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준

1 후한 말의 인물

朱儁[1]
(? ~ 195)

후한 말기의 대신. 는 공위(公偉).

1.1 정사

회계 출신으로 의를 좋아하고 재산을 가볍게 여기면서 학문을 좋아했고 고향에서는 주준을 존경했는데, 같은 군의 주규가 공부의 부름을 받고 출발할 때 군고의 돈 백만 냥을 빌려 관을 갖췄다. 빚으로 인해 주규의 집이 가난하자 몰래 어머니의 비단을 빼돌려 그 빚을 갚아주고 어머니가 생업을 잃자 주준의 행동을 깊이 원망하자 지금은 작은 손해를 봐도 앞으로 큰 이득이 올 것이라 했다.

도상이 이를 보고 보통 인물이 아니라 생각해 위의에게 추천했으며, 군의 공조가 되었다가 후에 윤단이 주준을 주부에 임명했다. 173년에 회계태수 윤단이 허소를 토벌했지만 전과를 올리지 못해 주에 상주되어 처형당하게 되자 남몰래 낙양에 가서 법을 관장하는 관리에게 뇌물을 주어 윤단의 처형을 면하게 해서 주가 올린 상주의 오류를 바로잡아 유배에 그치게 했으며, 이 일을 누구에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주준은 정치에 재능을 발휘해 동해국상에게 공적을 표창받았으며, 178년에 교지에서 양룡이 남해태수 공지와 함께 반란을 일으키자 병사 5천을 이끌고 1개월 만에 평정했고 그 공으로 도정후에 봉해지고 간의대부가 되었다. 184년에 황건적의 난이 일어나자 공경들이 재략이 있다면서 추천해 우중랑장에 임명되어 황보숭, 노식 등과 함께 황건적에 토벌에 나섰으며, 손견을 좌군사마로 추천해 함께 토벌에 참여하게 했다.

처음엔 황건적 장수인 파재가 이끄는 군사에게 패했지만 황보숭, 조조 등과 군사를 합해 이를 격파했고 이후 여남, 진국의 황건적을 토벌했으며, 완성을 점거한 조홍을 공격해 죽이고 한충이 항복을 청하자 이를 거부하고 일부러 포위를 풀어서 틈을 만들게 한 뒤에 한충이 나오자 공격해서 격파했다. 황건적을 토벌한 공으로 우거기장군, 광록대부에 임명되고 식읍 5천 호를 받으면서 전당후에 봉해졌으며, 모친상으로 인해 관직을 떠났다가 다시 임관해 장작대장, 소부, 태복으로 자리를 옮겼다.

하내태수가 되어 낙양으로 내려오는 흑산적을 격파해 병주로 내쫓은 공으로 다시 광록대부에 임명되고 성문교위, 하남윤에 임명되었으며, 동탁이 자신에게 겉으로 친한 척 하면서 마음 속으로 질투하는 것을 알고 이를 대비했다. 조조, 원소 등이 연합해 동탁을 공격할 때 동탁이 도읍을 옮기는 문제에 대해 의논하자 번번히 나서서 이를 제지했다.

동탁은 그의 명성을 중하게 여겨 이를 탐냈기 때문에 죽이지 않았으며, 동탁이 표를 올려 태복으로 삼아 자신을 보좌하게 하려고 하자 이를 받지 않고 도읍을 옮기는 문제에 대한 강한 반대를 했다. 동탁은 천도할 때 주준을 부상국으로 삼아 데려가려 했지만 주준이 이를 사양하자 낙양을 지키게 하고 자신은 장안으로 떠났는데, 주준은 조조, 원소 등과 내응해 약속했지만 동탁이 습격할 것을 두려워해 형주로 달아났다.

형주에서 군사를 모아 다시 동탁이 임명한 하남윤을 달아나게 하고 낙양을 점거했는데, 낙양이 이미 황폐화되었기 때문에 중모현으로 근거지를 옮겨 도겸, 공융 등과 연합했다가 이각, 곽사 등의 반격을 받아 패한다. 주준은 중모에 있다가 192년에 동탁이 죽자 도겸 등은 주준을 맹주로 세워 이각을 격파하고 헌제를 데려오려 했지만 마침 이각이 주준에게 관직을 내리고 불러서 조정으로 돌아올 것을 권하자 이를 따라서 장안으로 갔다. 주준이 스스로 이각, 곽사의 밑으로 들어간 이유를 기록에서는 조정이 혼란한 틈을 타 뜻을 이루고자 할 계획이었다고 적고 있는데, 아마 주준이 생각하기로는 군부에서 자신이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으로 짬이 높았던 만큼 이각, 곽사는 애송이로 보였을테고 그래서 자신의 역량으로 이각, 곽사를 통제할 수 있었을 것이라 본 것 같다.

