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누인형

1 노래

김동률이적이 1997년에 결성한 프로젝트 그룹 카니발의 1집 앨범 Carnival에 수록된 노래이다.

1.1 가사

먼 옛날의 일이죠 한 소년이 있었죠
작은 아이 외로울 땐 비가 내렸죠

항상 혼자 외로이 꿈꾸던 아이의
뽀얀 안경 눈에 뜨인 비누 한 조각

우윳빛 비누 인형, 소년의 두 손에 깨어나
비밀 얘기들을 밤새도록 속삭이니

멀리 동이 터 오면 가만히 창가에
잠든 인형 올려놓고 학교에 갔죠

그런 어느 여름날 검푸른 먹구름 덮이고
퍼붓는 빗 속 흙탕길을 달려오니

인형은 간데없고 맑은 비눗방울
먼 하늘로 소리 없이 날고 있었죠

먼 옛날의 일이죠 한 소년이 있었죠
작은 아이 눈물질 땐 비가 내렸죠

2 소설

유래는 1번 문단의 노래로, 7차 교육과정 시절 중학교 2학년 국어 교과서에 수록된 소설이다. 김두필이라는 작가가 썼다고 하며, 당시 작가는 중학생이었다고 한다. 물론 2016년 현재는 성인이 되어 있지만.

2.1 줄거리

참고로 원문에는 학교, 건물, 교문 등의 단어에 한자를 병기했으나, 여기에서는 한자 부분을 삭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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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두껍아 두껍아, …….”

오늘도 연희는 동네 공사장에서 혼자 흙장난을 하고 있었다. 마침 일요일이어서 공사장에는 일하는 사람도 없었다. 이렇게 연희는 매일 오후만 되면 공사장에서 장난을 치곤 했다. 그러다 공사장 아저씨에게 혼이라도 나는 날이면 연희는 집 앞에서 조약돌을 주워다 소꿉장난을 하거나 계단을 오르내리며 놀곤 했다. 연희는 언제나 혼자였다. 연희가 사는 이 동네에는 연희 또래의 아이들이 없었다.

연희가 사는 집은 버스 정류장에서 계단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야 하는 달동네였다. 그 끝없이 이어진 계단을 올려다보노라면 이것이 하늘까지 닿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때론 ‘오즈의 마법사’에서의 그 황금빛 벽돌로 된 길을 떠올리게도 했다. 하지만, 그 길에 비해 이 곳의 계단길은 너무나도 초라했다. 삐뚤삐뚤 휘어진 길들은 여기저기가 깨지고 시멘트로 덕지덕지 발라 놔서 누더기 같았고, 연희가 오르내리기에는 너무 높았다. 길 옆으로 빼곡히 들어서 있는 집들도 초라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색벽돌로 차곡차곡 쌓은 것이 아니어서 모두 회색빛이었고, 여기저기 흙이 보이는 벽은 손을 대면 금방이라도 푸석한 먼지와 함께 부서져 내릴 것만 같았다.

연희네 집은 이런 동네에서도 맨 꼭대기에 있었다. 동네는 너무 조용했다. 이따금씩 개 짖는 소리가 들리는 것을 빼고는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빽빽한 집의 수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지만, 다들 아침 일찍부터 일터로 나갔다가 듬성듬성 서 있는 가로등에 불이 켜질 즈음에야 돌아오기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살림이 어려워진 연희네가 이 동네로 이사 온 지도 2년이 지났다.

연희의 엄마는 식당에 일하러 나갔다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주위가 컴컴해지고 하늘이 불그스름해지자 연희는 엄마가 오는 게 보이는 집 앞 계단 끝으로 나갔다. 그 곳에 쪼그리고 앉아 엄마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엄마가 배고플 때 먹으라고 밥이랑 반찬을 해 놓고 나갔지만, 연희는 언제나 이렇게 엄마가 올 때까지 기다려서 함께 밥을 먹곤 했다.

