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다인의 20칙

Twenty rules for writing detective stories (직역하면 『탐정소설 작법 20법칙』)

미국의 소설가 반 다인이 1928년 《아메리칸 매거진》에 발표한 것으로, 그는 추리소설은 작가와 독자 간의 공정한 지적 게임이므로 페어플레이를 유지하기 위해 이 법칙들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녹스의 10계에 비하면 조문이 많은 만큼 세세하고, 좀 비틀어 말하면 시시콜콜한 부분까지 추리소설 장르에 대하여 자신의 주관을 과도하게 들이미는 측면이 있다. 사실 등장인물이 지나치게 많아질 수 없는 추리소설이라는 장르에서 이 규칙을 억지로 준수하기 위해 범인이 될 수 없는 사람을 다 빼면 범인은 추리할 것도 없이 그냥 정해진다고 할 수 있을 정도. 어떤 의미로는 반 다인 본인이 좋아하는 추리소설의 성향을 그냥 나열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도 보인다.

다른 추리물에서 이러한 규칙 가운데 어떤 것을 지키고 어떤 것은 지키지 않았으며, 지키지 않은 이유는 작가의 부주의인지 아니면 의도한 바인지를 생각해 보면 재미있을지도 모른다. 예컨대 애거서 크리스티는 두 작품에서 4번 규칙을 위반한 적이 있고, 셜록 홈즈 시리즈도 사실 7번에 맞지 않는 사건들이 제법 있다. 근데 홈즈의 경우 살인이 아닌 사건은 모두 단편이어서 수백 페이지를 읽게 한 게 아니므로 상관없다. 그리고 명탐정 코난은 확증급 증거를 숨겨대서 1번 규칙을 많이 어긴 경력이 있다.

애초에 위에도 나왔듯이, 녹스의 10계와 마찬가지로, 법칙 자체가 설득력 있는 것과는 별개로 작가와 독자 간의 공정한 지적 게임 이라는 부분에서부터 볼 수 있듯이 어디까지나 개인의 주장이란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다만 이 법칙들의 공통점이 독자의 추리 가능성이 존재하도록 염두해두고 있다는 사실도 잊으면 안 된다. 가령 공상적이고 비과학적인 걸 단서 내지, 소재로 잡는다면 독자의 추리 가능성이 한없이 낮아진다. 그렇기에 추리 소설을 만들 때 완전 도움이 안 되는 법칙이라 보는 것도 사실은 틀리다. 추리를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는 지켜지는 것이 좋다.

반 다인이 비판한 크리스티의 기법은 후대의 추리소설에서는 하나의 방식으로 완전히 정착되었고, 7번 규칙의 경우도 살인 사건을 다루지 않았을 뿐 재미있고 잘 짜여진 추리소설도 많다.

1 법칙 일람

1. 수수께끼를 해결함에 있어서 독자는 작중의 탐정과 동등한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모든 단서는 명확하게 기술되어야 한다.
2. 작중의 범인이 탐정에 대해서 적당히 행하는 속임수나 술책이 아니고 독자를 속이는 기술을 사용해서는 안된다.
3. 이야기 중에 연애적인 흥미를 건드려서는 안된다.

요컨대 범인을 재판정에 내보내려는 것이지 사랑에 고민하는 남녀를 예식장에 내보내려는 것이 아니다.

4. 탐정 자신 또는 수사당국의 직원 중 한 사람이 범인이라고 결말을 지어서는 안된다.

이것은 구리로 만든 돈을 반짝반짝 빛나게 닦아서 금화라고 속이는 것과 같다. 명백한 사기행위이다.
(탐정이나 수사요원이 아닌 일반인이 적극적으로 수사에 관여 또는 협조했는데 알고 보니 범인이었다는 것은 괜찮다. 범인이 혐의를 딴 사람에게 두기 위하여 또는 수사 과정을 방해하기 위하여 이런 수를 쓰는 경우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5. 범인은 이론적 추리를 통해서 판정되어야 한다.

우연, 암호, 이유 없는 자백 등에 의한 결정은 안 된다. 이렇게 하는 것은 독자가 고생하여 범인을 찾게 하였다가 이것이 잘 안되니까 실은 내 손 안에 모든 단서가 있었다고 독자를 놀려주는 것과 같다. 이것은 수수께끼가 아니라 장난이다.

