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대한민국의 기업인이자 사업가. 전(前) 성신제피자 대표. 1948년 10월 20일생.
한국 피자업계의 성공사례를 그렸던 기업가로 한때 피자헛 한국 라이센스를 획득하여 피자헛 한국지점을 개설한 인물이었지만 미국 피자헛 본사가 독자적인 한국 진출을 하게 되자 이에 계약위반이라며 미국 피자헛 본사에 소송을 냈으나 결국 1993년 한국 피자헛 자본을 미국 본사로 넘기게 되었다. 또한 성신제는 1990년 피자헛과 같은 얌!브랜드의 타코벨을 한국에 처음 들여왔으나 타코벨은 일찍이 시장에서 실패하였다.[1]
이후 1996년 치킨 전문점 케니 로저스 로스터스를 런칭하여 재기를 펼치게 되었지만 이듬해 연말(1997년)에 터진 1997년 외환 위기 구제금융기를 맞아 케니로저스가 부도처리되면서 인생의 난관을 맞이하여 한때 자살까지 생각했으나 가족을 생각한다는 마음에서 포기하고 새로운 활로 개척에 나서게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그의 이름을 본딴 성신제피자의 런칭 프롤로그였다.
한때 피자의 본고장인 이탈리아 피자 장인의 기술을 스스로 익히게 된 것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피자 개발에 몰두하게 되면서 이를 바탕으로 1998년 자신의 이름을 본딴 한국 토종 피자전문점인 성신제피자를 런칭하고 대표직을 맡게 되었다. 그는 성신제피자를 자신이 접했던 피자헛에 대항할 수 있는 한국 토종 피자전문점으로 육성할 계획을 세웠으며 김치와 불고기 등 한국적 토핑이 들어간 피자를 개발하고 기름진 피자 대신 이탈리안 스타일 피자를 위주로 성신제피자 경영전략을 앞세웠다. 이 때 그의 나이 50대 지천명이었으며 50줄의 늦깎이 나이에 사업 성공신화를 이루게 되었다.
그러나 2007년 미스터피자, 파파존스 등 후발 경쟁업체들이 등장하고 한국 피자시장이 광역화되어가면서 경영에 최대 위기를 맞게 되었고 여기에 중화 요리처럼 피자도 배달음식군으로 광역화되었지만 배달방식이 아닌 내점식사 위주로 고수를 하게 된 것이 화근이 되어서 결국 2007년 폐업신고 절차를 밟게 되면서 사실상 망하게 되었다. 이후 성신제는 성신제피자 대표직에서 물러났고 성신제피자는 그라노스에 인수되어 현재는 동국대학교 주변에 지점이 있었지만 성신제와는 관련이 없는 곳이 되었고, 이마저도 2015년 후반기부로 사라졌다.
이후 성신제피자 사업실패를 딛고 재기를 위해 생활용품 대표직을 맡았으나 현재는 물러났다.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 의하면 성신제피자는 경영에서 망한 것이 아니라 론스타 때문에 망했다고 회고하면서 사실상 미국 자본에 의해서 성신제피자가 망하게 되었다는 토로를 남기기도 하였다.
2011년 치질수술을 받다가 직장암이 3기에 이르렀음을 발견했다. 게다가 암이 간과 폐에도 전이된 상태였다. 6개월의 시한부판정을 받았으나 항암치료와 수술 끝에 극복했다. 이후 2015년에는 심근경색을 발견하여 수술을 하는 등 건강으로 많은 고초를 겪었다고 한다. 68세의 나이에 이르렀지만 다시 재기하기 위해 지지스 컵케익을 런칭하고 왕성히 영업중이다.
2 주요저서
- 나는 50에 꿈을 토핑한다(성신제 경영 수필)
- ↑ 이후 타코벨은 2010년대 들어서 다시 한국에 진출하였다. 현재는 복수 사업자로 인해 매장 종류가 두 개로 나뉘어진 상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