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노동을 당한 오스트레일리아, 네덜란드 포로들. 그 수준은 북한의 수용소 못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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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설명
Death Railway
버마 철도(Burma Railway)라고도 하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이 인도를 점령하기 위해 만들어진 철도다. 군인과 전쟁 물자를 수송하기 위해 건설했다. 연합군 전쟁 포로와 끌려온 민간인들의 피와 땀으로 건설했다는 게 과장이 아닐 정도로 많은 사상자를 냈다.
이 철도의 길이는 총 415km로 태국의 농 플라 둑(Nong Pla Duk)역과 버마(현 미얀마)의 탄비류자얏(Thanbyuzayat)역을 연결한다.
철도가 온통 산악지대를 지나가기 때문에 난공사 구간이 많았다. 이 때문에 그야말로 지옥도가 펼쳐졌는데 버마방면군 사령관 기무라 헤이타로의 지휘로[1] 전쟁 포로 6만여 명, 태국·인도네시아·미얀마·말레이시아 같은 아시아에서 끌려온 노동자 20만 명이 동원되었으며 이 중 11만 6천여 명이 질병·부상·영양실조·과로 등으로 사망했다.[2] 특히 가장 공사 난이도가 높았던 탐파이(Tampii)역과 힌 톡(Hin Tok)역 사이에 있던 암석질 언덕을 절개하여 선로를 낸 구간은 지옥불 구간(Hellfire Pass)이라는 명칭이 붙을 정도였다.
태평양 전쟁이 끝난 뒤에는 개보수 없이는 노선을 이용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 있었다. 더군다나 전쟁이 끝나자 원래의 목적을 상실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구간은 그대로 폐선되었다. 태국측 철도 중 방콕에 가까운 구간은 전쟁 이후 1957년에 복구되어 로컬 노선으로 활용 중이다. 현재 운행 중인 구간은 130km로 농 플라 둑(Nong Pla Duk)에서 남 톡 사이 요크 노이(Nam Tok Sai Yok Noi)역까지의 구간이다. 원래는 남 톡(Nam Tok)까지만 철도가 들어왔는데 인근에 있는 사이 요크 노이(Sai Yok Noi) 폭포가 관광지로 유명해지자 2003년에 기존 노반을 그대로 활용하여 추가로 연장한 것이다.
1987년에 버마 철도의 폐선 구간을 복구하고 증기기관차를 달리게 관광 노선으로 부활하게 하려는 계획이 있던 적이 있다. 이 계획은 태국 정부가 일본에게 돈을 받아 복구하려고 했기 때문에 제2차 세계대전 때 포로로 버마 철도의 건설에 연행된 호주 재향 군인회와 네덜란드의 옛 포로들은 "버마 철도의 복구는 아우슈비츠를 유원지로 만드는 것과 같다!" 며 엄청나게 화냈다.
2 미디어에서의 묘사
영화 콰이 강의 다리에서 그 모습이 나왔다. 하지만 실제에 비해 너무나 미화하고 일본군을 정상적으로 묘사했다. 물론 이거에 대해 반론이 있다. 이때 당시 사령관은 미얀마의 도살자이자 미친 악귀 기무라 헤이타로가 아닌 모자라지만 마음씨는 착한 사령관이었던 카와베 마사카즈였다. 그렇기 때문에 정상적으로 묘사했을지도 모른다. 원래 이 영화의 컨셉 자체가 어떤 의미로는 꼭 닮은 영국군과 일본군의 멘탈 대결이었다. 또한 영화에서 나온 일본군 수용소장의 모델인 부소장 사이토 리사부로 중령은 실제로도 일본군치고는 적군 포로를 정상적으로 대해줬다.[3]
영화 《레일웨이 맨》 (2013)에서도 다뤘다. 이 영화는 1995년 출간된 동명의 책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 원래는 전임 사령관 카와베(임팔전투 승인자)가 기획했지만 사람들이 많이 희생될것 같아 기획만 했었다. 멍청하긴 했어도 사람 성격은 좋았었나 보다.
- ↑ 그래서 전임 사령과 가와베도 이걸 염두하고 있었고 그것 때문에 공사 계획을 중간에 취소했다.
- ↑ 하지만 이런 이유 덕택에 그는 기무라 헤이타로에게 무지하게 괴롭힘 당했다. 구타와 욕설을 쉬지 않고 받아야했다.
천하의 개쌍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