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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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4대 주요 종교
기독교불교이슬람힌두교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
유대교기독교이슬람드루즈, 만다야교, 바하이교
이슬람의 주요 종파
수니파시아파

الإسلام
Islam

allah-akbar-black.jpg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은 없습니다. 무함마드는 그 분의 사도입니다.

알라

1 개요

이슬람(اسلام)이라는 말은 아랍어 어근 'س ل م(S-L-M)'에서 온 것인데, 이는 아랍어로 (신에게) 순종, 복종이라는 뜻이다.[1]

예언자 무함마드동굴에서 자다가 대천사 지브릴(جبريل)이 전해준 계시에 의해 아내와 어린 조카에게 하나님(아랍어로는 알라)의 말씀을 전한 것에서 시작되어 2010년 통계로 약 16억 1천만명의 신도가 있는 세계 4대 종교 중 하나이다.

한국 이슬람교 중앙회 서울 성전의 인터넷 주소는 [이곳]이다.

한자로는 회교(回敎)라 표기한다.[2] 회흘(回吃; 현재 중국의 신장 위구르족 자치구 행정구역) 지방에서 건너온 종교라는 뜻으로 추정되며. 명나라 때에는 회흘 지방에서 건너와 중국에 정착한 기독교인과 유대인도 회회인(回回人)이라 칭하였다.(이를테면 기독교인 십자회회(十字回回) 유대인은 남모회회(藍帽回回)등등 회회 앞에 특징을 붙여 칭함) 그러나 명나라 때에 이르자 명의 쇄국정책의 일환으로 서역 출신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결혼하는 것을 금하고 한족하고만 혼인하도록 강제 하는 정책으로 이들을 한화시켜버렸고 이에 따라 이슬람 회회인 이외에 기독교와 유대교 회회인은 아예 한족과 동화되어 버리거나 차라리 중국 내에서 이슬람으로 개종하였고 결국에는 '회회'라는 말이 무슬림을 칭하는 말로 굳어지게 된다.[3]

2 이슬람의 기본

족의 종교, 즉 셈족 종교 가운데 현존하는 3번째 순서[4]이자 아브라함교 중 하나로, 아브라함의 하느님[5]을 유일신으로 섬기고 있으며, 신의 이름을 직접 일컫는 것을 금지하는 교리[6]로 인해 그들의 유일신을 알라라고 부른다. 알라(Allah)는 아랍어로 'The God'[7]이란 뜻이다.

'알라신'이란 표현은 '역전 앞'과 같아서 틀린 것이라는 주장이 있지만, '알라신' 자체는 아랍어 단어에는 동의어 반복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잘못된 표현이 아니다.[8], 문서 참조. 한국 이슬람교에서는 알라를 하나님이라고 한다.

무함마드에게 계시를 내린 천사는 지브릴(جبريل). 히브리어로는 가브리엘(גַברִיאֵל). 단 이슬람에서는 천사에게는 종족 번식이 필요없다. 필요에 따라 알라에 의해 생산이 된다 생각해 따로 성별을 따지지 않으나 기독교에서는 성별에 대해 논란이 있다. 다만 구약 성경에서는 천사가 성인 남성의 모습으로 많이 나타났다.[9]

경전은 쿠란이다. 기독교의 성경이 많은 오역에도 불구하고 성서무오설을 주장하는 자들로 인해 곡해가 이루어지기도 하는데, 이를 방지하기 위해 쿠란은 번역이 금지되어 있다.[10][11] 그대신 쿠란 해설본이라고 표명하는 책들이 다른 언어로 나오고는 하는데, 굳이 말하면 사실상 쿠란 번역본이다.(...)

물론, 이건 아랍어로 된 쿠란만이 유일하게 정통성이나 종교적 가치가 있다는 것이니까 번역 자체를 금지한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다른 말로 번역한 쿠란은 쿠란과 동등한 지위를 갖지 못하며, 번역본은 쿠란을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는 설명서 정도의 지위만 차지할 뿐이다. 이런 식으로 번역된 쿠란에는 항상 '의미의'라는 수식어가 붙거나 '주해서'라는 단서가 달린다. 예를 들어 한국어 번역본의 이름은 '성 쿠란, 의미의 한국어 번역'이다. 그리고 이러한 점 때문에 만약 번역본을 아랍어로 된 쿠란과 동급으로 여기는 풍조가 있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매우 독특한 지역적 차이로 간주된다.[12]

일반인들의 상식 상으로는 이슬람은 기독교와 마찬가지로 유대교를 뿌리로 두고 있다고 추정한다. 그러나 정작 무슬림들은 이슬람은 아담 때부터 시작된 종교로 유대교와 기독교는 원래의 순수한 유일신 신앙이 변조된 것으로 이슬람은 인류 창조부터 시작된 종교라고 주장하고 있다.

기독교와 이슬람과의 관계에서의 쟁점은 기독교와 이슬람이 같은 신을 믿느냐 아니냐 하는 논점에 따라 갈린다고 볼 수 있다. 이슬람이나 기독교에서 주로 평화와 공존을 지향하는 쪽에서는 서로 같은 신을 믿는게 맞다고 인정하고 있다. 카톨릭의 경우 무슬림들의 신이 자신들의 신과 같은 분이라는 것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였다[13]. 그러나 미국한국의 개신교 선교 단체 등에서는 이슬람의 알라가 기독교의 하나님이 아니라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으며, 이슬람 교조주의의 입장에서는 기독교인은 하나님의 우상을 상정함으로써 하나님을 욕되게 한다고 주장을 하며 기독교인을 하나님의 적이라고 주장하지만, 기독교의 신도 따지고 보면 하나님이라는 사실만은 부인하지 못한다.[14]

이슬람은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에서 순서상 늦게 나왔기에, 교리적인 면에 있어서 유대교나 기독교에 비해 좀 더 다듬어져 있는 부분이 있다고 보는 견해도 있지만, 현재의 관점에서 볼 때 꼭 그렇지만도 않은 듯. 이슬람이라는 종교 자체가 아무래도 발원지역의 지역적, 역사적, 현실적 상황으로 인한 부침을 많이 겪다 보니 쿠란이라는 교리의 핵심(central dogma)이 무색하게도 개별 학자, 연구자, 지역별 성향, 풍습, 관행의 차이에 따라 태도가 죄다 다르다[15]. 당장 지역 경계 하나만 넘어도 개신교의 각 종파간의 차이보다도 훨씬 더 큰 입장 차이를 믿으면서도 같은 순니/시아파 무슬림이라고들 하니.

성서의 백성들[16]아 너희가 모세오경과 복음과 너희의 주님께서 너희에게 지금 내려주신 것(쿠란)을 따라 행할 때까지 너희는 아무것도 없느니라
오 성서의 백성들아 왜 너희가 진리를 허위와 뒤섞어 의도적으로 진리를 은폐하느뇨?
그리고 스스로‘ 우리는 기독교인이요’라고 하는 자들로부터도 내가 약속을 받았으나 그들은 그들에게 보내어진 메시지 중에서 선한 부분을 저버렸노라. 그리하면 부활의 날(저들이 알라의 책을 버리고 알라의 메신저들과 그분의 질서들에 복종하지 않고 알라의 계율을 범하였을 때)까지 그들 가운데에 증오와 대립을 내가 심었노라 그리하여 곧 알라께서는 그들 자신들이 행해온 것이 무엇인가를 그들에게 알릴 것이니라.
성서의 백성들 가운데 (1) 알라를 믿지 아니하고, (2) 최후의 날을 믿지 아니하며, (3) 알라와 알라의 사도께서 불법이라 한 것을 불법으로 지키지 아니하며, (4) 진실의 종교(이슬람)를 따르지 아니하는 자들에 대항하여 그들이 세금을 기꺼이 납부하고 그들 스스로 복종할 때까지 싸우라 그리고 유대인들이 말하기를 에스라가 알라의 아들이라 하고 기독교인들은 메시아가 알라의 아들이라 하니라 그것이 바로 그들이 자신들의 입으로 말하는 것이노라 그들은 그들 이전에 믿지 아니한 자들의 말을 흉내내는 것이니 알라의 저주가 그들에게 있으니라 얼마나 저들이 진리로부터 벗어나 미혹되어 있는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지 않으며 예수에 대한 해석이 기독교와 꽤 다르긴 하지만, 사칭이니 사기꾼 예언자니 하면서 예수를 부정적으로 보는 유대교와는 달리 예수를 대단히 긍정적으로 본다. 이슬람에서 예수는 25명의 예언자 중 하나로 인정받으며, 예언자 중에서도 상당히 높은 급 - 알라가 보낸 중요한 예언자 3명 중 1명(나머지 둘은 모세와 무함마드) - 으로 대우받는다. 동정녀 마리아의 예수 잉태를 인정하고, 예수가 행했던 모든 기적도 인정하며, 최후의 심판일에 예수가 재림할 것이라는 것도 인정한다. 애초에 무함마드가 '예수 바로 다음에 온 최후의 선지자'라고 광고하고 있으니까. 그런데 정작 기독교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삼위일체나,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주장은 믿지 않는다는 데에 가장 큰 차이점이 있다. 이슬람에서의 예수는 십자가에 못박히지 않고, 알라가 권능을 발휘하여 예수 대신 이스카리옷 유다를 십자가에 매달리게 하여 예수를 구해줬다고 해석한다.[17]

다수의 수니파와 소수의 시아파 및 기타 등등이 있는데 나라마다 파의 비율은 다르다. 예를 들어 이집트는 인구의 대다수가 수니파이지만 이란은 시아파 국가이고, 이라크는 시아파 인구가 절반을 약간 넘는다.[18] 교파가 갈리는 건 무함마드의 후계자인 칼리프 자리를 놓고 일어난 분쟁에서 시작된 것으로, 몇몇 교리를 놓고 서로 다른 주장을 하기도 한다. 근데 이 수니파와 시아파의 차이가 가톨릭개신교의 격차 따위는 상대도 못할 만한 수준이라. 거기다 수니파와 달리 시아파는 분파를 인정하기 때문에 분파도 꽤 많은 편이다. 무함마드가 살아 있었을 때 내가 죽고 난 뒤에 이슬람이 몇십, 몇백개 정도로 쪼개질 것이다란 소리를 했다고 하는데 정말로 그렇게 되었다. 과연 예언자 아무튼 저런 이유로 나름 잘 싸우고 사이도 별로 안 좋다. 중동을 고향으로 하며 한 뿌리에서 갈라져 나온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 모두 공통으로 나타나는 특성이다.

2.1 마드하브(이슬람의 주요 학파)

  • 수니파 - 샤리아법 해석에 따른 4대 학파는 다음과 같다.
    • 하나피 학파 - 중앙아시아, 터키, 남아시아에서 우세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현지의 관습을 존중하고 유연한 해석을 적용하는 학파로 중세시대에는 조금이지만 술을 먹어도 좋다는 해석까지 내놓았을 정도로 관용적인 학파. 실제 중앙아시아와 터키에서는 길거리에서 대놓고 만취한 모습을 보이는 정도는 경계하지만 술은 전통주건 독한 보드카건 잘만 마신다. 다만 이건 국가 정체성이 세속적인 정부의 영향이 크고, '다른 쪽'으로 유연한 해석을 적용해 극단적으로 뒤틀린 이슬람 근본주의를 받아들여 아프가니스탄이나 파키스탄처럼 되는 경우도 있다.
    • 말리키 학파 - 북/서아프리카에 주로 분포. 마그레브라고 불리는 북아프리카서아프리카 이슬람은 죄다 말리키 학파. 메카의 전통에 가장 충실하다. 기도 전 준비의식 같은 행위에서도 말리키 학파가 제일 엄격하다고 한다.
    • 샤피이 학파 - 소말리아를 비롯한 동아프리카예멘, 동남아시아에서 우세. 하나피와 말리키 학파 사이의 중용을 취하고 있다.
    • 한발리 학파 - 가장 엄격한 꼴통 학파이자 이슬람 극단주의만악의 근원이 된 학파. 사우디아라비아카타르에서만 우세.[19]
  • 시아파 [자세한 정보 (한겨레)]
    • 열두 이맘파 - 시아파의 대다수이자 이란 인구의 대다수.
    • 이스마일파 (일곱 이맘파) - 시아파에서 두번째로 큰 종파. 암살단으로 유명한 어새신파가 여기에서 갈라져 나왔다(!!!). 심지어 이들 중 일부는 무함마드보다 알리를 더 중요하게 여기기도 한다!
    • 자이드파 (다섯 이맘파) - 북예멘에 많다.
  • 알라위파, 드루즈파 - 시아파에서 갈라져 나왔으나 별도의 종파. 사실 원리적인 무슬림들의 대다수는 알라위파는 시아파보다 더 사악한 이단으로, 드루즈파는 아예 '별도의 종교'로 본다. 심지어 드루즈파는 20세기말 레바논에서 기독교인들과 무슬림들 간에 내전이 벌어졌을 당시 이에 개입한 이스라엘군과 동맹을 맺고 다른 무슬림들과 싸웠을 정도. 알라위파는 '알리를 섬기는 이들'이라는 뜻으로 눗사이리라고도 하는데 용어로서는 알라위는 레바논 지역을 프랑스인이 통치하면서 생긴 말이다. 시아파의 주요 세 종파에서 열두 이맘파에 가까운데, 알리를 중히 여기는 시아파라서 알리를 따른다는 말이 자기들도 좋았던 듯. 이란은 이들을 시아파로 인정하고 있으며, 알라위는 현재 시리아의 지배계층으로 군림하고 있다. 국제사회의 논란거리인 시리아의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이 알라위이며, 그를 떠받치는 군사, 정치 엘리트가 거의 알라위라고 보면 된다.
  • 수피즘 (sufism) - 위의 종파 구분과는 별도로 존재하는 이슬람 신비주의. 즉 순니파 수피도 있을 수 있고 시아파 수피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일단 수피즘 분파에선 관용을 우선시[20]하면서 비이슬람이나 무신론자와도 교류를 해왔기에 같은 이슬람에게도 이단 취급을 받고 아타튀르크도 그다지 좋지 않게 여겨서 이들의 춤을 금지하기까지 했다. 그나마 이들의 심벌이 되어버린 세마댄스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지면서 금지정책을 폐지했다.[21]
  • 이바디파 - 하와리즈 운동에 영향을 받은 학파로 오만에서 유행하였다.

3 종교의 배경

무함마드가 이슬람을 만든 것에는 당시 혼란스러웠던 아랍 지역을 통합해 질서를 바로 잡으려던 의도가 있었다. 따라서 민족을 강조하는 건 아니지만 아랍 지역 특유의 생활과 전통에 가까운 교리가 많아 보편종교임에도 민족종교적인 성격이 짙은 편이다.[22]

해서 아랍지역에 필요한 교리를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그래서 외부 사회의 시선과 내부의 폐쇄적이고 후진적인 아랍 전통이 유독 많이 충돌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후술 될 항목에 나온 것처럼 을 금지한다든지, 거기에 더해 흐르는 물을 신성하게 여기는 것[23]이나, 돈이나 재물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지 못하게 하는 점[24], 유목민족들의 성향처럼 집단의 내부 통제를 위한 것들[25]이 그러하다.

쿠란에서는 무함마드에게 이슬람이 계시된 배경을 성경에 나오는 다른 예언자들의 가르침과 맞물려서 설명한다. 이슬람의 교리에 따르면 알라는 인간을 유일신 신앙을 가진 존재로 창조하고 믿어왔으나 시대가 지나면서, 유일신 신앙이 잊혀지고 왜곡된다고 가르친다. 알라는 이러한 왜곡된 신앙을 원래 그대로의 모습으로 복원하기 위하여 사람들 사이에 예언자들을 보낸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쿠란과 하디스에서는 예수유대인들이 모세의 율법을 왜곡하는 것을 시정하러 왔다고 설명하고 있다.

