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카모토 료마

1 일본 도쿠가와 막부 말기의 검객, 낭인, 정치가, 기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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坂本龍馬
텐포 6년 11월 15일(1836년 1월 3일) ~ 케이오 3년 11월 15일(1867년 12월 10일)
B형

일본 막부 말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 중 한 사람. 또한 오다 노부나가와 함께 일본에서 가장 인기있는 역사 속 인물 1, 2위를 다투는 인물이다. 소설가 시바 료타로팬픽소설 '료마가 간다'(竜馬がゆく)가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인기를 얻고 재조명되었다.

토사 번 출신으로 토사 번 3대 호상에 드는 유복한 상인 집안에서 늦둥이 막내로 태어났다. 위로는 형과 세 명의 누나가 있어서, 귀여움을 받고 자란 탓에 어릴 때는 겁쟁이에 야뇨증이 있었다고 한다. 사카모토 집안은 증조할아버지대에 번에 많은 자금을 제공하자 사카모토라는 성씨를 쓰는 것을 허락받고 따로 분가해서 하급무사 자격을 얻었다. (아버지가 3대 당주) 사실상 돈을 주고 무사 계급을 산 셈이다. 토사 번은 번의 성립 배경으로 상급 무사와 하급무사의 신분적 차별이 심했고, 우리나라로 치면 사카모토 집안처럼 돈 빌려주고 이자 놀이하고, 술, 옷 만들어 팔아서 돈벌은 상인이 돈으로 양반 계급을 산 무사는 하급 무사한테도 쌍놈 취급받던 최하급 무사였다.

그래서 무사로서의 삶보다는 상인으로서의 삶에 더 관심이 많았던 듯. 실제로도 에도로 상경하고 이후 각지를 전전하다가 주식 회사 개념의 사설 함대인 해원대를 창설하고 사쓰마조슈 등에 군수물자를 팔기도 했는데 삿쵸동맹에서 중개인 자격으로 입회한 것은 그렇게 사쓰마와 조슈 양쪽 모두에게 인맥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릴 적에는 학문보다는 검도에 빠져 검도의 사범이 되고자 했다. 1853년 검술 수행을 위해 약 1년간 에도에서 자비로 유학했다. 북진일도류면허개전을 받았다는 동시대인의 증언도 있지만 이것을 입증할 물질적인 증거는 없다. 일단 북진일도류를 수학한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로 스승인 치바 사다키치[2]에게 받은 것은 북진일도류 장도병법의 목록[3]이며 여기서 장도라는 것은 칼이 아니라 나기나타를 의미한다.[4]또한 받은 목록은 북진일도류 중에서 가장 낮은 단수인 초목록[5]이다. 물론 이후에 인정을 받았을 수도 있지만 기록상으로 확증이 된 것은 거기까지.

또 하나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은 일본 검술에서는 주변의 인간관계 때문에 승급을 거부하거나 실제로는 실력이 안 되어도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승급해주는 일이 잦았기 때문에 단수가 높고 낮은 것이 실제의 검술실력과 직결되지는 않는다. 따라서 사카모토 료마가 검객으로서 어느 정도의 기량을 가졌는지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증명할 만한 자료는 없다. 사실 행적을 보면 검객보다는 '논객'에 더 가까운 인물. [6]

애검으로 무츠노카미 요시유키(陸奧守吉行)를 소유하고 있었다. 원래 사카모토가의 소유물이었는데 형이 그에게 주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시바 료타로의 소설에서는 이 역할이 누이의 것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알고 있는 사람도 많다. 다만 료마 자신 검호하고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기 때문에 딱히 실제로 사용할 기회는 없었다. 원래 당시의 풍조로도 비싼 칼은 아껴두고 실전에서는 저렴한 가격의 브랜드 없는 명품을 쓰는 게 보통이었기도 하고. 대신 위협용으로 리볼버를 들고 다녔다는 듯. 료마의 권총은 처음에는 타카스기 신사쿠에게 선물받은 스미스 & 웨슨(S&W)모델2아미 33구경이었으나, 이를 잃어버린 후에 S&W모델1 22구경을 구입하여 사용했다고 한다. [7]

에도에서 유학 중에 흑선내항 사건이 일어났고, 같은 해 12월 사상가 사쿠마 쇼잔(佐久間象山)의 사숙(개인학원)에 입학해서 포술, 한학, 난학 등을 배웠다. 다음해 1854년 7월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후 1856년 10월부터 약 2년간 다시 에도에서 검도 유학을 했다.