6. 반드시 탐정이 등장해야 한다.

탐정이라고 하는 한 탐정을 해야 한다. 탐정한다 함은 모든 단서를 수합하고 이것에 의해 범인을 추적, 결정짓는 것이다. 이것이 안 된다면 해답편을 따로 보는 것이나 다름없다.

7. 추리소설에는 반드시 시체가 있어야 한다.

살인이 아닌 범죄를 다루는 것은 좋지 않다. 살인보다 가벼운 죄를 가지고 수백 페이지 책을 읽게 할 수는 없다. 독자의 노고는 보상되어야 한다.

8. 범죄의 수수께끼는 엄격한 자연의 법칙에 따라 풀려야 한다.

범죄를 해결하기 위하여 점을 친다든가 심령술, 최면술 등을 사용하는 것은 금물이다. 독자는 이성적 추리력이 있는 탐정과 머리 싸움을 해야 승산이 있는 것이지 영계와 경쟁을 한다면 처음부터 승산이 없다.

9. 탐정소설 중의 탐정, 즉 추리의 주역은 한 사람이어야 한다.

탐정이 여럿이라면 독자의 흥미가 분산되고 논리의 체계가 흐트러진다.

10. 범인은 소설 중에서 어느 정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인물이어야 한다.

그렇게 해서 독자가 관심을 가지게 해야지 전혀 관심이 없던 인물이어서는 안된다.

11. 작가는 심부름이나 하는 하인을 범인으로 해서는 안된다.

그렇게 하면 논점이 약해지고 사건이 쉬워진다. 범인은 좀처럼 혐의를 두기 어려울 만큼 상당한 지위에 있는 인물인 것이 좋다.

12. 범죄가 있든 없든 범인은 한 사람이어야 한다.

원조자 기타의 공범자가 있는 것은 무방하나 범행의 모든 책임을 지는 자는 한 사람이라서 독자의 의심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도록 해야 한다.

13. 비밀 결사, 카모라당, 마피아당 등을 탐정소설에 등장시켜서는 안된다.

상당히 절묘한 범행이라고 감탄하고 있는데 배후에 그토록 절묘한 조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 정도는 있음직한 것이 되어버려서 흥미가 반으로 줄어든다.
탐정소설에서의 범인에게는 십중팔구 도주의 기회가 주어지는 것인데 배후에 그런 조직이 있다면 도망치는 것은 당연하고 쉬운 것이 되어버린다. 웬만큼 자존심이 있는 범인이라면 그런 배후조직의 도움이 없이 일 대 일로 탐정과 대결하고 싶을 것이다.

14. 살인 방법과 이에 대한 수사방법은 합리적이고 과학적이어야 한다.

공상적이고 비과학적인 방법은 탐정소설에서의 살인일 수 없다. 만약에 환상적인 세계에서의 범행이고 수사가 된다면 이는 모험소설이 되어버린다.

15. 사건의 진상은 통찰력 있는 독자라면 의심의 여지가 없는 명백한 것이 되어야 한다.

환언하면 사건의 종말을 알고 다음에 다시 읽어본다면 모든 단서는 분명히 제시되었고 모든 증거는 범인을 향하고 있음을 알게 되어 충분한 납득이 가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탐정과 같은 정도의 지능을 가진 독자라면 마지막 장까지 가지 않더라도 수수께끼를 혼자서 풀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한다. 실제로 혼자서 풀어보는 독자가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16. 추리소설에는 장황한 서술적 묘사, 지엽적인 일에 관한 문학적인 설명, 정교한 성격분석, 분위기에 대한 도취 등을 해서는 안 된다.

이런 것들은 사건의 기록과 그 추리를 위하여 중요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줄거리의 진행을 산만하게 하고 관심을 딴 곳으로 유도해 버리는 것이 된다. 탐정소설의 주목적은 사건의 설명, 분석, 해결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야기의 진실성을 묘사하는 데 필요한 정도의 자연묘사, 성격묘사가 있는 것으로 족하다.

17. 탐정소설에서는 직업적 범죄자가 범인인 것은 좋지 않다.