인도에서의 이슬람은 그런 교리에 의한 전통 면에서 인도의 민족종교 중 하나인 힌두교와 대비적인 성격이 짙은데, 그 때문인지 인도에서는 다른 지역에서 기독교와 이슬람이 대립하는 것 이상으로 힌두교와 이슬람 간 사이가 나빴다. 이미 무굴제국 이전 이슬람 정복 시기부터 이슬람에게 힌두교 세력은 다신교도라는 이유로 반복적으로 사원이 박살나고 정복당하고 핍박받아왔고, 아우랑제브~바하두르 샤 이후의 무굴제국 말기에도 극심하게 대립했다. 그리고 인도 독립을 전후한 시기에 힌두교와 이슬람 간에 해묵은 갈등이 폭발, 인도 전국에서 힌두와 무슬림이 죽고죽이던 때도 있었다. 인도 독립 이후에 마하트마 간디를 암살한 건 원리주의 힌두교 신자였는데, 이는 간디가 힌두교와 이슬람의 화합을 꾀하였기 때문이다. 파키스탄과 인도의 사이가 현대 내내 매우 안 좋은 이유가 카슈미르 등의 영토문제와 더불어 바로 종교차이로 독립했고 지금도 대립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힌두교와 이슬람의 퓨전을 시도한 인도 종교가 있으니 그것이 바로 시크교.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무슬림들은 이슬람이 오늘날 기독교와 마찬가지로 보편 종교의 성격을 띄고 있다고 설명하려는 경향이 강하지만, 아무래도 기독교가 최근 200~300년간 세속주의와의 충돌, 과학의 성장, 자본주의화 및 근대화, 보편적 인권의 확장을 경험한 것에 비해 그러한 갈등관계를 상대적으로 덜 겪었으며 위낙에 식민지배나 독재정치로 점쳐지다 보니 제대로 과정을 거친 국가들이 적은 편이다.[26]. 중세 시절에는 중국이나 인도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와의 무역관계도 활발하고 동로마 제국과 페르시아로부터 물려받은 문화적 유산을 잘 발달시켜나갔지만 16세기 들어서면서 서서히 뒤쳐지기 시작하였고 제1차 세계대전 전후의 상황으로 오스만 제국이 무너질 무렵 제국의 핵심적인 지역들에서조차 유럽 문명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던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유럽계 열강과 비교했을 때 많이 낙후되어 있는 상황이었고, 그 제국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하던 중앙아시아 깊숙한 지역, 북아프리카 사막과의 접경지역, 아라비아 반도 쯤 되면 20세기 초중반 시점에서도 기본적으로 족히 1,000년은 넘게 이어져 내려오고 있던 전통적 부족사회의 생활방식을 고수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서, 여느 종교와 마찬가지로 이슬람도 형이상학적, 종교적 요소를 갖고 있는 동시에 세속적 도덕률 및 생활수칙, 게율의 측면을 갖고 있음을 감안한다면 중동의 레반트, 시리아, 아라비아 반도 지역의 유목민들이 '근대국가'를 수립하고자 했던 20세기 초중반 시점까지도 그들 중 다수의 생활상은 서기 7세기와 크게 다를 바 없는 가부장제 부족주의의 전제적 통제 아래 있었고 이슬람은 그 생활상에 '특화' 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오늘날 이슬람에 대한 모든 논의는 기본적으로 위 사실을 이해하고 넘어가는데에서 출발해야만 한다. 일종의 내재적 접근론이랄까.

3.1 종교의 특징

- "너희에게 도전하는 하나님의 적들에게 도전하되 그러나 먼저 공격하지 말라 (쿠란 2:190)"[#]
- "믿는 신앙인이란 하나님과 선지자를 믿되 의심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사업을 위해 그들의 재산과 생명으로 성전(지하드)하는 자들이 바로 믿는 신앙인들이라 (쿠란 49:15)"[#]
- "믿는자들이여 너희 가까이에 있는 불신자들에게 투쟁하고 그들로 하여금 너희가 엄함을 알게하라 하나님은 항상 정의로운 자들과 함께 하시니라 (쿠란 9:123)"[#]

우상숭배를 매우 배척하는 게 특징. 물론 이건 유대교, 기독교 역시도 공유하는 특징이다. 하지만 이슬람은 우상숭배로 오해될 수 있는 것마저도 매우 싫어한다. 이에 성화과 성상은 물론 기독교십자가 같은 상징마저도 만들지 않는다. 그 덕택에 발전한 예술이 아라베스크 양식과 아랍식 서예다.[27] 이 우상에 대한 배척은 다른 어떤 종교도 못따라갈 정도로 매우 강력한 수준.[28] 그래도 나라별로 차이가 있어서 좀 덜한 곳도 있다고 한다.[29]

아무리 그래도 아예 징표가 없으면 곤란한지라, "알라"를 적은 아랍어나 무함마드, 초승달과 별 정도는 사용한다. 무함마드메카에서 탈출할 때 빛이 되어서 앞을 밝혔다고 한다.

과거 상대적으로 타종교인에게 관대했다고 하는데그럴리가 다른 종교와 마찬가지로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사실 다른 종교보다 더한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1066년 그라나다에서는 유대인 대학살이 일어나 그곳의 유대인 공동체가 말살되었고, 1126년 안달루시아에는 수천~만명에 이르는 기독교 신자 주민들이 모로코에 노예로 팔려갔다. 10~11세기 코르도바의 학자이자 시인인 이븐 하심(994~1064)은 기독교를 반박하기 위해 『분파의 서(Kitab al-Fistal)』라는 책을 쓰기도 했다.

이슬람 통치 하의 타 종교인들은 이슬람 당국의 허가없이 새 교회건물을 짓거나 개축 및 보수할 수 없었고 공적인 종교 행렬도 거행할 수도 없었다. 다만 오스만 제국시절의 경우, 밀레트(종교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은 가능했다. 그 외에도 쿠란에 기독교와 유대교 신자들에게 대한 차별 조항을 명시해 놓는 등 타 종교에게 마냥 관용적인 것은 절대 아니었다. 시대에 따라 차이가 많았지만, 결국 전체 역사적으로 볼때 중근동의 수만개의 타종교 교회나 시설들이 점진적으로 파괴당했다. 단적으로 생각해서 이슬람 전성기가 막 시작될 때만 해도 중근동 지역에 매우 많던 기독교 신자들이 지금은 소수를 빼면 다 어디갔는지 생각하면 답이 나온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따뜻한 관용'과 '관용의 상징인 견딜만한 세금'이 있었다면 절대 지금처럼 비이슬람 소수종교가 괴멸 수준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이에 대해서는 당시 타 지역보다는 그래도 상대적으로 처우가 괜찮았다는 반론도 존재하긴 한다. 밑의 단락 참조.) 타종교인들은 무슬림만 보이면 공손한 태도를 유지해야만 했고, 말을 타는 것조차도 금지되었다. (현대로 치면 타종교인은 자동차를 못타게 하는 수준이다.) 근대를 거치면서 이러한 가시적인 차별은 많이 사라지는 듯 했으나, 사실상 타종교에 대한 이슬람의 극심한 불관용은 많은 이슬람 국가들에서 현대에 와서도 현재진행형이며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소위 관용의 상징으로서 타 종교인에게 세금(지즈야)을 부과했다는 것도 타 종교인의 입장에서 보면 차별조항이다. 근데 이에 대해서는 이슬람측의 반론이 있는데, 이슬람은 다른 종교들에 비해 비교적 늦게 창시됐지만 급속히 전파되기 시작했다. 이 가장 큰 원동력은 (상대적으로)가벼운 세금이었다는 것. 당시 이슬람 정권은 25% 가량의 토지세를 내는 조건으로 사유재산을 인정했다. 개종자에겐 약 10%의 인두세를 추가로 면제해줬다. 이 같은 정책은 전쟁의 고통에 시달리던 주민들에게 ‘대량 개종’의 길을 열어줬다. 세금 부담을 피하기 위해 개종자가 너무 급증하자, 이슬람 정부는 한때 세수 확보를 위해 개종금지백서를 발효하기도 했다. 하지만 개종을 하지 않고 인두세를 포함해도 비잔틴제국이나 페르시아제국 등 과거 혹의 주변 비이슬람 국가들에게 착취당하던 세금에 비하면 그 액수가 가벼운 편이었으므로 이슬람이 이렇게 급속도로 널리 퍼져 자리매김 할 수 있었다.

즉, 결론적으로 이슬람의 관용이라는 것은 시대, 지도자, 사회에 따라 달랐다. 무굴 제국의 악바르 대제의 경우 당시 유럽에서 온 기독교 성직자가 "그건 좀 아니라고" 뒤에서 비판할 정도로 무신론자도 우대했다. 오스만 제국시기에도 주류 학파인 하나피파는 법정에서 짐미(이슬람의 보호를 받는, 즉 통치를 받는 기독교, 유대교 신자들)의 증언이 무슬림과 동일한 위력을 갖는다고 보았다. 반면에 샤피파와 말리키파는 짐미의 증언은 무슬림에 비해 1/2, 한발리파는 1/8의 효력을 갖는다고 주장했다.[30] 그러나 다른 종교들도 마찬가지지만, 이슬람 역시 역사적으로 힘이 있을 때면 주변국을 침공해 쓸어버리는 것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 했다. 이슬람 탄생 때부터 다신교도들과 무신론자들에 대해서는 가차 없었고, 조로아스터교 대학살을 자행한 적도 있으며, 초기 이슬람과 오스만 제국은 탄압의 강도가 장난 아니었다.

관용의 상징이라는 인두세를 종교를 가리지 않은 전 신민에게 거두려 하다가 이슬람 광신 세력의 반발로 작살난 나라도 있다. 바로 앞서 말한 그 무굴 제국. 그 전부터 국가 막장 테크를 충실하게 이행하고 있긴 했지만. 그리고 교인의 배교, 즉 개종 역시 매우 부정적인데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이다. 예를 들어 이란,사우디 아라비아,수단,알제리 등을 비롯해 일부 세속적인 국가들을 제외한 이슬람 국가들 거의 전부가 타 종교로의 개종을 죽을 죄로 보고 많은 무슬림들이 개종자는 죽어야 한다고 지금도 생각하고 개종자에게 가혹한 처벌조차 현재까지도 시행하고 있다. 개종 못할 거야 아마.

특이하게도 사제가 존재하지 않는다. 종교적으로는 신과 인간은 감히 만날 수 없다 생각하여[31] 그 사이를 연결해 줄 뭔가가 딱히 필요 없다 여기며, 이슬람이 주류인 지역에서 태어나면 부모님들이 알아서 관련 교육을 해주기 때문에 사제가 필요하지 않다. 때문에 무슬림은 전부 다 전도사사제가 될 수 있다. 다만 예배 인도 역할을 이맘이 하는데, 신도들은 이맘보다 예배를 먼저 거행해선 안되고 순서를 따라야 한다. 하지만 혼자서 예배를 할 때는 자기가 이맘이 되고, 가족이 함께 예배를 할 때는 제일 웃어른이 이맘이 되는등 굉장히 유연하다.

사실 엄밀히 따지면 이슬람 외에도 사제가 없는 종교가 몇 있긴 하다. 예를 들어 개신교는 만인사제설을 주장하기에 목사는 사제가 아니라 평신도로 분류된다. 이슬람의 경우 순니파는 예배시 일반 신도들 중 한 사람이 맡는 '이맘'이라는 사회자를 맡지만, 시아파에서의 '이맘'은 분파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은 준 예언자 수준의 의미를 갖는다. 율법 공부를 전문적으로 해서 경전 해석에 큰 영향을 주는 율법학자가 있긴 하지만, 이들 역시 이슬람에서는 평신도다. 무함마드와 같이 예언자는 신이 계시를 내리기 위해 일부러 파견한 경우가 있지만 무함마드를 마지막으로 사제가 없다는 게 명시되다 보니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같은 신 아래에서 평등성이 강조되어, 종교적인 문제라면 말단 직원이 사장에게 그래서는 안된다고 스스럼 없이 지적을 할 수도 있다. 심지어 노예가 왕에게 "이건 이슬람에 저촉됩니다!!"라고 비판하는 것이 허용될 정도였다. 그때문에 라마단 금식 등 종교적인 계율을 종교에 대한 신념을 떠나 남의 눈과 지적이 따가워서 잘 지키게 된 것이다.

하지만 조선의 유학자들이 당시 각 분야에서 미친 영향력과 마찬가지로, 이슬람 학자의 위치와 영향력은 성과 속이 통합되어 있는 이슬람의 특성상 오히려 많든 적든 정교분리가 이루어진 다른 종교문화권의 성직자보다 훨씬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즉, 종교 자체는 사제를 두지 않고 모두 평신도라고 할지 모르지만 실질적으로 이슬람 학자들의 권한은 다른 어느 종교 문화권보다도 막강하다. 한 예로, 사우디 아라비아의 경우 이슬람 율법이 헌법을 대신하고 있는 정교일치 국가이기 때문에 이슬람을 잘 아는 전문가들이 실질적으로 법을 만든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들이 어떻게 이슬람 교리를 해석하냐에 따라 국법이 시시때때로 바뀌기 때문에 이슬람 학자들의 영향력은 지대하다고 볼 수 있겠다. 또 한가지 예로, 일반 무슬림들과 이슬람 얘길 하다가 꾸란 구절을 두고 논란이 발생하면[32] 대개 자신들보다 더 잘 아는 이슬람 학자들의 책을 읽어보거나 만나서 얘길 해볼 것을 권하고 본인들은 더이상 논의를 거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다르게 말하면, 자기들은 권위있고 신망있는 이슬람 학자들의 해석을 따르겠다는 뜻이다.

사제가 없다는 특징은 초기 이슬람의 전파 양식이 상좌부 불교나 초기 기독교와 같은 문화적인 전파가 아닌 지배이념으로써 무력에 의한 정복 형태에 주로 의존하게 하였다. 한편 이러한 무력에 의한 전파 형태는 기독교 진영에서도 이슬람에 대한 반작용으로 발생하였고, 이는 스페인의 아메리카 진출 시기 유럽에 의해 똑같은 방식으로 응용되었다.

무슬림들은 5가지 의무를 지니게 되는데, 샤하다(신앙고백), 살라트(메카를 향해 매일 5차례씩 올리는 기도)[33], 자카트(자선기부), 사움(라마단 기간 해가 떠 있는 동안 금식하는 것. 그냥 '라마단'이라고도 한다), 핫지(일생에 한 번 메카성지순례를 떠나는 것)이다.

하루에 5번 이상 "라 일라하 일랄라, 무함마달 라술룰라"(알라 외에는 신적 존재가 없으며, 무함마드는 그분의 예언자다.)라고 증언하는 것을 신앙 고백이라고 하며, 이는 이슬람의 첫 번째 의무다.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가난한 유목민이나 노동자들도 샤하다는 빼놓지 않고 하고 있다고.

하루 5번의 예배(살라트) 시간은 해의 위치와 그림자의 길이를 기준으로 정해지기 때문에, 계절마다 예배 시간이 달라진다. 아랍인들이 시간 감각이 매우 무딘 편인데 시간 약속을 2시간 정도 늦는게 평균이다. 이는 아랍인들이 시간을 우리처럼 1시 2시 이렇게 24시각을 기준으로 계산하기 보다는 5번의 예배 시간에 맞춰서 시간을 계산하기 때문이다. n번째 예배 끝나고 보자고 하면 시간 약속을 잘 지키려나

자카트는 정기적으로 납부하는 구빈 희사세로 대개 순수익의 2.5%를 지불하며, 비슷한 개념으로 원하고 싶을 때 기부하는 사다까라는 기부 개념도 있다.

라마단은 1달 동안의 단식으로, 1달 내내 단식을 하면 사람이 당연히 죽으니까 해 뜰때부터 해 질 때까지 단식을 행한다. 대략 새벽 3시부터 저녁 7시 반까지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흡연하지도 못한다. 여담으로 《흡연의 문화사》라는 책을 보면 이란에서는 해가 지자마자 사람들이 제일 먼저 하는 것이 담배를 피는 것이었고, 나중에는 결국 이란의 유력한 이슬람 분파 시아파 내에서 라마단 중에 흡연을 해도 된다는 율법 해석이 나왔다. 자기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물론 시아파를 싫어하는 다른 아랍 나라에서는 이 일로 이란시아파를 엄청 비난했다.

핫지는 정해진 기간 동안 정해진 규칙을 거쳐 메카에서 순례를 하는 것으로써, 정해진 기간 이외에 다른 기간에 방문한 것은 소순례로만 인정된다. 현재 성지 순례의 기착지인 사우디 아라비아에서는 이슬람 인구 1,000명 당 순례자 1명으로 각 나라당 순례자를 제한하고 있다. 귀화인 포함 한국인 무슬림 15만명이고, 그중 순수 한국인 신자만 2만명이라고 사우디 아라비아에 잘못 보고된 덕택에, 한국에서 성지순례 가기는 굉장히 쉬운 편이다. 몇 년을 기다려야 하는 외국과 다르게 대한민국은 성지순례갈 신도가 없어서 못보내며, 덕분에 한국에 거주하는 이슬람 국가 재외국민들은 하지를 몇 번이고 다녀올 수 있다고 한다. 매년 갈 수 있는 한국이 좋은 나라라고…

단, 예외적으로 하지는 할 수 없는 사정이 있다면 안 해도 된다고 한다. 모든 신자가 매년 메카로 순례를 올 수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대부분 하려고 한다. 늦더라도 죽기 전에는 다들 하려고 하기 때문에 매년 수많은 순례 인파가 메카에 몰린다. 때문에 신종플루가 기승을 부렸던 때에는 개인 위생 문제 때문에 뉴스가 되기도 했었다.[34] 순례를 마치면 자기 이름 앞에 '하지'라는 호를 붙일 수 있고, 그 사람은 많은 존경을 받는다.[35]

그중 살라트에 관한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무함마드가 천국에 있는 동안 알라에게 한 가지 맹세를 했는데, '모든 무슬림들은 하루에 50번씩 기도를 드린다'라는 내용이었다. 뭔 깡으로 이런 맹세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옆에서 보고 있던 모세가 어이가 없었는지 "게으르고 건망증 심한 백성들이 그런걸 지킬 수 있을 것 같은가?"라고 태클을 걸어 다행히(?) 하루 50번 기도는 무산되었고, 무함마드는 신과의 협상을 통해 하루에 드리는 기도의 횟수를 지금과 같이 5번으로 줄였다. 이 글을 보는 무슬림이 있다면 모세(موسى)에게 감사하자. 하지만 우주정거장에서는 [하루에 80번으로 늘어난다] 카더라[36]

메카의 방향과 거리를 나타내주는 iOS, 안드로이드 어플도 나와있다. 한국인 무슬림이라면 참고하자.