저 멀리 해가 기울어 가면서 하늘에 빨갛게 노을이 지는 것이 퍽 아름다웠다. 연희는 엄마를 기다리면서 이렇게 노을을 보는 것을 참 좋아했다. 해가 지는 것을 보며 해가 뜨는 것도 멋질 거라고 생각했지만, 연희는 매일 늦잠을 자는 바람에 해가 뜨는 것은 아직까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해가 다 지고 어둠이 몰려왔다. 저 아래에서 건물과 도로를 지나는 차들의 빛은 밝고 아름다웠지만, 조금만 고개를 돌려 골목을 돌아보면 깜깜한 길밖에 보이지 않았다. 어둠 너머로 사람들이 하나 둘씩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조금을 더 기다리자 연희의 엄마도 계단을 올라왔다.

“엄마!”

연희는 뛰어나가 엄마의 허리를 껴안았다.

“또 나와서 기다렸어? 그러지 말라니까 그러네. 그러다 감기 들면 어쩌려고…….”

엄마는 연희의 팔을 풀며 이야기했다. 하지만, 엄마도 연희가 이렇게 마중을 나와 있는 것이 무척 기분이 좋았다. 엄마가 미리 차려 놓은 밥상에 엄마 몫의 밥을 한 공기 더 놓으며 연희와 엄마는 함께 밥을 먹기 시작했다. 한참을 먹다가 연희가 엄마에게 무엇인가 생각나는 듯 물었다.

“엄마, 나 학교 가려면 몇 밤이나 더 자야 돼?”

엄마는 달력을 보고 대답했다.

"음, 그러고 보니 우리 연희 학교 갈 때가 다 됐구나. 스무 밤만 더 자면 되겠다."

하지만, 연희는 그것도 너무 길다는 듯이 얼굴을 찌푸렸다. 엄마는 연희가 얼마나 학교에 가고 싶어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연희가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혼자 집에 있으면서 얼마나 외로워하는지도... 엄마는 늘 혼자인 연희에게 언제나 미안했다. 그래서 엄마도 역시 연희가 어서 학교에 다니게 되기를 바랐다. 그러면 연희가 집에서 혼자 외로워할 시간도 조금은 줄어들 테니까.

어느 일요일이었다. 그 날은 엄마가 일을 나가지 않고 쉬는 날이었다. 그래서 모처럼 그 동안 밀린 빨래도 하고, 오랜만에 연희와도 놀아 주며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그래서인지 연희는 아침부터 콧노래를 부르며 즐거워했다. 한참 빨래를 하던 엄마가 연희에게 심부름을 시켰다.

“연희야, 저기 아래 가게에서 빨랫비누 하나만 사다 줄래? 남는 돈으로는 연희 먹고 싶은 거 사 먹고.”

연희는 좋아라고 하며 엄마가 주머니 깊숙한 곳에서 꺼내 준 돈을 손에 구겨 쥐고 계단을 뛰어내려갔다. 그렇게 한참을 내려가니 구멍가게가 나왔다. 연희는 삐그덕거리는 소리가 크게 나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가게 안에는 머리를 곱슬곱슬하게 볶은 주인 아주머니가 벽에 몸을 반쯤 기댄 채 누워 있다가 연희를 보고는 반갑게 맞았다.

“아이고, 우리 연희 왔구나.”

어린아이가 드문 이 동네에서 연희는 무척 귀여운 존재였다. 연희도 귀엽게 인사를 하고, 먼지가 가득 쌓여 있는 선반을 둘러보다가, 비누가 있는 곳을 발견하고는 푸른색의 빨랫비누를 하나 집어 들었다.

“아줌마, 이거하고요...”

방금 집은 빨랫비누를 계산대 위에 놓고 연희는 다시 선반을 살폈다. 과자가 있는 선반에서 한참 이 과자 저 과자를 집었다 놓았다 하더니 갑자기 무엇이 생각난 듯 또 한참을 생각하는 것이었다. 한참 만에 연희가 집어 든 것은 과자가 아니라 또 하나의 빨랫비누였다.

“아줌마, 이거 두 개 주세요.”

