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와무라상

각국 프로야구 리그 최우수 투수 수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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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 영 상사와무라 상
2014convention117.jpg파일:Attachment/사와무라상/Example.jpg
트로피. 사진은 2014년 사와무라상 수상자 가네코 치히로.상패. 수상자는 나카가미 히데오.

1 개요

沢村栄治賞

사와무라 에이지 상(賞), 통칭 사와무라상(沢村賞). 전설이자 비운의 투수였던 사와무라 에이지를 기리는 의미에서 이러한 이름이 붙었다.

일본프로야구에서 매년 그 해의 최고 투수에게 수여하는 상이며, 그 대상은 선발투수로 한정된다.

1947년 熱球라는 야구잡지에서 이 상을 처음 제정되었으며, 1956년 제정된 메이저리그사이 영 상보다도 먼저 생긴 상이다. 그러나 1989년까지는 센트럴리그의 투수만 대상으로 했다. 1990년부터 수상의 범위를 퍼시픽리그까지 확대. 아직도 리그별 시상은 하지 않고 양대리그를 통틀어서 최고의 투수를 뽑는다.[1] 1989년까지는 반쪽짜리 최고투수상이었던 셈. 퍼시픽리그 최초의 사와무라상 수상자는 1990년의 노모 히데오였다.

2 상세

1982년 이전까지는 기자투표로 수상자가 선정되었다가, 1982년부터 아래의 7가지 자격 기준이 제정되며 전직 프로야구 투수들로 이루어진 '사와무라상 선정위원회'에 의해 수상자가 뽑히게 되었다. 그 기준은 다음과 같다.

  • 1. 등판 - 25경기 이상
  • 2. 승리 - 15승 이상
  • 3. 완투 - 10경기 이상
  • 4. 승률 - 6할 이상
  • 5. 투구 횟수 - 200이닝 이상
  • 6. 평균자책점 - 2.50 이하
  • 7. 탈삼진 - 150개 이상

하지만 꼭 저 항목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서, 위의 항목을 한두개 만족하지 않더라도 수상자로 뽑히기도 한다. 물론 모든 항목을 충족한다면 수상 확률도 높아진다. 시대가 흐르면서 위의 모든 항목을 만족하기가 쉽지 않아지고 있지만[2], 전 항목을 만족하는 '괴물투수'는 여전히 가끔씩 나오고 있고 82년 사와무라상의 기준이 생긴 이후 7가지 항목을 모두 채운 투수는 총 9명이다. 1982년 기타벳푸 마나부, 1982년 에가와 스구루, 1987년 구와타 마스미, 1989년 사이토 마사키, 1991년 사사오카 신지 1993년의 이마나카 신지, 2007, 2008, 2011년의 다르빗슈 유, 2009년의 와쿠이 히데아키, 2011년 다나카 마사히로, 2013년 가네코 치히로. 보다시피 2번 이상 채운 선수도 없는데 다르빗슈는 혼자 3번이나 채우는 괴물 같은 모습을 보였으나 정작 수상 자체는 2007년 1번에 그쳤다.

반대로 오히려 전 항목을 만족한 선수가 있음에도, 그렇지 못한 선수가 뽑히기도 한다. 더 특이한 사실은, 수상 자격에 걸맞는 선수가 없을 경우 시상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예를 몇 가지 들어보자면,

