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자계

微子

상나라(은나라)의 왕자로 이름은 계(啟), 주로 미자계라고 한다. 미(微)는 영지의 이름으로 아버지는 상나라 29대왕 제을이며 상나라 마지막 왕 주왕의 이복형이 된다. 현명하고 올바른 사람이었으나, 정실 소생이 아니라서 이복동생에게 왕위를 양보한다.

주왕이 달기를 끼고 폭정을 다하자 주왕의 아저씨뻘 되는 기자는 간언하다가 노여움을 타서 미친 척하며 다니다 투옥되고 비간처형되었다. 이에 미자계는 상나라에 천명이 떠난 것을 알고 주무왕의 편을 든다.

주나라군은 목야대전에서 상나라에 승리하고 주왕은 스스로 궁궐에서 분신자살했다. 미자는 무왕에게 상나라의 사직이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해달라고 부탁했고 이에 주왕의 아들 무경이 은나라를 계속 이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러나 상나라가 다시 부활할 것을 우려하여 자신들의 형제인 관숙(管叔)선, 채숙(蔡叔)도, 곽숙(霍叔)처[1]를 감시자로 보냈다. 이들을 3인의 감시자라는 하여 삼감(三監)이라고 부른다.

주무왕이 죽고 어린 주성왕이 즉위하자 주공단[2]이 섭정했다. 무경은 이 틈을 노려 상나라 부활을 시도했고 삼감은 주공단에 불만을 품고 있었으므로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 이들은 삼감의 난을 일으켰다. 미자계는 여기서도 주공단의 편을 들어서 삼감의 난을 진압하는데 공을 세웠다. 무경과 관숙은 처형되었으며 채숙과 곽숙은 추방되었다. 그래서 미자는 무경이 다스리던 지역의 제후로 봉해졌는데 이 지역을 (宋)이라고 한다.

이 후 미자가 죽었는데 후사가 없어 동생 미중연(微仲衍)이 제후직을 이어받아 이 곳을 다스리게 되었고 이 후 송나라 제후는 미중연의 후손들이 세습하게 된다. 사실 미자는 상나라 쪽에서 보면 충신이 아니라 오히려 동족을 배반한 배신자이자 매국노이기도 하다.

사기에는 그의 이름이 개(開)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한경제의 이름을 피휘하기 위해서다.
  1. 관숙, 채숙, 곽숙은 각각 관, , 곽의 제후라는 뜻으로 각각의 이름은 선(鮮), 도(度), 처(處)이다.
  2. (魯)나라 제후로 이름은 단(旦)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