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드로 마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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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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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모습)

이름알레산드로 마촐라
(Alessandro Mazzola )
생년월일1942년 11월 11일
국적이탈리아
출신지토리노
포지션포워드, 공격형 미드필더, 윙어
신체조건179cm
소속팀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1960~1977)
국가대표70경기 22골
1971 Ballond'or
수상
요한 크루이프
2위
산드로 마촐라
3위
조지 베스트

1 소개

지아니 리베라에 대한 인테르의 대답

6, 70년대 인터 밀란과 아주리를 대표하는 선수. 그랑데 토리노의 일원이었던 발렌티노 마촐라의 아들로 아버지의 명성에 버금가는, 어쩌면 그 이상의 활약을 펼쳤다. 인터 밀란에서는 주로 인사이드 라이트 포지션에 뛰면서 득점와 플레이메이킹을 담당했다. 테크니션으로, 시야, 패싱, 플레이메이킹, 득점, 드리블에 모두 능했고 지역 라이벌인 AC 밀란 소속의 지아니 리베라와의 격렬한 라이벌 관계로도 유명했다.

2 클럽

태어난지 얼마 안 되어 부모가 이혼했고 거기에 얼마 뒤 아버지였던 발렌티노 마촐라비행기 사고로 명을 달리했다. 그러나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축구에 대한 재능은 구단 관계자들의 이목을 끌기 충분했고 주세페 메아차에게 발견되어 평생을 보내게 될 인터 밀란의 유스팀에 입단한다.

세리에 A 무대 데뷔는 1961년 유벤투스와의 경기였는데 이 경기는 오마르 시보리가 6골을 넣어 인테르가 1-9로 관광당한 경기였다. 1년 뒤 인터 밀란에는 엘레니오 에레라가 신임 감독으로 부임했고 마촐라와 인터 밀란의 전성기가 도래했다. '위대한 인테르'라 불리는 이 시기의 인터 밀란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트로피를 수집했으며 팀 역사상 최고의 황금기를 보냈다. 1962-63 시즌 마촐라는 인테르에서 첫번째 리그 타이틀을 들어올렸고 국가대표팀에도 승선했다.

그 다음 시즌인 1963-64 시즌에는 유러피언컵에서 7골을 넣으며 페렌츠 푸스카스, 블라디카 코바체비치와 함께 득점왕을 수상했고 결승전에서는 멀티골을 기록하며 레알 마드리드를 박살내버렸다. 인테르는 1964-65 시즌 리그와 유러피언컵을 모두 들어올렸고 마촐라는 리그에서 득점왕을 차지했다.

1966-67 시즌 인테르는 다시 한 번 유러피언 컵 우승에 도전했으나 셀틱에게 슈팅 폭격을 맞으며 실패했다. 물론 이 패배로 마촐라와 인테르의 활약에 끝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마촐라는 국가대표팀에서 비상했고 1971년에는 발롱도르 2위에 오르기도 했다. 1970년부터 마리오 코르소의 뒤를 이어 주장직을 수행한 마촐라는 1977년 그 자리를 자친토 파케티에게 물려주고 은퇴했다. 565경기 출장 160골이라는 기록을 남긴 채.[1]

3 국가대표

1963년부터 1974년까지 70경기 22골을 기록했다. 메이저 대회로는 66년 월드컵, 유로 1968, 70년 월드컵, 74년 월드컵에 참가했다.

1963년 브라질을 상대로 데뷔했으며, 데뷔전에서 PK로 데뷔골까지 뽑아냈다. 3번째 A매치 경기는 소련전이었는데, 여기서 레프 야신의 그 유명한 PK 선방 장면의 키커가 바로 마촐라였다.

1966년 월드컵에는 조별리그 3경기 모두 출전했으나 북한전에서 박두익에게 일격을 당하며 충격적으로 탈락했다. 유로 1968에서는 첫 경기였던 소련전에서 연장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승부가 나지 않았고 운 좋게 코인 토스에서 승리하며 결승전에 진출했다.[2] 결승전에서는 재경기에 출전해[3] 2-0으로 승리하는데 기여했고 이탈리아 역사상 처음으로 유로 대회에서 우승했다. 마촐라는 이 대회에서 베스트 XI에 이름을 올렸다.

1970년 월드컵 마촐라는 주전 자리를 놓고 지아니 리베라와 경쟁해야 했다. 60년대 중반에는 유럽을 휩쓸던 마촐라가 국가대표팀에서 좀 더 우위에 있었으나 1969년 리베라가 밀란을 유럽 최정상의 자리에 올려놓고 발롱도르까지 수상하자 이탈리아 대표팀의 페루치오 발카레지 감독은 둘을 활용하기 위해 머리를 싸맸다. 1970년 대회의 큰 특징은 선수 교체 제도가 도입되었다는 것이었고, 발카레지 감독은 이를 이용했다. 이에 등장한 것이 '스타페타' 전술.[4] 이 전술에 의해 월드컵에서 마촐라는 전반전을, 리베라는 후반전과 연장전 돌입 시 연장전을 책임졌다.

마촐라나 리베라나 45분은 그들이 무언가를 하기에는 부족한 시간이었고 이 전술은 마촐라가 결승전 막판까지 뛰며 붕괴되었다. 팀은 결승전에서 브라질에게 1-4로 패배하며 준우승을 기록했다. 1974년 월드컵에도 마촐라와 리베라는 시간을 양분했으나 골득실에 밀려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마촐라는 이 대회가 끝나고 국가대표팀에서 은퇴했다.

4 은퇴 이후

은퇴 이후로는 친정팀인 인테르를 비롯해 제노아, 토리노 등 여러 팀의 단장직에 있었다. 해설자로도 활동 중이다.
  1. 출장, 득점 모두 인테르 역대 4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2. 이 당시에는 승부차기 제도가 없었다.
  3. 결승전에서 연장전까지 1-1로 승부가 나지 않자 이틀 뒤 재경기를 치뤘다.
  4. 이탈리아어로 교체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