4 이슬람 문화

4.1 이슬람의 성원과 예배

이슬람 성원은 아랍어로는 마스지드(مسجد)라고 하며 모스크(Mosque)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다. 보통은 성원 옆에 세면장이 있으며 예배 전에 '우두'라 불리는 세정의식을 하고 들어가게 한다. 우두는 얼굴, 입안, 귀, 콧속, 머리, 그리고 팔다리를 흐르는 물로 씻는 과정을 말하는데, '아흐다쓰'라는 불결함의 상태가 될 때에는 무조건 하루 5번 기도 전에 해야 된다. 이슬람에서 예배 전에 세정의식을 해야 되는 더러움의 조건이란 방귀[#], 소변, 를 만졌을 때[37], 여자와의 의도적이고 사심 있는 접촉, 흘림[38], 잠이 들었을 경우 등이다. 그 외 성관계 등을 하거나 금요일 정기 예배에 갈 때는 구쓸이라고 불리는 샤워를 무조건 해야 된다.[39] 그 외에도 아랍어 쿠란을 만지려면 위의 세정 의식을 해야 되고 생리 중인 여자는 맨 손으로 쿠란을 만지는 것도 안 된다. 다치거나 물이 귀하던지 해서 씻기가 힘드면 땨암뭄이라고 해서 돌이나 모래로 씻는 시늉만 해도 되긴 한다. 그래서 모스크엔 돌이 놓여져 있는 경우가 많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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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에서 일요일을 주일이라 부르며 교회에 예배를 드리거나 성당에 미사를 드리러 가고, 유대교에서는 토요일을 안식일이라 하여 아무 노동도 하지 않는다면, 이슬람에서는 금요일을 '주무아'라고 부르며 합동 예배를 시행한다. 이 예배는 금요일 오후 1시 즈음부터 이맘이 나와서 민바르라 불리는 나무 계단 위에 앉아서 교리나 일상생활 도덕과 관련한 훈화진짜 학창 시절 교장 선생님 훈화 비슷하게 듣다가 지겨워서 자는 사람도 볼 수 있다.를 경청한 뒤 예배를 근행하게 된다.

적어도 쿠르드인들은 성원에 예배할 때 복잡한 절차[40]를 생략하는 경우도 있었으며, 성원에 앉아서 노가리를 까건 말건 상관 안 하는 모습을 보였다. 다만, 예배 행위를 방해하는 데 대해서는 꽤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래도 전체적으로 남이 뭘 하건 상관 안 하는 분위기다.

어쨌든 성원 내부를 보면 정말 아무 것도 없다. 방석 비슷한 융단과 비치된 쿠란 뿐이다. 자세한 것은 모스크 문서 참조.

그 외에도 하루에 5번[41] 기도를 해야 하니 게으른 사람은 절대 못 할 종교 같지만, 아라비안 타임으로 약간은 봐준다. 만약 빠뜨릴 경우 바로 전에 예배를 합쳐서 더 예배를 보면 된다. 또한 금요일엔 여건이 된다면 반드시 합동 예배를 보아야 한다. 중요한 건 기도고, 이것만은 빼먹으면 안 된다. 굳이 사원이 아니라도 그냥 카펫[42] 하나 가지고 다니다가 길바닥에서 메카를 향해 절만 하면 되니까 다른 종교에 비해 예배를 올리는 장소를 찾을 필요가 없다.

하지만 이 기도 시간 동안 관공서까지 전부 쉬다 보니 말이 많아서 약식으로 대체하는 곳도 많다.

예배 방법은 먼저 얼굴과 손과 발을 깨끗이 씻는 것부터 시작하는데 이를 '우두[43]'라고 하며, 사막의 경우 깨끗한 모래로 씻어도 인정해준다.[44] 그 다음 쿠란의 제1장인 알 파티하(개경장)을 외우고, 정해진 순서에 따라 무릎을 꿇고 절하는 동작을 반복하는데 이 예배[45]는 몇 분만에 끝나는게 보통이다. 기독교 식으로 1~2시간씩 끌지 않는다. 금요예배에서는 이맘, 호자, 아야톨라 같은 예배를 인도하는 이가 설교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나마도 그리 길진 않은 편이다.

4.2 종교와 식품

금지된 음식은 '하람(haram)'음식이라고 하는데 이 '하람'이라는 말은 아랍어로 '금지'란 뜻이다.[46] 무슬림이 못 먹는 하람 식품으로는 돼지고기 뿐만 아니라 개고기, 및 맹금류의 고기와 병사한 동물의 고기가 있으며, 심지어는 사냥한 고기도 화살이나 총알로 잡은 동물의 고기는 먹을 수 없고, 오직 개나 매, 치타를 이용한 동물이 잡아서 물어온 동물의 고기만 먹을 수 있다.

이 하람에 관한 율법이 유대교와 비슷하면서도 약간 다른데 쉽게 설명하자면, 돼지고기를 금지하는 것은 유대교와 같지만 유대교의 경우에는 장어미꾸라지 같이 비늘이 없는 물고기와 해초, 토끼고기와 낙타고기, 고기의 상체를 제외한 하체부분을 전부 못 먹는다. 참고로 이란의 주류인 시아파는 비늘이 없는 해산물 즉, 오징어, 문어 등도 먹지 않는다. 단, 새우같은 갑각류는 먹을수 있다.

반면 이슬람에서는 해산물은 비늘이 없는 생선은 먹을 수 없으며 채소와 농산물은 모두 허용. 고기는 상체만 먹고 하체는 못 먹는 식의 율법은 없다. 구분 영역이 생기는 부분은 오직 날짐승과 들짐승 고기로, 무슬림이 이슬람식으로 도축한 고기가 아니면 먹지 못한다. 즉 돼지를 제외한 소, 닭, 양, 염소의 고기라도 이슬람 도축법에 의해 도축되지 않았을 경우 돼지고기랑 똑같이 금지사항이라는 것. 비이슬람지역에 사는 무슬림들은 도대체 뭘 먹으라고 풀이랑 과일만 먹고 살아야되나 때문에 이슬람의 세력이 작게나마라도 있는 나라에는 거의 항상 할랄 푸드를 다루는 가게가 있다. 이태원 이슬람 성원 옆에도 할랄 육류 판매점이 있다.

그리고 유명한 이슬람 관련 음식금기로 '금주'가 있다. 사실상 세계 주요종교 중 가장 강력하게 음주를 철저히 금지하는 걸로 유명한데, 과 관련하여 쿠란에서는 세 가지 계시가 나와있다.

첫 번째 계시는

사람들이 너희에게 술과 도박에 대해서 물으면 다음과 같이 말하라. '이는 커다란 죄악으로서, 약간의 좋은 점도 없진 않다. 그러나 그 해악은 그 이익보다도 훨씬 크다'라고 (쿠란 2:219)
두 번째 계시는 술취한 상태에서 예배드리지 말라는 계시로서
그대 신앙인들이여. 정신이 흐려진 상태에서는 예배드리지 마라. 적어도 스스로 한 말을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는 (쿠란 4:43에서 발췌)
세 번째 계시는
그대 신앙인들이여. 취하게 만드는 것과 도박하는 것, 돌들(을 우상으로 숭배하는 것), 화살(을 이용해서 점을 치는 것), 그리고 맹목적인 증오는 사탄의 작품이다. 이러한 것들을 멀리한다면 너희는 번영하게 될 것이다. (쿠란 5:90)
로서 생각보다는 간접적인 금지 문구를 담고 있다. 물론 무슬림 중에는 이를 아전인수로 생까고 농담 반 진담 반 "그래 번영 안해도 돼" 하고 마시는 사람이 적지는 않다.

술은 어느 정도 풀어주는 나라도 있지만, 돼지고기는 기피 정도가 아니라 아예 못먹는다. 물론, 사막 한 가운데서 남은 음식이 돼지고기밖에 없는 경우와 같이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먹어도 된다고 이슬람계의 공식적인 율법 해석이 있다. 단 나중에 회개 기도를 올릴 것[47]. 이 때문에 한국의 음식은 이슬람 사람들에게 맞지 않을 때가 많다. 혹시 친구가 무슬림일 경우 먹어도 되는 음식인지 꼭 사전에 확인해 보는 것이 좋다.[48]

다만 한국이나 무슬림이 소수인 나라에 사는 무슬림들 대부분은 돼지고기나 하람 음식을 먹는다. 안먹으면 한국 사람들과 부대끼는데 무리가 있기도 하거니와, 구할수 있는 게 이거밖에 없잖아!!! 라고 하소연하기도 한다. 특히 개방적인 터키북아프리카 무슬림들은 드러내놓고 술과 삼겹살을 먹는다. 그 밖에도 규율을 엄격하게 지키는 지역에서도 가끔 약용이라는 명목으로 술을 마시는 일도 드물게나마 있다는 등 반드시 엄격하게 지켜지지는 않는 모양이다. 사실 술에 대해서는 그 엄격하다는 사우디 아라비아 출신들도 할 말은 없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외국에 나와서 술 마시는 경우는 정말로 많다.

술을 금지했기 때문에 아랍 반도 근방의 술 조제 기술은 상당히 쇠퇴해 버렸다. 그러나 의료용 알콜[49]을 얻기 위해 술을 증류하는 기법은 발달 했으며, 이 증류기술이 서구로 전파되어 브랜디, 위스키, 보드카 같은 증류주가 등장하는 아이러니가 연출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 술 문제 때문에 커피를 무지하게 타먹었다고 한다.[50]

또한 널리 알려진 것 중 '단식' 문화인 '라마단'도 있다. 이 라마단은 이슬람력으로 9월을 의미한다.[51] 하지만 단식이라고 해서 아예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먹는 건 아니다.[52] 단식해야 하는 시간은 이른 새벽부터 해가 완전히 떨어질 때까지의 약 12시간 정도. 이 시간 동안에는 음식이나 음료수 등을 일체 섭취하지 말아야 하고, 흡연도 피해야 한다. 하지만 해가 완전히 떨어지고 나면 정말로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차려 먹는다. 이것을 이프타르라고 부르는데, 비무슬림도 이 때는 꽤 배불리 얻어먹을 수 있다. 해가 완전히 떨어지기 직전 부터 약 1-2시간 정도 정말 거리가 텅 빈다. 왕복 8차선 차도에 차가 한대도 없다.

그래서인지 이 기간 동안은 다들 살이 빠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찐다고 한다.[53][54]

라마단 기간에 터키에 놀러가면 야시장이 굉장히 볼만하다고 한다. 다만 좀 빡빡한 중동권 국가들은 라마단 기간에 여행온 신혼부부에게 '사람들 눈에 띄니까 식사하려면 화장실에서 하라'고 한다나. 변소식??? 물론 이것도 사람에 따라 달라서 저런 나라에서도 좀 봐주는 이도 있다. 라마단 기간 중 이집트를 여행하던 어느 여행자는 이집트인 친구가 낮에 거침없이 밥먹는 걸 보기도 했다고.

2015. 9월의 유럽 난민 사태 때 헝가리를 지나는 시리아 난민들에게 준 식량에 돼지고기가 들어있다고 버리고 간 사진이 공개되어, 비이슬람권 사람들 사이에서 논란이 있었다.[55]

4.3 이슬람에서의 성관념

이슬람에서 여성만 성적으로 방종하지 않아야 한다고 아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실 쿠란은 남자도 성적으로 방종하지 않아야 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야동이나 자위 같은 행위는 결혼하지 않은 사람 이외에는 사실상 금지되어 있다. 하지만 이는 무슬림 남성과 무슬리마 사이에 한해서이다. 무슬림이 아닌 여성, 즉 타종교인이나 무종교인 여성과의 성적인 관계는 샤리아에서 허용한다. 이유인즉슨 샤리아법에서는 비무슬리마를 동등한 위치의 인간으로 보지 않기 때문. 그러나 그러면서 무슬리마들에겐 비무슬림 남성과 결혼하면 샤리아로 처벌하고 박해하는 등 극단적인 수준의 금욕주의를 종교/문화적으로 강요해서 이 점에서 극심한 비판을 받기도 한다.

초창기 이슬람, 즉 9~14세기의 이슬람 세계만 해도 동성애에 관해서 타 문화권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관대하였다.[56] 샤리아법에 동성애는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대놓고는 못하지만, 동성애를 해도 거의 처벌을 받지 않고 쉬쉬하는 분위기였으며 상류층의 경우에는 동성 애인을 갖는게 유행이기도 했다.

그러나 18~19세기 이슬람 근본주의의 대두와 함께 배척받고 처벌받기 시작했다. 현재 들어와서는 자유주의의 확대로 비교적 처벌이 느슨해져 요르단, 터키등 몇몇 세속 국가에서는 처벌을 하지 않지만 아직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파키스탄을 비롯한 많은 이슬람 국가들에서는 심각한 사회적 터부 내지는 중범죄로 감옥행이고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극단주의 국가 에서는 채찍형에 처한다. 간통까지 했을 경우에는 사형이다. 이란에서는 국가 주도로 투석형까지 시행했을 정도.

4.4 이슬람에서의 여성인권

남성은 여성의 보호자라 이는 하나님께서 여성들보다 강한 힘을 주었기 때문이라 남성은 여성을 그들의 모든 수단으로써 부양하나니 건전한 여성은 헌신적으로 남성을 따를 것이며 남성이 부재시 남편의 명예와 자신의 순결을 보호할 것이라 순종치 아니하고 품행이 단정치 못하다고 생각 되는 여성에게는 먼저 충고를 하고 그 다음으로는 잠자리를 같이 하지 말 것이며 셋째로는 때려 줄 것이라[57][58] 그러나 다시 순종할 경우는 그들에게 해로운 어떠한 수단도 강구하지 말라 진실로 하나님은 가장 위대하시니라 <파하드 국왕 쿠란 출판청에서 쓴 '성 쿠란 의미의 한국어 번역' 4장 34절. 마침표는 원문에도 없음.>

이슬람은 역사적으로는 과거 아랍 및 이슬람 전파지역의 인습에 비해 상대적으로 여성의 권리를 상대적으로는 존중했던 편이'었'다고 한다.[59] 하지만 근대를 지나면서 현대에는 여성을 혹독하게 차별한다는 논란을 받고 있다.

꾸란 4:3 만일 너희들이 고아에게 공정하지 못할 것같이 생각되면 누군가 마음에 드는 두 명, 세 명, 네 명의 여자와 결혼해도 좋다. 만일 공평하지 못한 생각이 들게 된다면 한 명으로 하든가 너의 오른손에 소유하고 있는 것[60]으로 하라. 그러는 것이 불공평하게 될 염려가 없다.
꾸란 4:34 남자는 여자보다 우위에 있다. 알라께서 서로간의 사이에 우열을 붙인 것으로서 또한 남자가 생활에 필요한 돈을 대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점에서 남자가 여자보다 우위에 있으며 따라서 정숙한 여자는 남자에게 순종하고 또 알라께서 소중하게 지켜주는 부부간의 비밀을 타인에게 알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반항적으로 되기 쉬운 걱정이 있는 여자는 잘 타이르며 잠자리에 방치에 두고 또 구타해도 무방하다. 만일 그녀들이 타이르는 말을 듣는다면 그 이상의 수단을 써서는 안된다.
꾸란 4:43 믿는 자들이여, 너희가 아프거나 여행 중 일 때 화장실에서 돌아왔을 때, 여성을 만졌을 때 물을 발견하지 못했을 때는 깨끗한 흙위에 따이얌뭄(이슬람식 세정의식)을 하고 너희 얼굴과 양손을 문질러 깨끗이 하라.[61]
꾸란 33:59 오오, 예언자여, 그대의 아내와 딸과 신자들의 아내에게 ‘외투로 몸을 감추어라’라고 말하라.

이를 토대로 현실에서 적용되는 샤리아 율법에서도 아내 구타를 포함한 명백한 성차별을 규정하기도 한다. 일단 이론적으로는 위의 조항들은 확인할 수 있듯이 여성에 비해 우월한 육체적 조건을 이용하여 여성을 부양하는 반대급부로서의 권리 보장이며, 여성이 남성에 헌신하는 것도 이러한 남성의 역할에 대한 보답 형태라고 경전에 규정되어 있긴 하다. 그리고 심지어 그중에는 여성에 대한 폭력을 정당화한다는 대목까지 있어 타 종교로부터의 비난 대상이 됨은 물론, 무슬림끼리도 견해가 갈리는 등 항상 논란의 대상이 된다. [아내를 때릴 때에도 에티켓이 있다는 동영상]도 참조.

경전 상에 이와 같은 차별 조항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슬람은 오히려 아라비아 반도 지역의 여성 인권을 크게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다. 여성에 대한 차별은 이슬람 교리 이전부터 중동지방의 민족전통이었다.[62][63] 이슬람 이전에는 여성은 남성 소유의 물건 정도의 취급을 받았고, 남성은 재력이 허용하는 한 아내를 원하는 만큼 거느릴 수 있었다. 이를 무함마드가 "너희는 그 많은 아내들을 모두 만족시켜주지 못할 것이다"라며 4명까지로 제한하자 아라비아 귀족들이나 부유층들은 불만을 가지고 이슬람에 반대하는 경우도 꽤 많았다.[64] 그 밖에도 쿠란 4장의 니싸아에서 결혼시 지참금 지급, 재산상속, 분명한 죄를 저지르지 않으면 학대 금지, 아내 편애 금지,[65] 여성을 간음죄로 고발 시 4명의 증인 필요 등 여러 구절을 통해 여성의 지위를 보장하였고, 심지어 이를 지키지 못할 거면 결혼을 하지 말라고까지 못박아뒀다. 히잡 등 현대에는 비난을 받는 여성 옷차림도 당시 기준으론 무슬리마 여성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견해가 많다.

