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총

釋聰
? ~ 911[1]

1 생애

신라 말기의 승려. 미륵불을 자칭한 태봉국왕 궁예가 비구 200여 명에게 석가를 찬미하는 노래인 범패를 부르면서 자신의 뒤를 따르게 하고 스스로 경전 20권을 짓자 석총은 강설에서 궁예에게 그 경전들이 사악하고 괴이한 말로써 백성들에게 교훈이 될 수 없다고 간언했으며, 그에 분노한 궁예는 그를 철퇴로 때려 죽였다.

2 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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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부터 2002년까지 방영된 전 KBS 대하드라마 태조 왕건에서는 배우 신충식이 이 승려를 연기했으며, 궁예 역의 배우 김영철과 연기 대결을 벌였다. 이 거짓 미륵아! 너는 가짜야! 너는 미륵이 아니야![2]

불의를 참지 못하며, 직언을 날리는데 몸을 사리지 않는 인물이다. 가령 절에서 승려들이 궁예의 경전들을 외우자 그 경전들을 다 불태우라고 할 정도. 좋게 말하면 강직한거고 나쁘게 말하면 빨리 죽을 캐릭터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

첫등장은 63회에서 한다. 왕건과 먼저 혼약을 맺었지만, 나주공략 성공 이후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왕건이 나주의 호족 오다련의 딸과 먼저 혼인하자, 절망한 부용[3]은 강에 빠져 죽으려 하는데, 우연히 그곳을 지나가던 석총이 그녀를 발견하고는 설득하여 자살을 막는다. 그리고는 정 응어리를 풀지 못하겠다면 불교에 귀의하라고 말하는데, 물론 속세를 완전히 저버리는 건 쉬운 일이 아닌 관계로 석총도 계속 생각해보고 그때까지도 계속 그렇다면 비구니가 되라며 성급히 결정하지 않도록 한다. 그러나 워낙 마음의 상처가 컸던지라 기꺼히 비구니가 되었고, 번뇌를 잊기 위해 매일같이 3천배를 한다. 부용이 속세의 인연을 완전히 저버러지 않자 석총과 허월은 왕건에게 이 사실을 알려준다.

허월과는 친구이며, 서로를 땡초라고 부를 정도로 친분이 깊다. 64회에 허월이 절에 놀러왔을때 허월 한테 대놓고 궁예가 미륵이 아니라고 비판을 해댄다. 사실 이 쯤 궁예는 대동방국 건설이라는 망상에 사로잡혀 백성들과 호족들에게 희생을 강요하며 철원에 황궁을 새로 짓고 있던 만큼(그 것도 나주 전투 등으로 인해 군비 지출도 많은 상황에서), 석총이 궁예에게 실망한건 당연한 것이었다. 이후 궁예가 법회에서 석가모니가 미륵을 훔친 도둑이라는 망언을 하자 피꺼솟한 석총은 자리에서 일어나 따질려고 했으나, 허월이 말린다(66화).

궁예가 독화살에 맞고 정신병이 생긴 후, 국가 상황이 영 아님에도 화려한 법회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석총은 미륵의 상징인 간자를 챙겨서 허월과 함께, 당시 충주 전선에 있던 왕건을 찾아간다. 이전부터 왕건의 재목을 눈여겨보던 석총은(물론 허월역시 왕건의 재목을 알아보고 있었다), 왕건을 참 미륵이라며 간자를 선물로 준다. 물론 왕건은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 대단한 충신인 관계로, 그 간자를 '국가에 충성을 바치고, 백성들을 구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인다(82화).

이후 궁예의 법회에 참석하고선 궁예 면전 앞에서 대놓고 "폐하는 미륵이 아니시옵니다." "먼저 인간이 되시옵소서"등 직언을 날린다. 피꺼솟한 궁예는 석총을 마구니라고 칭하며 "저놈의 입을 철퇴로 으깨어 주어라" 라는 명을 내리는데, 명령을 받은 내군부장 염상이 망설이는지라 결국 금대 부장이 석총을 때려죽인다. 이때 석총은 곧 새로운 미륵이 나타나 거짓된 미륵을 몰아낼 것이라고 저주를 퍼부으며 죽는다. 그리고 그 제자들 역시 군사들에게 붙잡혀 산 채로 땅에 파묻혀버리라고 지시한다.

