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쓰 가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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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즈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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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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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에. 동그라미 속 사진은 부인.

勝海舟 1823.03.12~1899.01.19

에도 막부 말기(막말)부터 메이지 시대의 정치가. 에도 막부 내에서 넒은 시야를 가진 개화파 가신로 활약했다. 당시로선 상당히 개방적인 사고를 갖고 있던 인물.

쇼군 직속 가신 하타모토의 장남으로 에도(현 스미다/치요다 구)에서 태어났다. 젊은 시절에는 검술 수행에 심취했다. 지키신카게류(直心影流)의 면허개전을 받았다. 검술 스승의 권유로 (禪) 수행을 한적도 있다. 이후 난학(네덜란드학)과 서양 군사학을 배우고, 이를 다시 가르치면서 사쿠마 쇼잔[1]과 함께 유명해졌다.

1653년 페리 제독흑선내항 사건을 계기로 강제개항하게 된 에도 막부가 해군 양성을 위해 해군 조련소를 나가사키에 설립할 때 그의 서양 군사학과 네덜란드어의 소양으로 해군 전습소 전습생 감독을 맡게 되었다. 여기서 네덜란드인들과 접촉하면서 세계 정세에 관한 정보와 시야를 얻게 되었다. 이때 사카모토 료마가 처음엔 그를 암살하려 찾아왔다가 그에게 감복하여 제자를 자청하고 그에게서 항해술을 배웠다는 일화가 있다. 진짜로 암살하려 왔는지는 의문.

1860년 미일수호통상조약의 비준서를 교환하기 위해, 사절단을 이끌고 배의 선장으로 태평양을 횡단해 미국에 갔다 오는 데 성공한다. [2] 미국의 새로운 사회제도를 배우고 돌아왔다.

무진전쟁에서 사이고 타카모리가 이끄는 천황파 신정부군이 에도성을 공격할 때 중재를 맡아 무혈입성을 이끌어냈다. 이 일은 내전의 위험을 피하고, 국력을 크게 훼손하지 않는 혁명을 이끌었다는 평을 받는다.

그 후로는 저술활동을 하며 지내며 메이지 정부 하에서 고문을 맡기도 했다. 청일전쟁이 발발했을 때 유일하게 반대하였다.

말년에 그는 진정 용기있었던 자는 도쿠가와 요시노부 공이었다고 회고하면서 유신 지사들을 우회적으로 디스했다.

루스 베네딕트의 저서 국화와 칼에 의하면, 어린 시절 개에게 불알을 물려 고자가 될 뻔했다고 한다. 의사가 수술하는 동안 아버지가 칼을 꺼내들고 "울지 마라. 이대로 죽으면 개죽음이다."고 말했다고. 정확히는 가쓰 카이슈가 1831년 9살 때 학원에 가는 길에 생긴 일로 사경을 헤매다 대략 70여 일(혹은 50여 일이라고도 한다)이 지나서야 일어나 걸어다닐 수 있었다고 한다. 이는 일본에서도 많이 알려진 일화인지 구글에다가 카츠 카이슈를 검색하면 자동완성 검색어로 '카츠 카이슈 개(勝海舟 犬)'가 뜰 정도.[3]

야스히코 요시카즈 화백의 대표작 중 하나인 왕도의 개에서는 포괄적인 시각을 가진 현인으로 등장한다. 작가의 생각을 대변하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으며, 주인공이 단순히 김옥균의 경호인을 하기만 하는 것에서 벗어나 더 큰 일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고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바람의 검심 TV판 오리지널 스토리에도 등장했다.

그리고 일본의 영 점프에서 연재되었던 괴작 만화 사무라이건에서는 평의회의 수뇌로, 평의회를 가지고 막부를 전복시킨다는 괴랄한 스토리로 나온다. 사이고 다카모리는 무슨 순정만화풍으로 온화하게 그려놨는데, 그것도 황당하다. 만화에 의하면 사쿠마 쇼잔의 동료였다고 한다.

일본 드라마 타임슬립 닥터 JIN에서 코히나타 후미요가 부드러우면서도 강력한 카리스마를 보여준 연기로 호평 받았다. 일본 영화 막부고교생에서는 타마키 히로시치아키 센빠이가 연기했는데 여기서도 타임슬립한 미래인들과 엮여서 좌충우돌 하는 역.

여담으로 야마오카 텟슈, 다카하시 테이슈와 함께 막말(막부 말기) 3라 불렸다.
  1. 쇼잔은 카이슈와 처남매부지간
  2. 태평양을 건너간 첫 번째 일본인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명령으로 멕시코로 건너 간 상인 다나카 쇼스케. 일본인이 직접 선박을 몰고 태평양을 횡단한 것은 최초. 다만 배멀미로 드러누워서 선장 역할은 거의 못 했다고 한다. 대신 통역사로 동행한 존 만지로가 선장 역할을 해냈다고 한다.
  3.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