1862년 12월, 막부 개화파인 카츠 카이슈를 암살하려고 그의 집으로 찾아갔다가 오히려 그의 사상에 감화를 받아 제자로 들어가 증기선의 항해술을 배웠다는 일화가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근년의 연구에 의하면 이렇게 말을 둘러댄 사람은 카츠 카이슈가 남긴 기록뿐으로, 그 내막에는 사카모토 료마를 백업하는 토사 번의 금융 네트워크의 자금 지원을 받기 위해서 소개장을 들고 찾아 온 그를 만났다는 설이 유력하다. 이후 일본 최초의 해운상사인 해원대를 창설한다.(이와사키 야타로가 훗날 미쓰비시 그룹으로 발전시킨다)

서로 원수지간이나 사쓰에이 전쟁시모노세키 전쟁으로 같은 입장에 서게 된 사쓰마와 조슈를 중재하여 사쓰마-조슈 동맹을(삿초 동맹)을 성립시켰으며, 대정봉환을 기안하고[8] 메이지 유신 달성에 결정적 기여를 하였다. 료마가 없었으면 메이지 유신도 없었다는 얘기까지 있을 정도였다.(또 다른 관측으로는 그 이전에 이케다야 사건(신센구미가 조슈·도사번의 존왕양이(존황양이)파를 격퇴하였던 사건)이 없었으면 메이지 유신도 없었다는 일화가 드러났기 때문)

대정봉환 한 달 후에 암살당했다.(오미야 사건) 신센구미는 평생 그를 죽이려고 쫓아다녔는데 대정봉환 후 막부의 중요 인물이 되어 정작 신센구미에서는 건드리지도 못했다. 누가 암살했는지는 아직도 미스터리. 가장 유력한 것은 대정봉환으로 도쿠가와 집안이 권력을 잃게 되자 에노모토 츠시마의 지령을 받아 도쿠가와 집안을 충직하게 떠받들던 세력이었던 미마와리구미의 수장, 사사키 타다사부로가 제비뽑기로 암살자를 결정하여 이마이 소큐에게 암살지시를 가하였다는 설.

정치적으로도 진보적이지만 서양 문물에 관해서도 굉장히 진보적인 것으로 유명한 인물로, 일본 문화에서 서양문물이라 하면 료마 님 정도의 인식이 박혀 있을 정도. 일본 최초로 해운회사(해원대, 海援隊)[9]를 설립했고, 최초의 근대적 손해배상소송(일본 최초의 증기선 사고였다.)을 걸었고, 또 최초의 서양식 신혼여행을 갔던 인물이기도 하다. 그리고 앵클부츠를 즐겨 신었는데 그 바람에 당시에는 드문 질병인 무좀으로 고생했다고 한다. 이것도 일본 최초급.(...)

료마의 구두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현재도 졸업식 등에서 자주 보이는 하카마부츠를 신는 스타일의 창시자이다. 이 문서 가장 위의 사진도 잘 보면 부츠를 신고 있다. 처음으로 하카마에 부츠를 매치해서 입고 다녔던 사람으로 남성의 하카마+부츠 차림을 현재도 보통 료마 님 스타일이라고 부른다. 여담으로 좀 더 격식(?)을 갖춘 차림으로는 흰 차이나칼라 셔츠를 받쳐입고 기모노, 하카마와 부츠를 매치하는 복장으로 이 쪽은 다이쇼~메이지 초기에 학생복으로 많이 착용하여 흔히 서생복이라고 부르는 편. 이 옷을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예시로는 절망선생. 이 서생복의 탄생에 큰 영향을 준 패셔니스타가 바로 료마 님.

여기에는 그럴만한 사연이 있는데, 토사 번은 200년 이상의 상급무사와 하급무사사이에는 신분 차별이 심해서, 하급 무사는 비가 와도 우산을 쓸 수 없고, 높은 게다도 신을 수 없었다. 료마는 카츠 카이슈가 보여 준 사진에서 미국 장군과 병사가 같은 군화를 신은 사진을 보고 '민주주의란 이런 것이구나'라는 것을 깨닫고 감동을 받고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이후 짚신을 벗어던지고 부츠 애용자가 되었다.

