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soners of War; POW
1 개요
전시에, 범죄에 의하지 아니하고(교전권이 있는 자를 포함) 군사상의 이유로 인하여 교전 상대국의 권력 내에 들어가게 되어 자유를 박탈당한 적국인.
주로 포로로 억류되는 사람은 군인이나 적국 정부에 관련된 사람 혹은 위험분자로 분류된 사람들이며, 일반적으로 민간인을 포로로 억류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도 그럴 것이 포로로 사로잡으면 이들을 수용하고 먹이고 재워야 되는데 수백 ~ 수천만에 해당하는 적국 민간인을 다 감당할 능력이 되는 나라가 얼마나 되겠는가? 천하의 천조국도 부담되는 일이다
역사적으로 포로는 승자가 모든 권리를 지니는 취득물이었으며, 승자의 가학성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포로 학살이 자행되거나, 그들이 모시는 신을 위해 산 제물로 바쳐지곤 하였다. 그러나 중세로 오면서 몸값을 받고 풀어주거나, 몸값을 낼 재간이 없으면 죽이거나 노예로 팔려나가는 형태로 변화하게 된다. 유럽에서는 중세시대 용병제가 정착되면서 포로의 대우가 향상되었다는 견해도 있다.
당시 용병들은 돈에 의해 움직이는 존재였기에 다음 전투에선 서로 깃발을 바꿔들고 싸우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따라서 당장 지금은 적대세력의 용병이었지만 나중에 자기가 돈을 주고 고용할지도 모르니 붙잡혀도 최대한 편의를 봐준 셈이었다. 괜히 포로들 괴롭혔다가 그때 원수를 갚겠다고 깽판 치면 인과응보가 되는 셈이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용병들 역시 약탈에 참여하는 경우가 줄어들었다. 지금의 적이 나중에 고용주가 될지 몰랐기 때문.
근대가 될수록 전쟁이 국가적으로 불가피한 선택이었고, 웬만한 국가는 보통 전시가 되면 징병제로 병역제도를 전환하는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군인들 또한 전쟁의 희생자라는 관점에서 접근이 있었고, 인권사상이 발달함에 따라 포로에 대한 처우 개선에 대한 논의도 진행됐다. 덕분에 과거와 같이 험한 꼴을 보는 경우는 줄어들었고, 제1차 세계대전 이전에 제네바 조약이 만들어져[1] 포로의 대우에 대한 엄격한 제한을 두고, 포로에게도 인간적인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했다. 만약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에는 전쟁범죄로 간주하여 사후 이에 대한 엄격한 추궁과 처벌이 있을 수 있음을 명시했다.
제네바 조약에서 억류국이 포로에게 지켜야 할 사항은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엄청나게 많다. 그야말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인권침해 상황을 가정하고 하지 말라고 명시하고 있다. 예를 들면 급양이나 피복, 숙식 등의 보급은 자국의 군대와 동일하게 보급해줘야 하며[2] 의료적인 서비스도 해줘야 하고, 계급에 맞는 대우를 해야 하며[3] 무기는 압수할 수 있지만, 헬멧 등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장비를 빼앗아서는 안되고, 현금이나 고가의 물품(보통 시계나 반지 등의 장신구), 가족들의 사진이나 편지, 혹은 포로로 잡히기 전 받았던 훈장 등 포로 본인에게 정서적 가치를 가지는 물건 등도 당연히 압류할 수 없다. 또한 총알받이로 쓰거나 지뢰제거 같은 위험한 작업에 투입해서도 안되며, 포로에게도 봉급을 지급해야 한다. 심지어 이 이하로 주면 안된다는 최저임금까지 있다. 포로에게 노동을 시킬 때도 농업이나 공예, 단순 운송업 등 비군사적인 용도이어야 하며 기본적인 노동 환경을 갖추어 줘야 한다. 기본적인 보급 외에 포로들이 필요한 편의 물품을 구입하기 위해 만들어준 매점에서 나오는 수익은 모두 포로들의 복지를 위해 써야 한다는 조항까지 있을 정도.