  • 1988년 - 4개 항목을 채운 오노 유타카(히로시마)가 5개 항목을 채운 마키하라 히로미(요미우리)를 누르고 수상했다.
  • 1990년 - 사이토 마사키(요미우리)는 노모 히데오(긴테츠)와 함께 6개 항목을 채웠음에도 불구하고 "탈삼진 수가 많을수록 사와무라상인 것 같다"는 이유로 노모 히데오가 수상했다. 사이토는 평균 자책점, 승률이 양대 리그 1위임에도 불구하고 노모의 287탈삼진에 밀린 것이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이 해 노모가 신인으로서 일으킨 돌풍이 너무도 대단했기 때문이다. 사이토 마사키는 직전 해 사와무라상 수상자이기도 했고 너무 모범생스럽고 앞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조용한 성격이라 2년 연속 20승을 올리면서[3] 리그를 평정한 요미우리의 에이스였음에도 불구하고 임팩트가 큰 편이 아니었다. 오히려 인기나 임팩트 면에서는 동료인 구와타 마스미, 마키하라 히로미보다 더 떨어질 정도. 게다가 이 해가 퍼시픽리그의 투수에게 사와무라상의 문호를 개방한 첫 해라 아무래도 퍼시픽리그 투수를 뽑는 쪽이 문호를 개방한 취지를 살리는 효과가 있기도 했다. 이러한 점도 사와무라상 수상자 성적에 영향을 미쳤다.
  • 1992년 - 4개 항목을 채운 이시이 다케히로(세이부)가 6개 항목을 채운 노모 히데오(긴테츠)를 누르고 수상했다. 노모는 이 해에도 어김없이 무지막지한 탈삼진을 뽑아내고 탈삼진 양대 리그 1위를 차지했지만... 이시이는 일본시리즈 우승 프리미엄이 있었다.
  • 1994년 - 5개 항목을 채운 야마모토 마사히로(주니치)가 6개 항목을 채운 이라부 히데키(치바 롯데)를 누르고 수상했다. 이라부는 양대 리그 탈삼진 1위를 기록했지만, 야마모토는 이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했다. 당시 선정 위원 중 한 명이 목메달 호시노 센이치. 잠만, 얘 주니치 OB 아냐? 편파판정? 치바롯데는 아직도 사와무라상을 배출하지 못한 구단이다
  • 1996년 - 5개 항목을 채운 사이토 마사키(요미우리)가 6개 항목을 채운 니시구치 후미야(세이부)를 누르고 수상했다. 이 역시 리그 우승 프리미엄이 있었기에 가능한 얘기.
  • 2003년 - 5개 항목을 채운 이가와 게이(한신), 4개 항목을 채운 사이토 가즈미(후쿠오카 다이에)가 6개 항목을 채운 우에하라 코지(요미우리)를 누르고 공동으로 수상했다. 이가와의 한신과 사이토의 다이에는 양 리그 우승팀이었다. 그리고 사이토는 퍼시픽 리그에서 18년만에 나온 20승 투수였고 두 명 다 선발 20승 투수였다. 또한 전무후무한 양대 리그 공동수상[4]이기도 하다.
  • 2008년 - 6개 항목을 채운 이와쿠마 히사시(라쿠텐)가 7개 전 항목을 채운 다르빗슈 유(닛폰햄)를 누르고 수상했다. 이와쿠마는 23년만에 나온 21승 투수였고, 리그 2위인 닛폰햄 소속이었던 다르빗슈와 달리 리그 5위에 그쳤던 라쿠텐에서 21승이나 따내며 팀 승수(65승)의 거의 1/3을 책임졌다.
  • 2013년 - 6개 항목을 채운 다나카 마사히로(라쿠텐)가 7개 전 항목을 채운 가네코 치히로(오릭스)를 누르고 수상했다. 다만 다나카는 NPB 역사에서 전무후무할 24승 0패 투수로, 시즌 내내 연승 행진으로 주목을 받으면서 만장일치로 여유롭게 수상했다.[5] 평균자책점 1.27로 압도적인 리그 1위.

몇몇 예를 보면 알겠지만 단순히 성적을 기계적인 수치로 대입해서 뽑는 게 아니라 해당 시즌에 선수가 보여준 임팩트도 같이 반영됨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4번(1971년, 1980년, 1984년, 2000년)이나 수상자가 없었는데, 리그 사무국이 주관하는 공식 연간 선수상에서 자격미달로 시상을 하지 않는 경우는 전 세계를 통틀어도 유례가 없다.[6] 하지만 2011년 센트럴리그 2루수 베스트나인과 퍼시픽리그 포수 베스트나인을 생각해보면..

최다 수상자는 총 3회를 수상한 가네다 마사이치, 스기시타 시게루, 무라야마 미노루, 사이토 마사키 등 4명이다. 그 중에서도 가네다 마사이치는 1956~1958년 3년 연속 수상했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구단 중에서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한 구단은 치바 롯데 마린즈가 유일하다.

참고로 역대 수상자 중 외국인은 한신 타이거즈 소속이던 진 바키(1964년 수상)가 유일했지만 2016년 히로시마의 크리스 존슨이 수상하면서 2명으로 늘었다..

