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대하드라마

1 개요

드라마가 그저 흘러가는 물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밀물과 썰물, 폭풍 전야, 폭풍이 휘몰아치는 위험한 바다와 같은 긴장감과 역동성이 필요하다.

- 이환경[1]

한국 사극계의 마스터피스.

KBS 1TV에서 주말 밤 9시 40분에 방송되는 사극. 2008년 ~ 2009년에 KBS 2TV로 옮겨졌다가 2010년에 원래 채널로 환원되었다. 정치, 전쟁 등이 주요 소재인 만큼 남성시청률이 매우 높다. 보통 KBS 뉴스 9 이후에 방송한다. KBS 연기대상을 10번이나 배출했을 만큼 연말 시상식에서 강세를 보여온 드라마이다.[2]

재방송을 제외하면 초창기에 먼동까지는 주 1회 편성이었다가 김구를 계기로 대하드라마가 부활하면서 주 2회 편성으로 정착되었다. 무인시대 방영 당시에는 시간대가 꽤 앞뒤로 오락가락하는 편이었는데 개그 콘서트봉숭아 학당까지 완전히 끝나고 나서 이어 보기가 가능했다. 무인시대 종영 후 불멸의 이순신의 방영 당시 처음에는 밤 10시였다가 이후 밤 9시 30분으로 시간대가 변경되었다. 그 후, 천추태후를 끝으로 한동안 끊어졌다가 2010년 근초고왕부터 재개되면서 이 작품부터 밤 9시 40분으로 고정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1990년대 이후 방송 3사 중 거의 유일하게 정통 사극을 꾸준히 제작해왔고, 중간 중간 지뢰들도 존재했지만 흥행성, 고증, 연출 등에서 단연 돋보이는 모습을 보여왔다. 시청률 면에서는 주말 오후 시간대 중장년층의 탄탄한 지지도를 바탕으로 망해도 평균 이상을 유지, 심지어 그 광개토태왕 조차도 최고 20% 이상의 시청률을 기록했을 정도였다. 작품성 면에서도 대부분의 작품이 호평을 받고, 해외에서의 매니아층도 형성되어 있는 편이다.[3]

전성기에는 100부작은 기본이고 심지어 200부작인 작품도 있었다. 그러나 대조영을 마지막으로 2000년대 후반부터는 100부작 이내로 제작해왔고 잇따른 흥행 실패 때문에 결국 정도전, 징비록은 50부작으로 축소되었다. 장영실은 아예 절반인 24부작, 다산 정약용은 36부작으로 제작되어 이제는 대규모 전쟁 신은 거의 보기 힘들어질 전망이다. 옆나라대하드라마도 인기가 하락하는 추세이나 55년간 1년 1작품 원칙[4]을 고수하는 것을 보면 참으로 안습한 실정이다.

2 연혁

대하드라마라는 단어 자체는 일본에서 넘어온 것으로 큰 강처럼 이야기가 오랜 세월에 걸쳐 이어지는 방대한 분량의 장편 역사소설을 드라마화한 것을 의미한다. 이미 1970년대 중반부터 KBS는 사극에 대하드라마라는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주말 사극을 대하드라마로 시작한 시기는 1982년작 '풍운'부터이다. 처음에는 일본에서 NHK 대하드라마가 방영되는 시간대인 매주 일요일 저녁 8시경에 방영되었고 소재는 주로 정통 사극을 표방하였다. 1980년대 후반에는 박경리 원작의 토지(1987년작)부터 주로 역사소설을 극화한 시대극이 유행하였다. 그 중 1992년작 삼국기는 정통 사극의 범주에 든다. 90년대 초반까지는 주로 조선시대와 구한말-일제감정기를 비롯한 근현대사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을 주로 방영하였다.

