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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 사건은 2001년 2월 4일 부산광역시 연제구 배산 중턱 등산로 부근 수풀에서 여대생 김 모 씨(당시 22세)가 살해당해 시신으로 발견된 사건을 말한다. 이 사건은 용의자가 없는 살인사건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미제사건으로 유명한 살인사건은 이 사건 말고도 남양주 아파트 밀실 살인사건이 있다 2016년 현재까지도 15년 째 장기 미제 사건으로 남고 말았다.
2 사건 내용
2001년 2월 4일, 오후 5시 30분. 연제구의 배산 중턱에서 여대생 김 씨의 시신이 등산객에 의해 발견되었다. 시신은 등산로 30m 안쪽 수풀에서 발견되었는데 목과 배에서 흉기에 찔린 흔적이 나왔다. 성폭행을 당했거나 반항한 흔적은 나오지 않았고 근처에서 김 씨의 피가 묻은 과도가 발견되었다. (경찰은 이 과도의 출처를 찾으려 했지만 이미 전국적으로 수 십 만 개가 팔린 것이라 출처를 찾는 것이 불가능했다) 부검 결과 김 씨는 2월 4일 오전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었으며 사인은 과다출혈로 인한 쇼크사로 판정되었다. 그런데 법의학자들은 목에 찔린 상처가 치명상이 아니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치명상은 배 부위가 찔린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었다.
김 씨의 집은 사건 현장에서 불과 150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는데 사건 당일 아버지는 야근 때문에 귀가하지 않았고 어머니는 고향인 경주로 새벽기도를 가기 위해 새벽 5시에 집을 나섰으며 김 씨는 남동생과 함께 한 방에서 잠을 잤다고 한다. 당시 중학교 2학년이었던 남동생 김 군은 오전 7시 반 쯤 일어났는데 이 때 누나가 집에 없었다고 했다. 경찰은 김 씨가 어머니가 나간 새벽 5시에서 남동생이 기상한 7시 반 사이에 집을 나선 것으로 판단했다. 김 씨는 잠옷 차림에 코트를 걸쳤지만 양말은 신지 않고 단화만 신은 채로 발견되었다. 김 씨가 잠옷 차림에 양말도 신지 않은 맨발로 집을 나섰다면 이는 면식범의 소행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서 경찰은 사건 당일 전화 통화 내역을 조회했지만 김 씨가 전화를 걸거나 받은 기록이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는 누군가가 김 씨 집에 찾아와 밖으로 불러낸 것으로 추정됐다. 집에 침입해 김 씨를 끌고 나갔을 가능성은 없었다. 만일 그랬다면 한 방에서 같이 잠을 잤던 남동생 김 군이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었기 때문이다.
경찰은 혹시나 김 씨가 몽유병 증세를 앓고 있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잠을 자다가 밖으로 걸어나간 게 아닐까 조사해 봤지만 김 씨는 몽유병 치료를 받은 적이 없었으며 가족들도 딸이 몽유병이 있었다는 사실을 부정했다. 김 씨는 화목한 가정에서 미래를 꿈꾸는 평범한 여대생이었다. 누구로부터 원한을 살 만한 것도 없었다. 그 때문일까. 김 씨의 지인 가운데에는 용의자가 나오지 않았다. 학교 친구는 물론이고 동아리 선후배, 옛 남자친구 등 수십명을 용의선상에 올렸지만 특이점은 없었다. 새벽에 잠을 자고 있었다고 진술하거나 타 지역에 있었다고 하며 모두 이를 뒷받침하는 증인이 있었다. 집 주변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때문에 사건은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경찰은 김 씨가 배산이 아닌 집이나 학교에서 살해된 뒤 배산으로 옮겨졌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따라서 김 씨의 집에 루미놀 반응 검사를 실시했으나, 아무 반응도 나오지 않았다. 또 김 씨의 신발에 묻은 흙과 솔잎, 그리고 김 씨가 다닌 대학교의 흙과 솔잎을 대조하는 국과수 검사를 실시하려 했으나 크기가 너무 작아 제대로 검사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3 부산의 장기 미제 사건으로 남다
경찰은 이 일대 주민과 등산객을 상대로 목격자를 찾기 시작했다. 일요일이어서 아침 일찍 출근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사건 당일 아침 일찍 등산한 사람도 찾을 수 없었다. 또 김 씨 집에서 사건현장까지는 CCTV도 없었다. 이 일대 주민들을 일일이 찾아 조사했지만 김 씨를 봤다거나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는 사람은 나오지 않았다. 경찰은 동일수법 전과자와 동네 불량배도 용의선상에 올렸으나 그들에게서도 별다른 특이점은 발견되지 않았다. 용의자도 목격자도 나오지 않자 살해당한 뒤 유기됐을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범행 현장에서는 이를 뒷받침할 증거가 없었다. 또 자살 가능성도 제기됐으나 김 씨의 상처를 볼 때 자살 가능성은 희박했다. 일단 자살할 동기도 없었는데다 주변에서 유서가 발견되지도 않았고 만일 칼로 자기 몸을 찔러 자살하고자 했다면 한 번에 급소를 찔러 죽는 것이 보통인데 목을 찌르고 배도 찔렀다는 건 전혀 납득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경찰은 “김 씨의 상처는 자살로 인한 상처라기보다 누군가에 의해 과감하게 찔린 것이라고 봐야 한다”고 하며 자살 가능성을 일축했다.
사건이 미궁으로 빠지면서 1년여 만에 수사본부는 해체됐다. 현재 김씨가 살던 주택가는 재개발로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사건을 기억하는 주민들은 이주하면서 사건은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이른바 태완이법으로 인해 살인죄의 공소시효가 폐지돼 2000년 8월 1일 이후 발생한 사건에 대한 재수사가 시작됐다. 이 사건은 부산의 미제사건 중 가장 오래된 사건으로 다시 부각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