또한 전통 하카마의 경우 군바리들 군복에 줄 잡는것처럼칼같이 각이 잡힌 주름을 생명으로 여기는데[10], 주름을 잡기도, 풀어지지 않게 세탁하고 그것을 관리하기도 쉽지 않아 굉장히 불편하다. 그리하여 이에 개의치 않고 아랫단 주름이 다 풀어진 하카마를 아무렇지 않게 입고 다닌 인물. 각이 풀린 하카마가 펄럭펄럭하며 부츠를 신은 발목 라인과 조화를 이뤄 굉장히 멋있었다고 한다. 역시 패셔니스타.
이런저런 개인의 파격적인 행보와 삶으로 일본 근대사에서 자유인의 상징처럼 받아들여지는 인물. 아래에 보면 과대평가되었다는 평이 쓰여져 있는데, 실제로 정치적으로 대단한 행보는 삿쵸동맹과 대정봉환뿐이지만사실 그게 대단한거지만... 현대에 료마의 인기는 정치적 업적이 아닌, 이러한 고정관념을 벗어던진 자유로운 인간 사카모토 료마가 주는 매력에서 오는 바가 크다.

여성편력이 화려한 편이다. 근데 그중에는 시스콘도 있다고. 병약했던 어머니는 료마가 11살 때 돌아가시고, 셋째 누나인 오토메(坂本乙女)가 엄마처럼 키우다시피 했다.[11] 료마는 생애 200여 통의 편지를 남겼는데, 누나 오토메에게 13통의 편지를 보냈고, 이 편지는 지금도 소중하게 보존되어 료마 연구의 중요한 사료가 되었다.[12]

한국에서는 소프트뱅크의 회장 손 마사요시(孫正義:손정의)가 존경하는 사람으로 잘 알려져 있다. 참고로 소프트뱅크의 기업마크는 해원대와 형태가 같다.

1.1 일본 근대사 인물 중 가장 사랑받는 남자

일본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근대 역사인물로 시바 료타로료마가 간다가 그의 일대기를 다룬 소설이다. 다만 소설임을 나타내기 위해 龍馬가 아닌 약자인 竜馬를 쓴다. 전반적으로 조직 내 의견을 조율하면서 비전을 제시하는 2인자 캐릭터를 무척 좋아하는 일본인들의 성격에 걸맞은 인물이기도 하다. 같은 의미로 일본에서는 삼국지제갈공명과 같은 2인자 모사들의 인기도 무척 좋은 편이다. 다만, 근대가 아니라 일본 역사 전체로 따지면, 오다 노부나가에 이어서 2위를 차지하고 있다. 단적으로 비교해서 유신삼걸이라 불리는 기도 다카요시, 사이고 다카모리, 오쿠보 도시미치 들은 대단한 인물들이고 업적도 크지만 '사랑을 받는' 타입은 아니다. 사이고 다카모리는 출신지인 사쓰마에서는 사랑 받는다 하더라

하지만 근대에는 과대평가를 받고있다고 비난받는 인물 중 하나이다. 그 이유로는,

1. 단지 삶이 특이해서 작가가 주목해서 쓴 소설(료마가 간다)이 흥행해서 주목받는 것뿐. 가장 많이 언급되는 이유 중 하나로 작가 시바 료타로가 소설의 흥미를 끌기위하여 있지도 않은 일들이나 인물로서 흥미로웠던 사카모토 료마를 긍정적으로 표현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2. 사카모토 료마를 비난하는 이들에게는 유일한 업적이라는 사쓰마-조슈의 동맹(삿초 동맹)을 맺기 전까지는 아무 것도 이루지못한 탈번(脱藩)[13]로닌들중 하나에 불과했던 데다가 동맹을 맺도록 도와준 것 밖에 없고 실질적으로 싸웠던 것은 사쓰마와 조슈다.(또한, 도바·후시미의 싸움에서 신정부군으로 가담하는 도사 번의 진쇼타이(迅衝隊, 신충대)가 구 에도 막부군 군중들 중에서 가짜 이름으로 위장하고 거사를 꾸미던 신센구미하고도 대치하며 맞서나갔다는 전투 내역을 포함하였다.)

3. 위험한 방식으로 국가전복을 노렸다. 성공했기에 평가받는것이지 실패했으면 테러리스트 취급 이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다. 당시에는 막부가 힘이 없음에도 각종 주도권을 쥐고 있었기때문에 모든 양이지사들 특히나 근왕(황)파들은 막부의 시선으로 보면 정부를 전복시키고 새롭게 편성하려는 위험인물들에 지나지 않았다.[14]

4. 상인이 되겠다면서 해원대를 창설했지만 당시의 상인이라는 것은 시대상황으로 보나 안 좋은 인상을 남길수 밖에 없었다.(특히나 외국의 것을 보고 익혀야한다고 주장하는 사카모토 료마의 주장은 더더욱.) 게다가 무기를 넘겨주는 등의 행보나 전쟁에 참여하여 죽음의 상인[15] 이라고 비판한다.