자, 잘 생각해보자. 현대로 나아가며 과학과 학문이 발전할수록 인간들은 이성과 두뇌를 활용해야한다는 믿음을 강화한다. 현대에 비교하여 당시에는 전사, 즉 남성의 몸을 가진 이들만이 약육강식의 강자였다. 그러나 현대로 오며 육체적인 폭력이 제한됨과 동시에 사람들은 육체의 힘이 아닌 두뇌의 힘을 활용하는 것에 집중하기 시작하고, 이에 따라 여성의 인권의 부분이 크게 성장하였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옛날 옛적, 전사들의 전쟁이 숱하던 당시 육체가 남성에 비해 약한 여성들은 부속품이나 동물 취급을 당해도 이상하지 않았고, 쿠란에 명시되어 있는 것들은 그 당시 여성의 인권을 한 단계나마 끌어올리고자 노력했다고 봐야 한다. 1단계에서 2단계로 뛰는 것은 비교적 타협이 가능하지만, 1단계에서 갑자기 4단계로 뛸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만일 한 여성이 남편으로부터 학대와 내버림으로 두려워 할 때 그 둘 사이에 화해를 시킴은 죄악이 아니니 화해가 최선이라 비록 남성의 물심에 의한 것이라도 그러하니라 그러나 너희가 선과 정의를 실천한다면 하느님은 너희가 행하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시니라 <4장 128절>

7차 십자군 전쟁때 이집트에서는 여성 술탄 샤자르 알 두르가 즉위하여 아이유브 왕조를 청산하고 맘루크 시대를 열기도 했었다. 샤자르 알 두르의 즉위 시기는 80일로 극히 짧았는데 이는 7차 십자군 전쟁중 남편이던 원 술탄이 병사하자 병사의 사기를 고려해 그의 죽음을 숨긴채 대리 정치를 행한 것. 이에 대해 논란의 여지가 있긴 하지만 그녀를 기준으로 아이유브 왕조가 끝나고 맘루크시대가 열렸으며 학자에 따라선 그녀가 맘루크 시대의 첫번째 술탄이라 평가하기도 한다. 실제로 술탄의 권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성 인권 문제가 제대로 해동되기 시작한 현대에 와서는 이슬람의 교리가 오히려 여성의 권리를 억압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는 여성의 권리를 보장하고자 한 제도들의 진정한 의미를 외면한 채 남성 이슬람 학자들이 "경전에 명시된 것이 여성에 대한 권리의 전부"라고 왜곡한 데에서 비롯되었다.[66] 이로 인해 과거에 혁신적이었던 여성 보호 조치들의 시대와 동떨어지게 된 요소들을 현대사회에서 그대로 적용함에 따라 오히려 여성차별적인 요소로 바뀌었다. 일부다처제히잡이 여성을 보호하기 위해 도입한 시스템이라도 현 시대에 그것을 원하지 않는 여성에게 강요로 다가오고, 자유로운 행동권과 인권을 제약한다면(그리고 많은 지역에서 실제로 그렇기도 하고) 아름다운 이슬람 전통이니 뭐니 어떤 변명을 하든 그것은 결국 여성차별이다.

특히 샤리아 정교일치 체제인 이슬람 국가에서는 국법 자체에 이러한 여성차별적 요소들이 포함되기 때문에 이슬람 외부에서 볼 때는 여성 인권에 대해 큰 비판과 우려를 가지고 있다. 사실 근본주의가 대세인 이슬람 주류 대중에게 씨알도 안먹혀서 그렇치 여성의 권리부분을 재해석하는 학파들이나 학자들도 존재는 하며, 이슬람 페미니즘도 있지만 이들의 목소리는 정치와 주류 사회에 큰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슬람 근본주의는 종종 여성에 대한 인권 침해가 다른 문화권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지경으로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나서 문제가 되고 있다. 명예살인의 경우 [2010년 명예살인의 세계적 추세 연구]에 따르면 현재는 그 수가 더욱 증가하고 국가별로 제대로 집계도 되지 않아 신뢰할 수 있는 추산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그 전까지(2000년도 UN 추산) 1년에 무려 약 5천명의 무슬리마들이 이슬람과 가부장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이유로 살해당했으며[67] 전 세계 명예살인의 90%가 무슬림들의 소행이었다.

애초에 인권이 뭐고, 민주주의가 뭐고, 평등이 뭐고, 생명 존중 사상이 뭔지를 알면 악습이 줄어들겠지만 이런 상식적, 인권적인 관점조차 서구 세력의 반이슬람 사상으로 여기는 이슬람 근본주의 무슬림이 많기 때문에 현실은 안습 그 자체다. 당장 무슬림 여성들조차 쿠란은 남성의 길과 여성의 길을 딱딱 나눠서 가르치고 있으니 쿠란의 가르침대로만 살아야 하며 서구 문화에 물든 남녀평등운동이나 페미니스트들의 선동에 놀아나지 말라고 주장하는 답이 없는 상황이 계속 심해지고 있다. 다만, 세속적인 국가에서 비무슬림 가정에서 자라다가 테러조직 가담이 아닌 정상적인 신앙 활동을 위해 이슬람으로 개종한 사람의 경우 어릴 때 국가에서 받은 세속주의적 교육에 의해 자기 스스로 교리와 현실의 차이를 인식하여 개방적인 인식을 보인다. 한 한국인 무슬림 위키니트의 증언에 의하면 전근대적인 이슬람권에서 자란 무슬림보다는 비무슬림인 한국인과 사상적으로 훨씬 더 동질성을 느낀다고 한다.

[2009년부터 2011년까지 진행된 갤럽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샤리아를 실정법으로 반영해야 하는지 여부를 묻는 질문에 대한 찬반 비율이 국가마다 차이는 있지만 남녀간의 차이는 크지 않아, 무슬리마는 샤리아로 인해 특별히 차별을 받고 있지 않다고 인식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갤럽은 이를 통해 무슬림의 여성 인권에 대한 태도는 생활 수준이나 취업률 등 경제적, 사회적 요인이 더 큰 영향을 끼친다고 결론을 내렸다. 또한 여성이 먼저 이혼을 요청할 권리를 허용해야 하는지 질문에 대해 응답자의 여성 인권에 대한 견해에 종교가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응답한 쪽은 찬반 의견이 5:5였으나 종교가 영향을 끼친다고 응답한 쪽은 7:3으로 나와, 대다수 무슬림들은 이슬람 교리에 따른 가치판단을 하는 사람이 보다 여성 인권을 보장한다고 보고 있었다. 그러나 이 설문조사는 방식이 잘못되었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종교가 가치판단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대답한 사람은 실제로는 자기 스스로의 가치관과 종교 사이의 갈등을 겪지 않은 사람(즉 자기네 사고방식 자체가 이미 이슬람 및 남존여비적인 문화에 젖어있어 이슬람이 여성차별적이라는 명백한 사실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려 하는 사람)일 가능성이 매우 많기 때문이다. 무슬리마들 : 나의 이슬람은 그렇지 않아

[2015년 3월 발표된 여성 인권에 대한 UN 보고서]에서도 이슬람 국가와 비이슬람 국가에서 발생하는 각종 사례들을 나열하며 극단주의와 보수주의의 대두가 여성 인권의 장애라고 명시하였고, 이를 인용한 많은 기사가 "이슬람이 아닌"이라는 설명을 제목에 달았다. 여성 인권 침해는 어디에나 존재하며그러한 침해 행위를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을 무마하기 위한 핑계거리를 마련하는데, 그 핑계가 어디에서는 게임이나 동영상이고 이슬람권에서는 쿠란이라는 차이일 뿐이다. 결국 문제는 이슬람 자체가 만악의 근원라기보다는 전근대적인 남성 우월주위에 기반한 악습에 따라 극단적인 행동을 벌인 뒤 종교를 정당화 수단으로 악용하는 쓰레기같은 무슬림 남성들과 이들에게 면죄부를 부여하는 기득권 종교지도자들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것도 친이슬람적인 면피성 변명에 가까운 것이, 무슬림들은 흔히 이슬람 이외에도 힌두교도, 시크교도 등도 명예살인을 저지르며, 이런 사실들을 이용해 명예살인과 여성차별은 이슬람의 자체적 문제보다는 문화적 문제로 간주된다고 주장하지만 다른 종교인들보다 무슬림이 저지르는 명예살인과 여성인권탄압이 훨씬 빈번하고 조직적이며, 악랄한 것이 진실이다. 거기다 더해 이슬람 종교 교리가 현대적인 가치관을 차단함으로 인해 세계의 엄청나게 많은 지역에서 이러한 여성차별과 학대를 개선하기는 커녕 더욱 심화시키고, 개선할 여지조차도 말살하는 이념적 기능을 수행한다는 사실[68], 그리고 배교자에 대한 사형을 명문화함으로서 명예살인 사건 중 상당수의 원인을 제공한다는 어두운 사실은 철저히 회피한다.[69] 또 이들은 심지어 명예살인을 전통을 지키기 위한 효과적인 수단이나 심지어는 필수적인 행위로 여기기도 한다.

결론적으로, 이슬람 이전부터 그랬든 아니든 간에 21세기 현재 이슬람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가 지극히 낮은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아랍권 민주화 운동에서 여성들이 큰 활약을 하면서 이들의 발언권이 어느정도 커졌고 덕분에 여권 신장이 느리게나마 진행되고 있지만, 민주화 이후 사회 혼란을 틈타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이 뿌리를 내리는 지역이 많아지는데다가, 진작에 깊게 뿌리 내린 견고한 남존여비, 이슬람 근본주의의 벽은 쉽게 깨지지 않고 있어 한숨을 내쉬게 한다. [이집트 새 헌법, 여성 권리 제한 논란 (연합)]

성평등의식에 대한 영국의 여론조사에서, 알제리 등을 비롯한 중동 지역의 이슬람권이 지구상에서 가장 여성 인권이 억압된 지역으로 나타났다.[기사]

4.4.1 여성 인권을 강조하는 이슬람 일파 및 조직

비록 주류 이슬람에서 이단취급당하는 소수이지만, 이슬람권에서도 여성 인권을 강조하며 여성에 대한 교육을 강조한 지도자도 있다. 대표적으로 아프가니스탄의 무자헤딘 지휘관이였던 아흐마드 샤 마수드와 터키의 초대 대통령 케말 아타튀르크, 전 알제리 대통령이었던 후아리 부메디엔 등...

헤즈볼라의 경우 장교급 간부 중에는 여성도 있으며[70], 헤즈볼라 여군들이 니캅 같은 베일을 입고 쓰는 것도 개인의 선택으로 존중한다고. 헤즈볼라 소속의 여성 정치인도 있다. 이 때문에 다에시알 카에다같은 많은 극단주의 조직과는 대단히 사이가 좋지 않다. 애초에 종파부터가 다르기도 하고...

드루즈파 - 일부다처제가 금지되어 있고 여성의 지위가 남성과 동등하다. 단, 이걸 가지고 여성을 존중하는 이슬람 일파 운운하기가 뭐한 것이 절대 다수 무슬림들은 드루즈파를 아예 다른 종교로 보지 같은 이슬람으로 치지 않는다.

알레비파 - 일단 히잡을 강요하지 않으며 예배랑 축제 때 남녀가 동석하여 같이 노래하고 춤춘다. 또 소수 종파인 특성상 생존을 위해 기독교 세력과의 연합 및 서구의 세속주의를 많이 받아들여 상대적으로 여성 인권이 굉장히 높다. 기성 주류 이슬람에서는 아예 상상도 못할 일.

이외에도 이슬람 사회주의[71], 터키 등지에 많은 세속주의 무슬림들이 있다. 대체로 석유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낮을수록 여성의 위상이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 자원의 이득 없이도 국가 경제를 꾸려나가야 하므로 여성의 사회 참여 기회도 늘어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4.5 남성의 할례(포경수술)

이슬람이 주류인 국가를 보면 대부분의 남성이 할례를 많이 받는다. 허나 이슬람의 경전인 쿠란(أَلْقُرآن)에는 할례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이에 따라 수니파의 일종인 하나피파와 수니파시아파도 아닌 쿠란파에서는 할례를 실시하지 않는다. [이렇게 날 때부터 무슬림이었는데 할례를 안 한 경우도 있으며] [이슬람으로 개종할 때에도 할례는 의무 사항이 아니다.] 하지만 이건 일부 무슬림의 경우이며 시아파(شيعة)에서는 할례가 의무이다. 한편 사우디아라비아와하브파 꼴통 율법학자들은 할례가 의무라고 지껄이는데 이들은 하디스에 나온 여성할례 관련구절을 언급하며 여성할례마저도 신성한 이슬람적 의식이라고 찬양하고 다니기 때문에[72] 판단은 독자들이 알아서 하기 바란다.

한편 인간의 말씀인 하디스나 순나가 다 필요 없고 신의 말씀인 쿠란만이 옳다고 믿는 쿠란파(قرآنيون)들은 할례가 쿠란에 나와있지 않기 때문에 할례를 매우 싫어한다.[#] 쿠란파들은 할례가 하나님이 만드신 사람의 몸을 훼손하는 행동으로 간주하여 자기 자식들에게 할례를 절대로 시키지 않는다.[#]

4.6 민속 이슬람

사실 이전에도 언급했지만, 이슬람이 다수를 차지하는 국가, 공동체의 문화는 결코 단 하나의 동일체가 아니다. 많은 무슬림들이 무함마드 시절의 이슬람 공동체(=움마)를 이상향으로 여기고, 본받아야 할 모범으로 여기는건 사실이지만, 당장 민족감정이나 지역감정, 부족감정도 심하기 때문. 심지어 학파에 따라 율법을 적용하는 방법이나 기준도 전부 다르기 때문에 어찌보면 당연한 귀결이다.

여기에 현지의 토착관습과 이슬람 교리가 융합하면서 실제 현지인들의 종교관은 쿠란, 하디스를 중심으로 하는 소위 제도권 이슬람과는 영 딴판으로 변했다. 이를테면 아이를 잉태하면 무함마드에게(...) 아기의 순탄한 출산과 산모의 건강을 비는 우즈베키스탄의 전통이나, 쿠란을 아무 페이지나 넘겨서 거기 나온 구절에 따라 점을 치는 풍습, 터키를 비롯한 레벤트 지방에 널리 퍼져있는 푸른색 눈모양의 부적(나자르본주), 신비한 숫자와 글자를 종이에 적어서 만드는 부적(무스카) 등은 이슬람 율법학자들이나 지하디스트들이 없애고자 애를 쓰는 '민속이슬람'이다. 즉 이론과 실재는 이 바닥에서도 구분된다. 당연하지 여기도 사람사는 동넨데 어떤 풍습들은 "얘네 무슬림 맞아?" 싶을 정도로 이질적이라 학자들의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들도 있다. [자세히 보기]

심지어 인도네시아에는 이슬람식 무당인 [빠왕(20:30초 부터)]도 있다. 정확히는 퇴마사에 가까운듯 보인다. 이런 걸 율법학자들이 보면 게거품을 물듯

4.7 종교 용어의 차이

이슬람에서는 무함마드 시절의 아랍어인 '푸스하'만을 예배용어로 사용한다. 하지만 애초에 아랍 문자의 특성상 모음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는 구분이 어렵기도 하고, 시대가 흐르면서 아랍어 음운도 지방에 따라 매우 이질적으로 변했기 때문에 실제로는 꽤 크게 차이가 난다. 특히 과거 페르시아 문화권이었던 이란과 페르시아를 통해 이슬람을 받아들인 터키, 위구르, 중앙아시아 국가들에서 통용되는 종교용어는 아랍과 비교했을때 매우 차이가 크다. 개중 간단한 것들만 나열하자면 다음과 같다.

한국어 의미표준 아랍어페르시아어터키어
예배Ṣalāt(살라트)Namâz(나머즈)Namaz(나마즈)
예언자Rasūlullāh(라술룰라)Peyqambar(페이감바르)Peygamber(페이감베르)
세정Wuḍūʼ(우두)Âbdast(업다스트)Abdest(압데스트)
라마단Ramaḍān(라마단)Ramazân(라마전)Ramazan(라마잔)
희생Aḍḥā(아드하)Qorbân(고르번)Kurban(쿠르반)응?[73]
축일ʿĪd(에이드)Eyd(에이드)Bayram(바이람)
신앙고백Šahāda(샤하다)Šahâdat(샤허다트)Kelime-i Şehadet(켈리메이 셰하뎃)
아침기도Fajr(파즈르)Sobh(소브)Sabah(싸바흐)
정오기도Ẓuhr(주흐르)Zohr(조르)Öğle(외을레)
오후기도ʿAṣr(아스르)Asr(아스르)İkindi(이킨디)
일몰기도Maġrib(마그립)Mağreb(마그레브)Akşam(악샴)
밤기도ʿIšāʾ(이샤)Ešâ(에셔)Yatsı(야트스)
모스크Masjid(메스지드)Masjed(마스제드)Cami(자미)

5 다른 문화권이나 종교와의 관계

꾸란 3:56 불신자들이여 내가 너희에게 현세와 내세에서 가혹한 징벌을 내릴 것이라. 그러나 그들은 구원자를 찾지 못할 것이라.
꾸란 3:61 그대에게 지식이 이른 후에도 예수(의 신성)에 관하여 논쟁하는 자가 있다면, 거짓말 하는 자들 위에 알라의 벌이 있게 하여 달라고 주님께 기도하라.
꾸란 3:118 믿는 자들이여 불신자를 친구로 택하지 말라. 그들은 너희를 해치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아니하며 그들은 단지 너희가 파괴되기를 바랄 뿐이라. 그들의 입들에서 증오가 발산되며 그들의 마음은 더욱 사악하도다.
꾸란 5:57믿는 자들이여 너희의 종교를 조롱하고 희롱하는 자들을 친구로 삼지 말라. 이들은 너희 이전에 성서를 받은 자들로 믿음을 배반했노라 너희가 믿는 자라면 알라만을 두려워하라.
꾸란 5:72 알라는 마리아의 아들 메시아일 뿐이라 말하니 그들은 분명 불신자들이라.
꾸란 5:73 알라가 셋 중의 하나라고 말하는 그들은 분명 불신자들이라. 알라 한 분 외에는 신이 없거늘 만일 그들이 말하는 것을 단념하지 않는다면 믿지 아니한 그들에게 고통스러운 벌이 내릴 것이라.