3 역대 수상자 명단

  • 굵은 글씨는 정규 시즌 리그 1위.
연도투수등판완투승리승률투구 이닝탈삼진평균자책점
1947년벳쇼 다케히코난카이 호크스[7]554730.612448 1/31911.86
1948년나카오 히로시요미우리 자이언츠472527.6923431871.84
1949년후지모토 히데오요미우리 자이언츠392924.7742881371.94
1950년사나다 시게오쇼치쿠 로빈스612839.765395 2/31913.05
1951년스기시타 시게루나고야 드래곤즈581528.683290 1/31472.35
1952년스기시타 시게루나고야 드래곤즈612532.696355 2/31602.33
1953년오토모 다쿠미요미우리 자이언츠432227.818281 1/31731.85
1954년스기시타 시게루주니치 드래곤즈632732.727395 1/32731.39
1955년벳쇼 다케히코요미우리 자이언츠501723.7423121521.33
1956년가네다 마사이치고쿠테쓰 스왈로즈682425.556367 1/33161.74
1957년가네다 마사이치고쿠테쓰 스왈로즈612528.6363533061.63
1958년가네다 마사이치고쿠테쓰 스왈로즈562231.689332 1/33111.30
1959년무라야마 미노루오사카 타이거스541918.643295 1/32941.19
1960년호리모토 리쓰오요미우리 자이언츠692629.617364 2/32102.00
1961년곤도 히로시주니치 드래곤즈693235.648429 1/33101.70
1962년고야마 마사아키한신 타이거스472627.711352 2/32701.66
1963년이토 요시아키요미우리 자이언츠391819.704236 1/31661.90
1964년진 바키한신 타이거스462429.763353 1/32001.89
1965년무라야마 미노루한신 타이거스392625.658307 2/32051.96
1966년무라야마 미노루한신 타이거스382424.727290 1/32071.55
1966년호리우치 쓰네오요미우리 자이언츠331416.8891811171.39
1967년오가와 겐타로[8]주니치 드래곤즈551629.707279 2/31782.51
1968년에나쓰 유타카한신 타이거스492625.6763294012.13
1969년다카하시 가즈미요미우리 자이언츠451922.8152562212.21
1970년히라마쓰 마사지다이요 훼일즈512325.568332 2/31821.95
1971년수상자 없음
1972년호리우치 쓰네오요미우리 자이언츠482626.7433122032.91
1973년다카하시 가즈미요미우리 자이언츠452423.639306 1/32382.21
1974년호시노 센이치주니치 드래곤즈49715.6251881372.87
1975년소토코바 요시로히로시마 도요 카프411720.6062871932.95
1976년이케가야 고지로히로시마 도요 카프511820.571290 1/32073.26
1977년고바야시 시게루요미우리 자이언츠421118.692216 1/31552.92
1978년마쓰오카 히로무야쿠르트 스왈로즈431116.593199 1/31193.75
1979년고바야시 시게루한신 타이거스371722.710273 2/32002.89
1980년수상자 없음
1981년니시모토 다카시요미우리 자이언츠341418.600257 2/31262.58
1982년키타벳푸 마나부히로시마 도요 카프361920.714267 1/31842.43
1983년엔도 가즈히코요코하마 다이요 훼일즈361618.667238 1/31862.87
1984년수상자 없음
1985년고마쓰 다쓰오주니치 드래곤즈331417.680210 1/31722.65
1986년키타벳푸 마나부히로시마 도요 카프301718.8182301232.43
1987년구와타 마스미요미우리 자이언츠281415.714207 2/31512.17
1988년오노 유타카히로시마 도요 카프241413.6501851831.70
1989년사이토 마사키요미우리 자이언츠302120.7412451821.62
1990년노모 히데오긴테쓰 버팔로즈292118.6922352872.91
1991년사사오카 신지히로시마 도요 카프331317.6542402132.44
1992년이시이 다케히로세이부 라이온즈27815.833148 1/31231.94
1993년이마나카 신지주니치 드래곤즈311417.7082492472.20
1994년야마모토 마사히로주니치 드래곤즈291419.7042141483.49
1995년사이토 마사키요미우리 자이언츠281618.6432131872.70
1996년사이토 마사키요미우리 자이언츠25816.8001871582.36
1997년니시구치 후미야세이부 라이온즈321015.750207 2/31923.12
1998년가와사키 겐지로야쿠르트 스왈로즈29917.630204 1/3943.04
1999년우에하라 고지요미우리 자이언츠251220.833197 2/31792.09
2000년수상자 없음
2001년마쓰자카 다이스케세이부 라이온즈331215.500240 1/32143.60
2002년우에하라 고지요미우리 자이언츠26817.7732041822.60
2003년이가와 게이한신 타이거스29820.8002061792.80
2003년사이토 가즈미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26520.8701941602.83
2004년가와카미 겐신주니치 드래곤즈27517.708192 1/31763.32
2005년스기우치 도시야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26818.818196 2/32182.11
2006년사이토 가즈미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26818.7832012051.75
2007년다르빗슈 유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261215.750207 2/32101.82
2008년이와쿠마 히사시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28521.840201 2/31591.87
2009년와쿠이 히데아키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271116.727211 2/31992.30
2010년마에다 겐타히로시마 도요 카프28615.652215 2/31742.21
2011년다나카 마사히로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271419.792226 1/32411.27
2012년셋쓰 다다시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27317.773193 1/31531.91
2013년다나카 마사히로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288241.0002121831.27
2014년가네코 치히로오릭스 버팔로즈264160.7621911991.98
2015년마에다 켄타히로시마 도요 카프29515.625206 1/31752.09
2016년크리스 존슨[9]히로시마 도요 카프26315.6821801412.15