이후 수년이 지나 궁예의 병이 더욱 깊어지면서, 급기야 궁예는 석총이 자신을 비웃는 환영을 보기 시작한다. 이 때문에 환관 한명도 죽였고, 수 많은 아녀자들도 철퇴로 때려죽인다. 석총이 죽을 때만해도 종종 가슴에 통증이 오긴 했지만 그래도 술을 조금만 마셔도 고통이 가셨는데, 시간이 지나자 폭음을 하여도 통증이 가시지 않는데다, 술에 쩔게 되면서 수전증까지 생기게 된다. 이 때 궁예는 자신이 과연 북벌을 할 수 있을까, 제국을 통치할 수 있을까 걱정하기 시작했는데, 이 시점에서 부터 석총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정신병+병으로 인한 정신의 약해짐+미래에 대한 걱정 등이 겹쳐서 환영이 보이는것 같다.

아지태가 처형당하고 나서 부터 궁예는 석총 뿐만 아니라 아지태 까지 환영으로 보이는 이중고를 겪는다. 정확히는 석총이 궁예를 비웃는 환영과, 아지태가 처형당하기 직전의 발언들이 계속해서 보이는 것. 그나마 아지태가 처형당할때 쯤에 찾아온 백두산 도인이 지어올린 탕약을 마신 후, 악몽에서 아지태와 석총을 본 이후로 더 이상 석총의 환영은 보이지 않게 된다.

하여간 이 사건은 내원에게도 손실을 안겨다 주었는데, 내군부장 염상이 병부로 전출된 것과, 박유가 도인을 찾는 임무를 받고선 잠적해버린 것이었다. 염상은 철원의 실상을 알고서부터는 궁예를 위해 더러운일을 하는 것에 대해 회의감을 가지고 있었고, 그러다 석총을 때려죽이는걸 간접적으로 거부하였다. 말그대로 주인의 말만 듣는 개가 되어야할 내군부장이 저러니 결국 은부가 염상을 내군에서 내보낸 것이었다. 또한 궁예의 병을 고칠수도 없으며, 정치판을 올바르게 바로잡을수도 없다고 생각한 박유는 도인을 찾는 임무를 받고 떠나고선 그대로 잠적해버린다. 박유는 궁예의 조언가 역할을 해왔던 만큼, 박유의 잠적은 종간으로선 뼈아픈 손실이었다.

석총의 제자들은 이 때 모조리 생매장 당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아지태 처형후 강장자에 관련하여 다시 국문을 열었을 때 다시 잡혀와 고문당한다. 알고보니 당시 옥졸들이 자비를 베풀어 몰래 풀려났던 것. 물론 이 들도 강장자가 처형될때 궁예가 이들을 '까마귀 밥이 되게 해라'라고 하면서 이번엔 진짜로 끔살당하고 말았다.

한창 이 드라마가 유행할 때 플래시가 되었는데, 하필이면 석총이 죽기 직전인 장면이 패러디되었다. 어설픈 궁예.
  1. 동국통감 권 11권 신라기 참조.
  2. 다만 처음부터 궁예를 부정한 것은 아니고 권력을 얻은 뒤로 독선적으로 변해가는 궁예를 질타한 것에 가깝다. 왕건과의 대화에서도 궁예를 언급하며 그가 한 때는 미륵이었으나 스스로 그 자리에서 내려왔다고 평한 것에서 알 수 있다. 석총은 궁예가 초창기의 모습으로 돌아오기를 바랐기에 그를 거짓 미륵이라 질타한 것이다.
  3. 왕건의 첫째 부인으로, 부용이라는 이름은 작중의 창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