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촌토성

夢村土城
Mongchon Toseong

서울특별시 송파구 방이동과 오륜동 사이 올림픽공원 안에 있는 백제시대 때 존재했던 토성(土城). 현재 토성 자체는 없어졌지만 대신 토성이 있던 터가 남아있어 사적문화재로 공식지정되었다.

본래 백제 때 존재했던 토성으로 학설(學說)로는 풍납토성과 함께 하남위례성(城)의 주성(主城)이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외 선사시대 때 존재했던 움집터, 판축터, 지하구멍 등이 발굴되었고 역사적으로는 3세기경에 축조되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전까지는 땅 속에 봉인되어 있었고 토성 자체도 없어지는 바람에 현대 한국인들 사이에서는 발굴 이전까지 존재가 없었던 곳이었다. 쉽게 말하면 그냥 뒷동산 정도의 야트막한 언덕 수준의 가치로 전락해버린 상태였다. 심지어 한강 정비 때 잠실 섬을 육지화하는 데 여기의 흙을 쓰자는 제안이 나왔을 정도였다. 다행히 고고학자들이 이 터가 예전 백제 하남위례성 터일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제기해 살아남을 수 있었다.

땅 밑에 무엇인가 있어 개발도 못할 땅이니, 다른 걸로 못쓰게 해두자는 생각으로 1984년 올림픽공원을 착공하였는데, 역시나 공사 도중 토성터와 유물들이 발굴되면서 1984년과 1985년 학자들의 발굴조사를 통해 처음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최종적으로 올림픽공원 안에 토성터와 유물들을 보존하기로 함에 따라 1986년 올림픽공원 개장 때 공원 안에 존치해 있는 유물터로 바뀌게 되었다. 토성터의 둘레는 약 2.7㎞이며 높이는 6,7m.[1]

서울 지하철 8호선 몽촌토성역의 역 이름도 이 곳에서 본따왔다.

현재는 풍납토성과 함께 백제의 첫번째 수도였던 하남 위례성이었을 것으로 거의 확정된 상태. 삼국사기 기록에 따르면 위례성에는 북성(北城)과 남성(南城)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학자들은 북성을 풍납토성으로 남성을 몽촌토성으로 추측하고 있다.

학자들은 풍납토성이 사실성의 왕성 역할을 하고, 몽촌토성은 비상시. 그러니까 외적의 칩입이나 반란시에 들어가 농성할 수있는 일종의 대피성 개념으로 세웠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풍납토성에서 계속 출토되는 어마어마한 유물로 미루어 볼때 두 성간의 관계가 이랬을 확률이 매우 높다.

사실 이렇게 성을 투 트랙으로 운용하는 것은 고구려에서도 보인다. 고구려 역시 첫번째 수도인 졸본에서 대피성 개념으로 오녀산성을 사용했고, 국내성에도 환도산성이라는 대피용 성이 있었다. 후에 천도하는 평양에도 이 같은 개념이 적용되어 평양성 외에 대성산성을 따로 수축했다. 고구려에서 갈라져 나온 백제에도 이 같은 개념이 적용되었던 걸로 생각 가능하다.

몽촌토성을 실제로 살펴보면 대피성이라 보기 좀 어려울 지도 모른다. 오녀산성이나 환도산성, 대성산성들과 달리 산성이라고 보기도 어렵고 야트막한 언덕에 목책을 이용해 지은 자그만한 토성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몽촌토성은 수비상으로 이점을 두 가지 가지고 있다. 첫번째는 인근 지역을 감제할 수 있는 지형에 자리잡았다는 것. 지금도 몽촌토성의 꼭대기에 올라가보면 알겠지만 현재의 강남구 송파구 강동구하남시일대를 대부분 볼 수 있다. 이는 만약 공격 편대가 몰려올 경우 거점지역으로서 미리 대비도 할 수 있고 경우에 따라 적극적으로 요격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군대에서 전방초소와 감제고지를 왜 중요하게 여기는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터.

두번째는 성이 비스듬한 형태로 축조되었단 것. 언덕의 비탈을 따라 성을 축조해서 외부에서 내부를 바라 볼 수 있다. 이게 꼭 나쁘다고 보기 어려운게 외부 병력이 내부를 볼 수도 있지만 반대로 내부에서도 외부의 움직임을 훤히 꿰뚫어 볼 수있다는 것이다. 가까이 달려 붙는 적병들의 움직임까지도 말이다. 하지만 적병은 성벽에 가까이 다가갈 수록 모를 수밖에 없는 구조다. 또 비탈을 따라 토성이 구축되어 있어 적의 공격 방향이 일정할 수 밖에 없다. 바로 이런 구조가 극대화 된 곳이 안시성이다.

2~3세기 공격 기술이 한정되어 있고, 전략/전술도 보편적이지 않으며 공격 무기도 변변찮았던 고대의 공격군들은 야트만한 언덕의 작은 성에 불과한 몽촌 토성도 깨뜨리기 힘들었을 것이다.

2013년 11월 5일부터 한성백제박물관에서 몽촌토성을 다시 한번 발굴조사를 펼치기로 한다고 한다. 풍납토성으로부터 빼앗긴 옛 지위를 되찾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2014년 7월 29일, 재조사 과정에서 백제시기로 추정되는, 수레자국이 선명한 도로유적과 통일신라시기의 유적들이 발굴되었다.##
  1. 이런 선견지명이 없던 풍납토성은 지금 난개발로 시달리고 있으며 수천억의 혈세가 들어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