4 관련 항목

  1. 메이저리그는 사이영 상을 리그별로 뽑는다.
  2. 특히 완투 10경기 이상. 선발-중계 분업화가 확대되어가는 현대야구의 추세로 완투형 투수를 보기가 힘들게 되었다. 이 조건이 붙은 이유는 일본에서는 한 경기를 끝까지 책임지는 완투 능력을 이상적인 에이스의 조건으로 보기 때문.
  3. 일본프로야구에서 사이토 마사키 이후로 2014년까지 2년 연속 20승을 거둔 투수는 나오지 않고 있다. 게다가 통산 사와무라 상을 3번이나 수상했고 다승왕 5번에 방어율왕을 3번이나 차지한 대투수이다. 이렇게 대단한 성적을 올린 요미우리의 에이스이면서 이 정도로 눈에 띄지 않고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지 못한 투수도 없다. 이렇게 대단한 성적을 올린 요미우리의 에이스가 올스타전 출전은 고작 6번, 그나마 팬 투표로 선발된 적은 딱 한번이었다. 요미우리의 불가사의 중 하나.
  4. 공동수상은 1966년에도 있었다. 무라야마 미노루(한신)와 호리우치 츠네오 (요미우리). 이 때는 둘 다 센트럴 리그.
  5. 이 해 라쿠텐의 창단 첫 일본시리즈 우승에 크게 기여한 것도 이점으로 작용했다.
  6. 매년 선정하는 상의 경우 경쟁수준이 낮을 경우 종종 수준낮은 수상자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대표적인 사례가 프로야구 2003년 신인왕 이동학 선수이다. 이동학 선수는 신인시절 투수로 27경기 8승 3패 평균자책점 5.35라는 초라한 성적을 기록했지만 당시 경쟁자가 없어서 신인왕에 올랐었다. 사와무라상의 경우에는 그런 성적으로는 상 받을 자격 없다!라고 선정을 거부하는 셈. 더욱이 일본프로야구에서는 같은 이유로 신인왕을 뽑지 않은 전례도 있다. 가장 최근의 일은 2000년 퍼시픽리그. 유례없는 신인 흉작이던 그해 퍼시픽리그에서는 신인왕을 뽑지 않기로 결정했다.
  7. 이 해는 일본프로야구가 양대리그로 분리되기 전이다. 따라서 지금은 퍼시픽 리그 소속인 난카이의 벳쇼가 수상이 가능했다. 즉, 리그가 분리되기 전인 1949년까지는 진정한 최고 투수를 뽑는 상이었던 셈.
  8. 검은 안개 사건에 연루되어 영구제명되었다.
  9. 52년만의 외국인 선수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