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일

士壹
생몰년도 미상

베트남어 표기 : Sĩ Nhất(시 녓)

1 개요

삼국시대의 인물로 사섭의 동생, 사유와 사무의 형, 사광의 아버지.

창오군 광신 사람으로 원래는 군독우를 지내고 있었으며, 자사 정궁의 부름을 받아 경도로 돌아갈 때 은근하고 공경스럽게 모셨기에 정궁은 이별할 때 "내가 만일 삼공의 직책을 맡을 수 있다면 반드시 그대를 부를 것일세."라는 약속을 한다.

그런데 정궁이 진짜로 사도로 임명되어 삼공이 되니 사일을 불렀으며, 사일은 출발했지만 거리가 매우 멀어 오래 걸린 상황에서 도착하자 정궁은 이미 파직된 상황(…)이었다. 대신 사도로 있던 자는 황완이라는 사람이었는데, 다행히도 그는 사일을 매우 예우한다.

그러나 후에 동탁이 정권을 잡자 사일은 황완과 함께 동탁에게 반항적 태도를 취했으며, 노한 동탁은 바로 사일을 파면시키고 사일을 임관하는 자 조차 처벌한다는 포고령을 내리니 사일은 고향으로 도망친다.

그런데 교주자사 주부가 죽으니 사섭은 표를 올려 사일을 합포태수로 임명했으며, 사섭이 손권에게 항복한 후에는 손권이 사섭의 옹개를 회유하는등 그의 충성스러운 태도에 감격하며 사일[1]을 편장군, 도향후로 삼는다. 사일은 그리고 오나라에서 언제나 부족해하는 매 계절마다 총 수백필의 말을 손권에게 보낸다.

그 후 226년에 사섭이 죽은 뒤 일어난 사휘의 반란으로 인해 사휘 등 사섭의 여섯 아들들이 처형당한 뒤 사일도 동생 사위, 아들 사광과 함께 출두한다. 다행히도 아들 사광이 사휘를 항복시키면서 큰 공을 세웠기에 일단은 용서 받고 평민으로 강등되는 것으로 끝났다가 몇 년 뒤에 법을 어겼다며 처형된다.

2 미디어 믹스

삼국지 13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형 사섭이 등장하면 하고 안 하면 안 한다. 다른 사씨 일족에 비해 월등히 많은 기록이 있기 때문에 능력치는 그 중 가장 나은 편.

삼국지 6에는 일러스트가 문관처럼 나오다가 삼국지 7부터 일러스트에 두건 같은 것을 씌워 무장처럼 나오게 되었다.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48/36/67/74/69로 능력치 구린 문관형이지만 이게 사섭을 제외하면 일족 최고의 정치력이다(...)특기는 3개로 치안 특기가 있지만 통솔이 48이라 별 쓸모는 없고 농업특기가 있으니 농업셔틀로 적합하다. 나머지 하나는 명사.
  1. 어째 번역서에는 손일로 되어있지만 사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