기독교보다 뒤에 나온 종교로서, 기독교유대교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기에 실제로 기독교의 구/신약 성경의 일부를 차용하기도 하고, 예수무함마드 바로 이전의 예언자로 인정하는 등 유사점이 많다. 그러나 이슬람 교리에서는 기독교인과 유대인을 이슬람의 진리를 곡해하는 쉬르크(우상숭배자)인 '성서의 백성들(People of the Book)'이라고 하며 특별한 대우를 하라고 한다.아예 완전배척의 대상인 다신교도보다는 조금 낫다는게 함정

또한 소위 이슬람의 '관용'이라고 불리는 것들은 이슬람이 상대적으로 소수파였을 때 피정복지의 주민들을 다스리기 위한 것이었고, 이슬람 통치가 완벽하게 확고해진 이후(대략 무함마드 사후 200년 정도부터)에는 관용이 필요하지 않았다. 무함마드는 소위 '성서의 백성들'을 존중하라고 했으나 당시 사람들은 별로 지키지 않아서 이교도에 대한 강제 개종과 탄압, 학살이 이어졌다. 세금 우대 정책이라는 것도 반대로 말하면 이교도에게는 세금 폭탄이라는 뜻이다. 즉, 이슬람이 관용의 종교라는 것은 중세시대 다른 국가에 비해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것이지 순전히 필요에 의한 엄격하게 제한된 관용을 베푼다는 것. 실제로 역사를 보면 이슬람 세력이 위축될 때에는 타 종교에 대한 탄압이 약화되고, 강성해질 때에는 강화되는 고무줄 현상이 빈번하게 나타난다.

무슬림들은 비무슬림군에 군대를 파견하고 이들에게 무함마드의 세 가지 선택, 즉 개종/복종/죽음을 제시했다. 딤미[74] 신분 피정복민들이 가장 많이 개종하였는데, 이슬람만이 생존의 길이었기 때문이다. 딤미에 대한 약탈을 감안한다면 그들 중 다수가 이슬람으로 개종한 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오늘날 다수의 무슬림들은 이슬람은 강요에 의한 개종은 금지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이슬람이 무력에 의해 전파되지 않았음을 강력히 주장한다. 이는 분명 맞는 말이다. 무력에 의해 전파된 것은 이슬람 체제의 정치적, 사회적 헤게모니이다.[75] 이슬람으로의 개종은 이슬람 체제가 전파된 뒤 (기독교도와 유대교도들이) 비참한 삶을 견디지 못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76]
그리고 소위 경전의 백성들이라 한 기독교와 유대교 한정으로 '관용'을 베풀었던 시기에도 교회나 시나고그(유대 회당) 신축을 금지하거나, 기독교 교회나 성당인데도 십자가를 못걸게 하고(!) 종교 행렬도 금지했으며, 기독교인과 유대인의 집은 무슬림의 집보다 크게 못짓게 하고, 말과 노새를 타는게 금지된 기독교도들과 유대교도들은 무슬림들의 앞에서 굴욕감을 느끼라는 목적으로 여자들이 타는 모양새로 당나귀만을 타야 했다.

기독교도들과 유대교도들은 관리도 못되었으며(사실상 권력 자체를 박탈당함) 무슬림보다 낮은 지위를 상징하는 터번이나 허리띠를 강제로 두르고 다녀야 했다. 거리나 목욕탕 등지에서는 무슬림과 기독교인/유대인들이 마주치면, 아무리 신분이 낮은 무슬림일지라도 기독교인/유대인들이 먼저 길을 비켜주거나 공손히 절해야 했다. 또한 법정에서 '무슬림에 대한' 기독교인과 유대인의 증언은 효력이 무슬림보다 못하거나 아예 없었고 그나마도 증언이 무슬림에게 불리한 것이었다면 채택되지 않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가만 보고 있으면 이게 진정 무슬림들이 현대에까지 장황하게 설명하는 것처럼 '위대한 관용'의 발현인지 대단히 의심스러운 사례들이 많다. 이런 상황에서 샤리아로 비무슬림 여성과 무슬림 남성의 결혼은 허용하면서 무슬림 여성과 비무슬림 남성의 결혼은 사형이나 양육권 박탈[77]으로 처벌하는 극악스런 결혼 차별[78][79]에 종교 세금인 지즈야까지 강제했으니 결국 1400여년에 걸쳐 서서히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반강제로 이슬람화가 되어갈 수 밖에.

이슬람 치하든 기독교 치하든 소수파는 특정한 쓰임새가 있을 때, 혹은 관용을 베푸는 것이 정치적이나 경제적으로 이익이 되었을 때에만 관용되었을 뿐, 그렇지 않을 때는 철저하게 배격되었다. 위 항목에서도 서술되어 있는 바와 같이 이슬람 세계에서도 심심하면[80] 기독교인나 유대인 및 기타 비무슬림에대한 학살이나 추방, 노예화가 번번히 일어났다. 실제로 역사상 무슬림들은 이교도들의 영토를 점령하고 도시들을 함락하면서 무차별적인 약탈과 방화 그리고 학살을 자행했고, 이는 나중에 이슬람이 침략당하는 대상이 되었을 때 똑같이 보복되었다. 그리고 이는 십자군 전쟁 수백년 전에 발생한 일이다.

이슬람이 가장 심각하게 차별하는 대상은 무신론자. 하디스에 따라 인간은 종교를 가지고 있어서 짐승과 구분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무신론자들을 아예 인간으로 보지를 않으며, 많은 지역에서 관습상 무신론자는 마음대로 살해해도 아무런 죄가 되지 않는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로, 가장 서구색이 짙은 터키에서조차 무신론자를 뜻하는 'ateist'가 최고로 모욕적인 욕들 중에 하나로 쓰인다. 실제로 무슬림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터키중동지역의 나라에서 '한국인들은 절반이 종교가 없고, 일본인들은 대부분 무신론자다'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존재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중 TOP는 다음과 같다. "세상에, 그럼 그 사람들은 하늘에 뭐가 있다고 생각하는 거요?"

이 때문에 중동한국인 근로자들을 파견보낼 때, 근로자들의 종교는 일괄적으로 불교로 지정되었던 때도 있었다.[81] 물론 무슬림 중에서 무종교인에 좀더 개방적인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무슬림에게는 자신이 무신론자라면 가능한 한 자신이 무교라는 사실을 숨기는 것이 신상에 이롭다고는 하나 실상 이것도 국가에 다라 달라서 인도네시아처럼 1960년대까지는 무신론이 용인되다가 공산당에 대한 탄압으로 인해 조직적으로 박멸된 동네도 있고 공산주의 치하에 있었던 중앙아시아나 알발칸반도 지역에서는 무신론을 내세워도 딱히 죄가 되지 않는다. 즉, 케바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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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권 국가들의 종교의 자유 실태. 빨간색 국가들은 이슬람에서 타종교로 개종했을 경우 이유를 불문하고 무조건 사형에 처하는 국가들, 갈색 국가들은 개종했을 경우 징역형에 처해 감옥에 보내버리거나 무슬림 남성과 이교도 여성의 결혼을 금지하고 비무슬림의 양육권을 박탈해버리는 국가들, 주황색 국가들은 무슬림을 타종교로 개종시키는 것이 불법인 국가들이다.[82]터키 같은 특수한 세속 국가[83]나 중앙 아프리카의 일부 국가들, 그리고 타종교인 비율이 높은 몇몇 국가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우리가 생각하는 현대적인 종교의 자유 개념이 아예 없다. 오히려 [84]종교의 자유를 형식적으로나마 보장해주는 이슬람권 국가들마저 소수인 것을 볼 수 있다.

과거에나 현재에나 쿠란에 씌여있고, 이슬람 극단주의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타종교와의 평화 공존 원칙이란

1. 무슬림이 타종교인을 개종시키려 하든말든 무슬림의 자유지만, 타종교가 무슬림를 절대로 개종 시도해서는 안되며
2. 이슬람 문화권 우위의 사회 제도가 안정적으로 유지되어야 하고 타종교인들은 이슬람 우위의 사회, 무슬림 가치관이 지배적인 사회를 철저히 존중하고 어떠한 신성모독[85]도 하지 않으며
3. 타종교인들이 그들의 신앙을 유지하는 대가로 무슬림에게 지즈야(인두세)를 납부하는 조건에서만[86] 이슬람과 타종교의 평화와 공존을 어디까지나 철저한 무슬림 우월적 입장에서 허용해주는 것이다.

거기에다 상술했듯이 여기서의 '타종교'란 어디까지나 같은 일신교인 기독교, 유대교 정도이며 힌두교불교 등 다신교 성향의 종교와 무신론자들은 최우선적으로 지하드를 통한 말살과 박멸의 대상이며 관용과 평화의 대상에조차도 포함되지 않는 것이 원칙. 이러한 인식은 현대적인 종교의 자유 원칙과 정면으로 위배된다. 즉, 흔히 쿠란을 근거로 무슬림들이 제시하는 '평화와 관용' 원칙은 현대적 의미의 평화, 다종교 공존과 같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많은 비무슬림들의 염원과 달리 여전히 많은 무슬림들이 여전히 이러한 전근대적 가치관과 종교 인식에 경도되어 있는것이 불편한 진실이다. 갈수록 이슬람 극단주의의 문제가 무슬림들 사이에서 뿌리박혀 있고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기도 하고...

무슬림 남성이 기독교, 유대교 여자와 결혼하는 것은 허용되나 무슬리마가 기독교, 유대교 남자와 결혼하는 것은 금기시하고 있다. 여성이 남성의 신앙을 따르는 것이 통념이기도 하고, 전통적인 남성우월적 가치관에 따라 이슬람 남성과 타종교 여성의 결혼을 전도의 일환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이슬람 여성과 타 종교 남성의 결혼이나, 같은 이슬람이라도 종파나 국가가 다른 남성과의 결합[87]반이슬람적이고 불명예스러운 행위로 받아들이며 이것이 명예살인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영국인 사랑한 이라크 여성 아버지가 살해 (한겨레)] ['명예살인' 영국 사회문제 (한겨레)]

유럽에선 종종 샤리아유럽 법에도 적용시켜야 한다는 극단주의 무슬림들의 시위가 벌어지곤 하며 영국에서 그 빈도수가 높다. 그리고 그 내용 또한 무슬림 사회 일반에서 받아들여지는 샤리아의 가르침에 토대를 둔 것이라, 이들이 무슬림 사회 기준으로도 극단적 해석을 하고 행동한다고 치부하는 것은 잘못된 해석이다. 즉 극단주의자가 아니더라도 소위 '일반' 무슬림이 생각하는 샤리아의 가르침은 한국인이 생각하는 '일반'적인 종교의 가르침보다는 우리가 생각하는 종교적 극단주의자나 근본주의자의 가르침에 가깝다. 실제 프랑스 거주 35세-44세 무슬림들의 20%, 18-24세 무슬림 청년들의 27%(!), 영국 전체 35세-44세 무슬림들 중의 11%가 ISIL을 옹호하거나 지지했다.[88] 참고로 이 수치는 파키스탄같은 극단주의 이슬람 나라의 국민적 조사의 ISIL 호감 수치보다 높은 것이다(!). 거기다 더 답이 없는 충격적인 현실은 ISIL의 막장 행각(이교도에 대한 성노예화, 무수한 학살, 기독교 및 야지디 박멸, 세속 문화 파괴, 전통유산 파괴 등)들이 세계 언론들을 타고 적나라하게 알려지자, 오히려 그걸 보고 ISIL에 대한 무슬림들의 지지도가 예전보다 더 늘어났다는 점이다.[89]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요구하는 것은, 샤리아서구 국가들의 법에 적용시켜서 무슬림의 도덕규범을 반영하라는 것인데 여기엔 음주를 금지하고 동성결혼을 불허하며 자기들도 시위하면서, 현대 민주주의 정신을 부정하는 등의 내용이 들어 있어서 다른 영국인들로부터 어림 반푼어치도 없다는 반응을 자아내고 있다. 게다가 이들이 요구하는 것들 중에는 샤리아 법을 법 전체에 적용시킬 수 없다면, 일정한 구역을 추장국(Emirate)으로 만들어 그 안에선 샤리아 법만 적용시킬 수 있게 하라는 것이어서 스스로를 게토화 하겠다는 건가(...) 이에 따라 반이슬람 시위도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등 마찰과 대립이 커지고 있다. 특히 동런던에선 이들이 '무슬림 자경단'을 구성하여 이슬람 율법에 어긋나는 행위를 하는 사람들을 크리켓 방망이로 폭행하는 사건들까지 발생하며 반이슬람 기류에 힘을 싣고 있다.[90] 영국 정부도 가만있지 않아 샤리아 적용을 거부하고 극단주의자들의 범죄를 법에 따라서 처벌하고 있다.

[실제 여론조사 결과]를 봐도 중앙아시아나 유럽 지역 밖의 무슬림들의 종교적 자유에 관한 인식은 심각한 편. 가령 샤리아를 국법으로 하는 것을 지지하는 무슬림의 비율이 그래도 이슬람권에서는 제일 세속주의적이라는 카자흐스탄(10%)이나 터키(12%)에서도 10%대였으며, 중동권으로 가면 레바논(29%)을 제외하고는 모든 나라에서 과반수를 넘겼고 심지어 이라크(91%)나 아프가니스탄(99%) 같은 곳에서는 90%를 넘어갔다.[91] 말레이시아(86%)나 인도네시아(72%)와 같이 흔히 개방적이라고 알려진 나라들에서도 극단주의 성향의 나라들과 별다를 바 없는 압도적인 비율이었는데, 실제로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의 이슬람은 와하비즘과 극단주의가 퍼지며 수구화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92]

5.1 이슬람의 타 종교 탄압 사례

이슬람 초기에는 그 이후의 시대보다 타 종교에 대하여 상대적으로 관대한 편이었다. 중세 말 이슬람 세계 동부에서는 몽골이 서부에서는 십자군 전쟁이 들어닥치고 무슬림 세계가 큰 혼란에 빠졌던 것을 계기로 하여, 이슬람 지성계와 일반 민중 모두 타 종교에 대하여 보다 비타협적인 태도를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 현재 이슬람권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이슬람의 학자 중 한 명인 이븐 타이미야로, 다른 종교에 대해 유연한 견해를 가지고 있던 무슬림 학자들을 비판하는 등 강경한 입장으로 유명했다.

대체적으로 유대교기독교가 일반적인 다신교나, 계통이 같지 않은 일신교보다는 상대적으로 적은 탄압을 받았으나, 이들 역시 알라의 진리를 저버린 불신자로서 이슬람의 깃발 아래 무릎꿇리고 강제로 개종시켜야 할 지하드의 대상이라는 점에서 피차일반이었다.

오스만 시절에는 정교회 성당을 이슬람 사원보다 크게 만들지 못하게 했고 문을 매우 낮게 만들도록 하여 성당 문을 반지하식으로 만들었다.(정교회 신자들에게 기다시피 성당으로 들어가게 하여 굴욕감을 주려는 의도였다고 한다) 오스만 제국의 예니체리들은 레반트 지역의 아랍 기독교인 상인들을 만만하게 보고 술탄에게 무언가 불만이 생기거나 하면 분풀이로 상습 약탈을 가하였다. 또 가장 대표적이고 유명한 기독교인 대학살 사례로는 오스만 투르크의 아르메니아 대학살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오스만 제국과 교역했던 유럽인들은 자신들의 비즈니스 파트너로 같은 기독교인이었던 아르메니아인들을 선호하였다. 서구 열강과 오스만 투르크 제국간의 경제 교역이 늘어나면서, 아르메니아인들의 경제적, 사회적 입지도 점점 강화되었다. 서구 열강의 경제적 침탈이 빈발하는 한 가지만으로도 서구 열강과 같은 종교를 믿는 소수자였던 아르메니아 기독교인들이 위험해질 요인이 다분했으며, 무엇보다 이들이 능동적으로 변화하는 정세에 맞서 경제적인 성공을 거두자 제국 내 무슬림들의 질투가 이들에게 몰린 것이 바로 아르메니아 대학살의 근본 원인이었다.