5. 사카모토 료마의 공적이라고 여겨지는 삿쵸 동맹이나 대정봉환 역시 어느 정도 관여했는지는 사실 밝혀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사카모토 료마의 역할이 세간에서 여겨지는 것보다는 훨씬 작았다고 주장하는 학자들 역시 상당수에 이른다. 실제로 사쓰마 번의 주요인물이자 메이지 정부에서의 중요인사 였던 시마즈 히사미츠의 측근이었던 이치키 시로[16]의 지적에 따르면 삿쵸 동맹이 실효된 것은 료마가 참여했던 1866년 3월 회담이 아니라 1867년 당시 사쓰마 번주가 조슈 번과 회담을 가진 후의 일이다. 즉, 후세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료마의 역할이 과장되었다는 측면이 있다. 그 밖에도 료마가 사쓰마의 지시로 움직였다는 설 역시 존재한다. 당시 료마의 주된 거래 상대 중에 하나가 사쓰마였기 때문에 가능성이 있는 주장.

1.2 사카모토 료마의 선중팔책(船中八策)

일본 역사상 최초의 증기선 충돌 사건인 이로하마루 사건에서 키이 번으로부터 배상금을 두둑히 받아내며 사건을 해결한 후, 1867년 6월, 교토에서 열린 회의에 참석한 토사 번주였던 야마우치 요도에게 대정봉환의 생각을 진언하기 위해, 교토를 향해 배를 타고 가던 중에 함께 동행한 토사 번 참정 고토 쇼지로에게 료마가 말로 설명한 것을 나중에 해원대 대원이 문서화 한 것으로 추정.

일본 최초, 그리고 동양 최초의 민주정이 고안된 방법론이다. 대정봉환과 의정국 설치, 법전 설치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一、天下ノ政権ヲ朝廷ニ奉還セシメ、政令宜シク朝廷ヨリ出ヅベキ事。
천하의 정권을 조정에 봉환하고, 새 정령을 조정에서 세워야 한다.

一、上下議政局ヲ設ケ、議員ヲ置キテ万機ヲ参賛セシメ、万機宜シク公議ニ決スベキ事。
상하의정국을 설치하고 의원을 두어 만기를 시기에 맞게 공의로 결정해야 한다.

一、有材ノ公卿諸侯及ビ天下ノ人材ヲ顧問ニ備ヘ官爵ヲ賜ヒ、宜シク従来有名無実ノ官ヲ除クベキ事。
유능한 공경제후와 천하의 인재를 고문으로 삼아 관직을 내리고 종래 유명무실한 관직을 폐지해야 한다.

一、外国ノ交際広ク公議ヲ採リ、新ニ至当ノ規約ヲ立ツベキ事。
외국과의 교류를 확대하는 공의를 모으고 새롭고 지당한 규약을 세워야 한다.

一、古来ノ律令ヲ折衷シ、新ニ無窮ノ大典ヲ撰定スベキ事。
옛 율령을 폐지하고, 새롭고 무궁한 대전을 제정해야 한다.

一、海軍宜シク拡張スベキ事。
해군을 확장해야 한다.

一、御親兵ヲ置キ、帝都ヲ守衛セシムベキ事。
어친병을 설치하여 제도를 수비하게 한다.

一、金銀物貨宜シク外国ト平均ノ法ヲ設クベキ事。
금은의 시세를 외국과 균형을 맞추는 법을 제정해야 한다.

以上八策ハ方今天下ノ形勢ヲ察シ、之ヲ宇内万国ニ徴スルニ、之ヲ捨テ他ニ済時ノ急務アルナシ。苟モ此数策ヲ断行セバ、皇運ヲ挽回シ、国勢ヲ拡張シ、万国ト並行スルモ、亦敢テ難シトセズ。伏テ願クハ公明正大ノ道理ニ基キ、一大英断ヲ以テ天下ト更始一新セン。
이상 팔책은 현재 천하의 형세를 살피고 정한 것으로 이를 천하 만국에 공포한다. 이 조항을 새롭게 바꿀 때에는 만사를 제쳐두고 해야 한다. 이를 단행하면 황운을 회복하고 국세를 확장하여 만국과 병립할 수 있다. 엎드려 바라건대 공명정대의 도리를 기반으로 일대 영단으로 천하를 새롭게 하자.

