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디낭 드 소쉬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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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rdinand de Saussure 1857~1913

언어학의 유일하고도 진정한 대상은 언어인데, 언어는 그 자체로서, 그것만을 위하여 고찰되어야 한다(La linguistique a pour unique et véritable objet la langue envisagée en elle-même et pour elle-même.).

1 소개

1.1 개요

스위스의 언어학자로 구조주의 언어학과 현대 기호학의 창시자이다. 또한 기호학자로서뿐만 아니라 구조주의포스트모더니즘 등의 단초를 마련한 것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1.2 생애

스위스의 제네바시에서 태어났다. 소쉬르 가문은 제네바 시는 물론 스위스 내에서도 가장 유명하고 오래된 명문가로 유명했다. 소쉬르는 생물학자이자 탐험가였던 부친 앙리 드 소쉬르와 이름난 가문인 푸르탈레스 백작의 딸, 어머니 루이즈와가 낳은 4형제 가운데 장남이었다. 소쉬르는 자연 과학자들을 배출한 유구한 지적 전통 속에서 성장했으며, 음악에 조예가 깊었던 어머니로부터 예술적 감수성을 물려받기도 했다. 실제로, 소쉬르의 조숙한 천재성은 그가 14세 때(...) 작성한 인도유럽어의 비교 논문에서도 확인된다.14세면 중1인데 우린 안 될 거야 아마 중립국의 위엄[1]
그 후, 당시 비교역사언어학의 중심지였던 독일의 라이프치히대학으로 유학을 떠나 역사언어학의 지각 변동을 가져온 장편의 석사 논문 「인구어에 있어서의 원시 모음 체계론」을 출간한다. 그 후 베를린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파리로 건너가 10여 년 동안 천부적인 교수법으로 유럽 각지에서 모인 젊은 언어학도들을 사로 잡았다. 그 후 자신의 모교인 제네바 대학으로 돌아가 1907년부터 1913년까지 세 차례의 일반 언어학 강의를 했다.[2]

2 일반언어학강의

소쉬르의 가장 유명한 저작으로 남아있는 일반언어학강의는 소쉬르가 지은 책이 아니다.[3] 그가 죽은후 샤를 바이, 알베르 세슈에 등 그의 제자들이 남아있던 강의 노트를 모아모아 1915년 <일반 언어학 강의>[4]란 제목으로 출간했다. 소쉬르의 강의내용을 모아 만든 것이니 그가 쓴 것이나 다름 없기는 하겠다... 어쨋든 이 책은 공시적 언어학이니 랑그니 파롤이니 하는 소쉬르의 학문적업적을 잘 보여주고있으며, 일단 언어학과에 들어가면 반드시 읽게 되는 책이다.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언어학에 관심이 있다면 한번 쯤 읽어보도록 하자.몇이나 있겠냐마는

3 학문적 업적

3.1 공시적언어학

소쉬르는 19세기 언어학이 인간의 목소리가 의미 있는 소리를 창출하는 여러 가지 방식들을 연구하는 음운론과 다양한 문법들의 비교 등과 같은 역사적 언어학, 비교 언어학 등에 관심을 두고 경험적인 현상에 주의를 집중함으로써 언어의 가장 독특한 특징인 전체적 혹은 체계적인 측면을 연구하는 데 실패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소쉬르는 이 문제를 부각하기 위해 역사의 한 시점에서 언어 상태를 정태적으로 포착하는 공시적 언어학을 제창한다.

3.2 랑그와 파롤

항목 참조.

3.3 기호의 자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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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쉬르는 모든 기호는 겉으로 드러나는 기표의 형식인 기표(記標, 시니피앙signifiant)와 기호가 의미하는 내용인 기의(記意, 시니피에signifié)로 나뉜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나무'라는 말을 할 때 소리인 [나무]는 시니피앙이 되는 것이고, 그 의미인 ‘줄기나 가지가 목질로 된 다년생 식물’은 시니피에가 되는 것이다. 이 둘의 관계는 의미작용(意味作用, 시니피카시옹signification)이라고 한다. 그 내용은 두 가지이다. 첫째는 ‘기표와 기의의 관계는 자의적이다’라는 ‘기호의 자의성’이다다. 즉 우리가 ‘줄기나 가지가 목질로 된 다년생 식물’을 ‘나무’라고 부르게 된 것은 우연이라는 뜻이다. ‘나무’의 발음과 그것이 가리키는 식물에는 어떠한 연관점도 없다. 둘째는 ‘기표와 기의의 관계에는 필연성이 없지만 그 체계 속에서는 필연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나무’라는 글자를 보거나 [나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우리는 필연적으로 ‘줄기나 가지가 목질로 된 다년생 식물’을 떠올리게 된다. 그것은 우리가 시니피앙과 시니피에가 필연화된 ‘언어’라는 기호 체계 속에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쉬르가 언어학자였던 만큼 그의 기호학은 언어기호를 중심으로 생각한 것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프레게의 기호학이나 퍼스의 기호학을 참고하면 좋다.

4 그 밖의 이야깃거리

주석에도 나와있듯이 소쉬르는 출판하거나 기록물로 남기는 것을 아주 싫어했다. 박사논문을 제외하고는 논문이 하나도 없었으며, 극단적인 예로 강의를 끝마치고 난 뒤에는 강의록을 얄짤없이 태워버렸다.(..)
  1. 그러나 사실 2차 대전 이후까지는 독일 정도를 제외한 유럽 전역은 극심한 지식인 계급과 노동자 계급의 경제적, 사회문화적 격차에 시달렸고 자본적, 문화적 유산을 지닌 명문과 지식계급일수록 현대의 기준으로는 상상하기 힘든 신동을 배출해냈다. 이렇게 생각해보자. 현대 미국의 학생들처럼 널널한 학업 스케줄에 집에는 이미 당대에서도 지식인으로서 알아주는 아버지 어머니가 있고 집에는 나라에 몇권이나 있을까 싶은 책들이 널려있다. 당연히 개인적으로 뭔가에 골몰하고 사색하고 집필할 시간을 전혀 가지지 못하고 남는 시간에 게임 등으로 보내는 우리와는 천지 수준의 격차가 있을 수밖에 없다. 물론 소쉬르, 밀 등은 단지 공부뿐 아니라 발상 자체가 비상했고 그러했기에 각자 기호학과 윤리학의 거장으로 남을수 있었겠지만 사유는 체계적인 전달과 반복적인 사색에서 태어난다는걸 잊지 말자.
  2. 서양의 고전을 읽는다, 2006.5.22, 휴머니스트 참조
  3. 소쉬르 자신은 출판에 대해 매우 인색했으며, 실제로 죽을때까지 단 한권의 책도 출간하지 않았다.
  4. Cours de linguistique généra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