그러나 전쟁 와중에 이걸 현실적으로 전부 지키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애초에 전쟁 자체가 인권을 침해한다 정보를 캐내기 위해 포로들을 심문[4]하는 과정에서 고문을 하는 경우도 자주 발생하고, 서로 악에 받혀있는 상황이라면 포로는 필요 없다란 상황으로 전개되기도 한다. 게다가 일선에서 싸우는 병사들도 결국 감정이 있기 때문에 방금 전까지 아군을 개고생시키던 적군이 두 손 들고 항복했다고 금새 모든 것을 잊고 포용해줄 수 있는 대인배가 아니다. 유고슬라비아 내전 당시 프랑스 외인부대 소속으로 이곳에 파병된 한국인의 수기를 보면 교전후 아직 숨이 붙어있는 중상자들을 부대원들이 사살했다고 한다. 방금 전까지 우리에게 총을 쏘던 놈들을 살리기 위해 애쓸 기분도 아니었고 적군 부상자들을 후송해 치료하라는 상부의 어줍잖은 명령에 반감을 가졌다고. 물론 발각될 경우 정상이 참작된다고 해도 최소 징역이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 초반에도 이와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미 육군 레인저 대원이 손들고 나온 독일 육군 외인부대원 두 명을 총으로 쏴버린 뒤 동료 대원이 "뭐라고 그러던 거야?"라고 묻자 "'나 밥 먹으려고 손씻었어요!'라는데?"라며 농담을 한다. 이 두 명은 독일인이 아니라 체코인이다. 자세한 건 영화 항목 참조. 말 그대로 전시상황엔 조약 그딴 거 없다를 적절히 보여주는 예. 물론 엄연한 전쟁범죄다. 다만 적도 아군도 서로 비슷한 짓거리를 하기 때문에 희생자가 무고한 민간인이거나 대규모 학살과 같은 병크를 터뜨리는 거 아니면 크게 공론화되지는 않는 편이다. 당연히 지휘관이 엄격하거나 내부 고발자가 있고 그걸 들어주는 시스템이 있거나, 헌병이 이를 목격했거나 한 경우는 처벌받을 수도 있다.
또 위와 같은 식으로 투항해도 확실한 고의로 쏴죽이는 것 뿐만 아니라, 전투 중의 혼란과 공포 때문에 누군가 눈 앞에 나타나면 적인지 아군인지 투항자인지 확인도 안하고 반사적, 혹은 우발적으로 쏴버리는 경우도 있다. 이런 식의 아군 오사도 있다.
게다가 정상적인 교전을 벌이다가 포로로 잡히는 경우에도 포로 대접을 못 받는 예외도 당당하게 존재한다. 일단 적의 저격수나 또는 끝까지 항복을 거부하고 맹렬히 저항하다 붙잡힌 경우에는 포로 대우를 못 받고 즉석에서 총알 박힐 확률이 꽤 높다. 그 외에도 국제법상 교전권이 없는 테러리스트나 PMC[5], 제네바 협약상 절대 보호받지 못하는 스파이와 저격수도 포로로 잡히면 보통 끔살당한다. 물론 규정상으로는 이들도 법에 따라 처벌하도록 되어 있지만 그게 잘 지켜지지 않으니까 문제다.
그래도 국가가 적어도 어느 정도 개념이 들어가 있고 여유가 있다면 포로를 함부로 대하진 않지만, 모든 국가가 다 그렇지 않고 국가마다 다르다. 조선인민군 같은 막장 군대라면 포로가 되는 것은 사실상 죽음을 의미하는 반면 미군의 경우에는 어지간해서는 포로 대우를 해준다. 물론 지역 소탕전 같이 승산이 전혀 없는 상황에 놓인 적군이 저항 대신 항복을 택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임은 물론이다.
-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은 잡힌 소련군과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서방 연합군에 대한 대응이 각각 달랐다. 소련군 포로는 그야말로 인간 이하 취급을 받았다. 이는 소련군에 대한 일선 장병들의 악감정이 작용한 것이 크고, 또 소련이 헤이그 협약과 제네바 협약에 가입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걸 명분삼은 것도 한 몫 했다. 또 나치의 인종 개념에서 소련 슬라브족은 영, 프, 미의 라틴이나 게르만계보다 더 낮은 위치에 있던 것도 이유 중 하나다. 덕분에 독일에 잡힌 소련군 포로 사망률은 일본군에 사로잡힌 연합군 포로 사망률과 자웅을 겨룰 정도.[6] 물론 두 협약에 가입하지 않은 국가의 포로라고 해서 학대하는 게 국제법상 해도 되는 짓은 아니니 나중에 다 전쟁 범죄로 처벌받았다.[7]
반면 미-영 연합군 포로에 대해서는 소련군 포로에 비해 상당히 관대했는데, 심지어 전쟁 말기에 자기들 먹을 게 없어도 적십자를 통해 포로 먹을 건 챙겨주기까지 했을 정도다.[8] 물론 상대적으로 나았다는 거지 절대적 기준으로는 좋았다고 할 수 없다. 영화 대탈주에 나온 SS의 포로 학살도 실제로 있었던 일이고, 특공대나 특공대에 가담한 포로는 상층부의 특별 지시로 군복 여하를 막론하고 즉시 총살당했으며 공습 과정에서 격추된 연합군 항공승무원들을 잡아서 죽이는 경우도 있었다. 또한 자체 재판을 열어 규율 위반이라는 명목 하에 엄벌을 가하거나 제대로 확인도 하지 않는 경우도 드물지 않게 있었다. 이는 하트의 전쟁이라는 영화에 잘 나온다. 포로였던 장교 하트의 거짓 살해 자백을 제대로 확인해 보지도 않고 무작정 하트의 처형을 명한다던가 하는 식으로. 막판에 나온 미군 대령에 대한 독일군 포로수용소장의 즉결처형도 법적으로 따지면 걸릴 소지가 충분하다. 이미 침해 행위가 종료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포로로 잡힌 군인이 유대계로 밝혀지면 대부분 홀로코스트의 희생자가 되었다. 보통 독일군은 잡힌 미군의 이름이나 인식표를 보고[9] 유대계로 확인될 경우에는 전원 강제수용소로 보내 학살했다고 한다. 물론 나중에 다 들통나서 전쟁 범죄로 처벌받았다.