주준은 조정에 가서 태복이 되었고 주준의 판단과는 달리 이각, 곽사는 전혀 주준에게 통제되지 않았으며, 방약무인으로 날뛰었으므로 이는 오판이었음이 드러난다. 193년에 태위, 녹상서사가 되었다가 194년에 일식으로 파면되고 이후 이각과 곽사가 서로 싸워 장안 일대의 치안이 막장이 될 때 주준은 헌제를 따라 동쪽으로 가지 않고 머물러 대사농이 되었다.

헌제는 주준과 사손서, 양표를 곽사에게 보내 싸움을 말렸는데, 곽사는 오히려 이들을 인질로 잡고 곽사의 이런 막장짓은 주위에서 말리는 말이 많았던지라 주준은 곧 풀려났지만 노여움과 수치심으로 병을 얻어서 죽었다.

1.2 연의

삼국지연의에서는 황건적의 난 때 유비를 만나 앞으로 주요 등장 인물이 될 손견을 소개시키고 같이 황건적을 크게 무찌르고 그 공을 표에 적어 올리는 등 명장이자 의리 있는 충신으로 나온다. 그러나 십상시와 동탁에게 견제되어 일찍 리타이어되기 때문에 인상이 옅으며 동탁 사후에는 이각과 곽사를 분열시킨다. 그 후 이들을 말리러 사자로 갔다가 인질로 잡혀 풀려난 후 분노와 수치심으로 그대로 분사한다.

1.3 미디어 믹스

그런데 요코야마 미츠테루 삼국지 등에서는[2] 공을 탐내는 전형적인 부패한 신하로 그려지는데 이처럼 정사와는 아주 다르게 묘사되었다. 특히 의용군에 불과한 유비를 인정하고 대우해줬던 삼국지연의와 달리 여기서는 처음에는 무시하다가 병력이 딸리자 자기 공을 위해서 철저히 이용하고 버리는 등 찌질이 내지 인간말종으로 묘사된다. 대체 뭐가 밉보였는지 알 수 없으나, 정사 기준으로 보면 명백한 고인드립인 셈이다.[3][4] 특히 자신들을 상대도 안해주고 막사로 들어간 주준을 보며 장비가 화를 내며 고함을 지르자 거기 놀라는 안습한 모습까지 보인다. 어디에도 강직한 노장의 이미지는 찾아볼 수가 없다. 황보숭이나 노식이 나름대로 대우 받는 것에 비하면 눈물이 날 정도로 푸대접을 받는데 이상하게도 이 시대의 여러 작품들에선 모두 주준이 이런 모습으로 등장한다. 오히려 의용군을 철저히 무시하는 모습을 보면 황보숭, 노식이 아니라 동탁과 비슷한 이미지로 그려진다.

마사토끼의 삼국지 가후전에서도 요코야마 삼국지의 영향인지 부정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직접적으로 등장하진 않지만 십상시들은 주준을 '우리를 잘 따르는 간사한 소인배'라고 하며, 가후의 스승으로 재창작된 염충은 주준을 눈치는 빠르지만 제 몸 지키기밖에 모르는 개밥그릇이라고 평한다. 달리 말하자면 십상시들은 개라는 것이다.

삼국지 12,13

내가 고자라니!!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초반에는 황보숭을 압도하는 능력치를 달고 나온다. 후반으로 가면 황보숭보다 통솔력이 약간 낮지만 나머지 능력치는 황보숭보다 높다.

삼국지 3에서는 오타 때문인지 주준이 아니라 주전이라는 이름을 달고 등장한다. 육전지휘 78과 매력 80을 달고 등장하지만 나머지 능력치들은 죄다 별볼일 없다. 그래도 육전지휘 63밖에 안 되는 황보숭보다는 상황이 나아서 장군은 될 수 있다. 조무와 더불어 매력치가 쓸데없이 높은 장군이기에 태수를 시켜주면 좋아한다.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81/40/72/77로 나쁘지는 않지만 좋다고 하기도 좀 아쉬운 능력으로 나온다. 분전, 제사, 덫을 가지고 있다.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84/62/73/70/78에 특기는 6개. 무력이 낮고 설전특기가 없긴 하지만 기본지력이 70대에 일단 명사 특기가 있으니 도적은 어떻게든 상대할 수 있고 징병 특기는 유용하다. 통솔수치에 비해 보유특기가 적어서 전장에선 약간 아쉬움이 있다.

