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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이름 | 사미 투오마스 휘피애[1] (Sami Tuomas Hyypiä) |
생년월일 | 1973년 10월 7일 |
국적 | 핀란드 |
출신지 | 포르보 |
신체 조건 | 193cm |
포지션 | 중앙 수비수 |
유스팀 | 팔로 페이코트 (1980~1989) 쿠무 쿠산코스키 (1990~1991) |
소속팀 | 팔로 페이코트 (1989) 쿠무 쿠산코스키 (1991) 뮐뤼코스켄 팔로 -47 (1992~1995) 빌렘 II (1995~1999) 리버풀 FC (1999~2009) 바이어 04 레버쿠젠 (2009~2011) |
지도자 | 핀란드 축구 국가대표팀 코치 (2011~2012) 바이어 04 레버쿠젠 감독 (2012~2014) 브라이튼 앤 호브 알비온 감독 (2014) FC 취리히 감독 (2015~2016) |
국가대표 | 105경기 5골 |
리버풀 FC 역대 주장 | |||||||||||
제이미 레드냅 (1999~2001) | → | 사미 히피아 (2001~2003) | → | 스티븐 제라드 (2003~2015) |
2001 UEFA BEST 11 | |||||||||||
FW 다비드 트레제게 | FW 티에리 앙리 | ||||||||||
MF 킬리 곤살레스 | MF 지네딘 지단 | MF 파트리크 비에이라 | MF 데이비드 베컴 | ||||||||
DF 비셴테 리사라수 | DF 파트리크 안데르손 | DF 사미 히피아 | DF 코스민 콘트라 | ||||||||
GK 산티아고 카니사레스 |
핀란드의 빙벽
리버풀의 2000년대를 책임진 외국인 주장이자 레전드[2]
비록 리그 우승은 못 했지만 리버풀 소속으로 2000년대의 크고 작은 우승컵들을 들어올리는 복받은 커리어를 보냈다. 큰 키 덕에 헤딩 능력도 절륜하였는데, 대표적인 헤딩골로는 2005년 챔피언스리그 8강에서 유벤투스를 무너뜨린 선제골이 회자된다.그건 헤딩골이 아니고 발로 넣었는데?
2008~09 시즌을 끝으로 리버풀을 떠났다. 이 때 리버풀은 토트넘과의 시즌 최종전에서 제라드를 빼고 그를 투입하여 팬들을 열광케 했다. 홈 팬들도 SAMI라는 카드섹션으로 레전드와의 이별을 맞았으며, 리버풀에서 이 시즌에 잠깐 뛰다 친정팀 토트넘으로 돌아간 토트넘 주장 로비 킨 역시 그에 대한 존중을 표했다.
2012년부터 2014년까지 바이어 04 레버쿠젠의 감독을 맡았으나, 2014년 4월 5일 성적 부진을 이유로 해임되었다. 뭐, 18팀 중 4위가 성적 부진이라고? 4위까지만 UEFA 챔피언스리그 진출을 할 수 있고[3] 5,6,7위는 유로파 리그로 밀려나는데 5, 6위와의 차이가 적어서 챔스 진출권이 위험하긴 했다. 게다가 챔스에서의 성적이 워낙 안좋았다. 단적인 예로 챔스 예선에서 맨유한테 2경기 총합 9:2라는 경악스런 점수차로 관광당했는데 문제는 퍼거슨 시절의 맨유가 아닌 모예스감독의 그 암울한 맨유한테 졌던게 큰 문제. 구사일생으로 16강을 가긴 했으나 이번엔 파리 생제르맹을 만나서 2경기 총 스코어 1:6이라는 졸전 끝에 떨어졌다. 게다가 전술도 매우 단조롭고 별 특징이 없었던것도 원인이라면 원인. 시즌 내내 주구장창 433만 써먹었다. 사미 휘피에의 해임 후 로저 슈미트가 레버쿠젠의 후임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이후 2014년 6월 브라이튼 앤 호브 알비온의 감독으로 임명되었으나 성적 부진으로 도중에 경질되었다.
2015년 8월 스위스 슈퍼 리그의 FC 취리히의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그러나 2016년 5월 12일 취리히가 3경기를 남겨둔 채 꼴찌에 머물자 잘렸다. 결국 취리히는 강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