연희는 아주머니가 까만 비닐 봉투에 담아 준 두 개의 빨랫비누를 들고 또 집으로 향해 달렸다. 집으로 돌아온 연희는 비누를 꺼내서 이리저리 살피더니, 못생긴 비누를 엄마에게 주고 모양이 반듯한 예쁜 비누를 가지고 몰래 방으로 들어왔다.

이튿날, 엄마는 연희에게 집을 맡겨 두고 다시 일을 하러 나갔다. 그 날 오후 늦도록 공사장에서는 연희가 흙장난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그리고 집 앞에서 엄마를 기다리며 석양을 바라보는 모습도 찾을 수 없었다. 엄마가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에도 연희는 여느 때처럼 집 밖에 나와 엄마를 반기고 있지 않았다. 엄마는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난 게 아닌가 하고 급히 집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연희는 잠을 자고 있었다. 엄마는 연희를 흔들어 깨우려다 연희의 머리맡에서 여기저기가 깎여 나간 비누 조각을 발견했다. 조그만 칼로 무엇인가를 솜씨 없이 깎아 놓은 것이 연희가 한 게 분명했다. 팔과 다리 모양 같은 것이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인형만들려 했던 모양이었다. 순간, 눈가에 눈물이 고이더니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러고는 자고 있는 연희의 이마에 붙어 있는 머리카락을 쓸어 주며 엄마는 소리나지 않게 흐느꼈다. 그 비누 조각을 보았을 때 엄마는 연희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연희는 비누로 자신의 친구를 만들고 있었던 것이었다.

“연희야, 미안하구나. 미안해, 엄마가 정말 미안해...”

엄마는 더 이상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무엇인가 꽉 막힌 것처럼 엄마는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그 어린것이 익숙하지 못한 솜씨로 여기저기 비누를 깎은 것을 생각하니 여간 안쓰러운 것이 아니었다. 그 날 밤, 엄마는 늦게까지 비누 인형을 만들었다. 몸도 마음도 하루 종일 밖에서 일을 하느라고 지쳐서 쓰러질 것 같았지만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이튿날, 조그맣게 뚫어진 창문으로 아침 햇살이 들어와 방 안의 어둠을 쫓아 내자 연희는 눈을 떴다. 방문 옆으로 밥상이 차려져 있는 것이 엄마는 이미 일찍 일터로 나간 모양이었다. 문득 어제 저녁 비누로 인형을 만들던 일이 생각났다. 만들고 싶은 모양을 이미 머릿속으로 몇 번이나 그려 보았지만, 정작 만들기 시작하면 생각대로 되지 않아서 무척이나 속이 상했었다. 연희는 밥 먹는 것도 제쳐두고 다시 인형을 만들기 위해 머리맡에 둔 비누 조각을 찾았다. 비누 조각을 본 연희는 깜짝 놀랐다. 그것은 이미 비누 조각이 아니라 인형이 되어 있었다. 연희는 엄마가 만들었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연희는 몰래 인형을 만들려 했던 걸 들킨 것 같아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기가 그렇게 만들려고 해도 만들지 못한 것이 이렇게 완성되어 있었기에 뛸 듯이 기쁘기도 했다. 그 날 오후, 연희는 다시 공사장에 나와서 장난을 쳤다. 손으로 흙장난을 하는 연희의 옆에는 비누 인형이 곱게 뉘어져 있었다.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두껍아 두껍아...”

연희는 여느 때 보다 더 신이 나서 두꺼비집을 지었다. 이제 연희가 짓는 모래집은 비어 있는 집이 아니라 비누 인형의 집이 되었다. 소꿉장난을 할 때도 인형은 언제나 연희와 함께였다. 그 인형은 때론 연희의 아들이 되고, 딸이 되고, 동생이 되었다. 비누 인형은 연희의 곁을 지켜 주는 하나뿐인 친구가 된 것이다.

여느 때처럼 연희는 비누 인형과 함께 노을이 지는 것을 바라보며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다. 연희는 옆에 놓여 있는 비누 인형을 품에 꼭 안으며 말했다.

“언제까지나 떠나지 않고 내 곁에 있어 줄 거지? 나랑 약속한 거다.”