1993년작 먼동 이후 후속작으로 '황토'를 편성할 예정이었으나 주요 배우와 제작비 섭외 때문에 무산되어 먼동을 끝으로 대하드라마를 일시 중단한 후 '인간극장'[5]을 방영했다. 이후 1995년에 김구를 거쳐 찬란한 여명이 방영하면서 다시 정통 사극으로 회귀한 뒤 1996년에 용의 눈물이 방영하면서 히트하였다. 당시 한국에서 방송된 사극 역사상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높은 인기를 구가하였다. 1998년에 왕과 비, 2000년에 태조 왕건이 방영하면서 3연속으로 히트하여 전성기를 맞았다. 태조 왕건의 흥행을 계기로 이 시기에 KBS 측에서는 향후 10년 간 고려 왕조를 조명하는 대기획을 마련했고 2002년에 제국의 아침이 방영하였다. 그러나 제국의 아침의 하향세가 지속되어 대기획은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2003년에 무인시대가 방영하였다. 안타깝게도 시청률 부진으로 끝났으나 사극 매니아들의 탄탄한 호평을 받았다. 2004년에 불멸의 이순신이 방영하면서 히트하였다. 종영 후 후속작으로 광복 60주년을 맞이해서 서울 1945를 방영하려고 했으나 예산 문제로 무산되어 2006년으로 연기되었고 2TV 수목드라마인 2001년작 명성황후를 재방송하려고 했지만 역시 무산되어 중국 사극인 칭기즈칸 국내 수입 방영(성우 더빙)으로 대체되어 우여곡절을 겪었다. 2006년에 서울 1945를 거쳐 대조영이 방영하면서 히트하였다.

2008년에 대왕 세종이 방영하였다. 기존 20세기 정통 사극의 제작, 표현 방식에 한계를 느껴 당시 유행하고 있던 기존의 SBS, MBC의 트렌디 사극의 요소를 실험적으로 접목했다. 전체적인 역사 고증은 사실적으로 표현하기는 했으나 없는 사실을 임의로 만들어 가상의 설정으로 채용[6]하고 양녕대군의 쾌남아 묘사/미화 등 고증면에서는 큰 흠집을 남겼으며 태조 왕건 이후 사극의 고질점인 정의롭기만 한 주인공의 플롯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한계를 지적받았다. 초반 시청률은 높았으나 방영 도중에 2TV로 채널을 변경한 직후 갈수록 시청률이 하락하여 부진한 성적을 거두었다.

대왕 세종의 흥행 부진으로 인해 제작진은 다시 정통 사극으로 회귀하자는 목표를 잡게 되고 2009년에 천추태후가 방영하였다. 그러나 가히 막장 드라마 못지 않게 철철 넘치는 상당한 막장성을 자랑하였고 실제 역사성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망해버려서 종영 후에는 대하드라마의 계보가 끊기는 비운을 겪는다. 이후 현대극인 열혈 장사꾼을 시작으로 주말 특별기획 드라마로 대체되었다. 그 후, 명가부터 KBS의 주말 특별기획 드라마는 1TV에서 방영되었는데 이 계보는 거상 김만덕 전우 자유인 이회영까지 이어졌다.

그 해 하반기에 근초고왕, 2011년에 광개토태왕이 방영하였는데 근초고왕을 통해 KBS의 대하드라마가 부활되었다. 그러나 삼국시대를 배경으로 한 근초고왕, 광개토태왕천추태후에 이어 막장 드라마 못지 않은 철철 넘치는 상당한 막장성을 자랑하였고 실제 역사성은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망해버렸다. 천추태후 이후 일련의 KBS 대하드라마들은 사극이 아닌 막장 드라마의 플롯을 그대로 옮겨와 시대만 고려 시대, 삼국 시대 등으로 처리했다는 비판을 장기간 들었다. 이 때문에 정작 역사적인 부분은 모두 나레이션이나 지도로만 처리하는 개연성 없는 전개도 한몫했다.