- 구 공산권의 경우는 적군의 포로는 곧 인민의 원쑤, 제국주의자의 하수인 or 제국주의자들의 선전 선동에 속은 불쌍한 사람들이었던지라 처우가 각자 달랐다. 저항하거나 자본가 계급의 자식이면 살려주는 것도 나름대로 고마운 것. 하지만 사상 전향이 주목적이긴 해도 대체적인 포로 대우는 북한과 크메르 루주 등 일부를 제외하면 괜찮은 편이었다. 그러한 하나의 예도 있다. 대표적으로 중공군은 삼대기율 팔항주의에 따라 포로를 나름대로 인도적으로 대우했다.[10] 그러나 동시에 포로를 공산주의자로 전향시키기 위해 매우 교묘한 방법들을 사용했는데 洗腦라는 중국어 표현이 영어 brainwashing으로 번역되며 유명해질 정도였다. 실제로 이 방법은 한국전쟁 당시 꽤나 성공해서 수많은 미군을 변절자로 만들었고 미국 당국이 대책을 생각할 정도였다. 참고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 중에서 포로를 가장 심하게 학대한 군대는 소련군이[11] 아니라 요시프 브로즈 티토가 지휘하는 유고슬라비아 파르티잔[12]이었다.
- 구 일본군의 포로학대는 당시 참전했던 연합군 내에서 이를 갈 정도로 심했다.[13] 바탄 죽음의 행진은 가장 유명한 사례이고, 중국군 포로를 상대로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수준. 심지어 식인을 위해 잡아먹은 사례까지 있다.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아버지 부시)가 2차 대전에 참전했을 당시, 같이 작전에 나간 부대원들 거의 전부가 포로로 잡힌 뒤 살해당하거나 잡아먹혔다.[14] 이때 간신히 살아남은 부시 전 대통령은 지금도 당시의 일본군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
- 더 무시무시한 것은 일본군은 적에게 잡힌 아군의 포로에게도 인정사정이 없었다는 점이였다. 아군이 적에게 포로로 잡혔다가 (합의를 통해서건 탈출을 했건간에) 돌아오면 환영까진 기대 안해도 적어도 위로는 못할 망정[15] 오히려 갖은 모욕과 비난을 서슴치 않았다. 단순 현지 징용된 병사(중국인, 조선인 등) 뿐만 아니라 본토 일본인에게도 예외가 없었는데 이는 일본의 포로를 용납하지 않는 관습 때문. 사실 2차대전 당시 소련도 적에게 잡힌 아군 포로에게 인정사정 없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그러나 이는 사실상 스탈린 개인의 성향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고 소련의 높으신 분들 모두 다 그런 행위에 동참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일본군은 고위층부터 일선 사병들까지 당연하다는 듯이 동참했다는 게 더 문제. 이 때문에 연합군에게 잡힌 일본군 포로는 연합군 측이 별다른 심문을 하지 않아도 순순히 군사 기밀을 말해주거나 폭격 목표를 유도해 주는 등 잘 협조해 주었다. 어차피 아군에게 귀환해도 중벌을 받을 게 뻔하니 자포자기 식으로 협조한 것. 일본군의 포로 문제에 대해선 일본군/포로 항목에 자세히 나와있다.
- 미군 포로 수용소는 대부분의 경우 제대로 된 포로 대우를 해줬다. 한 예로 1944년 미국의 파파고 파그 포로수용소에서 독일군 포로들이 수용소를 탈출했다가 도로 잡혀들어간[16] 사건이 있었다. 이때 포로들이 밖에 나가 미국인들과 접촉하면서 이거저거 떠드는 바람에 당시 전시 상황이라서 미국 시민들도 구하기 힘들던 담배, 초콜릿, 돼지고기 등을 수용소에서 포로들이 배급받은 사실이 밝혀졌고, 시민들은 "군수공장에서 일하고 세금도 내는 미국 시민들도 베이컨 한 줄 구하기 힘든데 이건 뭐냐?"라며 황당해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전쟁을 통해서 포로 수용소의 악명이 생겨나기도 했는데 물론 이 두 전쟁의 경우에는 포로 대우를 하는 게 당연한 저항세력 소속 비정규군 병사와 범죄자인 테러리스트가 서로 구분되지 않은 경우가 많은 게 크다. 미군 스스로도 탈레반이나 이라크 저항군 포로는 포로 대접을 해야 하는데 알카에다 용병들이 섞여 있어서 걸러내기 어렵다 보니 일단 일괄 전범취급을 한다음 조사를 거쳐 포로만 따로 가려내고 있다고 말했을 정도. 물론 테러리스트의 경우에도 수용소에 가둬놓고 가혹행위를 하는 게 옳은 것은 아니다. 포로와의 차이는 재판을 거쳐 처벌이 가능한 정도다.
