墨家
1 설명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제자백가 중 한 학파로, 묵자(墨子)를 시조로 한다.
법가가 법, 유가가 인(사랑•동정)과 의(정의)라면 묵가는 바로 애(愛), 즉 사랑을 기본 모티브로 하여 모든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면 세상에 고통이 없지 않겠냐는 히피? 주의다. 유가의 仁도 사랑[1]이지만, 묵가의 사랑은 겸애(兼愛)로서 차별없이 평등한 사랑을 말한다. 기독교의 아가페적 사랑과 비슷한 부분[2]이며 맹자가 '무부'애비 없라 칭하여 지 부모도 못 알아 본다며 끊임없이 까는 부분. 실제로는 '가족도 없는 사상'이라는 모욕인데, 궁극적으로 묵가의 '겸애'가 가리키는 인간세상에 대한 그림은 우리가 알고 있는 가정과 아예 다른 개념이다. 가족조차 이상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사회체계를 말한다. 묵가는 '10개의 나라가 나눠져 100개의 나라가 되고, 100개의 나라가 1000개로 나눠지고, 그것이 1만개로 나눠지면 결국 각 나라사이의 힘의 차이가 매우 작아지니, 그중 제일 강한 나라가 제일 약한 나라를 침공하려 해봤자 힘의 차이가 적어, 다른 나라가 조금만 도와도 충분히 막을 수 있게 되고 나아가 그 최강국이 망할 수도 있게 되어 그럴 뜻을 품을 상황이 없어지니 집단간 힘의 균형이 완벽하게 유지되어 평화가 온다'며 이를 궁극적으로 추구함을 통해 세상의 혼란없는 평화는 물론, 사실상 나라라는 개념 자체가 없어질 수 있고 더 나아가 행정적인 개념상의 가정도 없어질 수 있음을 주장하였다. 그야말로 극초분할화된 세상, 석기시대급의 원시 공산사회[3]를 꿈꿨다. 그러면 최소한 대규모 전쟁이란 건 없을 테니
또한 소염론을 주장해 인간의 본성은 없고 물감을 푼 물에 젖어가는 백지같이 물들어 간다라고 했다. 고자와는 비슷하지만 구별된다. 오히려 로크 등의 타뷸라 라사와 비슷하다.
또한 '교상리(交相利)'라는 덕목으로 모든 사람이 동등한 재화를 나누어가질 것을 주장했다. 재화를 나누어가질 때는 모든 사람이 동등한 재물을 가지는 것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결과적으로 소비한 뒤에 남게 되는 물건들은 다시 거두어서 또 나누어주는 것으로 잉여생산물의 축적을 통한 부의 불균형을 막기 위한 방책이다.[4]자식이 잉여라면? 자식을 반으로 나눈다 그냥 먼 미래의 근대 공산주의 국가들에서 하던 것과 흡사하다. 그리하여 후일 서양 공산주의[5]의 뿌리에도 영향을 주는 사상이 되나, 오히려 중국 공산당에서는 이것 이외의 다른 사상 부분에서의 충돌문제로 묵가 사상에 대해 받아들이는 것을 거부당했다.
묵자는 유가에 비해서 실용주의 노선을 걸었다. 대표적으로 제사나 3년 상을 거부했는데, 돈낭비, 시간낭비라는 것이 이유였다.
재밌는 점은 묵가들은 뛰어난 수성술을 익혔다는 것으로, 이 때문에 묵적지수란 고사성어도 있다. 이들은 전쟁이 벌어질 경우 방어하는 진영에 참전하여 그들의 뛰어난 수성술로써 돕고 그 뒤 다시 길을 떠나는 식으로 살았다. 즉 모두가 전쟁에서 이기지 못하게 만들어 전쟁을 막고자 한 것으로써 의외로 스케일이 크다.[6] 그래서 사실 제자백가 중 전국시대 최고 스타는 묵가였다. 약자 편을 드는 이미지가 강해서 수많은 백성들이 좋아했고 묵가의 사상을 배우려 들었다고..