2012년에 대왕의 꿈이 방영하면서 막장성을 벗어날 했지만 주연 배우들의 줄부상[7]과 다듬지 않은 각본[8]으로 인해 도입부 단계에서 지나치게 질질 끌면서 표류해서 평가를 다 깎아먹었다. 다만 앞의 두 작품들과 달리 환독, 대륙드립, 황제드립이 배제되었고 한중일을 넘나드는 외교전이나(특히 일본의 역할) 백제 부흥 운동처럼 기존에는 대충 넘어가기 일쑤였던 요소를 부각했던 부분도 있어 이 점들만큼은 어느 정도 호평을 받았다. 대하드라마가 아닌 다른 드라마였어도 이런 식이면 십중팔구는 말아먹었을 것이다.

종영 후 그 해 하반기 동안에 다큐멘터리, 파일럿 프로그램들의 대체 편성으로 다시 한 번 우여곡절을 겪었다. 영웅군주 3부작의 연이은 실패는 이후에 제작된 작품들이 제작비가 줄어들고 자연히 분량도 줄면서 작품성은 인정받아도 이야기를 제대로 다 담아내지 못하게 되는 부작용을 낳았다. KBS에서는 갈수록 대하드라마가 예년만 못하자 NHK의 대하드라마 시리즈처럼 매년 한 편씩 제작하는 방안을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기사가 나왔는데 2014년 KBS의 대하드라마가 정도전으로 발표되면서 NHK 대하드라마 시리즈처럼 인물 중심으로 1년 간 방송하는 작품을 만드는 것으로 결론이 나게 되었다.

2014년에 정도전이 방영하면서 히트하였다. 높지는 않아도 안정된 시청률(15 ~ 19%)를 유지[9]하였으며 이전의 흑역사 작품들과 달리 괜찮은 평가를 받아 대체적으로 정통 사극 부활의 시작으로 칭송받았다. 그러나 정도전 이전 망작은 정도전에 여러가지 악영향을 끼쳤는데, 일단 정도전은 대하 사극치고는 적은 50부작으로 제작되었고 무엇보다 총 예산이 109억 정도로 사극치고는 저예산으로 한 편당 2억 밖에 안들인 셈이다. 대왕의 꿈이 280억, SBS대풍수가 200억이었으며, 조선 총잡이의 한 편 제작비가 5억원 정도이다. 이 때문에 종영 후 나오는 관련 기사에서 배우들에 대해 자주하는 소리가 '다른 작품보다 낮은 출연료로 출연했다.'라는 것이다.

2015년에 징비록광복 70주년 특별기획 대하드라마라는 타이틀을 달고 방영하였다. 제작 환경부터 악조건을 안고 출발하면서 처음 집필하기로 했던 전임 작가의 역사 왜곡 대본으로 인해 첫 방송 직전에 작가가 교체되었지만 그 결과 쪽대본, 생방송 촬영이라는 큰 난관을 겪었다. 일단 전작의 뒤를 이어 정통 사극의 틀을 지켜 호평은 적지 않은 편이나 크게 삭감된 제작비와 촉박한 제작 기간으로 인해 역사적인 고증을 제대로 심도 깊게 이해할 시간이 매우 부족하여 쪽대본, 준실시간 촬영으로 만들어진 스토리의 역사 고증은 큰 비판으로 점철되었고 정도전이 부흥시킨 정통 사극의 이미지에 큰 오점을 남겼다.

2016년에 장영실이 방영하였다. 처음에 KBS는 징비록의 종영 이후 공백 없이 장영실을 방영할 예정이었으나 장영실 역에 낙점된 배우 송일국의 캐스팅 지연과 다른 배우들의 스케줄 문제로 인해 연말 이후로 미뤄져 다시 기나긴 공백기가 생겼다. 국내 최초로 과학 사극을 표방했지만 드라마 자체가 20부작으로 기획되어서 그런지 억지 이야기 전개가 있었는데 대표적으로 시대에 맞지 않는 지동설 언급, 정통에서 벗어난 퓨전적인 내용[10]을 넣어 문제가 되었고 과학 지식 오류에서 비판이 나왔다. 대하 드라마 자체에 대한 관심도도 이전 작품들에 비해 크게 적어졌으며 시청률도 부진하였다.