불교는 불상을 우상숭배로 보아 불교 유적에 대한 철저한 탄압이 뒤따랐다. 인도의 유명한 불교 대학이었던 날란다 대학이 무슬림들에 의해 함락당해 파괴된 사건은 불교사 내에서도 인도 불교의 몰락의 상징적인 사건으로 해석되고 있다. 하지만 중앙 아시아와 인도에서는 불자들에 대한 제노포비아가 있었다는 속설은 인도와 중앙아시아에서는 보통 외부인들이 힌두교조로아스터교가 널리 퍼진 계급 사회에 들어가면 낮은 카스트를 부여받게 되는데, 이를 피하기 위해서 인도에 새로 진출하는 부족들 같은 경우에는 불교로 개종했던 경우가 많았다.[93] 이슬람이 유입되자 인도로 무력을 진출하는 부족들은 평화적인 불교보다 성전을 강조하는 이슬람을 선호하는 경향이 늘어났고, 이 덕분에 인도의 불교는 결정적으로 쇠퇴하고 만다.[94]

조로아스터교는 원래 사산조 페르시아의 정권과 강력하게 유착되어 있던 종교였으나, 사산조가 무너지고 나서 발원지인 페르시아에서 망했어요. 오히려 조로아스터교에서 갈라져 나온 마니교, 마즈타크교등의 신흥 종교들이나 페르시아 내에 잔존한 네스토리우스교도들은 적극 저항했지만, 정통파 조로아스터교는 사산조 페르시아의 멸망 후 제대로 된 저항한 번 못하고 그대로 붕괴되어 버렸다. 페르시아의 뒤를 잇는 이란의 조로아스터교도는 현재 15만여명 정도밖에 남지 않은 상태고 그나마도 쉬아파 극단주의 세력의 폭행과 협박에 시달리고 있다. 이슬람에 맞서 심지어 우마이야 왕조, 압바스 왕조 하에서도 포교행위를 한 마니교의 경우에는 이슬람에 의해 '잔다크'(사악한 이단)라 불리우며 적극적인 탄압의 대상이 되었고, 마니교는 그나마 간신히 잔존이라도 한 종교들과 다르게 결국 사멸하고 만다.

힌두교를 비롯한 인도 전통 종교들도 역사적으로 이슬람에게 어마어마하게 탄압받은 역사가 있다. 인도에서는 이슬람 왕조의 침략 때마다 힌두교 신상과 신전들이 수도없이 박살났고, 대표적으로 인도에서는 가즈나 조의 마흐무드가 힌두교 신상을 파괴해서 모스크의 계단으로 재활용한 사례가 널리 알려져 있다. 일단 이슬람에서는 힌두교와 같은 다신교 신자들을 교리상으로는 타협하여서는 안되었지만 인도의 비이슬람 인구수가 넘사벽이기 때문에 다른 다신교 민족들처럼 닥치고 학살+정복 및 강제 개종으로 이슬람화 시키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물론 지속적인 힌두교도와의 전쟁, 이슬람 왕조의 난립속에 학살은 계속되었지만) 전근대의 인도 사회는 카스트 제도를 바탕으로 정교하게 산업이 분업화된 사회였고, 무굴제국의 무슬림 위정자들은 이러한 카스트 제도를 바탕으로 한 경제력과 부를 항유하기 위하여 인도의 힌두교와 힌두교인들을 이슬람의 원칙을 어기면서까지 용인한 사례가 수두룩하다.(대표적으로 악바르 대제) 한 가지 예를 들자면 인도의 자이나교는 유일신 신앙을 철저하게 반대하는 교리를 가진 종교이지만, 자이나교 신자들은 무슬림이 다스리는 무굴 제국 하에서 상업을 장악하며 엄청난 번영을 누렸다.

하지만 이러한 공존은 결국 광신적 무슬림인 아우랑제브 1세 황제의 비무슬림도 인두세 부활 및 힌두교와 각종 인도 전통종교 핍박[95]무수한 이슬람 개종 강요 병크로 인해 힌두교도의 거대한 반란까지 일어났고, 그걸 무자비한 학살과 탄압으로 억누르며 힌두교 및 인도 비무슬림 박해를 계속했다. 그러다 결국 대영제국이 무굴제국을 멸망시킨 이후에 넘사벽 힌두교와 세력위치가 뒤바뀌어 도로 이슬람이 비주류 소수파로 차별받는 위치가 되서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현재도 대표적인 신정 국가 이란과 또 이라크, 시리아, 리비아, 수단,이집트, 파키스탄과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대다수 중동 및 이슬람권에서는 야지디교인이나 기독교인들, 조로아스터 교인 등 소수종교에 대한 사적인 차원에서의 각종 괴롭힘과 폭력, 테러가 빈발하고 갈수록 심해지는 중이다.

명심해 두어야 할 사실이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이슬람에 의한 타 종교 탄압과 학살의 역사는 근대 이후 굉장히 온건해지고 순화된 여타 종교와는 달리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이며 다른 하나는 현재 이슬람권이 세계 다른 어느 지역과 비교해도 타 종교 탄압의 강도가 압도적으로 높으며 소수파에 대한 일방적 학살과 테러 역시 갈수록 제노사이드를 방불케 할 정도로 극심해져 가고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현재 이슬람 사회에서 이교도나 소수파들이 받는 억압과 탄압과 박해의 강도는 이슬람이 상대적으로 관대했다고 평가되는 중세와 근대에 비해 오히려 더욱 악화된 실정이다. 심지어 같은 종파라고 할 지라도 민족이나 사상이 다르면 타 종교나 소수파처럼 가혹한 탄압을 한다. 이슬람이 현대 사회에서 자행하는 시대착오적이고 반인권적인 타 종교 박해와 배척, 그리고 학살에 대해서는 세계 어느 곳도 옹호하지 않는다.

5.2 타 종교 및 국가의 이슬람 탄압 사례

  • 스페인가톨릭 : 카스티야와 아라곤 주도의 레콘키스타로 이베리아 반도의 패권이 스페인에게 넘어갔을 때, 1492년 이베리아 반도 최후의 이슬람 국가인 그라나다를 정복하자마자 항복 조약에는 종교의 자유를 보장한다 해 놓고, 1년 뒤 개종자 이외의 무슬림을 추방했다. 개종한 무슬림인 모리스코들한테 이슬람풍 복식 금지, 식생활 금지, 아랍어 출판 금지, 아랍어 사용 금지를 했으나 이들은 제대로 지키지 않았고 처우개선을 요구하며 폭동을 일으켰다. 결국 1600년대 초반에 개종자를 포함한 무슬림 후손 전원을 강제 추방시켰다. 스페인 정부가 가혹한 것은 맞으나 스페인의 무슬림들도 통치할 때 가톨릭교도들한테 무자비한 탄압과 차별을 해서 무슬림들한테 악감정이 단단히 쌓여 있었기 때문에, 무조건 스페인과 가톨릭을 나쁘다고 보면 안된다.[96]
  • 공산 알바니아 : 위의 소련과 비슷한 경우. 이쪽은 아예 무신론 국가를 선포했다. 현재 알바니아 역시 구 소련 지역처럼 종교의 영향력이 약한 지역이다.
  • 프랑스 : 프랑스의 북아프리카 식민통치는 어떻게보면 소련의 식민통치보다 더 악랄했다고 볼 수도 있다. 나름 평등한 입장에서 대우하고자 한 소련과는 다르게 프랑스의 경우에는 자국민들에게는 인권과 민주, 학문을 강조하면서 정작 북아프리카의 식민지에서의 아랍인들의 초등학교 취학률은 6%가 나올 정도로 철저한 우민화와 차별을 시행하였다.[97] 알제리 전쟁 문서를 참조해보면 알겠지만 프랑스의 북아프리카 식민은 지금 현재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점거와 매우 유사한 양상이다.
  • 인도 공화국힌두교 : 현재 인도의 무슬림들은 인도 사회 내에서 대체적으로 가난하고 차별받는 계층에 속해있다. 2014년 총선에서 승리한 모디 총리의 경우 구자라트 지방에서의 무슬림들에 대한 집단 린치를 덮어주었던 전력 때문에, 인도 무슬림들은 현재 경각을 세우고 있는 상황. 하지만 차별받은 이들의 처지도 파키스탄이나 방글라데시의 비무슬림들의 처지보다는 한참 괜찮은 수준이라서 어디 하소연을 못하고 있다.
  • 미얀마불교 : 미얀마의 독재정권의 묵인 하에 이슬람을 믿는 소수민족들에 대한 제노포비아현재진행형으로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필리핀의 이슬람 반군 때문에 정부차원에서 많이 경계하는 편
  • 중국유교 : 근대부터 중국의 유학자들은 불교에 대해 "있지도 않은 천당과 지옥을 가지고 민중들을 농락한다"는 말을 자주 입에 담으며, 불교를 혹세무민의 종교라고 비판했었다. 이러한 그들의 종교관은 불교처럼 천국지옥 관념을 가지고 있던 기독교와 이슬람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명나라 시대에는 "무슬림들은 무조건 한족과 결혼해야 한다"는 법이 정해졌다. 그래서 현재 중국에서는 더 이상 이슬람을 믿지는 않지만 무슬림이었던 조상들한테 제사 지내는, 사실상 한족이나 다름없는 회족들이 많이 존재한다. 무슬림은 중국에서 나름 사회 상류층에 많이 진출해 있었으나,[98] 18세기 무렵 자흐리야 교단이라는 수피즘 분파의 폭동을 계기로 청나라 조정이 회족들에 대해 억압 정책을 펴면서 고난이 시작되었다. 이러한 정책에 반발하여 19세기 감숙성, 섬서성에서 대규모 회민 반란이 일어나는 등 악순환이 반복되었고, 반란 전 백만명 단위로 밀집해 있던 해당 지역 회족은 진압 후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현재 중국에 있는 회족들이 대단위로 이주해 왔던 아랍 무슬림들의 후예임에도 불구하고 신체 외양에서 한족과 차이가 거의 나지 않는 것은 이 때의 멸족 때문이다.[99]
과거에는 교리가 유교와의 공통점을 찾는 형태로 발전하였으나 반란 및 진압 이후로는 원리주의적이고 공격적인 교리가 회족 내에서 인기를 얻게 되었다. 특히 신장 지역의 '동투르키스탄 이슬람 운동' 같은 테러 단체들이 독립을 요구하며 테러활동을 벌이는 탓에 중국 정부가 많은 군경을 배치하여 막고 있다. 이 과정에서 무슬림 위구르인들은 잠재적인 테러리스트라는 한족의 편견으로 인해 취업에 큰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
  • 터키세속주의 : 터키는 오늘날에도 무슬림 인구가 98% 이상을 차지하는 나라지만,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집권기부터 종교의 영향을 점차 줄여나가기 위해 거의 박해에 준하는 정책을 가했었다. 1925년 모자법 도입으로 페스를 비롯한 전통모자를 착용하는 것을 금지한 이래로 아잔과 예배를 터키어로 하도록 강요하고, 터키 내에서 통용되는 쿠란도 한때 아랍어 사용을 금지한 적이 있었다. 물론 오스만 제국의 복권이나 반세속주의를 주장하는 이슬람 학자들에 대한 무자비한 숙청도 세트로 가해졌다. 오늘날 반케말주의 성향의 이슬람 지식인들이 득세하는 것도 그 당시 세속주의 정책이 터키인들에게 "이건 너무한거 아니냐?" 라는 인식이 자리잡았기 때문. 1980년 케난 에브렌 장군의 군사쿠데타 이후로는 교육장소에서 히잡이나 종교적 상징을 하고 다니거나, 공무원이 히잡을 착용하는 것도 완전히 금지시켜 버렸다. 그 때문에 오늘날 터키의 학교들은 종교학교인 이맘 하팁학교조차도 남녀공학이 원칙이며, 2000년까지 히잡을 쓰고 다니는 것이 금지되었다. 그러나 2010년대 들어 터키의 민주주의가 사실상 무너지기 시작하고 이슬람 극단주의가 유행함에 따라 세속주의는 뿌리채 흔들리고 있다. 하지만 에르도안의 정의개발당이 2015 총선에서 패배한 것을 보면 아직은 좀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 앙골라 - 이슬람을 금지했다고 한다. 적어도 모스크를 폐쇄하는 등 탄압 정책을 펼치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6 근대~현대의 이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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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나의 그림자

중세 후기 이전까지만 해도 아랍의 이슬람 문화권은 학문적으로 매우 발전되어 있었다. 당시 유럽은 가톨릭 교회의 강력한 영향력 아래 신학과 이에 대한 보조적인 학문으로써의 철학을 제외하면 학문적 발전이 정체되어 있는 상황이었지만, 아랍 지역에서는 신학, 철학은 물론 수학, 화학 등 전반적인 과학분야에서까지 상당한 발전을 이루고 있었다.[100] 그러나 르네상스 시기를 거치면서 유럽이 종교에서 벗어나 점차 각성하기 시작한 반면, 아랍 지역은 중세 후기 몽골의 침입 등으로 큰 고난을 겪고 종교에 좀 더 의지하기 시작하면서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다.

근대 이후 과학적, 사회적 발전은 전부 기독교적 가치관에서 벗어나 인간의 이성적 사고를 중요시했던 서구 중심으로 일어났기에 새로운 가치관들과 분쟁은 많아 보여도 과학적 사고와 이성적 토론을 통하여 상호간의 합의점을 나름이나마 밟아가고 있다. 반면 종교 중심적 사고를 유지하고 있는 이슬람 사회의 경우 과학적이고 이성적인 과정을 통하여 나온 가치관들은 그들의 종교적 가치관과는 전혀 다른 근본에서 나온 것들이기에 배척하기가 훨씬 더 쉽고, 바로 이러한 점들 때문에 이와 관련한 교리적인 발전은 기타 서구 종교들에 비해 한참 미진하다고 볼 수가 있다.[101]

한국처럼 서구의 문화를 발전된 것으로 받아들인 문화권일수록 이슬람과의 충돌 요소는 더욱 많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단순한 인식이 아닌 실제적인 접근에서도. 말하자면 기독교에 의해 왜곡돼서 한국에 들어온 것이 맞긴 하지만, 설사 그게 아니라 해도 기독교와 달리 현대문명과의 충돌 자체를 비켜 나갔기에 현대문명을 살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상당한 거부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일부 진보적 무슬림들은 이런 현대 사회와 교리 사이의 모순점을 풀기 위해서 노력을 하기도 하는데, 이중에는 쿠란을 '신의 말씀 그 자체'가 아니라 '무함마드가 신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전달하기 위해 쓴 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논리도 생겼다. 이 논리는 무함마드는 예언자로 선택될 만큼 비범한 인물이긴 했지만 어쨌든 인간이라서 신의 말씀을 완벽하게 인간들에게 전달하는 것은 버거운 일이었고, 그렇기에 신의 말씀을 그 당시 사람들에게 효율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 쿠란을 썼다는 것이다. 그러니 쿠란은 신의 말씀 그 자체라기 보다 '그 당시 사람들에게 제대로 받아들여질 만한 신의 말씀의 번역본' 같은 셈이므로 세월이 꽤 지난 현대 사회에서는 당연히 모순점이 생길 수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 이론도 가장 기초적인 신에 대한 자세 등에서 딴지를 걸지는 않는다. 다만 이 이론에 따르면 주요 종교 교리, 그러니까 과거부터 내려온 종교법이 현대 사회와 안 맞을 수 있으니 현실에 맞게 재해석 해도 괜찮지 않냐...는 것이다.

이 이론은 아직 완전하지도 않으며 진보적 무슬림 사이에서도 논란이 될 만한 문제를 안고 있다. 무함마드 이전에 신의 말씀을 전한 이사(=예수) 등의 예언자들이 있었는데도 또다시 무함마드와 쿠란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그 전에 전해진 '말씀'들이 온전하게 전해지지 않고 왜곡 변형되어 버렸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슬람의 입장이다. 따라서 쿠란도 상황에 따라 자의적으로 해석해도 된다거나 쿠란 자체가 원래 온전하게 전해진 신의 말씀이 아니라는 주장은 이슬람의 정체성 자체를 뒤흔들게 될 수 있는 것이다. 당연히 주류가 아닐 수밖에 없다. 영국의 Quilliam Foundation만 해도 이슬람 극단주의자들과 테러리스트들의 이슬람 교리 해석을 반박하고 도덕적으로 옳고 진보적인 해석을 제공함으로써 "사상적으로 극단주의를 몰아낸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는 단체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상당수 영국 무슬림들로부터 무시 또는 비난을 당하고 있는 처지이다. 창립자인 마지드 나와즈는 저널리스트 무르타자 후세인으로부터 베란다 원숭이(porch monkey; 미국 흑인을 상대로 한 멸칭)라고 불리기까지 했다.

이슬람 극단주의가 창궐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근대 무렵부터다. 실제로 와하브파를 창시한 무함마드 이븐 압둘 와합부터가 18세기 사람이고, 이슬람주의에서 중요한 이념가들인 사이트 쿠틉이나 아불알라 마우두디 등은 아예 20세기 사람이다. 따라서 '근대적 이슬람'은 긍정적인 의미가 아니라 IS같은 놈들을 일컫는 말이 되었다.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밀어주는 막장스런 와하비 이슬람도 비교적 근대적인 현상이다. 전통적 이슬람이라 칭해지는 것들이 오히려 온건한 편이다(...). 굴곡이 많은 이슬람의 근대사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다만 여기에는 비판도 있다. 전통적 이슬람이 온건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자칫하면 이슬람의 전통적 교리에 대한 비판을 희석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쿠란/논란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배교자와 불신자에 대한 살인을 직접적으로 명하는 구절이 있다. 그리고 성노예를 인정하고, 지하드 등을 통해 순교한 남자들은 배우자를 보상으로 받는다는 구절이 있는 등 분명히 현대의 도덕 관념과 명백히 상충되는 교리들이 있다. 이를 볼 때 전통적 이슬람과 근대 이슬람을 애써 구분하고 옛날은 더 좋았지라고 너무도 간단하게 생각해버리는 것은 큰 착각이다. 교리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전통적 이슬람과 근대 이슬람 간에 흐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교리 자체에 있는 전근대성 자체를 무시할 수는 없다. 물론 이쪽에 대해선 전통적인 교리야 애초에 현대적인 가치관이 세워지기 전에 만들어진 교리였다는 것을 일단 감안해야 할 것이다. 다만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과거에는 이러한 교리들이 시대 상황에 맞추어 유연하게 적용되기도 하였으나, 현대에 득세하는 극단주의적 흐름에선 오히려 변화한 시대에 비해 교리의 해석은 교조적으로 변하고, 해석의 흐름도 시대에 역행하는 흐름을 띄게 되었다는 게 문제라고 할 수도 있다.

