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越
후한 말기와 삼국시대의 사서에 등장하는 민족. 백월(百越)의 한 갈래인 민월(閩越)[1] 중에서 산 속에 숨은 사람들이 형성했다.
복건·절강·안휘·강서의 경계 지역에 출연해 주로 안휘성의 단양에서 활동했고 한족도 산월에 섞여 이러한 자들은 산월적(山越賊)이라고 불렀으며, 종부라는 군사 집단을 만들어 후한이나 오나라에 저항한 자들을 산월이라고 부르는 등 산적과 산월의 경계가 애매하다.
후한 말에 169년 9월에 산월이 단양태수 진인을 포위하자 격파했다는 기록도 있으며, 강동의 손씨가 강동에 자리잡으면서 이 지역의 지배권을 확보하려는 오나라와 열심히 싸움을 벌였지만 대체로 '토벌을 당하는' 쪽으로 오나라는 산월을 골치거리로 여기고 있었던 걸로 보아 상당한 피해를 주기는 했던 것으로 보인다.
반림(潘臨)이라는 자가 회계군에서 반란을 일으켰으나 손권에게 토벌되었고 216년에는 단양의 산월인 비잔·우돌 등이 조조로부터 인수를 받아 반란을 일으켰으나 육손 등에게 토벌되었으며, 234년에 제갈각은 산월을 대대적으로 토벌했다. 242년에는 건안·진양·신도군의 황란 등의 산월이 또 들고 일어났으나 토벌되었다.
그 외에 황개 등 여러 장수의 기록에서 산월 토벌의 기사를 발견할 수 있으며, 이렇게 지속적으로 토벌된 산월족은 오나라에 붙잡혀 와서 호족들에게 편입되어 세병제에 묶인 병사가 되면서 서서히 농민이 되어 대부분 한족에 동화되었으며, 수·당 때까지도 일부 등장하고 현대에도 소수 민족으로 남아있다.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가끔 독립된 거점을 가진 이민족으로 등장한다.- ↑ 월나라의 후예 국가로 진나라 시기에 잠깐 중국에 복속되었지만 초·한 쟁패기에 다시 독립했다가, 한무제 때 한나라에 복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