삼국지 11에서는 능력치들이 상향된 무력, 정치빼고 78/65/70/71/73으로 너프되고, 병과적성은 S가 없고 극, 노, 병기만 A이다. 게다가 특기는 화공이라 고증을 살렸지만 특기의 효율성 때문에 그다지 영 좋지 않다. 그나마 나름대로 굴려갈수가 있다.

삼국지 12에서는 병종이 궁병에 통솔이 89으로 상향되고, 특기는 병심, 변설뿐이지만 전법은 전공성강화이라 백 도어용으로 쓸만하고 통솔 89의 궁병은 아주 좋은 측에 속해서 나름대로 쓸만하다.

삼국지 13에서의 능력치는 84/66/70/71. 전작에 비해 조금 너프되긴 했으나 황건의 난 시나리오로 플레이시 +3 관직 보정을 받아 통솔은 87, 무력은 69까지 올라간다. 궁병 적성이 A급이고 전법도 '제사지휘'라 궁병으로 쓰면 좋은 편이다. 중신특성은 병참관리로 상당히 좋은 특성이기는 하나 주준의 정치력이 낮은 게 흠. 태수나 도독이라면 상관 없기는 하다.

삼국전투기에선 황건의 난과 동시에 짤린 줄 알았으나 에필로그에서 황건의 난을 다뤄주면서 막판에 가서야 등장했다. 황건적 토벌의 공신 3인이 모두 삼대장으로 패러디 되었고 주준은 그 중 볼사리노로 등장한다. 생김새가 생김새인지라 먼저 등장한 유순이랑 매우 닮았다

2 삼국시대 위나라와 서진의 인물

周浚
(? ~ 289)

자는 개림(開林).

여남 안성 사람으로 젊어서 재주와 명성이 있었고 처음에는 위나라에서 벼슬을 했으며, 진나라가 건국되자 진나라에 출사했고 279년에 시작된 오 정벌 때 왕혼의 부장으로 참전해 왕혼과 함께 우저를 공격했다. 오군에서 장제손진이 수 만을 이끌고 성양을 공격하려고 하자 왕혼의 지시로 손주와 함께 장제와 대치하다가 오군을 격파하고 7800명의 수급을 얻었다.

장제가 전사한 후에 하운으로부터 왕준이 계속해서 승리를 거두고 있으니 오나라가 와해될 것이라면서 곧바로 건업에 갈 것이라 충고하자 주준은 이 계책을 높이 평가하면서 왕혼에게 직접 이야기하도록 했는데, 하운은 왕혼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 했고 그 말대로 왕혼은 그 계책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 정벌 때의 공적으로 성무후(成武侯)에 봉해졌으며, 육운을 불러 종사로 삼았고 어사중승에서 지방으로 나아가 양주자사로 옮겼다. 281년에 말릉으로 이동해 오 지역 백성들 가운데 항복하지 않은 자들이 여러번 노략질을 하고 반란을 일으키자 주준이 이를 토벌해 평정하고서 빈객에 대한 예의로써 옛 원로들을 대우하고 우수한 인재를 찾아내 위엄과 은혜로 시행하자 오 지역 사람들이 기뻐해 복종했다.

그의 아들로는 서진에서 사마비의 장사를 지냈다가 동진에서 상서좌복사를 지낸 주의(周顗)가 있으며, 그의 사촌동생으로는 수하남윤을 지낸 주복(周馥)이 있다.

2.1 미디어 믹스

zhoujun.jpg
삼국지 9 일러스트
코에이삼국지 시리즈에서는 삼국지 9에 등장한다. 능력치는 70/62/57/52. 제사, 누선을 가지고 있다.
  1. 1980년대까지 국내 번역된 삼국지연의에는 儁의 오독으로 인해 이름이 주전으로 틀리게 표기된 판본들이 많아서 나이드신 분들은 아직도 주전으로 알고 있는 분들도 있다.
  2. 사실상의 원작인 요시카와 에이지 삼국지의 영향일 지도 모른다.
  3. 국내 발매된 삼국지에서도 상당수 이런 모습으로 나온다. 그나마 이각, 곽사에게 핍박 당하는 헌제를 지키며 최후까지 조정에 충성을 하는 충신 이미지는 지켜진다.
  4. 그래도 판본에 따라선 연의에서 그랬던 것처럼 황건적 토벌 후 거기장군에 봉해질 때 영제에게 유비와 손견의 공이 크다고 상주하는 등 의로운 모습을 보일 때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