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레나스

1 1세기 초 파르티아의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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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티아의 높은 귀족 혹은 왕족의 동상. 이 동상이 수레나스를 묘사한 것이라는 증거는 없지만, 파르티아 시대에 이처럼 명확한 인물 형상을 다룬 유물은 거의 없다.

파르티아의 장군. 로마의 크라수스가 파르티아로 쳐들어오자 국왕 오로데스 2세의 명령으로 카르헤 전투에서 로마군과 맞서 싸웠다. 전투에서는 대승을 거두었지만 그 승리로 인해 왕의 의심과 질투를 사게 되어 처형당했다.

수레나스는 그의 이름이 아니라 가문 이름, 즉 목차 2번 수렌(Sûrên)의 그리스어 혹은 라틴어식 변형이다. 그 자신의 이름은 전해지지 않는다. 플루타르코스에 따르면 왕 바로 다음 가는 지위를 가지고 있었으며, 이동할 때마다 1천 명의 중무장한 호위대와 200대의 짐마차 외 수많은 인원이 움직인다는 데서 그 권세를 짐작해볼 수 있다.

사실 파르티아는 중앙집권적 국가가 아니었고 강력한 귀족들이나 대씨족들, 토착 지배층이 왕에게 느슨하게 종속되어 있는 일종의 봉건제와 비슷한 체제를 가진 국가였으며, 수렌 가문은 특히 강성한 귀족이었기 때문에 수레나스가 거둔 카르헤의 압도적인 승리와 그로 인한 명성은 오로데스 2세와 왕가인 아르사케스 가문에게 크나큰 위협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하지만 오로데스 2세는 수레나스 사후 로마령 시리아 공격에 여러 차례 실패함으로써 스스로 수레나스에 비해 별로 뛰어나지 않은 인물이었음을 입증했다(…).

2 파르티아 시대의 귀족 가문

Sûrên.

목차 1번의 장군이 속해 있었던 귀족 가문이다. 파르티아 시대는 이란/페르시아 역사 중 가장 문헌 기록이 적은 시대 중 하나이기 때문에 이들의 실체는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으며 한정된 자료에 근거하고 있다. '수렌'이라는 이름읜 아베스타어로 강력하다는 뜻의 형용사 '수라'에서 유래했다.

수렌 씨족은 아르사케스 왕조 시대에 시스탄을 지배하는 대귀족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시스탄은 중앙아시아에 살던 사카 족이 남쪽으로 이주해 내려오면서 붙은 지명으로, 현재의 이란 동남부와 아프가니스탄 서남부, 파키스탄 서부의 국경지대에 해당한다. 현재 지명인 시스탄(sistan)은 사카스탄(sakastan)이 변형된 것이다. 특히 E. Herzfeld나 A. D. H. Bivar 등은 수렌 씨족이 시스탄 동부의 인도-파르티아 세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샤나메(왕들의 책)에 등장하는 이란 최고의 영웅들 중 하나인 루스탐이 사카스탄 출신이라는 언급이 있는데, 이것이 파르티아의 수렌 씨족을 가리키는 것일 가능성이 있다고도 본다.

아르다시르 1세가 아르사케스 왕조를 무너뜨리고 사산 왕조를 세울 때에는 사산 왕조 편에 가담했으며, 이후 아랍 이슬람 세력의 공격으로 멸망할 때까지 권세를 누렸다. 사산 왕조 멸망 이후에는 더 이상 기록에 등장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