- 영국의 포로 대우도 미국과 비슷하게 괜찮은 편이었으나 이쪽은 미국과는 달리 독일의 본토 공격과 해상봉쇄로 엄청난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증오감이 있었다. 특히 영국 본토 항공전 때 영국에 불시착한 독일군 조종사들은 영국군에게 포로로 잡히기도 전에 분노한 영국 국민들한테 폭행, 살해당하기도 했다. 덕분에 영국의 경찰과 헌병들은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시민들한테 잡히기 전에 항복하라고 외치고 다녔다고 한다. 이외에도 2차대전 당시 잡힌 독일군 포로들을 런던의 도로를 만드는 등의 노동에 동원하기도 했다. 물론 이 경우는 군사적인 목적으로 시킨 게 아니므로 딱히 국제법 위반 행위라고 보기는 어렵다. 참고로 영국군에 잡힌 포로의 사망률은 0.03%로 주요 참전국중 가장 사망률이 낮다.
-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미군은 탈레반 포로 중에서 미국인 존 워커 린드를 발견해 충격에 빠진 적도 있다. 그러나 이적단체인 탈레반의 병사로서 미군과 싸운 까닭에 일단 포로 대우를 하다가 이후 범죄자로 기소. 미국으로 이송하여 반역 혐의로 징역 20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이런 케이스는 미국이니까 다행으로 한국전쟁 당시 포로가 된 한국군이나 미군은 중국군 참전 이전까지 그야말로 사람 대접을 받아보지도 못했다.
- 베트남 전쟁에서 북베트남에게 포로로 잡힌 미군 조종사들은 각종 고문과 협박에 시달렸고 그로 인해서 석방된 이후에도 장애를 가지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대표적으로 존 메케인같은 경우에는 고문으로 인해서 평생 한쪽 다리를 절고 두 팔을 머리위로 들어올릴 수 없게 되었다. 이때 매케인과 같이 수감되었던 사람이 윌리엄 로렌스와 제임스 스톡데일이며 질식고문이나 채찍질도 예사로 당했다고 한다. 스톡데일의 경우 이런 악랄한 수용소에서 의연하게 버틴것이 동료들의 증언을 통해서 전해졌고 명예훈장을 포함한 각종 훈장을 수여받게 되었을 정도.
- 한국전쟁 당시 조선인민군은 미군 포로들을 시범 케이스로 한 명씩은 반드시 사살했다. 살아남은 포로들의 대우도 형편없었고 포로가 병에 걸려도 전혀 치료해주지 않았다. 게다가 제네바 조약의 포로 노동에 대한 조항도 필요하면 주저 없이 무시했다는 증언도 있다. 다만 중국군이 포로를 감독하기 시작하면서, 포로에 대한 대우가 그나마 좋아졌다. 이는 중공군이 민심을 얻기 위해 삼대기율 팔항주의를 실시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래봐야 포로를 세뇌시키기 위해서 여러가지로 교묘한 방법을 사용하였고 이런 점에서 북한군보다 중공군을 더욱 악랄하게 여기기도 한다. 아무래도 아주 교묘하게 세뇌시키려는 각종 시도를 하였으니 공산주의에 적대심을 가진 사람들에겐 육체적인 학대를 가하는 북한군보다 오히려 이쪽에 대해 더 반감을 가질 법하다.
어쨌든간에 '범죄자'가 아니라 '포로'인 만큼 포로 교환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법적으로 적국도 보호해줄 의무가 있다. 또한 포로는 일단 '적법하게 싸우다가 잡힌 것'이라서 그들의 적국에 대한 적대적 행위 자체에 죄를 묻고 재판할 수 없다. 당연하지만 '자국을 위해서 싸운 것' 자체에 죄를 물을 수 있을 리가 없잖은가? 그걸 죄로 삼는다면 그 상황에서 적국의 포로를 잡고 있을 병사들도 똑같은 죄를 짓고 있을 것이다. 물론 그 포로가 민간인 학살 등의 만행을 벌였다면 그런 사항에 대해서 별도로 죄를 묻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지만 이건 모든 사람에게 해당된다.
