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휘어진 야타간식 총검이 독특하다.
길이 : 1.31m(착검하지 않았을 때) 무게 : 4.635kg 구경 : 11mm 발사속도 : 분당 8~15발 최대사거리 : 1,100 ~ 1,200m |
Chassepot. 프랑스가 1866년에 개발하여 그 다음해부터 자국군에 보급하기 시작한 볼트액션 단발소총. 샤스포는 이 소총을 개발한 기술자[1]의 이름에서 따온 명칭이며, 프랑스군의 제식명칭은 Fusil Modele 1866(1866식 소총)이다. 생산 담당은 훗날 FA-MAS를 만들어낸 생테티엔 조병창.
이 소총이 채택된 데에는 보오전쟁당시 쾨니히스그레츠전투[2]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성능 자체는 당시 유럽에서 흔히 쓰이던 소총들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다만, 개발 당시 먼저 나온 프로이센의 드라이제를 참고하여 드라이제의 문제점을 대부분 개선했기에 드라이제 보다 우수한 소총이었다. 그리고 당시 총검들의 추세에 맞게, 전체길이 70cm를 넘어가는 야타간식 총검이 그야말로 물건.
같은 시기에 배치된 신무기 미트라예즈[3] 역시 평가가 좋았던지라, 이 둘은 수뇌부의 큰 기대를 받았었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듯 첫 투입된 멘타나전투에서 가리발디가 이끄는 의용군에게 심각한 타격을 주었다. 프랑스 의회에 제출된 보고서에서는 "경이로운 무기"라는 후한 평가를 받았다.
또한 1870년에 터진 보불전쟁에서, 샤스포는 분명 드라이제를 압도하였다. 그러나...프로이센군은 소총보다는 포에 집중 투자를 하였고, 이에 따라 총 자체는 문제가 없었으나 상대가 포를 들고 오니 프랑스군이라도 GG를 칠 수 밖에 없었다.근데 사실 포도 프랑스가 더 우수했다. 그저 안습 ㅜㅜ그리고 훈련도가 낮은 병사들이 지휘관들의 명령이 떨어지기도 전에 발포하여서 명중율이 낮은 것도 패배에 단단히 한몫했다.
보불전쟁 이후에도 한동안 프랑스군의 제식 소총으로 쓰이다가, 1874년부터 금속탄피를 사용하는 그라스 소총으로 대체되었다. 이 때 일부 샤스포 소총도 금속탄피를 사용할 수 있게 개조되었다고 한다.
엉뚱하게도 일본에서도 사용 기록이 남아있다. 당시 프랑스와 교류를 하면서 프랑스식으로 군대를 개편하고 있던 도쿠가와 막부와 친하게 지내고 싶었던 나폴레옹 3세의 의향으로 2,000정의 초도 생산분이 일본에게 공짜로 지원된 전적이 있다.[4] 당시 세계 제일의 소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기 때문에 신정부측이 상당히 긴장했고, 프랑스 장교단이 직접 훈련시키던 막부 전습대(傳習隊)가 장비하는 등 나름대로 성공의 가망성이 보였지만, 정작 무진전쟁에서는 단 한자루도 쓰지 않았다고 한다.[5] 이유는 총은 도착했지만 최신 교범이 아직 발간되지 않아서 훈련과 실전은 전장식 라이플로 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총 자체는 나쁘지 않은데, 보불전쟁패전으로 인해 빛을 발하지 못하고 침몰한 비운의 무기.
- ↑ 앙투안 알퐁스 샤스포(Antoine Alphonse Chassepot)
- ↑ 물론 프로이센이 이 전투에서 승리한 이유는 무기의 우수성 보다는 오스트리아 군 장교들 간의 반목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 ↑ 일종의 기관총. 다만 다연발 총신에 다연발 총알을 카트리지로 끼워서, 전탄발사와 연속발사를 선택할 수 있는 특이한 물건.
- ↑ 사실 속내는 막부가 이후 창설할 것으로 생각했던 신생 일본국군의 수요로 추정되는 7만여정을 샤스포로 채우게 될 계기가 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어딜가나 그렇지만 사실 세상에 진정한 공짜는 없다.
- ↑ 일본 내에서도 오해가 많아서, 전습대가 샤스포를 실전에 사용했다고 알려진 경우가 많았다. 이 샤스포는 막부가 항복한 이후 고스란히 신정부가 노획했고, 신정부는 신생 일본군의 주력 소총으로 채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