비누 인형은 그런 연희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해가 완전히 넘어가서 어둠이 몰려올 때까지도 아무 말 없이 연희의 품에 안겨 있었다.

연희가 학교에 입학하기 전날 밤, 엄마는 잠자리에 들려는 연희 앞에 책가방을 내밀었다.

"엄마, 내 책가방이야?"

연희는 책가방을 메고 거울에 이리저리 비춰 보며 좋아서 야단이었다. 그러더니 이불 밑에 놓여 있던 비누 인형을 꺼내 가방에 넣으며 말했다.

“내일부터 우리 학교에 같이 가자. 엄마, 비누 인형을 데리고 학교에 가도 되지?”

신이 나 들뜬 연희를 잠자코 지켜보던 엄마는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비누 인형은 두고 가거라. 학교에 가면 좋은 친구들이 많을 거야.”

엄마의 대답에 연희는 금세 울상이 되었다.

“안 돼. 비누 인형 혼자서 집에 있으려면 얼마나 외롭고 심심하겠어? 그리고 언제나 곁에 있기로 비누 인형하고 약속했단 말이야.”

엄마는 울먹이는 연희를 꼭 안아 주었다.

“연희야, 꼭 곁에 있지 않아도 친구가 될 수 있단다. 아빠도 곁에 있진 않지만 엄마는 늘 아빠와 이야기를 나눈단다. 아빠에게 연희가 학교에 가는 것도 말씀드렸는걸.”
“거짓말, 아빠가 어디에 있는데?”
“여기 엄마 마음 속에, 그리고 연희의 마음 속에 있지. 마음에 간직하고 있으면 언제나 곁에 있는 거야.”

연희는 엄마 이야기를 다 알아들을 순 없었지만, 더 이상 비누 인형을 학교에 가져가겠다고 우기지는 않았다.
이튿날은 아침 해가 떴는데도 날이 어둑했다. 만약, 엄마가 깨우지 않았다면 날이 샌지도 모르고 연희는 늦잠을 잘 뻔했다. 연희는 학교에 간다는 것이 기쁘기는 했지만, 한편 비누 인형이 마음에 걸렸다. 집을 나서려다 몇 번이고 비누 인형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연희의 모습을 엄마는 애써 모른 척했다. 그러다 연희는 결심이나 한 듯 비누 인형을 반쯤 열린 창틀 위에 곱게 뉘면서 이야기했다.

“나, 학교 다녀올게. 심심하지 않게 여기서 바깥 구경이나 해.”

엄마는 학교 교문이 바라다보이는 큰길까지 연희를 바래다 주었다. 연희는 혼자 남게 되자, 비누 인형이 더 보고 싶어졌다.

‘아빠도, 비누 인형도 마음 속으로 생각하면 늘 곁에 있는 거야.’

연희는 그렇게 마음을 고쳐먹자 한결 기분이 나아졌다. 마치 어딘가에서 아빠와 비누 인형이 연희를 지켜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연희는 교문을 들어서려다 하늘을 보았다. 날씨가 별로 좋지 않았다. 교실에 들어섰을 때에는 날씨가 더 나빠져 있었다. 하늘은 까만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고, 땅은 전부 그 그림자에 가려졌다. 조금 후에는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빗방울이 매우 굵어서 앞도 잘 보이지 않았다. 빗방울을 바라보던 연희는 갑자기 창틀 위에 올려놓은 비누 인형이 생각났다. 순간, 연희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담임 선생님의 이야기는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시간은 또 왜 이렇게 안 가는지 일 분 일 초가 너무도 길게 느껴졌다. 어서 집으로 달려가 인형을 방 안으로 옮겨 놓고 싶었다. 그렇게 다니고 싶어했던 학교가 갑자기 갑갑하게만 느껴졌다. 비는 좀처럼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학교가 끝나자마자, 연희는 서둘러 집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우산이 없었지만, 그런 것에 신경 쓸 새가 없었다. 옷이 비에 젖어 기분 나쁘게 몸에 달라붙었다. 자꾸만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빨리 달리고 있었지만, 누가 다리를 잡고 늘어지는 것처럼 매우 느리게 느껴졌다. 버스 정류장을 지나고 골목길로 들어섰다. 계단은 여기저기가 깨져서 곳곳에 빗물이 고여 있었다. 그 높은 계단을 연희는 뛰다시피 올라갔다. 진흙이 묻어 옷이 몹시 더러워졌지만, 연희는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저 앞에 벌겋게 녹이 잔뜩 슨 대문이 보이자, 연희의 달리는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연희는 멈추지 않고 집으로 뛰어들어갔다. 숨이 무척 가빠서 진정할 수가 없었다. 방문을 열려는 연희의 손이 떨렸다. 