강도나 절도에 의한 범죄는 경찰의 관할이지 탐정가나 재치있는 아마추어 탐정이 다룰 범죄는 아니다. 교회의 중진이라든가, 자선가로 소문난 귀부인이 저지르는 범죄 같은 것이라야 흥미가 있다.

18. 사고 또는 자살이었다고 결말을 지어서는 안된다.

애써서 추리를 해왔는데 알고 보니 사고로 죽은 것에 불과하다 라면 이것은 독자를 놀리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19. 탐정소설에서 살인의 동기는 모두가 개인적인 것이라야 한다.

국제적인 음모나 정치적인 동기에 의한 살인은 소설의 장르로는 스파이 또는 비밀요원에 속한다. 탐정소설에서는 개인적인 것을 다루어, 어떤 형태로든 독자 자신의 억압된 감정과 욕망의 탈출구가 되는 것이라야 한다.

20. 끝으로 나의 신조를 20항으로 끝내기 위하여 자존심이 없는 작가라면 써 먹을지도 모르는 수법을 열거하려 한다. 이들은 너무나 많이 써먹은 것이라서 범죄문학의 애호가라면 누구나가 다 알고 있는 것들이다. 이것들을 사용한다는 것은 작가의 무능함과 독창력의 부족을 폭로하는 것이 되고 있다.

ㄱ. 범죄현장에 남아있는 담뱃갑과 혐의자가 애용하는 담배의 종류가 일치한다는 것으로 범인임을 짐작하는 것.
ㄴ. 최면술 같은 것으로 범인을 억압하여 범인이 자백하게 하는 것.
ㄷ. 지문의 위조.
ㄹ. 대용품에 의한 알리바이 조작.
ㅁ. 개가 짖지 않았다고 잘 아는 사람에 의한 범죄로 보는 것.
ㅂ. 무고한 쌍둥이 또는 근친자를 진범으로 체포하고 결말을 짓는 것.
ㅅ. 피하주사와 맹독.
ㅇ. 경찰이 들어간 다음에 일어나는 밀실에서의 살인.
ㅈ. 유죄판정을 위한 언어의 연쇄반응 테스트.
ㅊ. 최종적으로 탐정에 의해서만 해독되는 암호 또는 약호.

2 여담

위에서도 나오지만, 반 다인 본인의 주관이 좀 과하게 개입되어 있기도 하고, 추리소설의 영역이 본격 미스터리에만 한정되지 않는 최근에는 사실상 유명무실하다.[1] 그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과거나 특정 지역을 배경으로 삼지 않는 한 별로 문제될 것이 없는 규칙도 있다. 예를 들어 하인에 관한 부분이 그렇다. 하지만 반 다인이 주창한 '작가와 독자의 페어플레이' 정신은 일본의 신본격 미스터리 작가들이나, 서구권의 퍼즐 미스터리 소설가 등에게는 여전히 적용되는 부분이다. 규칙 세세를 지키지 않더라도, 그 정신 자체는 말이다. 특히 반 다인 등이 쓴 책을 보다가, 아리스가와 아리스, 시마다 소지가 쓴 책들을 펴서 읽으면 왠지 모르게 흐뭇해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사실 20칙을 통해 가장 잘 알 수 있는 부분은, 저 법칙이 등장했을 시기의 추리소설을 보는 인식이 어땠는가이다. 본격 미스터리의 팬들이 '황금기'라고 흔히들 지칭하던 시기의 추리소설은, 이처럼 '똑똑하고, 지적인, 중상류 계층의 지적유희'라는 느낌이 상당히 강했다. 역으로 말하자면 저러한 규칙들이 하나하나 파괴되고, 사실상 유명무실해진 지금은 추리소설이 그만큼 대중화되고 그 저변도 넓어졌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저런 성향 때문에 본격 미스터리의 중증 팬들 중에서는 '현재는 추리소설이라고 부를 수 있는 책이 없다.','추리소설은 타락해버렸다.'라는 발언을 서슴없이 내뱉기도 한다. 하지만 과연 저렇게 한정된 틀 안에만 갇혀 있었다면, 과연 추리소설이 여전히 사랑받을 수 있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3 관련 문서

  1. 그나마 의미가 있는 규칙은 1, 5, 8, 10, 14번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