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무반

別武班

여진족을 정벌하기 위해 고려 숙종 9년에 윤관의 건의에 따라 특별히 편성한 고려의 군사조직.

고려 초까지 여진은 간간히 골치거리를 만드는 북방의 이민족이긴 했어도 거란처럼 국운을 건 전쟁을 벌여야 될 정도로 위협적인 세력은 아니었다. 하지만 11대 문종임금 재위시절부터 여진의 위협이 격화되기 시작했으며 그 중심에는 동여진 완안부(完顔部)가 있었다. 그리고 15대 숙종 시절에는 고려에서 정규군을 동원하여 여진 정벌을 결심할 정도로 위협적인 세력이 되어 있었다.

숙종은 임간과 윤관에게 군대를 주어 2번에 걸쳐 천리장성 인근에서 깔짝거리는 여진을 축출하려 시도했다. 하지만 고려군은 여진을 쫓아내기는 커녕 역으로 찰지게 얻어맞고 돌아오기 일쑤였다. 이에 윤관은 잇따른 패전이 보병 위주로 편성된 고려군 조직의 문제로 분석했다. 이에 기병 위주로 편성된 여진족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고려군 역시 강력한 기병으로 맞불을 놓는 것이 최선이라 주장했으며, 고려조정에서도 윤관의 건의를 받아들였다.

별무반은 크게 신기군(神騎軍), 신보군(神步軍), 항마군(降魔軍)을 중심으로 도탕(跳盪)·경궁(梗弓)·정노(精弩)·발화군(發火軍)과 같은 특수병과로 구성됐다. 이들은 고려 정규군과는 별개의 조직으로 17만에 달하는 대규모 임시 전투부대였다.실제 여진족과의 전투를 대비해 꾸준한 훈련을 통해 모든 준비를 마친 고려는 예종 2년 윤관을 원수, 오원총을 부원수로 임명하여 여진 정벌을 단행했다. 별무반은 천리장성 이북지역, 현재의 함경도 지역에 자리잡고 있던 여진족을 탈탈 털어 북쪽으로 몰아냈으며 그 자리에 동북 9성을 쌓았다.

한편 관광당한 여진은 오아속(烏雅束)을 중심으로 동북 9성을 두드리면서 한편으로는 사신을 보내 해당 지역을 돌려주면 다시는 고려를 건드리지 않겠다면서 강화를 요청했다. 고려 조정에서는 윤관의 반대가 있었지만 여진과의 계속되는 전쟁이 부담된다고 판단했기에 동북 9성을 반환하면서 마침내 강화가 성사됐다. 이후 별무반에 대한 언급은 나오지 않는데 아마도 여진 정벌이란 1차적인 목적달성 및 여진과의 강화에 따라 계속 유지할 필요성이 없었기에 해산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보통 역사 교과서나 각종 역사서적에서는 고려가 여진을 잡기 위해 기병을 양성했다고 가르친다. 이로 인해 고려가 기병을 양성하여 여진을 관광시킨 것정도로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 별무반의 주력은 기병이 아닌 보병으로 보고 있다. 특히 기병부대인 신기군의 경우 문무산관 및 주민, 부민, 군민, 현민 중에서도 말을 가진 사람들을 징집하여 편성했다. 하지만 귀족 및 관료들은 사실상 징집이 어려웠고 만만한게 일반 백성인데 농경정주사회인 고려에서 일반백성들이 말을 보유하고 있을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으로 보기 때문에 대규모 기병양성은 불가능했을 것이란 견해이다.

추가로 항마군의 경우에는 승도 위주로 편성됐다고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사원에 소속되어 경작하던 농민들이 징집대상이었다. 신보군의 경우에도 주부군현에서 20세 이상의 과거를 보지 않는 남자들을 징집한 것이므로 사실상 별무반은 여진 정벌을 위하여 거국적으로 일반 백성들을 징집하여 편성한 쪽에 가깝다. 이로 인해 당시 고려 정규군 조직의 문제나 또는 동원체계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닌가 추정하는 해석도 있다.

한국사능력검정시험 22회(2014.1.25) 고급 18번 문제로 출제되었다. 페이크를 위한 선택지로 삼별초 내용이 나왔다.

한국의 서브 컬쳐에서는 크게 다루어지지는 않지만 웹툰 호랑이형님에서 이에 대한 언급이 잠시 나왔다. 작중 흰 산의 주인인 아린을 죽이기 위해 붉은 산의 세력과 인간들이 합심하여 기른 부대인 듯 하다. 아마 위의 항마군에서 모티브를 따온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