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상

卜商
기원전 507(?)~420(?)[1]

전국시대 위나라의 정치가, 철학자.

공자의 제자 중 하나. 자는 자하(子夏)이다. 위(衛)나라 사람이다. 공자는 생전에 자하가 문학에 뛰어나다고 칭찬한 바가 있으며, 실제로 공문십철 중 하나이다. 과유불급의 주인공 중 한 명으로 넘친다는 평을 받은 자장에 비해 지나치게 겸손한 모습이 있어 불급하다고 평해졌다. 다만, 좀 꽉 막힌 구석이 있었는지 소인 선비가 되지말고 군자 선비가 되라고 말하긴 했다.(...) 어쨌든 공자도 자하를 선비로 평가했으며, 시경을 논할만 하다고 했을 정도로 말년에 가장 아꼈던 제자들 중 하나이다.

실제로 공자 문하의 가장 영향력 있는 제자들 중 하나였으며, 시와 예에 뛰어났다고 전해진다. 자하의 학파가 가장 명성이 높았기 때문에, 당시에 자주 비교되었던 자유 학파나 자장 학파, 증자 학파에서도 상당히 디스가 많이 들어왔던 듯. 실제로 논어의 자장편에는 자하의 말이 상당수 남아 있어 그의 영향력을 짐작하게 해준다.

자하 계열에서는 농사, 원예, 의술, 점술 등을 작은 도에 불과하다면서 군자가 행하지 않는 것이 옳다고 하였고, 작은 예절부터 배워 몸에 체화시켜 큰 도에 이르게 한다고 주장하였다. 자하 계통의 학파는 증자 계통[2]과 달리 예를 중시하였으며, 이러한 그의 학풍은 후에 순자 계열로 전승되어 유가의 한 큰 흐름을 만들어 내게 된다. 실제 순자를 읽으면 자하의 에피소드가 나오기도 한다.

초기에는 나라에서 활동하였으나 이후에는 (魏)나라에서 주로 활동하였으며, 위나라에서는 자하의 학파가 서하학파라고 불렸으다. 유명한 제자로 오기, 이극, 서문표 등 위나라의 짧은 전성기를 이끈 인재들이 다수 포진되어 있다. 본인도 위나라에서 나름 정치적인 활동을 벌였던 것으로 보이며, 실제로 위나라 문후의 스승을 지내기도 했다.

말년에 자식이 죽은 뒤 너무 슬퍼하다 실명되었고, 그 후유증으로 사망했다고 한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자식이 죽어서 슬퍼하는 사람을 보면 '너도 자하처럼 눈 멀거냐'는 패드립비하성 발언을 한 흔적이 여기저기 남아있다.(...)
  1. 중국 및 일본 위키피디아 참조. 더 확실한 생몰연도가 있을 시 수정 바람.
  2. 이쪽 계통은 효를 매우 중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