“드르륵.”

연희는 방문을 열고 비에 젖은 몸 그대로 방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비누 인형을 놓아 둔 창틀을 보았다. 그러나 어디로 사라졌는지 비누 인형은 온데간데없고 방 안 가득 비눗방울만 날리고 있었다. 연희는 멍하니 방 가운데 서 있었다. 비누 인형과 소꿉장난하던 일, 흙놀이를 하던 일, 노을을 바라보며 언제까지나 함께하자고 약속했던 그 날이 꿈처럼 느껴졌다.
바람을 타고 흩날리던 비눗방울은 작은 창문을 넘어 먹구름이 걷히기 시작한 먼 하늘로 날아가고 있었다.

2.2 창작 과정

이 소설은 특이하게도 학생 작품이 수록되었기 때문인지 창작 과정도 같이 수록되었다. 아래는 그 내용이다.

  • 어떻게 소설을 쓸 생각을 하게 되었나요?

소설을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은 꽤 오래 전이었습니다. 밤에 자주 듣곤 했던 라디오 프로그램 중에 노래 제목으로 단편 소설을 써 보는 ‘제목만 따와 봤어’라는 꼭지가 있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을 들을 때면 저도 좋아하는 노래들을 떠올리면서 머릿속으로 소설을 썼다 지웠다 했지요. 그런데 마침 국어 시간에 소설을 직접 써 보는 기회가 생겼어요. 그래서 이 소설을 쓰게 된 겁니다. 

  • ‘비누 인형’이라는 특이한 소재를 어디서 구하게 되었나요?

제가 즐겨 듣던 노래입니다. 이 노래의 노래말은 동화적인 요소가 짙어서 동화를 즐겨 읽는 저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소재였습니다. 더구나 슬프고도 환상적인 결말이 제 마음에 꼭 들었지요. 소재를 찾고 난 후 저는 국어 공책에 저의 첫 번째 소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제가 좋아하는 노래 ‘비누 인형’은 한 편의 소설로 세상에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 노래말과 소설의 줄거리는 어떤 연관이 있나요?

소설의 전체 줄거리는 노래말과 같습니다. 노래의 제목만 빌려 온 것이 아니라 뼈대가 되는 이야기, 즉 줄거리도 빌려 왔지요. 다음이 그 노래말입니다. → 가사는 1번 문단에 있다.

그래서 소설을 구성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이야기의 끝이 확실하게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지요. ‘비가 몹시 쏟아지는 날’과 ‘방 안 가득히 날리는 비눗방울’이라는 마지막 장면을 먼저 완성하고 나니 이야기는 빠른 속도로 진행되어 갔습니다. 그러고는 구체적인 상황이나 인물들의 대화를 순서대로 배열했습니다. 가난하고 외로운 소년이 혼자 비누 인형을 만들지요. 그 인형은 소년의 유일한 친구가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비누 인형을 두고 학교에 갔는데 그만 큰비가 내립니다. 소년은 학교를 마치고 빗속을 달려오지만, 인형은 간데없고 비눗방울만 날리고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 노래의 내용이 그대로 소설이 된 것은 아닌데, 어떤 것이 변했고, 첨가된 것은 무엇인가요?

