데레 같은 인터뷰를 남긴 적도 있다. 애초에 메탈리카를 싫어하면서 메탈리카 트리뷰트 앨범에 참가를 했을 리가. 그냥 이야기들이 와전되면서 생긴 해프닝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는 WWE의 프로레슬러인 트리플 H의 "The Game" 테마곡을 부른것으로 유명하며 레슬매니아에 두번[11]이나 초청되어 라이브로 부른적이 있다. 트리플 H의 또다른 테마곡인 "King of kings" 또한 모터헤드 곡이며 트리플 H가 속해있던 팀인 에볼루션의 테마곡 "Line in the Sand" 또한 모터헤드가 불렀다.
밴드의 이름을 딴 헤드폰/이어폰 시리즈가 출시되어 있다. 시리즈 이름은 모터헤드폰. 국내에도 출시됐다.
44,000원짜리 메탈 특화 커널형 이어폰인 오버킬 같은 경우 95%가 브랜드값인비츠 이어폰과는 다르게 메탈 쪽에 한해서는 가성비가 좋다. 사실 오버킬이라는 이름을 딴 또다른 제품이 있는데 여성용 자위기구(...)
2015년 안산 밸리 록 페스티벌을 통해 내한했다. 안산 밸리 록 페스티벌 측은 모터헤드를 Motorhead, 즉 움라우트를 뺀 상태로 라인업에 게시해서 소소하게 욕을 먹었다. 물론 다른 이유로 욕은 훨씬 많이 먹었다. 이디오테잎 은 모터헤드보다 포스터에 이름이 크게 걸린 사실에 대해 당황스러워했다. 공연은 훌륭하게 노익장을 과시하며 막을 내렸다.
얼마 뒤인 2015년 말, 비극적인 소식들이 이어졌다. 11월 11일에는 모터헤드의 전 드러머인 필 테일러가 타계하였다.
12월 28일, 레미 킬미스터가 타계했다. 26일에 암을 발견한 뒤 이틀만의 급사였다고 한다. 레미는 Aftershock 활동부터 이미 제세동기를 차고 다니는 상태였지만, 마지막까지 담배와 음주 등을 포기하지 않았다. 2015년 12월 초 건강 악화로 인해 보드카를 오렌지 주스로 대체했을 때는 이미 대처하기에 늦어 있었다. 그는 사망 전까지 자신이 좋아하는 콘솔게임을 하다가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오지 오스본의 말을 빌려 표현하자면, 인생을 즐길 대로 즐기면서 떠났다.
그리고 우려했던 대로, 모터헤드는 레미의 죽음과 함께 활동 종료를 선언했다.
2 モーターヘッド. Mortar Headd
모터헤드(FSS) 항목 참조- ↑ 그래서 이런 짤도 굴러 다니는 듯.
- ↑ 레미 킬미스터는 항상 공연을 할때 저렇게 하늘을 올려다보는 자세로 노래를 불렀는데, 초기 무명 시절 처참한 관객수를 보지 않기 위해 고개를 든 채로 노래를 부르던 것이 습관이 되어 그랬다고 전해진다. 레미는 락밴드 프론트맨 중 흔치 않은 베이시스트 겸 보컬로, 모터헤드 이전에 재직했던 호크윈드에서는 본래 리드기타를 맡았다가 탈퇴한 베이시스트의 자리를 메우기 위해 베이시스트로 역할을 바꾸었다.
- ↑ 영화 에어헤드에 나온 명대사 [1]
- ↑ 브랜든 프레이저: 레미랑 신이 레슬링을 하면 누가 이길까? 경찰: 레미? 스티브 부세미: 땡! 경찰: 신? 스티브 부세미: 틀렸어, 이 븅신아. 이건 함정 퀴즈야. 레미가 바로 신이지롱!
- ↑ 번역하면, "우린 모터헤드야. 그리고 우린 로큰롤을 하지!". 레미가 매 공연 오프닝과 앵콜 때 외치던 멘트이다.
- ↑ 모터헤드의 Johnny B Goode 커버 영상을 보면 락앤롤 본연에 충실하단 걸 알수 있다. 다만 좀 헤비할 뿐.
- ↑ 참고로 이 곡은 프라이멀 스크림이 커버하기도 했다. 밴드가 모터헤드랑 호크윈드를 존경한다고.
- ↑ 이처럼 밴드명에 발음과 무관한 움라우트를 첨가한 밴드는 모터헤드 외에도 적잖이 존재한다. 선배인 블루 오이스터 컬트(Blue Öyster Cult)를 시작으로 퀸즈라이크(Queensrÿche: 이 밴드는 발음을 설명하고 다녀야 하는 고초를 겪기도 했다.), 머틀리 크루(Mötley Crüe) 등등. 이를 가리키는 명칭은 메탈 움라우트(Metal Umlaut). 레미 킬미스터가 인터뷰에서 말한 바에 따르면 "그냥 세 보이려고 찍었다(I only put it in there to look mean.)"고 한다.
- ↑ 물론 이 때문인지 레미의 보컬에는 보이스라인이 거의 없다. 하지만 다른 밴드 노래 커버엔 전혀 문제없다.
- ↑ 락, 메탈계에서 레미의 영향력은 오지 오스본 못지 않게 어마어마했다. 정말이지 락의 대부라 일컫기에 한치의 부족함도 없었다. 그가 죽기 며칠 전 그의 70세 생일파티를 위해 모였던 뮤지션들의 면면만 보아도 이는 잘 드러난다. 잭 와일드, 스캇 이안, 스티브 바이, 슬래시 및 구 건즈 멤버들, 세바스찬 바하, 로버트 트루히요, 빌리 아이돌 등의 쟁쟁한 라인업이 그의 생일을 맞아 축하공연을 펼치기 위해 무대에 올랐다. 또한 레미의 장례식장에서도 롭 핼포드, 스캇 이안 등의 쟁쟁한 락계 거물들이 추도사를 이어가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 ↑ 레슬매니아 17(2001년), 레슬매니아 21(200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