일반적으로는 교전권이 있는 자만 포로로 인정되며, 따라서 국제법상으로 교전권이 인정되지 않는 용병이나 단순히 무기를 들고 설치는 민간인은 포로로 취급되지 않고, 깽판치는 범죄자 정도의 취급만 받는다. 국제법상 교전권이 있어야만 다른 군대에 대항해서 싸우는 것이 합법적이기 때문. 또한 특수부대나 간첩 중에서 자기 나라의 군복이 아닌 옷을 입고, 적국의 군인이나 민간인인 척 하고 잠입을 하다가 잡힌 경우도 원래 소속에 관계 없이 일반적으로는 포로로 취급되지 않는다. 이런 경우는 행위 자체를 죄로 보고 재판할 수도 있다.
그러나 1949년 조약에서 민병대, 지원병, 비정규군 및 저항운동단체도 무장군의 일부를 구성하는 경우에 한해서(어느 정도 체계가 있고 자기들끼리의 식별하는 특정 표식 등이 있을 경우) 교전권이 인정되며,[17] 따라서 이들도 잡을 경우 포로로 인정된다. 그리고 군대에 종군하는 민간인[18]들도 포로의 범주에 들어간다. 따라서 정규군이 아니라고 무조건 포로가 아닌 것은 아니며 민병대가 제대로 된 표식과 규율을 갖추고 전장에 나갔다면 포로 대우를 받는 게 철칙이다.
문제는 판단 기준이 거의 지휘관의 재량에 달렸다는 점이다. 멀리서는 잘 보이지 않는 완장 하나로만 구분되는 녀석이 아군 진지를 습격해서 피해를 주었다면 보통은 포로 취급을 못 받고 테러리스트 취급을 받기 딱 좋다. 물론 이 경우도 무작정 테러리스트 취급하는 건 아니고 조사를 해서 저항군 출신 등 준정규군에 속한 게 확인되면 포로로 대우하지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액트 오브 워에서는 포로가 일종의 자원 개념으로 나온다. 적군 부상자나 적의 파일럿, 비전투인원을 아군 보병으로 잡으면 돈을 벌게 되며 반대로 아군 보병이 적군의 포로로 잡힐시 돈이 빠져나간다(확인바람). 추가로 각 진영의 수용소 건물을 건설하면 총 10명의 포로를 수용할 수 있는데 총 10명을 잡아서 수용할 경우 초마다 500원이 들어오게 되어 필드의 석유가 고갈되어도 자원 수급용으로 활용할 수 있다(참고로 10명이 아니여도 돈이 들어온다). 또한 각 진영마다 포로에 관련 업그레이드가 있다. 예를 들어 생포 훈련 업그레이드라던가.
중세 이슬람 문화권에서 포로에게 물을 주는 건 최소한의 안전을 보장해 주겠다는 뜻이였다고 한다. 킹덤 오브 헤븐에서도 르노 드 샤티용이 같이 붙잡힌 기 드 뤼지냥이 사양한 물을 눈치 없이 벌컥벌컥 들이키자 살라흐 앗 딘은 차가운 냉소를 보내며 손수 목을 잘라버리지만 기 드 뤼지냥은 목숨을 부지한다.
2 전쟁이 났을 때 한국군의 경우
한국군의 경우, 전시에 포로가 된다면 조선인민군의 포로가 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한국군의 전력이 크게 우세하기에 집단 항복 등으로 인한 대량 포로 발생 등은 가능성이 낮지만 개별 항복 혹은 움직일 수 없을 정도의 부상을 당해 포로가 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며, 이런 식의 포로 발생은 심지어 테러와의 전쟁 당시 미군에서도 발생했다. 한국군이 상대할 적은 이라크 저항군이나 탈레반보다 훨씬 막강한 북한군이고, 한국군은 미군보다 약하니 포로가 발생할 가능성은 더 높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북한군은 인권이나 제네바 조약 따윈 개나 줘버린 군대이며, 식량 공급은 평시에도 하질 않아 전시 약탈을 교리로 삼은 놈들이다. 당장 한국전쟁 때만 해도 포로에게 먹을 것을 아주 조금씩만 배식하거나 아예 하지 않았고, 차량 없이 강제로 행군을 시켰다. 고난의 행군 이후 지옥도가 펼쳐져 일제강점기가 훨씬 낫다는 지금과는 달리 군대 사정이 나았던 1950년대에, 소련과 중국의 지원까지 받은 북한군이 그랬다. 이 때문에 중국군이 개입한 뒤 정신 나간 처우를 보고 황당해하며 당장 포로 관리를 넘겨받았을 정도였으니.[19][20] 당연히 오늘날에 와서도 포로 후송에 차량을 이용하지도 않을 것이며, 포로에게 식량을 줄 리도 없다.