7 이슬람 국가들의 특징

이란이나 사우디 같은 이슬람의 종교법(샤리아)이 매우 엄격한 나라는 맥심 같은 여성의 살이 많이 드러난 잡지는 반입이 불가능하다. 물론 이중엔 만화도 포함된다. 굳이 가지고 들어가려면 불가능한 건 아닌데 공항 세관에서 유성매직을 덧칠해 맥심의 여성들과 만화의 여성캐릭터에게 챠도르와 히잡을 입혀서 눈만 나오게 한 다음에 가지고 갈 수가 있다. 경험자의 말로는 이란러브히나 전권을 가지고 갔다가 세관원이 한시간 동안 유성매직으로 모든 히로인들을 전통 이슬람풍 여인으로 만들어 버리는 걸 봐야만 했다고.

술이 몽땅 금지되어 있을 것 같지만 모든 나라가 그런 것은 아니다. 쿠란의 해석에 따라 술이 완전 금지인지, 부분적인 금지인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비교적 엄격한 한발리파의 경우 소독용 알콜조차도 금지하지만, 이외의 학파들은 술을 마시되 취하진 말라는 쪽과 금지(하람)하는 쪽 등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7~8세기 아랍에서조차도 포도주를 금지하는 대신 대추야자를 발효시켜 만든 술은 허용했고[102] 유목민 무슬림들도 젖이나 염소젖을 발효시킨 술을 즐겨마셨다.

사실 유목민들에게 낙타나 양, 염소의 젖으로 만든 술을 금지하는 건 이슬람에 대한 반발만 일으킬 미친 짓이었다. 사막에서 물을 구하기 어려운 유목민들에게 가축젖은 물이나 다름 없었지만 보관이 어려웠기 때문에 장기 보관을 위한 발효주는 필수품이었으므로 이걸 금지한다는 건 종교를 넘어 생존 문제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103] 또 평시에는 술을 금지하지만, 마실 물이 없어 죽을 상황이라면 아무 술이나 허용했다. 이는 자살을 가장 엄격하게 금지하는 이슬람에서 죽는 것보다는 술이라도 마시고 살아난 다음 나중에 알라에게 사과하는게 낫다고 여겼기 때문이다.[104]

유럽의 무슬림들은 포도주든 맥주든 잘 마시며, 북아프리카에서도 많이 마신다. 중앙아시아 역시 술을 잘 마신다.. 술에 가장 엄격한 나라로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있긴 하다. 여긴 심지어 술을 마신다는 신고가 들어오면 무트와라는 종교경찰이 출동하여 주사기로 피를 뽑아 피 속에 들어있는 알콜까지 적발해낸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이 나라 부자들은 비행기타고 이웃나라 바레인이나 요르단, 혹은 이집트나 모로코, 튀니지처럼 술 판매를 허용하고 있는 이슬람,아랍권 나라로 여행가서 실컷 마시고 다시 돌아오는 경우가 수두룩하다.본격 음주 여행 바레인의 경우 오죽하면 술에 대하여 보수적인 카타르가 영토 문제를 두고 갈등이 큰 이웃 바레인을 씹을 때도 술이 자원인 나라라 하고, 알자지라까지도 바레인에 와서 술마시는 사우디 왕족들이나 부유층을 몰카로 찍으면서 대놓고 "뭐? 이래놓고 자국에서 와하비즘이라고 으스대냐?" 라고 비웃듯이 비난하는 통에 바레인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난리가 났던 적까지 있다. 더불어 사우디아라비아 서민들도 몰래 온갖 과일을 발효시켜 만드는 토종술을 대대로 전수하며 밀주를 만들어 몰래 실컷 즐긴다. 하지만 이런 경우까지 술마신다고 대대적으로 경찰이 집을 뒤엎을 정도는 아니라고 한다. 다만, 외국인 선교사들을 잡고자 할때 종종 술이 있다는 이유로 무트와를 동원하여 억지 명분을 만든다고 한다.

또한 이라크시리아, 레바논처럼 기독교인들이랑 여러 종교 가진 사람들이 섞여 사는 경우에는, 비무슬림에 한해서 주류 판매와 음주가 가능하다. 물론 이라크와 시리아는 이라크 전쟁, 시리아 내전 이후 현재 이슬람 원리주의가 득세하는 판에 예전 같지는 않지만...동남아시아의 이슬람 국가인 인도네시아[105]와 말레이시아의 경우 비르 빈땅[106]과 앵커[107]와 같은 자국산 맥주 브랜드가 큼직하게 자리잡고 있고 내외국인 가릴 것 없이 술을 마시는데 별다른 제제가 없다.[108] 유럽 대륙에서 유이한 이슬람 국가인 보스니아와 알바니아 역시 코사차나 티라나, 사라예브스코 같은 자국산 맥주들을 제조, 판매하고 있으며, 또 다른 이슬람 국가인 터키나 요르단, 튀니지, 알제리, 이집트, 모로코에서도 자국내에서 맥주나 포도주등을 만들어 식당이나 마트 등지에서 판매하고 있는데 튀니지나 알제리, 모로코에서는 아예 양조용 포도와 포도주를 재배, 생산하는 포도 농장들도 있으며 아예 포도주뿐만 아니라 셀티아나 탄구, 스페샬레 플레그, 카사블랑카 같은 자국산 맥주도 있다. 이집트의 경우도 사카라나 룩소르, 스텔라 같은 자국산 맥주가 있고, 요르단은 페트라와 필라델피아, 카라케일이라는 자국산 라거 맥주와 에일 맥주를 생산, 판매하고 있으며 네덜란드의 암스텔 맥주도 면허생산하고 있다. 터키같은 경우 에페스와 마르마라, 보몬티가 꽤 유명한 맥주다. 그리고 터키인들은 고유술인 라크를 즐겨 마시기도 하고 각 지방 고유술도 은근히 자주 마시는 전통이 이어져오며 술에 대해선 꽤나 개방적인 곳이다. 터키 사진작가인 아리프 아쉬츠가 한국에서 1년동안 지내면서 먹어본 것 가운데 가장 터키인들에게 입맛에 맞는 걸로 추천하던 게 바로 복분자술이었단다. 무슬림인 자신이 한국에 와서 소주나 막걸리, 청주, 복분자 등 다양하게 마시는 걸 보고 한국 사람들은 이상하게 보는데 터키에선 취하고 남에게 피해주지 않는한 이렇게 마시는 자체를 금기시하지 않는다고 썼다.[109]

종교 꼴통인 이란호메이니도 각 지방술을 취하지 않게 몰래 마시는 건 봐주도록 지시해서 서북부 산지로 가면 온갖 산열매로 발효시켜 만든 고유 술제조법을 대를 이어 전수하고 있으며 유목민들도 양이나 염소젖을 발효시킨 술을 자주 마신다.

다만 외국인에게 자유로이 판매가 허용된다 하더라도 술이 떡이 되어서 냄새를 풀풀 풍기며 돌아다니면 종교 경찰이 반가운 얼굴을 하며 경찰서로 끌고 가니 조심할 것. 종교경찰 : 아싸 실적 ㅋ 사실 국내인들도 "전혀" 안 마시지는 않는다. 어차피 거기도 다 사람 사는 동네다(...) 가볍게 몇 잔을 마시는 정도를 문제삼지는 않으며 취한다고 해도 조용하게 집에서 취하여 잠을 자는 것까지 뭐라고 안한다. 그러나 앞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종교적으로 잘못된 문제는 서스름없이 위아래 상관없이 지적하는 문화 때문에 본인이 술을 좋아한다 하더라도 접대를 받는 자리에 신자가 둘 이상이 있는 경우에는 서로 눈치를 보며 안마시는 경우가 많다.

관습법적으로 술 마시는것이 비교적 자유로운 나라들에서도 적어도 모스크 근처에 위치한 식당, 상점에서는 술을 취급하지 않는다. 터키의 경우 술을 마시려면 대형마트에 가서 사오거나 아니면 술집에서 마셔야 한다. 동네 슈퍼에서 팔기도 하지만 술 판매 허가를 받은 상점에서만 구입할 수 있고(터키어로 TEKEL BAYİİ라고 쓰여있거나 담배, 술 광고가 붙어있다), 이때는 주위사람들의 시선 때문인지 항상 검은 봉지에 담아준다. 하지만 모스크 뒤에 위치한 식당에서 맥주 (Efes라는 유명 터키 맥주 브랜드)가 있냐고 묻자, 조용히 들어오라 하더니 머그잔에 맥주를 몰래 담아주기도 한다.

술을 강력하게 금지한다는 사우디아라비아조차도 잘 사는 부자들과 상류층들이 술판매, 음주를 법적으로 허용하고 있는 다른 이웃 아랍 나라들인 바레인이나 이집트, 요르단으로 여행 가서 신나게 맥주, 와인등 술들 마시고 술 깬 다음에 다시 돌아오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돈없는 사우디아라비아 젊은이들은 술 대신 향수를 마시다가 죽는 경우까지 있을 정도.

돈놀이를 금하는 이슬람 교리 특성상 공식적으로는 채무에 대한 이자를 금지하고 있으나, 현대에는 여러가지 편법을 통해 사실상 금융거래 상 이자가 성립한다.[110] 가장 흔한 방식으로는 만기일을 엄청 짧게 설정해두고 '이자'가 아닌 '벌금' 명목으로 돈을 받는 것이며, 예금에 대한 이자를 받는 대신 투자라는 형식으로 돈을 맡기고 이익을 배당받기도 한다. 어쨌든 교리를 지키면서도 현대적 금융업무를 해결하려는 이슬람 금융권은 상당히 흥미로운 모델이며, 21세기 들어서는 해외 투자가들의 주목을 끌고 있다.

8 이슬람의 출산율

이슬람의 또다른 강점이자 단점은 인구가 많다는 점이다. 흔히 일부다처제 사회이기 때문에 자식을 많이 낳는다는 인식이 있으나 이슬람의 경전 쿠란에선 "여러 부인들을 부양할 능력이 된다는 조건 하에 허락한다."는 규정이 있기에 실제로 여러 명의 부인을 누리는 사람은 소수라고. 그러나 무슬림 인구가 많은 나라들은 출산률이 높아서 인구감소를 겪는 일이 없다시피한 건 사실이다. 되려 인구가 넘쳐나서 문제인 나라가 태반이다. 전근대에는 높은 출산율에도 인구가 너무 적어서 난리인 곳이었는데 이제는 상황이 정 반대다. 이슬람 아랍 동맹 최다 인구 나라인 이집트만 봐도 20세기초 1,500만 수준이던 인구가 지금은 8,000만 이상으로 늘어나 있다. 이처럼 이슬람권 나라 상당수가 100년 사이에 인구가 3~6배나 늘었다고 한다.

그 원인으로는 오일머니로 때운 인프라 확충과, 의학의 발전과 더불어 영아사망률이 예전보다 많이 줄었다는 점도 있지만 이슬람 국가와 국민들이 하나같이 보수적이라서 피임이나 낙태같은 것을 결사적으로 거부하는 이유도 크다고 한다. 다만 이는 꾸란과 하디스에 구체적으로 명시된 건 아니라서[111] 물론 이것도 모든 국가들이 그런게 아니고 탈레반 시절의 아프가니스탄 같은 극단적인 국가가 아닌 이상 낙태를 어느정도 금기시하는 성향은 있으나 피임은 용인하는 경우가 다반수다... 그런데 정작 이집트에선 콘돔을 그냥 나눠주면서까지 인구 증가율을 줄이고자 했으나, 나눠주던 공무원들이 사람들에게 돌팔매질까지 당해서 아예 저런 계획을 없애버렸을 정도다.

이미 천주교와 더불어 이슬람 순니파가 12억 인구를 넘은지 오래이며 빠른 인구증가률을 가진 인도 힌두교(약 8억에서 9억 추정)와 더불어 10억 신도가 넘는 거대 3대 종교 종파가 될 전망이다. 하지만 21세기 들어 인구 증가세가 떨어지고 있는 추세인데 알바니아[112], 이란[113], 아제르바이잔처럼 출산율이 1명대로 떨어진 국가도 등장했고 '사우디 아라비아, 알제리, 우즈베키스탄 터키,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이집트, 모로코, 튀니지 등의 주요 이슬람 국가에서도 출산율이 2명대로 떨어졌다, 그리고 高출산국으로 손꼽히던 이라크, 예멘,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은 감소세다.[114]

그러니까 무슬림이라고 해서 무턱대고 쑴풍쑴풍 낳아재끼기만 하는 것은 이제는 아니라는 의미다. 다만 그 동안의 인구증가세가 엄청났었던데다가 출산율이 큰 폭으로 줄어들었다 해도 아직까지는 일반적인 유럽인(물론 국가에 따라 차이가 나기는 한다.)에 비하면 출산율이 높은건 사실이어서 유럽국가에선 이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많고 극우정당이나 단체에선 이를 이용해 [흑색선전이 펼쳐지기도 한다.] 미얀마에서도 무슬림들이 출산율이 높다는 편견 때문에 무슬림에 대한 탄압이 벌어지고 있는데 미얀마 당국에선 이를 방치하고 있는 상태다.

선진국의 이슬람 이민자들의 경우 비무슬림보다 높은 편이긴 하지만 이민 2세도, 못해도 3세대로 넘어가면 사고가 현지인들과 비슷해져 출산율은 자국민들과 거의 비슷해진다고 한다. 유럽 국가의 무슬림 출산율은 전체적으로 보면 비무슬림의 1.5배 정도라고 한다. [#]

물론 출산율이 유난히 높다는 것 자체는 편견이 아닌 사실이 맞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무슬림과 비무슬림의 출산율을 비교해보면 무슬림의 출산율이 더 높다. 무슬림이 어느정도 존재하는 나라들 중에, 비무슬림의 출산율이 더 높은경우는 사하라이남 아프리카 몇몇국가와 인도네시아, 서안지구를 빼면 전무하다. 일부 선동성 자료에 나오는 것처럼 급격하게 종교인구가 변화하지는 않겠으나, 무슬림의 출산율이 유별나게 높은 것은 사실이다.

또한 이슬람권에서는 종교 자체가 태어나자마자 부여되며 무슬림을 그만두거나 종교를 바꾸는 것 자체를 금지하기 때문에 이슬람 인구 역전설을 한낱 괴담이나 도시전설 혹은 반이슬람 선전 정도로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다. 물론 반이슬람 선전에서 실제로 이 점을 강조하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그리고 출산율과 난민, 이민만으로 이슬람 다수국가로 변한, 즉 인구 역전된 나라는 레바논밖에 없고 그 레바논도 실상은 엄청난 기독교인 인구가 이민가고[115] 원래 레바논 영토가 아니어야 할 곳인 이슬람 다수 지역이 독립될 때 같이 딸려와서 그리 된 거라 출산율과 난민, 이민만으로 이슬람 인구가 역전된건 아니라고 볼 수 있다. 또한 레바논의 종교상황을 보면 1985년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드루즈 파를 포함해도 이슬람의 비율은 주는데 기독교의 비율은 늘고 있는[116] 상황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레바논의 사례를 보면 아무리 봐도 이슬람 인구 역전설만큼은 한낱 괴담이나 도시전설처럼 보이는건 어쩔 수 없다. 또 서구 사회에서 사는 세속화된 무슬림들한테는 이 조항이 사문화된 경우가 대다수다. 때문에 이민자 3 세대에 이르면 귀찮아서 기도도 안드리며 무교 성향으로 변하거나 기독교로 개종하는 경우도 많다. 이 세대까지 내려오면 출산율 역시 그 사회의 주류 인종과 비슷해진다.

이집트의 경우 1900년대만 해도 기독교도의 인구가 8.14%였으나 1996년엔 5.6%로 점점 쪼그라 들고있다. 인도의 경우에도 1951년도에 9.8%였던 무슬림이 2011년엔 14.2%로 증가하였다. 인도나 이집트의 경우 외부인구 유입이 많이 없어서 변화가 적었다고 쳐도 서유럽의 경우, '백인들의 계속되어지는 탈기독교 현상' + '이때까지 누적된 저출산'+ '매년 서유럽으로 이민오는 무슬림 이민자'+ '무슬림의 상대적으로 높은 출산율'이 누적되면 이슬람 인구 비중이 크게 늘어날 수 있다.

애석하게도 위의 인구 강점은, 터키나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처럼 공업화에 어느 정도 성공한 나라에 한정한다. 그외 상당수 무슬림 국가의 국민성과 삶의 질은 여전히 중세시대 수준을 벗어나고 있지 못하고 있다. 정치는 그야말로 개판이라 공화정인 국가들도 부정부패가 일상다반사이며, 왕정인 국가는 말할 필요도 없이 막장인 경우가 허다하다. 그로 인해 인구 많아봐야 국가에 큰 도움도 안되고 그저 가난의 대물림만 지속되는 현실이다. 물론 이점은 다른 제3세계 나라들 역시 공유하는 문제이긴 하지만 이슬람 국가들은 별다른 산업이 없다보니 그 정도가 더 심하다.