료마는 이론가이기보다는 행동가였기 때문에, 그가 처음부터 모두 이러한 생각을 고안한 것은 아니다.
카츠 카이슈, 오쿠보 도시미치 등의 개화파 인사들의 핵심 개념을 정리한 것에 가깝다. 그러나 당시 많이 떠돌던 뜬구름 잡기식 혹은 무조건 토벌하자식의 극단적인 내용보다는 깔끔한 개조식이며 간단했다는 점이 크게 먹혔다. 고토 쇼지로 등의 토사 번 인사들은 이를 보고 감명받아, 대정봉환을 막부측에 건의하였다.

1.3 대중매체에서 사카모토 료마

위에도 언급한 시바 료타로의 소설 료마가 간다가 가장 유명하고 가장 사랑받은 작품이다. 일본 대중들에게 사실상 시바 료타로의 이미지를 규정한 작품.

무라카미 모토카의 만화 용(만화)의 주인공 오시코지 류의 모델이 사카모토 료마이다. 부자짓 자식으로 태어나 풍운적 삶을 살아간 면이라든지...같은 작가의 다음 작품인 타임슬립 닥터 JIN에서는 아예 사카모토 료마 본인이 주연급으로 활약한다. 자유분방하면서도 영웅으로서의 모습을 갖춘 인물로 나오며

(스포주의) 이런건 경고좀 하자 완전히 역사랑 똑같질 않으니 스포가 가능하다
암살의 과정이 살짝 변해 잠시 수명연장을 하지만... 결국 역사대로 간다. 장소도 오미야가 아니라 1866년 테라다야 사건이 있었던 테라다야에서 암살 공격을 당한다. 문학 쪽에서 시바 료타로가 료마를 띄워줬다면 만화계에선 무라카미 모토카가 료마를 밀어주는 듯.

2010년 1월부터는 후쿠야마 마사하루 주연의 NHK 대하드라마 료마전이 인기리에 방영되었다. 2014년 1월말 출판된 《사카모토 료마와 메이지 유신》은 그의 일대기와 모습을 가감없이 보여주는 자료로, 원전인 《Sakamoto Ryoma and Meiji Restoration》은 료마 연구의 고전이자 《료마가 간다》 집필에 가장 크게 참고한 자료이기도 하다.

료마의 팬이라고 카이엔타이라는 가수 그룹을 자기 의사로도 결성하였다는 보컬이었으며 드라마에서 자신의 얼굴과 빼닮아질 만큼으로의 료마 역을 맡았던 가수 겸 배우 타케다 테츠야가 지어냈다는 원작 만화 오이 료마(그림:코야마 유)는 NHK 애니메이션에서도 오프닝을 부르기도 하였다.

사도(만화)에서도 등장. 주인공들한테 죽임을 당한다. 딱히 스포일러라고 할 수 없는 게, 작품 자체가 근대화 과정에서 신선조 등의 여러 실존 단체, 인물 들을 부지런히 죽이는 만화인지라 하지만 이건 역사흐름대로 가니 그럴 뿐 주의는 필요하다 죽이려고 그렸다는 소문이 있다. 지뢰진을 생각하면 농담이 아닌 거 같다

투사 고디안의 등장인물 중에서 비슷하게 생겼던 오카모토 료마가 등장하였다.

은혼의 등장인물 사카모토 다츠마목소리 큰 놈의 모티브이다. 은혼 내에서는 해원대가 아닌 쾌원대(快援隊)[17]를 설립하여 활동중.

모바일 게임 몬스터 스트라이크의 유닛중 하나. 화속성 인데다가, 목속성 킬러 어빌리티를 보유하고 있어서 목속성 강림 몬스터 들에게 지옥을 선사한다...

용과 같이 유신!에서는 키류 카즈마가 역할을 맡는다. 요시다 토요를 암살한 복면 남자를 찾기 위해 사이토 하지메라는 이름으로 신센구미에서 고군분투한다.

2015년 4분기 일본 드라마 사무라이 선생님의 등장인물. 카미키 류노스케가 사카모토 료마 역을 연기했다. 배우의 말에 따르면 자신이 해석한 색다른 료마를 보여주는 것에 중점을 뒀다고. 그래서인지 타 매체에서 무겁고 진지하게 등장하는 료마에 비해 한층 가볍게 느껴진다.