그뿐만이 아니다. 한국전쟁 때도 포로 생포시 하나 이상(때론 전부) 살해해서 본보기로 보여주는 것과 급소를 가격해서 무력화 시키는 것을 불문율로 여겼으며, 시체는 트럭이 지나갈 길에 일렬로 눕혀놓고 트럭이 지나가면서 머리를 으스러뜨리거나[21] 살해 후 파묻어 찾기 어렵게 만들기도 했다. 미 24사단 참전자 증언. 당연히 삽질은 다른 포로들이 했다. 자신들이 파묻었는데, 정신이 없던 탓에 어디에 묻었는지 기억이 안 나서 더 충격이 큰지, 죽어도 자신이 파묻은 전우를 볼 면목이 없다고 했다. 살아도 강제노역에 동원되었고, 그나마 미군 포로는 가혹한 대우를 받는 선에서 끝났지만 한국군의 경우 사상교육을 받고 의용군이 되어 총알받이로 내몰리기도 했다. 게다가 그때보다 북한은 더욱 막장이 되었으니 오늘날에는 노예로 부리는 정도면 다행이고, 심지어 폭격 위험이 있는 장소에 묶어놓고 인간방패로 쓸 거란 예상도 조심스럽게 논의된다.
북한군의 포로학살의 개별항목이 한국, 미국군보다 적은 건 하도 많아서 셀 수 없어서 그런거지, 이놈들이 뭐보다 낫다는 것이 절대 아니다.
3 포로 대우
- 미군은 기본적으로 적의 정규군은 물론 비정규군이라도 제대로 된 무장과 조직을 갖춘 것이 명백하면 포로로 인정했다. 또한 자국의 전적인 지원을 받는 동맹국의 군대에도 어떤 이유가 있건 간에 이러한 수칙을 반드시 지킬 것을 요구했고, 이를 준수하지 않을 경우에는 지원을 끊을 수도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따라서 미군이나 미군의 지원을 받는 한국군, 영국군 등 정식으로 동맹을 맺은 국가의 군대에 항복할 경우 포로 대우를 제대로 받을 수 있다.[22] 물론 미군도 사람이라 감시하기 귀찮다고 사살하거나[23] 포로 관리병들에 대한 감시가 소홀하여 일부 맛이 간 병사들이 경쟁적으로 포로를 가혹하게 대우[24]하는 등의 행태를 저지르는 경우도 있지만 발각되면 중벌이 기다린다.
- 중국군은 삼대기율 팔항주의에 의거 기본적으로 외국 정규군에 대해서는 포로 대우를 제대로 해주는 편이다.[25] 다만 자국의 반란군에 대한 포로 대우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 '서양식의 계약'이 아니라 '동양식의 관습'에 의거해서 포로를 학대하지 않고 잘 대해줄 것이다 다만 그것이 '서양식 계약'이 아닐 확률이 대단히 높다
- 러시아군도 외국 정규군은 그럭저럭 포로 대우를 해주는 편이다. 하지만 자국의 반란군에게는 중국군보다 더 잔혹한 대우가 기다리고 있다. 특히 체첸 저항군 출신 혹은 반러시아 체첸 의용군 병사면서 러시아군의 포로로 잡혔다면 명복을 빈다. 살아서 집으로 갈 방법은 전혀 없다.
- 과거 소련군 같은 경우는 양자택일이다. 귀순하거나 죽거나. 귀순하면 소련군이 되는 것이다.
- 제3세계 군대이고 미군의 지원을 받지 않는 경우에는 포로가 되지 않는 게 좋다. 물론 북한군 같은 경우가 아니면 후진국 군대라는 한계로 처우가 열악한 건 어쩔 수 없어도 포로 대우 자체는 그럭저럭 해주는 편이다. 제네바 협약 미가입국이라도 해당되는데, 국제적으로 합의가 확실하게 이뤄지고 주요 강대국 대부분이 존중하는 조약은 그 자체가 국제 관습법이기 때문이다.
- 북한군이나 ISIL과 같이 종교 광신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군대에게 포로로 잡히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4 포로 교환
교환 기준은 계급보다 병종이 먼저고 그 다음이 계급이다. 계급은 같은 계층이라는 전제조건 하에서 1~2계급 차이까지는 허용되지만 병종은 다르면 교환대상이 아니다. 머릿수 같고 계급 같다고 무조건 교환되는 게 아니라는 거다. 때문에 장교와 사병이 맞교환되는 일이 없으며 장교의 경우도 일반사관과 특수사관이 맞교환되는 일은 없다. 한마디로 원수를 중위랑 교환하자는 건 그냥 개소리라는 거다
- 병끼리는 그냥 다 교환 대상이 된다.[26]
- 부사관의 경우는 병종별로 구분되며 같은 병종끼리만 교환 대상이 된다.
- 장교의 경우는 각 병과별로 구분되며 같은 병과끼리만 교환 대상이 된다. 특수사관이라 해도 군의관과 군종사관의 맞교환은 불가능하며 법무사관과 군의관의 맞교환도 불가능하다. 같은 계급 기준이다.