2017년에 다산 정약용이 방영 예정이었으나 들려오는 소식은 극히 적었고 결국 2016년 8월말, 편성이 불발되어 제작이 취소되었다. 이미 2015년부터 인터넷상에서 다산 정약용을 마지막으로 대하드라마를 폐지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는데 정약용의 편성불발로 팬덤에서 대하드라마 폐지우려가 폭발한 상황. KBS는 대하드라마를 존속시킬지 폐지시킬지에 대한 여부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3 채널 변경 소동

봄개편을 맞아 2008년 4월에 대왕 세종KBS2로 채널이 변경되었다. 그 이유는 광고 수입 및 제작비 확보를 위해서였다는 견해가 신빙성이 가장 크다.[11] 하지만 이후 천추태후가 흥행에서 참패를 하고 작품성에서도 비판을 받게 되자 주말사극은 다시 KBS1로 옮겨지게 된다. 대왕 세종KBS2로 이동하기 전에 용의 눈물, 불멸의 이순신, 대조영 등은 KBS2에서 재방송한 적이 있었다.

4 출연자

주연급 배우는 당대의 톱배우들을 기용하지만, 그 외 조연들은 대개 KBS 공채 배우들로 자체조달한다. 가히 중견배우들의 밥줄이라고 할 수 있으며, 심지어 타 방송의 사극과 중복 캐스팅이 이루어진다.[12] 편수가 많은 사극의 경우는 한 번 나온 배우가 다른 역으로 또 나오는 현상[13]이 나타나며, 그 반대의 현상[14]도 있다. 임병기, 김주영, 이대로, 신동훈, 민욱, 김갑수, 김진태, 임혁, 김종결 등이 단골 출연자이다.

5 방송사 내의 위상

KBS 측의 간판 드라마이다 보니, 방송사에서도 매우 신경써서 제작하며 광고도 많이 한다. 주로 스타작가들을 영입해서 대본을 쓰며, 관록이 있는 연출가가 감독을 맡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 작가는 이환경, 정하연, 유동윤, 장기창 등이며, 연출가는 김종선, 윤창범, 신창석 등이 있다.

6 작품 일람

볼드 표기는 흥행작.[15]