가면라이더 고스트영웅 아이콘중 하나로 등장한다.

애니메이션 하이 스쿨 플릿에서 블루 머메이드의 전신인 조직을 만든 것으로 언급된다.

여성향 모바일 게임 러브 인 교토의 등장인물이자 공략 캐릭터. 출시 초창기부터 나온 공략 캐릭터의 3명[18] 중 한 명이었으며, 대식가 기질이 있는 까칠하면서도 다정한 면의 캐릭터로 등장한다.

전설의 용자 다간에서 주인공 타카스기 세이지를 타카스기 신사쿠부터 유래하였다면, 주인공의 어머니로 나오는 타카스기 미스즈의 원래 호적이던 사카모토를 료마로부터 곧바로 유래하였다.

2 란스 시리즈의 캐릭터

전국란스에 출연했다.

파일:Attachment/사카모토 료마/d7.jpg

재능레벨 33/44이며, 기능레벨은 불명. 자신은 검을 사용하지만, 담당하는 부대의 병종이 닌자인걸로 봐서 검술과 닌자기능레벨을 둘다 가지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어릴때 자신의 어머니를 유혹하다가 차인 요괴가 열받아서 어머니에게 걸었던 저주가 당시 뱃속에 있던 그녀(그?)에게 걸리는 바람에 태어나자마자 후타나리가 되어버린다. 결국 이래저래 해꼬지를 당하다가 버려져서 死國(시고쿠)에 도착하게 되고, 자신을 주워준 곤과 자신을 보살펴주고 돌봐준 카와노에 남매에 의해 시고쿠에서 자리를 잡고 성장하게 된다.

그후 버려져서 시고쿠에 왔던 사람들을 이끌고 시고쿠의 엄중한 문을 돌파하고서 모리의 영토에 침공하게 되지만, 오히려 모리는 그런 그녀(그)들을 재밌게 보고서 자신의 땅을 하나 떼어서 잘 다스려 보라고 시킨다. 료마는 모리의 그런 태도에 자신이 저주에 걸렸기에 얕보고 있다고 생각하며 나중에 한방 먹일려고 했었는데, 사실 아군으로 들어본 모리 모토나리의 태도에서 보면, 말 그대로 재밌었기 때문인것 같다.

그후 이래저래 별탈없이 지내면서,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저주를 건 요괴들을 찾아서 해치우고 있다가, 오다에 전쟁을 걸게 되지만 끝내는 시고쿠까지 후퇴하게 된다. 이때 선택지가 있는데, 시고쿠의 문을 닫을 경우, 싸움을 끝낼 수 있지만 그녀(그)와 동료들을 포획할 수 없기 때문에 비추천. [19]

귀축 란스처럼 신나게 돌진하면, 마침 시고쿠에서 올라왔던 오니들이 배후에서 습격해 온것에 오니들에게 잡혀서 능욕을 당하게 되며, 이걸 오다가 구해주면서 오다의 포로가 된다. 이후 채용을 하면, 신나게 포로가 된 자기 동료들 풀어달라.하면서 이리저리 떼를 쓴다. 풀어주든 말든 그건 자유다.

또한 호감도를 올리면 얼마후 호조(호조우)의 영토에 그녀(그)에게 저주를 건 요괴가 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며, 그 요괴를 해치운 후의 선택지를 고르는 것으로 완전한 여성 또는 완전한 남성 캐릭이 된다.

파일:Attachment/사카모토 료마/00.jpg
남자 료마
파일:/pds/200711/04/35/e0032935 472cde9682a93.jpg
여자 료마

참고로 여성이 되었을 경우, 드디어 그녀와 란스의 H이벤트가 나오는데, 이후 가와노에 유즈루의 호감도를 올려서 캐러크리를 내 버리면, 료마가 그에게 시집가면서 료마는 그의 부관이 되고, 료마의 부대가 그의 부대에 흡수되어 버린다.-_-;

남성으로 했을 경우, 란스와의 H는 당연히 못하지만, 그 대신 가와노에 미네가 란스에게 대신 안겨준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가와노에의 누이의 호감도를 올려서 캐러크리를 내 버리면, 이번에는 료마가 이쪽에 장가를 가서 료마가 그녀의 부관이 되고, 료마의 부대가 그녀의 부대에 흡수되어 버린다.

