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미우리 자이언츠 No.85 | |
사이토 마사키 (斎藤 雅樹) | |
생년월일 | 1965년 2월 18일 |
국적 | 일본 |
출신지 | 사이타마 현 |
투타 | 우투우타 |
데뷔 | 1982년 드래프트 1순위 |
포지션 | 투수 |
소속팀 | 요미우리 자이언츠 (1983~2001) |
지도자 경력 | 요미우리 자이언츠 투수코치 (2002~2003 / 2006~2015) 요미우리 자이언츠 2군 감독(2016~) |
1990년 일본프로야구 센트럴리그 MVP | |||||
워렌 크로마티 (요미우리 자이언츠) | → | 사이토 마사키 (요미우리 자이언츠) | → | 사사오카 신지 (히로시마 도요 카프) | |
1989년 일본프로야구 사와무라상 | |||||
오노 유타카 (히로시마 도요 카프) | → | 사이토 마사키 (요미우리 자이언츠) | → | 노모 히데오 (긴테쓰 버팔로즈) | |
1995~1996년 일본프로야구 사와무라상 | |||||
야마모토 마사 (주니치 드래곤즈) | → | 사이토 마사키 (요미우리 자이언츠) | → | 니시구치 후미야 (세이부 라이온즈) |
1 개요
일본프로야구에서 활약했던 前 야구 선수.
쿠와타 마스미, 마키하라 히로미와 함께 80년대 말 ~ 90년대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대표했던 간판 투수였다. 이 셋은 거인의 '세 기둥'(三本柱)이라 불렸다. 위의 둘과 묶이지 않고 단독으로 거명될 때의 별명은 일명 헤이세이의 대 에이스(平成の大エース).
선수생활 말년의 투구 영상.
투구폼은 현역시절 조계현을 보는 듯한 사이드암 스로와 스리쿼터 스로의 경계에 있는 투구폼으로, 일본에서는 사이토를 사이드암 스로로 보고 있다.
2 선수 생활
고등학교 졸업 후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1순위로 입단했다. 투타 양쪽에 모두 재능을 보였던 만큼 타자 전향 가능성도 제기되었지만, 당시 요미우리의 감독이었던 후지타 모토시는 사이토를 투수로 키우기로 결정하고, 투구폼도 사이드암으로 바꾸게 한다. 첫 해에는 2군에서 담금질만 하다가, 오 사다하루가 신임 감독으로 부임한 1984년에 1군에 데뷔했다. 프로 3년차인 1985년부터 12승 8패 7세이브 평균자책점 2.96의 호성적을 기록하며 재능을 과시하지만 이후 로테이션에 정착하지 못하고 불펜과 2군을 오가게 된다.
하지만 1989년, 오 사다하루의 후임으로 6년만에 다시 요미우리의 사령탑을 맡게 된 후지타 모토시는 사이토를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시킨다. 그리고 사이토는 일본프로야구 신기록인 11경기 연속 완투를 기록하는 등 20승 7패 평균자책점 1.62라는 무시무시한 성적으로 사와무라 상을 거머쥐면서 센트럴리그를 대표하는 선발 투수로 거듭나게 되었고, 1990년에는 20승 5패 평균자책점 2.17이라는 호성적을 기록하며 2년 연속으로 다승 1위와 평균자책점 1위를 차지, 센트럴리그 MVP에 올랐다. 1991년에는 11승 11패 평균자책점 3.38로 앞선 2년보다는 못한 성적을 기록했다. 하지만 1992년에는 17승 6패 평균자책점 2.59로 다승왕을 차지하며 반등에 성공한다.
1993년에는 부상 때문에 규정이닝을 간신히 채우는 수준에 그쳤지만 1994년에 14승에 200이닝을 돌파하며 건재함을 과시했고, 1995년에는 18승 10패 평균자책점 2.70에 187개의 탈삼진으로 데뷔 후 첫 탈삼진 1위를 거머쥐며 자신의 두 번째 사와무라 상을 차지했다. 그리고 1996년에도 16승 4패 평균자책점 2.36의 좋은 성적을 기록하며 2년 연속으로 사와무라 상을 차지했다.
하지만 이후 사이토는 내리막길을 타게 되는데, 1997년에는 부진과 부상으로 인해 1989년 이후 처음으로 규정이닝을 채우지 못했다. 1998년에 10승을 거두긴 했지만 이것이 마지막 불꽃이었고, 이후 3년간 10승을 추가하는데 그치며 2001년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한다.
통산 성적은 426경기 113완투 180승 96패 11세이브 평균자책점 2.77. 사와무라상 3회 수상은 가네다 마사이치. 무라야마 미노루, 스기시타 시게루[1]와 타이를 이루는 역대 최다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