  1. 출처 : 이환경이 말하는 TV 드라마 작법
  2. 1987 ~ 1988년 토지임동진, 반효정, 1993년 먼동의 하희라, 1997년 용의 눈물유동근, 1999년 왕과 비채시라, 2000 ~ 2001년 태조 왕건김영철, 최수종, 2005년 불멸의 이순신김명민, 2007년 대조영최수종, 2014년 정도전유동근.
  3. 유튜브 등지에서 올라온 영상들을 보면 외국인들의 댓글도 꽤 자주 보인다.
  4. 1년이 보통 52주인데 일요일에 1회분 방영이다. 그래서 50부 내외로 만든다.
  5. 현재 방영 중인 다큐 인간극장과는 별개의 시리즈로, 주로 해방 이후 실존인물의 삶을 2 ~ 4회 분량으로 드라마화하여 방영했다.
  6. 뜬금없이 나타난 고려부흥세력이 대표적이다.
  7. 주인공 김춘추 역의 최수종은 낙마 사고와 수술로 3주 동안 뜬금없이 사라지고 목소리만 줄창 나왔으며 그 외에 교통사고도 한 번 당했다. 역시 여자 주인공인 선덕여왕 역의 박주미도 교통사고로 중도 하차해버렸고 홍은희로 교체되었다. 이건 말 그대로 운이 나빴던 것이라서 비난할 수도 없다.
  8. 시공간을 초월한 웨딩드레스 상상신이 대표적이다.
  9. 중반 이후 종영까지는 줄곧 동시간대 1위였다.
  10. 그러나 장영실과 관련된 사료가 매우 부족한 점을 감안해야 한다.
  11. 2007년에 KBS1TV의 시청률이 높았지만, 정작 광고방송을 하는 2TV시청률이 낮아지는 바람(밤 10시대 드라마의 부진이 가장 큰 원인이다.)에 광고수입이 대폭 감소해서 많은 적자를 냈다고 한다. 사실 1TV의 상업광고을 재개해서 광고 수입을 올리는 생각을 할 수 있겠지만 이미 폐지된 광고를 부활(…)시킬 수는 없는 노릇인지라 그냥 1TV의 대하사극을 2TV로 옮긴 걸로 보인다.
  12. 일례로 문회원MBC 주몽(현도군 태수), KBS 대조영(문무왕), SBS 연개소문(의자왕)에 모두 출연했으며, 박경득도 KBS 대조영(연개소문의 하인)과 SBS 연개소문(왕빈)에 겹치기 출연을 했다.
  13. 아역이 성인 역으로 바뀌는 경우는 제외. 일례로 송재호는 왕과 비 초반에 세종대왕으로 특별출연하였다가, 후반부에는 홍응이라는 대신 역으로 출연했다.
  14. 왕과 비의 심회역은 초반에는 한근욱이, 이후에는 이한승이 맡았다.
  15. 또한 볼드로 표기된 흥행 작품들은 모두 그 해에 주연이었던 배우들이 대상을 받았다는 공통점도 있다.
  16. KBS 대하드라마 중 드물게 병자호란, 북벌을 다룬 드라마. 효종의 일대기를 다루었다.
  17. KBS 대하드라마의 흑역사 1. 신군부의 집권을 정당화하기 위한 어용사극으로 굉장히 노골적이다. 자세한 설명은 해당 문서 참고.
  18. KBS 대하드라마의 흑역사 2. 박정희, 김일성 미화 논란으로 대하드라마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단 13회만에 조기종영했다.
  19. 그러나 드라마의 흥행과는 별개로 역사왜곡, 고증오류 미화가 매우 심각하다.
  20. KBS 대하드라마의 흑역사 3. 고증과 재미를 함께, 내다버렸다(...) 주인공에 대한 과도한 도덕성 강조가 역사적 사실을 곡학아세하는 부적절한 역사인식을 만나면 어떤 참극이 벌어지는지 잘 보여주었다. KBS 대하드라마 중 유일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2TV에 순수 방영한 사극이다. 이 드라마의 실패로 인해 대하드라마는 얼마 동안 계보가 끊겨지고 2TV에서 후속으로 방송된 현대극인 "열혈 장사꾼"부터 '주말 특별기획 드라마'로 방영되었는데 명가부터 KBS의 주말 특별기획 드라마는 채널이 1TV로 옮겨졌으며 이 작품부터 거상 김만덕 - 전우 - 자유인 이회영까지 KBS 1TV에서 주말 특별기획 드라마가 방송됐다.
  21. KBS 대하드라마의 흑역사 4. 건축 양식, 생활 양식, 복식 고증은 잘되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시나리오 작가와 PD의 섣부른 독단적인 결단이 어떠한 참극을 불러오는지 잘 보여준 작품. 그 결과 삼국시대판 막장 드라마가 탄생되었다. 하지만 바닥에는 더 바닥이 있다고 바로 밑의 작품이 공개됨에 따라 이 작품도 재평가를 받고 있다(...)
  22. KBS 대하드라마의 흑역사 5, 역대 KBS 대하드라마 최악의 망작. 그야말로 사극에서 표현할 수 있는 비판거리들만 죄다 모아놓았다(...) 역사 왜곡, 막장 드라마, 질질 끄는 스토리, 어설픈 정치극, 어설픈 감성팔이 등등 가지가지하다. 특히 역사 왜곡은 고의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정말 몰라서 한 것이니... 답이 없다. 이 드라마를 마지막으로 현재까지 KBS 대하드라마에서 최고시청률 20%를 찍은 작품이 아직까지는 없는데 이건 막장드라마의 습성에 가까운 시청률 기록이어서 흥행한 것은 아니다.
  23. KBS 대하드라마의 흑역사 6. 다만 앞의 두 작품들과 달리 환독과 대륙드립을 채용하지 않아서 각본만 아니었으면 평작 정도는 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