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나 잊지 마라!무츠 한 사람을 벤들, 이제 와서 일본이 갈 길을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코무라가! 하라가!
내가 가르친 이들이 계속해서 뒤를 이을 것이다!
陸奧 宗光(むつ むねみつ, 무쓰 무네미쓰)[1]
텐포 15년 7월 7일(1844년 8월 20일) - 메이지 30년(1897년) 8월 24일
일본 메이지(明治) 시대의 외교관이자 정치가. 기슈번(지금의 와카야마현)출신으로, 사카모토 료마의 해원대(海援隊)에 참가하여 행동을 함께 했다. 메이지 시대엔 이토 히로부미 등과 함께 내각의 중추로서 활동하였다. 불평등 조약의 개정에 힘을 쏟는 한편, 청일전쟁을 외무장관으로서 주도하였다. 삼국간섭이 터지자 만약 지금 러시아, 프랑스, 독일에게 개겼다간 요동은 고사하고 대만이고 뭐고 청일전쟁의 전리품들이 다 날아갈 수 있으니 군말없이 수용하여 분쟁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현실주의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토 히로부미에 비해 한국에 더 알려진 인물은 아니지만, 실제 일본에서 만든 역사물에서는 조선침략에 대해서 이토 히로부미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못하진 않았다. 드라마 '언덕위의 구름'에선 당시 수상이었던 이토 히로부미가 러시아를 두려워하여 조선파병을 미루려하자, 그를 부추겨 조선파병을 하도록 한 인물로 등장하고, 만화 '왕도의 개'에서는 아예 청나라, 조선침략의 최종흑막으로 등장한다.(이토 히로부미는 1권에서 로쿠메이칸 외교로 까이는 쩌리.)
을미사변 당시 명성황후 시해에 무쓰 무네미쓰와 이토 히로부미, 야마가타 아리토모 이 3명이 배후에서 개입했다는 증거가 공개되었다. 기사 링크 책 링크
또한, 일본 역사 월간지 역사독본(歴史読本)에 위 내용을 뒷받침하는 글이 실렸던 적이 있는데, 사카모토 료마의 스승이자 막부 해군경이기도 했던 카츠 카이슈(勝海舟)가 쓴 편지에 무쓰 무네미쓰가 사건의 배후에 있다는 걸 간접적으로 비난하는 글이 실려있다는 내용이다.[2]
원래 성은 다테(伊達)로, '무쓰'는 일본 동북 지방(정확히는 아오모리 현 전체와 이와테 현 북부)을 가리키는 말. 만화 《수라의 각》에서는 사카모토 료마가 무쓰 이즈미에 관해 해준 이야기를 듣고 감명받아 성을 무쓰로 고쳤다고 각색하였다. 시바 료타로의 소설 《료마가 간다》에서는 '다테'라는 성을 쓰면 자신의 출신이 드러나기 때문에 자신의 출신을 숨기기 위해 성을 고쳤다고 묘사되어 있다.
만화 《은혼》의 등장인물 무츠의 원형이기도 하다. 속된 말로 일본 근현대사에서 유일하게 부끄럼 없이 자랑스러워 할수 있다고 일본인 스스로는 생각하는 시대를 이끈 인물인데다 그 사카모토 료마의 부하였다는 이유로 일본 내에서는 상당히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듯. 왕도의 개처럼 본질적인 문제부터 비판하고 들어가는 작품이 아니면 언제나 나름 괜찮은 모습으로 그려진다.
왕도의 개에서는 꽤 부정적으로 나온다. 김옥균의 암살을 유도하여 청나라와의 전쟁 여론을 이끌어내고, 동학농민전쟁에 무기를 제공하고 청나라를 유인해 전쟁을 벌인다. 이때, 덴노 무시하고 청일전쟁 이끌고 이모저모 활약하다가 메이지 덴노에게 "이게 짐의 전쟁이라고? 대신들의 전쟁이 아니던가?" 라는 쓴소리(이것도 실화)를 듣는다. 이 만화에 나온 무쓰와 덴노의 갈등이라든지 여러 모로 나온게 실제 역사이다. 마지막에 이르면 병으로 죽어가는데 강한 일본을 만든다고 자부하지만 주인공 카노 슈스케는 너같은 놈 때문에 우리 일본이 전쟁으로 미쳐돌아간다며 그를 죽이려 하다가 되려 애증어린 친구인 카자마(그는 반대로 무츠를 따르고 있었기에 칼들고 싸우다가)가 죽고 만다.
이를 본 무쓰는 심하게 기침을 하면서 "나는 가만히 내버려둬도 머지않아 죽는데 왜 앞길 쟁쟁한 젊은이를 죽였나..."라고 하는데 온갖 전쟁을 조종하고 기세좋던 그가 병으로 다 죽어가는 모습을 본 카노는 물러선다. 그리고 얼마안가 병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