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rbylonian Captivity(바빌론 유수(幽囚 - 유배되어 갇힘).
기원전 6세기 유다 왕국이 신바빌로니아의 네부카드네자르 2세(느붓가네살)에게 멸망 당하고 히스기야(시드기야) 왕과 유대인들이 바빌론에 억류되어 포로 생활을 했던 사건을 일컫는 말.
유대인들은 나라를 잃고 적국의 수도로 끌려가 지옥같은 노예 생활을 겪으면서도 자신들의 민족적인 정체성을 지키려고 노력했고, 이를 위해 유대교 신앙 강화와 더불어 자신들을 해방시킬 메시아에 대한 희망에 의지하게 된다.
사실 이 사건은 소위 유일신 종교로서의 유대교와 민족으로서의 유대인의 역사적 출발점이기도 하다. 즉 고난이 민족적 종교적 정체성 형성의 바탕이 되었다.
이때 나타난 인물이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 제국의 키루스 2세이다.[1] 키루스 2세가 기적처럼 바빌로니아를 정복하고 바빌론에 입성하니 거기에는 바빌론인 만이 아닌 유대인이라는 처음 보는 이민족이 있었던 것. 이 유대인들은 바빌론인들의 소유물이었고, 고대 사회에서 전쟁에서 이긴 측은 패배한 측의 모든 것을 가지고 지배하는 것이 상식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키루스 2세는 유대인들을 전리품으로 취하지 않고 무조건으로 해방시켰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유대교 경전이나 제구들까지 손대지 않고 고스란히 돌려 보냈다. 유대인 입장에서 보면 멸망 50년 만에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일,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2]
메시아 신앙[3]이 실제로 성사되자, 피지배 생활을 하던 시기부터 강해진 야훼신앙은 이후 완전히 뿌리를 내리게 되고,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유대인=유대교의 공식이 완성되었다. 또한, 키루스 2세는 기름 부어진 자, 즉 메시아(구세주)라는 칭호로 불리게 된다. 이는 성경에도 남아있는데, 그는 성경에서 유대인이 아닌 인물 가운데 유일하게 기름 부어진 자이다.
이 사건이 일어난지 2000년 뒤 가톨릭의 교황이 프랑스의 아비뇽으로 끌려간 사건을 이에 빗대어 아비뇽 유수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