이를 이용해 가와노에의 병력을 말도 안되게 늘리는 것이 가능한데, 가와노에의 캐러크리를 하기 전에 료마에게 장군호위대를 장착시킨 후 캐러크리를 하게되면 가와노에의 병력은 병력대로 늘고 장군호위대의 페널티는 적용이 안되고 장군호위대의 재사용까지 가능하게 된다. 거기에 가와노에에게 애인 스킬이 장착되게 되므로 스킬인 도박공격이 훨씬 무시무시하게 진화하게 된다.

결혼한 사람은 안 건드리는 주의인 란스에게 있어서는 어느쪽이건 손해를 보는 그야말로 흠좀무한 사태.(…) 아예 가와노에 남매를 계속 포로로둬서 이 이벤트를 미연에 방지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사족으로 타쿠가의 군세가 남아 있고, 하니신센구미의 이벤트를 본 후라면 신센구미가 료마의 보이쉬에 반해 도와줄려다가 후타나리라는 사실을 알고서 계속 료마의 영토에서 깽판(…이지만 다들 무시한다…)을 치는 이벤트를 볼 수 있다.

신센구미가 잡으려고 해도 잡을 수 없는 미묘한 상황이 1번의 료마의 패러디인듯 하다.(…)

3 니코니코 동화의 유저

니코니코 동화의 실황 플레이팀 막말지사 듀오의 1인(물론 닉네임). 주로 플레이 담당.

4 머나먼 시공 속에서 5에 등장하는 캐릭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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坂本龍馬

1이 모델인 머나먼 시공 속에서 5의 등장인물. 팔엽 중 한 명으로 지청룡. 게임 시작 시 나이는 27세. 신장은 180cm. 생일은 1월 3일. O형. 상징색은 노초색(露草色:닭의장풀 색). 상징물은 명자나무. 성우는 스즈무라 켄이치.

토사번(土佐藩) 개국파(開國派). 밝고 당당한 막부지사. 정신을 차려 보니 주인공 앞에 나타나서는 "아가씨"라고 부르며 편하게 말을 걸어온다. 괴짜라고 알려져 있으나 희한하게도 인망이 두텁다. 덜렁이처럼 보이지만 실력과 행동력을 갖춘 인물.

취미는 시장 순회, 편지 쓰기. 특기는 배 조종, 검술, 포술. 버릇은 턱에 손을 대고 생각에 빠지는 것과 혼잣말, 머리를 긁적이는 것.

처음 이세계로 갔을 때 홀로 떨어진 주인공과 맨 먼저 만나는 인물이다. 그런 것치곤 정신없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기 때문에 파티에 들어오는 건 비교적 스토리가 진행된 후. 신센구미에게 목숨을 위협당하고 있으나 매번 어떻게 해서든 도망치는 모양이다. 코마츠타카스기와는 예전부터 아는 사이인 듯, 이름을 편하게 부르고 있다. 밝고 긍정적인 성격이라 작중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담당한다.
사신을 패를 모으는 주인공을 위해,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가보인 청룡의 패를 준다.
여담으로 실제 역사와 같이 도중에 암살 위협을 당하는데, 1회차 필수 배드엔딩을 본 이후라면 미연에 방지하거나[20], 그게 아니면 현대로 데리고 가서 살릴 수 있다. 치료는 의사 지망생인 이 해 준다.

5 타임 앤 테일즈에서 등장하는 캐릭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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료마편의 사실상의 주인공이다. 온순한 성격에 천연남에 가깝다. 작중에는 누나캐릭터인 오토메에게 꼼짝못한다. 아무래도 여성의 편력이 시스콘이었던걸 반영한 듯 하다.ㅡ_ㅡ; 상당한 미남이다. 문제는 누나인 오토메도 브라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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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인 오토메

