徐璆
생몰년도 미상
후한 말의 인물. 자는 맹옥(孟玉) 또는 맹평(孟平).
광릉군 해서 사람으로 젊어서 품행이 청아하고 시원스러운면서 박학해 삼공부의 부름을 받아 고제에 천거되어 형주자사에 임명되었으며, 당시 동태후의 언니의 아들인 장충이 남양태수로 있으면서 권세를 이용해 제멋대로 뇌물을 받았고 서구가 부임할 때 동태후가 중상시를 사자로 세워 장충을 봐주도록 했지만 서구는 이를 거절했다.
이로 인해 동태후가 장충이 서구를 감찰할 수 있게 사례교위로 임명했는데, 서구는 주에 부임하면서 장충이 받은 뇌물 1억전을 받은 것을 적발해 그 악행을 폭로하고 다섯 군의 태수 및 속현 중에 비리를 저지른 자들을 불러 죄상을 모두 밝히고 탄핵하기 위해 상주했다.
조정에 들어서는 엄숙했고 임성태수를 역임해 교화를 행했으며, 184년에 황건적의 난이 일어나자 주준과 함께 완성에서 황건적을 공격해 한충 등을 격파했지만 장충이 서구에게 원한을 품고 죄를 꾸며내면서 탄핵되었다. 서구는 적을 무찌르는 공적으로 인해 벌을 받는 것은 면제되고 관직에서 물러나 집으로 돌아갔으며, 이후 징소되어 여남태수로 승진하자 이 때 허소를 공조로 두었고 주준을 맹주로 해서 도겸, 공융과 연합을 맺었던 적도 있다.
동해국의 상으로 옮겨 여러 곳에서 교화를 했으며, 조조가 헌제를 맞아들이고 수도를 허현으로 옮기자 정위로 징소되어 가던 도중에 원술에게 붙잡혔다. 원술이 상공의 작위를 내리려 하자 이를 거부했고 원술이 죽고 병력이 흩어지자 서구는 원술이 훔쳐낸 옥새를 손에 넣어 이를 반납하고 예전에 받은 여남, 동해의 인수도 반납했다.
서구는 위위, 태상 등을 역임했고 조조가 승상으로 임명될 때 이를 서구에게 양보하려고 하자 서구는 거절했으며, 조조가 승상에 임명될 때 서구가 인수를 줬고 서구는 관직을 지내다가 사망했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원윤이 원술의 시체와 함께 옥새를 들고 도망치려고 하는 것을 알고 원윤을 죽인 후에 조조에게 옥새를 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