- 같은 장교라도 대위와 소령은 맞교환 대상이 아니지만 소령과 중령은 맞교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한국전쟁 직후 윌리엄 딘 소장과 리학구 총좌의 맞교환인데 이 경우 리학구가 준장으로 분류된 것이다.
5 참고항목
- ↑ 단, 포로에 관한 조항은 1차대전 이후인 1929년에 맺어졌다.
- ↑ 이 때문에 2차대전 당시 이탈리아군에게 잡힌 연합군 포로는 맛있는 이탈리아식 식사를 배급받으며 편하게 지낸 반면, 영국군에게 잡힌 추축군 포로는 끔찍한 영국군의 급식를 먹으며 고생했다는 블랙 유머도 있다. 물론 실제로는 영국군도 추축군 포로들에게 기본적인 식사를 제대로 배급해 주었다.
음식의 맛(...)은 별개이지만 - ↑ 적국의 장교를 이등병 취급하는 등의 행위도 할 수 없다. 평상시에는 물론이고 장교에게 노동을 시킬 때도 계급에 맞는 일을 시켜야 한다. 불가피한 이유로 장교인 군의관 포로에게 자국 장병의 치료를 맡길 경우 그 포로는 자국의 군의관과 같은 대우를 해줘야 하며, 치료 활동 외의 노동을 면제해야 한다.
- ↑ 원칙적으로 포로들은 자신의 관등성명 외에는 자신이 알고 있는 군사 정보를 밝히지 않을 권리가 있다.
- ↑ 단, PMC는 말이 용병이지, 대부분 정규군의 작전을 보조하는 준정규군 역할을 수행하는 점에서 교전권이 없다고 단정짓기는 어려운 측면도 있다.
- ↑ 독일에 잡힌 소련군 포로의 사망률은 57% 전후로 추정된다.(소수 견해로는 70%까지 잡기도 한다.) 한편 일본군에 잡힌 미군 포로의 사망률은 27% 정도이다.(중국군 포로를 집계하면 최대 40%까지 올라가기는 한다.) 그야말로 독보적인 수준.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나치 독일군이 동유럽에서 저지른 만행은 일본군에 비교해서 전혀 뒤지지 않았다는것을 보여주는 요소중 하나이다.
소울메이트인데 닮는게 당연하지만 - ↑ 한쪽만 협약에 가입한 경우 가입하지 않은 쪽이 협약을 위배하지 않는 이상은 가입한 쪽은 협약을 준수해야 한다.
- ↑ 덕분에 이는 깨끗한 국방군의 신화를 만드는데 일조하게 된다. 이것 외에도 냉전이라는 상황 등도 작용했지만.
- ↑ 우리나라 육군과는 다르게(해군 인식표에는 종교가 표기된다) 미국이나 유럽은 인식표에 종교를 기재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은 개신교는 P, 가톨릭은 C, 유대인은 H로 인식표를 새겼다.
- ↑ 하지만 일본군 포로만은 그다지 잘 대우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차피 일본군과 싸운 주력은 국민당군이라 중공군이 포로를 학대할 기회 자체가 많지 않았을듯.
- ↑ 물론 대우가 좋은건 아니었으나 이는 대전 초반에 소련의 상황이 심각하게 나쁜탓도 있다. 일단 제네바 협약은 최대한 지키려고 했다.
- ↑ 고문은 당연하다는듯이 기본옵션에 좋게죽이는것이 녹슨 도끼로 머리를 수차례내리쳐서 고통스럽게 참수해 머리를 장대에 꽃아놓고다녔다. 구글링을 하면 이 참수장면을 볼수있다. 충격받을수있으니 주의
- ↑ 물론 사망률은 나치한테 밀리지만 이 사망률은 대부분 독소전쟁에서 발생한 거라... 동유럽에서 소련군 포로의 사망률은 일본군에 잡힌 미군 포로의 사망률의 2배에 달한다. 뭐, 나치는 식인은 안하기는 했지만.
- ↑ 참고로 이게 한 짓은 다른 일본군 장성조차도 경악시켰고 결국 일본군 장성들한테 얻어터졌다.
- ↑ 이는 군사적 효율성 면에서도 당연히 해줘야 하는 행동이다. 포로로 잡혔다가 귀환한 병사는 포로로 잡혔다는 경험 자체로 이미 큰 정신적 충격을 받은 상태이다. 이들을 아군의 전력으로 다시 활용하려면 이 충격을 최대한 빨리 해소할 필요가 있기 때문. 이 때문에 대부분의 정상적인 국가들은 귀환한 아군 포로들에게 포로로 잡힌 것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을 것을 약속하고 조촐하게나마 위문 행사를 해주는 게 보통이었다.