노래 속에는 소년이 등장하지만, 비누 인형을 친구로 삼는다는 설정을 하기 위해서 주인공을 소녀로 바꾸었습니다. 물론, 소년이 비누 인형과 놀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보다 있음 직한 경우를 생각해 보았어요. 순수하고 부드러운 느낌을 주기 위해서 이름도 연희로 지었습니다. 물론 이 배우와는 상관없다 그리고 비누 인형이 유일한 친구인 연희의 상황을 잘 살리기 위해,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어머니는 하루 종일 일을 나가야 하는 상황을 만들었습니다.

  • 소설의 배경이 무척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는데, 어떻게 만들었나요?

우선, 헐어 낸 집터와 모래 언덕 등 연희가 즐겨 노는 놀이터에 어울릴 가난한 산동네를 소설의 배경으로 정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사는 동네의 후미진 골목과 텔레비전 드라마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통해 보았던 것을 종합해서 배경을 만들었습니다.
‘버스 정류장 옆을 지나가다 보면 앞으로 보이는 좁은 골목길 입구. 그 곳에 들어 서면 펼쳐지는 구불구불한 오르막길, 깨어진 계단, 빼곡히 들어선 오래 된 시멘트 벽돌집들, 밤이면 어스름한 불빛을 주는 가로등, 헐어낸 집들과 공사장’은 그렇게 만들어지게 된 것이지요.

  • 구체적인 상황과 인물들의 대화는 어떤 방식으로 만들었나요?

소설 속의 구체적인 상황과 인물들의 대화는 없는 것을 억지로 꾸며 낸 것이 아니라, 어린 시절 저의 경험을 떠올리며 만들었습니다. 모래가 그득히 쌓여 있는 공사장이 최고의 놀이터였던 것도 제 경험이지요.
또, 연희와 연희 엄마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보려고 노력했습니다. 만약, 내가 그런 상황에 있다면 내 마음은 어떠했을까, 무슨 말을 했을까 상상도 해 보았습니다. 그것은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나는 이랬을 텐데, 저럴 때는 저렇게 되겠지?’ 이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저는 점차 제가 만들어 놓은 새로운 세상에 빠져 들어갔습니다. 때로는 관찰자가 되고, 때로는 작중 인물이 되어 상황을 만들고 대화를 다듬는 것은, 책 읽기에서 얻는 ‘상상하는 즐거움’과는 또 다른 즐거움이었습니다.

  • 비누 인형을 통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나요?

친구가 전혀 없는 가난한 아이의 외로움을 글로 쓰고 싶었습니다.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제 어린 시절이랑 너무 비슷해 가슴이 아팠거든요.
그리고 그런 연희에게 진짜 친구를 만들어 주고 싶었어요. 비누 인형이 비눗방울이 되어 사라지는 것은 비누로 만든 인형이 영원한 친구가 될 수는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학교에 가면 진짜 친구를 사귈 수 있으니까 입학식에 맞춰 사라지게 만든 겁니다.

  • 소설을 다 쓴 뒤 어떤 느낌이 들었나요?

소설을 완성시킨 것은 새벽이었습니다. 일 주일이나 걸렸지만, 그 동안 정말 즐겁게 글을 썼습니다. 새벽까지 글쓰기에 집중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바로 그 증거지요.
몇 번의 글다듬기를 거친 다음 마침표를 찍은 후에도 한동안 소설 속에서 빠져 나올 수 없었습니다. 마치 제가 연희가 되어 빗물이 뚝뚝 떨어지는 몸으로 방 한가운데에 서서 흩날리는 비눗방울을 바라보고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더 지난 후에야 저는 ‘드디어 끝냈다.’는 뿌듯함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쉬움도 많았습니다. ‘좀더 적절한 표현을 쓸 수는 없었을까?’, ‘좀더 있음 직하게 사건을 전개해 나갈 수는 없었을까?’에서부터 선택했던 단어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말입니다.

이렇게 해서 저는 일 주일 간의 낮과 밤을 통해 열심히 만들어 나갔던 제 세계의 창문을 닫았습니다. 그러나 소설은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닙니다. 이미 제 마음에는 방이 하나 생겼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따금씩 그 방 창문을 통해 달동네 골목을 뛰어다니는 연희를 즐거운 마음으로 바라보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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