  1. 당시 최첨단 기술이자 한 장 찍는 데 돈이 많이 드는 사진을 7장 남겼다. 이 시기에 에도 막부 마지막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 다음으로 많은 사진을 남긴 사람이다.
  2. 사족. 이 남자의 딸이 치바 사나코인데 당대의 여성 검객이었다고 한다. 도장집 딸이라 어릴 적부터 문하생들과 어울렸다고. 레알 카미야 카오루? 료마와도 러브스토리가 있는데 평생 료마를 그리워했다는 모양. 검색하면 일화가 많이 나온다.
  3. 일본검술의 단수를 세는 단위 중에 하나.
  4. 마츠오카 츠카사 저, 초견의 사카모토 료마 서장과 북진일도류 장도병법 목록, 츠치이 하루오 북진일도류와 그 면허개전 참조.
  5. 初目録. 북진일도류는 초목록, 중목록면허, 대목록개전의 3단 구도이며 소위 면허개전은 대목록개전에 해당한다.
  6. 시바 료타로의 소설에서는 거의 무념무상으로 승부에 달관한 태도이지만 칼을 뽑으면 무적이라는 식으로 고수를 넘어서 달인에 가까운 검객으로 묘사한다.
  7. 그 때문인지 검호 3에서는 남들은 검을 집에 넣으면 발도술을 쓰는 반면, 이 녀석은 갑자기 총을 꺼내들고 쏜다. 친구들과 대전할 때 쓰면 친구들을 벙찌게 만들고 리얼철권을 일으킬 수도 있다. 어느 정도냐면 총 6발을 쏘는데 어지간한 검호들은 이 6발 이내로 제압이 된다... 그렇다고 좌우 이동으로 회피하려다가 넉백당하면 그 다음은 바로 달려가서 내려찍기로 끔살. 그러나 이보다 더 사기적인 올스텟 다 풀로 찍은 이쿠마츠 아줌씨에게는 씨알도 안 먹힌다.(오히려 다 쏘고 나면 연속기 한 셋트에 바로 역관광)
  8. 정확히는 다른 이들의 주장에 살을 붙이고 실질적인 비전을 제시했다.
  9. 이 회사에 있던 이와사키 야타로(岩崎 弥太郎)가 해원대가 해산된 뒤 받은 지분으로 만든 회사가 다름 아닌 미츠비시
  10. 남성 하카마는 전면에 다섯 갈래로 주름을 잡는데 나중에 갖다 붙인 바로는각각 유교의 인 의 예 지 신을 상징한다고 하여 주름이 풀린 하카마는 굉장히 예의없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11. 하지만 나이 차는 4살로 료마의 형제자매 중 료마와 가장 가까웠고 이 때문인지 료마의 가장 큰 이해자가 되주었다. 오토메는 키가 170이 넘고 체중이 100킬로에 가까운 여장부였다.
  12. 다른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들은 료마하면 떠오르는 자유로움과 달리 딱딱하고 예의 바르게 작성되어 있는데 오토메에게 보낸 편지들은 농담도 많고 자유로운 분위기(자신의 정치적 생각, 사담 등)의 편지를 남겼다, 카츠 카이슈의 제자가 되었다며 자랑하며 의성어로 '에헴 에헴'이라고 쓴 것은 귀엽다.
  13. 영주가 다스리는 행정구역인 번(蕃)에서 나온 것. 당시 계급사회였던 일본, 특히나 사무라이가 섬겨야할 주군을 버리고 나오는 것으로 중죄에 속하였다. 다만 막부 말에는 뜻을 이루고자 탈번하는 자들이 속출했다. 원래 무사계급은 군사계급이므로 허가없이 주거지를 변경할 자유가 없었기에 당시에는 중죄였다.
  14. 이 점에 대해서는 다수의 이견이 있다. 료마가 대정봉환을 기안할때, 도쿠가와 요시노부로 대표되는 다수의 막부측 인사가 포함되도록 숙안을 내밀었다. 그가 반막부 세력인 유신지사이긴 하였으나 타 지사들처럼 막부의 완전한 해체 혹은 타도보다는 신 정부(공무합체 정부) 수립에 더 중점을 두었다. 실상 이러한 성격때문에, 그는 근황파 사이에서도 약간 겉도는 입장이었다. 또한, 사카모토 료마는 암살이라는 수단을 굉장히 혐오하였다.
  15. 여기서 말하는 상인이라는것은 일본의 사농공상에서의 상인이 아닌 외세, 서양의 무기상인이다. 무기를 파는 그들 입장에서는 비지니스가 잘된다면 손해볼일도 없었다.
  16. 일본에서 최초의 사진을 찍은 사람이라는 타이틀도 보유하고 있다
  17. '해원대(海援隊)'와 한자는 다르나 발음은 '카이엔타이'로 동일하다.
  18. 사카모토 료마, 히지카타 토시조, 도쿠가와 요시노부
  19. 다만 장수가 가득 찼다면 문을 닫음으로서 300명과 H 도전과제를 좀 더 쉽게 달성할 수 있다
  20. 료마 공략 진행 시 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