- ↑ 아이러니한 게 이때 수용소 당국에서는 포로들이 국외로 탈출하거나 민간인들에게 어떤 범죄를 저지를지를 걱정하기 보다는, 포로들이 민간인들에게 어떤 짓을 당할지를 더 걱정했다. 전시 상황인 데다 그렇지 않아도 총 쏘는 걸 좋아하는 미국인들이 탈출한 독일군 포로들을 어떻게 대할지는 뻔한 이야기. 다행히(?) 포로들은 죽거나 다치지 않고 무사히 체포되거나 제발로 돌아왔다.
- ↑ 익히 알려진 것과 달리, 제복을 착용한 경찰도 합법적인 교전권자이다. 단, 경찰의 존재 목적이 적과의 교전이 아닌 민생치안 등을 위한 것이므로, 전투경찰 등 일부 예외를 제외하면 점령군에게 저항만 안 하면 총기류를 점령군에게 인계토록 하고 공격하지 않기도 한다.
- ↑ 가령 군종장교가 아닌 종군 성직자나 부상자들을 돌보는 간호 자원봉사자들을 말한다.
- ↑ 이는 사실이지만 모든 포로가 중공군의 관리를 받았을 가능성은 없다. 더구나 전장에서 중공군에게만 생포당한다는 법도 없으니... 그리고 생환 포로들이 증언하길, 중공군이 북한군보다 나았을 뿐이지, 참호나 진지를 파도록 강요했고, 주입식 사상교육을 실시했으며, 수용소에 따라 종교의 자유를 제한하는 경우도 있었고, 부득이한 경우지만 UN군이 제공권을 확보한 탓에 보급이 원활하지 않아 식량 배급도 형편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중국해방군화보사'에서 출판한 '영광스런 인민지원군'이라는
허접한사진집을 보면, UN군 포로들이 '자발적'으로 "UN군은 한반도에서 철수하라!"라고 각국의 언어로 쓰여진 피켓을 들고 수용소에서 집회를 열었다는 설명의 사진이 있는데, 포로들 표정은 겁에 질려있고, 다닥다닥 줄을 맞춰 앉아있으며, 주위엔 무장한 중공군이 둘러싸고 있는 모습이 찍혀있다. 종합하자면, 중국군이 그나마 포로 대우를 그럭저럭 해준 것은 사실이지만 언제까지나 삼대기율 팔항주의를 지키고자 노력했을 뿐, 제네바 조약은 어겼다. 포로에게 군사적 노동을 시키는 건 협약 위반 행위이다. 그래도 북한군보다는 백배는 나았다는 점은 인정했다. - ↑ 한편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에 비해 중국군의 경우 항복할 가능성이 더 높았다고 한다. 북한군은 서로 원한이 엄청나게 깊어서 즉결처분당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으며 귀환하더라도 죽음이 기다리지만, 중국군은 한국 입장에서도 그냥 적군일 뿐이었기에 포로 대우를 제대로 해주는 편이었고 귀국하더라도 대개 당적박탈 정도로 끝났기 때문이다.
- ↑ 이러면 신원파악이 어렵기 때문이다. 주로 후퇴시 사용했으며, 대표적인 예로 서울 수복 당시 중랑교에서 발견된 시신들이다. 이렇게 발견된 시신들은 '반동'으로 몰린 민간인이나 대한민국 공무원, 소자본가들이 대다수라 포로에 대한 처우로 말하기는 곤란한 면이 있기는 한데 민간인이든 포로든 학살한 시점에서 이미 충분한 막장이다. 산채로 눕혀서 처형한 일도 있다고 한다.
- ↑ 일부 한국군 포로를 학살한 북한군에게 보복하자거나 한국인이 학살당한 만큼 북한의 군병력이건 민간인 거주지건 가리지 않고 무차별 공격을 가해 보복해주자는 말이 실현 불가능한 이유가 이것이다. 북한군 포로는 포로 대우를 해줘야 하고 학살을 저지른 자들은 전범재판을 거쳐 처벌하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다. 그렇게 하지 않고 사적 보복을 단행할 경우 당장의 기분은 좋겠지만 그 사실이 미국에 전해지는 순간 미 백악관에서는 대통령 명의로 한반도 전선에 대한 미군 철수와 동맹 파기. 지원 단절 결정이 일사천리로 발표될 것이다.
- ↑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 참고.
- ↑ 2004년 아부그라이브 포로 학대 사건. 그나마 이게 바로 문제가 된 건 감시병들이 사진을 유출시키는 등 제정신 아닌 짓을 한 데다 무엇보다 수감자들이 반정부군 포로였기 때문이다.
- ↑ 물론 한국전쟁의 사례를 보면 제네바 협약을 지킬지는 다소 의문스럽다.
- ↑ 장교나 부사관과는 달리 전문적이지 않은 데다가 개체수가 월등히 많기 때문에 따로 분류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