묵자를 비롯한 묵가의 일원들은 당대 최고의 수성전문가였다고 한다. 다만 묵가의 창시자인 묵자는 바퀴제작의 전문가였는데 이는 수레를 이용한 전차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수성 외에도 전쟁에 관련된 경우 강력한 위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당시의 군주 및 지배층들이 무정부주의적 색채가 진한 묵가를 싫어했기에 탄압당했으며, 통치자의 입장에서는 실행하기도 까다로웠다. 또한 묵가도 뒤로 갈수록 성격이 변질되어서 소도시/소국 방어가 아니라 국력의 증강을 도모하는 대국의 요청에 응하게 되면서 본래 묵자의 '비공' 사상으로부터 조건부 비전론으로 그리고 결국에는 전제지배를 추인하는 '상동(尙同)'의 사상이 제창되기에 이르렀는데 현실과의 타협이 심화될수록 묵가가 분열되면서 사라지게 되었다고 한다(신서원에서 나온 『아시아 역사와 문화 1권』 중국사-고대 편 참고).아마도 어느 시점부터 묵자가 죽거나 사라지고 묵가의 리더가 바뀌었을 가능성이 있다. 혁명적 이론을 앞세운 스타의 말로는 보통 이러하다
진시황이 나라를 설립하는데 묵가의 도움을 꽤 받았으나 제국 건설이후 위에서 서술된 묵가의 사상[7]과 공존할 수 없는 특성 때문에 가장 심한 탄압을 받았고, 유가, 도가와는 달리 진 이후의 중국에서는 그 존재가 소멸하게 된다. 오직 묵적이 신선으로서 도가에 받아들여지고, 경전도 도가 경전의 틈새에 끼어서 살아남았을 뿐.
살아남은 묵가들은 기존의 묵가적 질서를 유지하는 특징을 가지는 세력과 형이상학적인 학문쪽으로 더 집중하는 세력으로 갈린다.
묵가의 가장 큰 문제점이었다면 그 겸애 정신(완벽한 무차별)이 실제로 실천하기엔 꽤 어려운 것이었다는 것. 일반적인 국가 개념을 거부하는 것을 넘어, 가정 개념까지 완전히 뒤바꿔놓는 수준이라 근본적으로 자기 자신의 이익을 우선으로 생각하는[8] 인간 본성을 넘어서기가 어렵다. 거기다가 세월이 지나면서 변질돼서 묵가의 영수인 거자는 절대권력을 누렸다고 한다[9]
2 대중문화 속의 묵가
만화 원작으로 묵가에 소속된 한 가상의 인물을 묘사한 일본만화 묵공이란 작품이 있다. 초반에는 잘 나가다가 후반에는 완전히 안드로메다로 가버리는 스토리가 일품. 이를 원작으로 더욱 아스트랄해진 안성기씨가 출연한 한중 합작영화 묵공도 있다. 위 작품들을 보면 묵가가 어떠했는지 대략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3 관련 항목
- ↑ 정확히 말하면 '공감하고 소통하려는' 의지라서 그걸 사랑으로 볼 수도 있기는 하지만, 'sentimental', 'sensitive' 즉 타인의 감정에 감성적으로, 혹은 민감하게 공감하는 능력을 말한다. 공자는 인에 대해 '(상대의 감정을) 말하지 아니하여도 능히 알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초코파이? - ↑ 약간은 다른 개념이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아가페적 사랑은 초월자가 스스로를 제물로 바쳐서 이루는 무조건적 헌신이라는 뉘앙스를 지닌다. 반면 묵가에서 말하는 겸애는 물질적인 면에서 실리주의적 성격을 가진다. 사랑보다는 이익을 의미한다고 보면 된다. 즉 '만민에게 이익이 되게 하자'의 뉘앙스를 가진다.
홍익인간 - ↑ 물론 기술이나 학문적 성과를 없애고 모든 수준을 석기시대급으로 하자는 뜻은 절대 아니다. 발전된 기술로 인한 혜택은 가지되, 이를 어떤 차별도 없이(이것이 겸애) 모두가 완벽하게 공유하자는 것이며 이를 위해 세상을 잘게 쪼개 힘의 균형을 완벽하게 맞춰야 한다는 뜻이다.
- ↑ 사실 이게 고고학에서 분석한 석기시대급 원시 공산사회에서 하던 방식이다. 아마 당시가 신석기시대로부터 먼 시대는 아니었으므로 당시의 문화에 대한 시대적 지식 전달이 대중적으로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 ↑ 레닌도 묵가의 사상에 영향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 ↑ 상술된대로 묵가는 나라가 점점 더 나눠지는 것을 추구했으므로, 당연히 약자인 나라편을 들어 나라수가 줄어들고 강한 나라가 더 강해지는 것을 막아야 했다. 묵가의 사상은 겸애지만 그를 위한 방법론은 '온 세상의 균형 추구'였다.
- ↑ 묵가는 수천수만개의 나라가 생겨야 한다고 했는데, 진시황은 아예 통일을 해버려서 한 나라를 만들었으니 정반대다.
- ↑ 이는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동물의 본성이라는 게 정설이다.
- ↑ 맹자 교양 강의(푸페이룽 지음) pg1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