단적인 예로 석유 펑펑 나와 돈이 넘쳐나는 사우디는 그 부를 소수의 왕족들이 점유하여 향락과 사치로 일관하며, 정권 유지 차원을 위해 굶어 죽지 않을 정도의 금전 지원을 국민들에게 할 뿐이며, 국민들은 그돈 받고 그냥 하루하루 처묵처묵하는 돼지로 살며 만족하고 있다. 그리고 사우디의 석유 시추와 정재를 위해 짓는 모든 공사 현장 노동자는 외노자들로 채우고 있는 실정이다. 외국인 노동자들보다 더 높은 급여를 약속해도 사우디 현지인들 일들을 안한다. 결국 인구 많아봐야 잉여에 불과할 뿐(...) 2013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선 이걸 바꾸고자 대대적인 외노자 추방을 선언했다. 그런데 에티오피아 노동자들이 아예 폭동까지 일으켜 정부군이 출동하여 총살도 저지를 정도로 엉망이 되었다. 이는 사우디 뿐만 아니라 석유가 나는 다른 이슬람 국가들도 똑같은 문제다.

다만 이슬람=무조건 출산율이 높다. 라는 주장은 아직까지는 검증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역시 본격적인 경제발전을 이루는 70년대 까지는 출산율이 매우 높은 편이었고,[117] 심지어는 당시에도 선진국으로 분류됐던 일본이나 유럽 국가 역시 대체출산율 2배를 웃도는 출산율을 가지고 있었던 적이 있었다. 대부분의 국가들은 소득 수준이 일정량 이상 도달하면 출산율이 감소한다. 그러나 아직 이슬람 국가들 중에 정상적인 방법으로 선진국의 문턱에 도달했다고 할 만한 나라는 없다. 대부분의 중동 부국들을 원자재의 수출로만 경제가 돌아가기 때문에 부가 심하게 평준되어 있다. 따라서 현재 충실한 경제 발전 과정을 밟고 있는 터키,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의 국가들이 소득이 선진국에 근접한다면 보다 정확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특히나 이 세 국가들 중에서도 여전히 이슬람을 국교로 선택하고 있고 (중동보다야 덜하지만) 아직 종교가 삶에 미치는 영향력이 큰 편인 말레이시아의 출산율 추이가 중요할 것이다. 그런데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터키의 출산율은 대체적으로 2명대 초 정도라 프랑스, 미국의 출산율과는 그리 큰 차이는 나지 않는 편이다.

9 이슬람=아랍=중동?

가장 흔하게 오해하는 부분. 흔히 이슬람 문화와 아랍문화, 중동문화권을 동일시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큰 잘못이다. 게다가 우리나라 사람들은 흔히 아랍, 중동 국가들을 가리킬 때 이슬람권이라고 하지만 이것은 말 자체가 종교 차별적인 발언으로 유럽이나 미국, 캐나다, 중남미 등을 기독교권이라고는 하지 않으면서 유독 이슬람을 믿는 국가들에게는 중동, 동남아시아 등으로 표현하지 않고 그렇게 쓰는 경우가 많다.

흔히 무슬림이라고 여기는 아랍인들의 총 인구는 3억인데 비해 전체 무슬림 인구는 16억이나 된다. 즉, "이슬람 = 아랍인들이나 믿는 종교"라는 고정관념은 "기독교 = 유럽/미주사람들이나 믿는 종교"라는 인식 만큼이나 잘못된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서구뿐만 아니라 제3세계 지역에도 널리 퍼져 있고 비서구 지역의 신자들이 더 많은 것처럼 이슬람의 경우에도 오히려 비아랍권 신자들의 수가 더 많다. 터키(튀르크계), 이란(페르시아계) 사람들은 중동 지역은 맞지만 아랍인들이 아니고 아프리카의 흑인들이나 파키스탄, 말레이인들, 가장 인구가 많은 인도네시아인 무슬림들 역시 아랍인이 아니다. 아프리카 흑인이 다수를 이루고 있는 국가들 중에서도 무슬림이 다수인 나라가 많다.[118]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알바니아는 유럽의 발칸 반도 지역이다.

또 이슬람과 중동 문명권을 등치시키는 것도 잘못된 인식인데 이슬람이 주류인 국가들 중 최다 신자 국가는 동남아시아에 위치한 인도네시아이다. 이슬람은 민족종교가 아니라 전세계에 분포한 보편종교이므로 무슬림을 보고 무조건 아랍인, 중동 사람일 것이라 판단하는 것은 금물. 게다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알바니아, 코소보 등 유럽 국가이면서도 무슬림들이 다수인 나라도 있다. 그 외 코카서스 3국(대부분이 정교권 지역)중 하나인 아제르바이잔은 무슬림(시아파)들이 다수다. 또 다른 유럽의 여러 국가들 중에서도 적은 비율이긴 하지만 20세기 들어 이슬람 이민자들의 유입으로 생겨난 것이 아닌 그 전 시대에 이슬람으로 개종해서 생겨난 무슬림들도 있다. 이들은 20세기 이후 증가한 이슬람 이민자들의 유입으로 무슬림들이 많아진 프랑스 같은 나라와 다르게 원래부터 역사적으로 이슬람 국가와의 접촉으로 이슬람이 꽤 오랜 전통 종교로 자리잡고 있었다.

아래 표는 2011년 1월 기준 무슬림이 가장 많은 상위 10개 국가의 목록이다.

국명신자수신자 비율
인도네시아204,847,00088.1
파키스탄178,097,00096.4
인도177,286,00014.6
방글라데시148,607,00090.4
이집트80,024,00094.7
나이지리아75,728,00047.9
이란74,819,00099.6
터키74,660,00098.6
알제리34,780,00098.2
모로코32,381,00099.9

보다시피 1억을 넘는 1-4위 국가를 포함해서 상위 10개국 중 7개가 비아랍 국가이며 비중동 국가도 중동의 정의에 따라 달라지지만 4~7개나 된다.

9.1 국가별 무슬림 비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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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은 기독교와 함께 대륙을 가리지 않고 전세계에 널리 퍼진 대표적인 세계종교다. 세계의 무슬림 비율은 다음과 같다.

  • 98% 이상

모로코, 소말리아, 아프가니스탄, 튀니지, 이란, 모리타니, 예멘, 타지키스탄, 이라크, 요르단, 터키, 아제르바이잔, 몰디브, 니제르, 코모로[119], 알제리, 수단

  • 90% 대

사우디아라비아, 지부티, 리비아, 우즈베키스탄, 파키스탄, 세네갈, 감비아, 이집트, 투르크메니스탄, 시리아, 말리, 코소보, 방글라데시

  • 80% 대

키르기즈스탄, 인도네시아, 오만, 쿠웨이트, 기니, 바레인

  • 50~70% 대

카타르, 아랍에미리트, 시에라리온, 말레이시아, 레바논, 부르키나파소, 카자흐스탄, 차드, 브루나이, 알바니아

  • 그 외 소수 신자가 존재하는 나라

프랑스[120], 영국, 미국[121], 대한민국[122], 독일,[123] 중국[124], 타이[125], 미얀마[126], 베트남[127], 필리핀[128], 일본[129] 외 다수.

10 한국과 이슬람

이슬람은 오래 전부터 회교라는 이름으로 한국에 알려졌다. 정수일(무함마드 깐수)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이미 9세기~10세기 아랍 세계 지도에서 신라가 그려져 있고[130], 아랍 학자인 이븐 쿠르다드니가 신라에 와서 머물고 신라에 대한 간략한 기록을 남긴 바 있다. 중세 이슬람 세계의 저명한 지리학자겸 역사가 알마수디는 그의 저서 황금초원과 보석광에서 "신라이 넘쳐나서 개줄이나 원숭이줄도 금으로 만들며, 사람들은 무병장수한다."며 지상 낙원이라고 나와 있다.[131]

고려 전기에는 무슬림 상인들[132]이 3차례 개성을 방문하며 교역을 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고려사를 보면, 현종 15년(1024년) 대식국(아랍)에서 온 상인 수백여 명이 개성에 머물러 교역을 했다는 기록 등이 있다.

원나라의 침략을 받고 고려원나라에 점령이 된 시기부터는 한국과 이슬람 국가 사이의 교류가 가장 활발했던 시기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당시 몽골인들은 자기들만으로 나라 안팎을 관리하기가 힘든데, 중국인을 쓰자니 믿지를 못하겠고 말도 안 듣고 해서 쓰려하기보다는 없애버리려고 했고, 반대로 많이 싸우면서 그 위력을 실감하게 되고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위구르인들을 행정 관료로 적극 활용했다.

회회인(回回人)으로 통칭되던 위구르인 중에는 기독교 신자나 불교 신자, 마니교 신자도 적지 않았지만 많은 수가 무슬림이였으며, 몽골인 다루가치의 수행원으로 많은 위구르 무슬림들이 우리나라에 정착하였다. 가장 대표적인 사람으로는 고려 말에 귀화하여 덕수 장씨의 시조가 된 장순룡(張舜龍)을 들 수 있으며, 학계에서는 그가 지금의 신장 위구르 지방에 해당하는 회회 출신이라는 점을 들어 무슬림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외에 색목인으로 규정해서 여러 무슬림들을 자기들보다 바로 다음가는 인종들로 구분하고 여러 고위직에 앉히면서 자연스럽게 고려와도 주기적인 접촉이 이뤄졌다.

회회교(回回敎, 즉 이슬람) 자치구역도 있어 개성 한복판에 이슬람 성원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조선시대 초기까지 이들은 한반도에 남아 살았으며, 조선왕조실록에도 "회교인들이 세종대왕의 생신 잔치나 새해를 맞이하는 궁중 하례 의식에도 초청을 받아 정례적으로 참석하여 쿠란 낭송이나 기도를 통해 국가의 안녕 및 임금의 만수무강을 축원했으니 이를 '회회송축'이라 했으며, 이슬람풍 노래와 음악을 연주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를 '회회조례'라 불렀는데, 이걸 두고 유학자들이 부정적으로 여겨서 세종 이후에 없어졌다고 한다.[133][134]

근대 최초 한국인 무슬림은 샤밀 박(1912~2005)이라는 사람이다. 일제강점기 때, 터키인 아브뒬하크 누만(Abdülhak Numan)이 하던 알타이 양복점에서 허드렛일을 하면서 살아가다 누만 사장에게 신용을 얻고 양복 재단 기술을 배운 사람으로 한국 이름은 박재성. 사장이 자식 없이 일찍 죽은 바람에 양복점을 물려받고 과부가 된 사장의 아내와 재혼하면서 이슬람으로 개종해 샤밀이란 이름을 얻었다. 한국전쟁이 터지기 전에 터키로 가서 귀화해서 살다가 2002 한일 월드컵 관련 당시 터키 방송에서 나온 바 있다.

이슬람이 조금이나마 한국에 알려진 것은 한국전쟁 때다. 당시 토이기군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터키군에서 고아원을 맡으면서 아이들에게 이슬람을 가르친 적이 있었으며, 무슬림인 김진규나 신백현 같은 사람이 나오면서 1955년 제6터키 여단 소속이던 이맘 압뒬가푸르 카라이스마일오울루(Abdülgafur karaismailoğlu) 대위가 한국인을 대상으로 선교를 시작하였다. 1955년 9월 15일 서울 농협대학 강당에서 70여명의 한국인 무슬림이 참석한 가운데 '한국 이슬람 협회'가 결성됐고 회장에 김진규, 부회장 겸 사무국장에 윤두영이 선출되었다.

1956년 4월에는 중학교 진학을 하지 못하는 불우 청소년을 대상으로 '청진학원'을 열어 무료로 중등교육과 이슬람 교리 교육을 실시하여 이 학생들 중 일부가 이슬람을 수용하였다. 1956년 10월 압뒬가푸르에 이어 군(軍) 이맘 쥐베이르 코치(Zübeyir Koç) 대위가 부임 이후에도 이슬람을 알리는 활동이 계속되었다. 터키군 지원으로 이문동에 막사 형태의 작은 마스지드가 만들어졌는데, 첨탑도 함께 세웠다. 그 당시 한국인 무슬림은 208명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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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석유전쟁이라든지 여러 자원 문제로 이슬람 성원을 크게 짓자는 의견이 나와서 1975년 본격적으로 이태원동에 서울중앙성원이 세워지게 되는데, 땅은 한국 정부가 그냥 내주었다. 당시 아랍권의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꽤 안 좋았는데, 당시 아랍권이 소련을 지지하던 이유도 있고, 한국이 아랍권이 싫어하는 미국이나 터키, 이스라엘과 우방관계를 맺었던 이유도 있다. 이런 이미지를 불식시키기 위해 당시 한국 정부는 이스라엘 문제에 대한 아랍권 지지 성명, 아랍권 국가 9개국과의 수교 등 여러 노력을 기울였고 한국이슬람중앙성원 부지 제공도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그 후 중동 아랍권 국가들에 한국인들이 파견되어 성실하게 일하고, 특히 이란의 경우 아랍국가는 아니긴 했지만 어쨌든 중동 국가로서 여러 교류가 늘어났고, 파견된 한국 노동자들이 전쟁통에 피해를 입으면서까지 여러 작업을 수행하기도 했다. 이러한 대 아랍 관계 개선에 대한 노력은 결국 88 서울 올림픽 때 아랍권 국가들이 일본의 나고야가 아닌 한국의 서울을 지지했던 원동력 중 하나가 되었다. 건설비는 터키사우디아라비아 같은 나라들이 지원했다.

알다시피 한국아랍북아프리카 지역에 대해 경제적으로 엄청나게 의존한다. 원유 및 천연가스 같은 에너지원 대부분을 이슬람 국가들에게 의존하여 한동안 이스라엘과 국교를 끊기도 했으며, 2012년에도 중동에 대한 석유의존도가 86%를 넘는다. [원유 중동의존도 사상 최고 (문화)] 해외건설 수주에서도 이슬람권인 중동북아프리카 지역이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70%에 이른다. [중동 무너지니 해외 수주 '최악' (조선)] 아랍이 기침하면 한국은 경기를 일으키니 이슬람 눈치를 안 볼래야 안 볼 수가 없다.[135]

2011년 논란이 된 수쿠크법과 관련해 이슬람에 대한 한국의 거부감이 알려질까봐 한국 기업들은 노심초사하였다.

이렇게 경제적으로 이슬람권에 막대한 영향을 받고 있지만, 한국에서 무슬림을 찾는 것은 외국인이 아니면 어려운 편이다. 15만 명은 된다고 하는데, 이는 외국인도 포함한 수치이며 이들 중 대부분이 외국인이다. 다만 이슬람의 기도 특징상 수를 측정하기가 굉장히 어려운 걸 알고 얘기해야 한다. 다만 그렇다 해도 이슬람을 국교로 하는 나라에서 이민을 온 이민자들의 수를 합쳐봐야 5-6만 명 내외로 잡히고 있어서 15만 명이라는 수치 자체가 자료가 있지 않으며 신뢰하기 어렵다. 이게 쿠란의 한국 판매량인지, 한 번 들렀다 간 사람의 숫자인지 뭔지도 아직 알려진 바 없다.

어느 정도 추정할 근거가 있기는 한다. 외국인이 아닌 한국에서 태어난 이른바 "토착 무슬림" 의 경우 2005년 인구주택총조사에서 종교를 "기타" 로 대답한 16만 3,000명에 포함됐을 것이다. 그러나 "기타" 항목에는 한국의 토착, 민족종교까지 포함됐기 때문에 훨씬 적은 규모일 것으로 생각된다. 한국 이슬람교 중앙회 관계자들은 그 수를 35,000여명으로 추산하는데, 교인 명부를 따로 관리하지 않으므로 정확한 근거는 없다고 한다.[기사]

국내 거주 외국인 무슬림은 물론 체류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종교를 조사하지는 않으니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슬람의 경우 특정 국가에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범(凡)이슬람권에서 온 국적을 기준으로 규모를 가늠할 수 있다. 조희선(2010)의 논문에 따르면 2009년 10월 기준 한국 체류 무슬림은 79,388명으로 동남아시아계 무슬림이 37.4%로 제일 많고 중앙아시아계(25.7%), 남아시아계(26.9%), 나머지 국가들은 10% 미만이다. 지리적, 문화적으로 거리가 가까운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 남아시아 출신의 무슬림들이 상대적으로 거리가 먼 이란이나 터키, 아랍국가 출신의 무슬림보다 국내에 더 많이 들어온 당연한 결과이다. 국내 체류 외국인 무슬림은 대부분 한국정부에서 산업연수생제도를 이들 권역에 있는 나라들과 체결했던 것에서 비롯됐기 때문에 아시아계 무슬림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으로 보인다.[136]

실제로 부산시에는 1986년에 무슬림이 아닌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정규 학교로써는 대한민국 최초의 이슬람 미션스쿨인 알리고등학교가 사우디아라비아 자본의 지원을 받아서 부산진구 당감동에 일반계 고등학교 형태로 설립된 적이 있었다.[#] 교명은 이슬람의 제4대 정통 칼리파인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에서 따왔다고... 하지만 부산시일반계 고등학교 평준화 지역이라 일반계 고등학교 선택권이 없는데다가 이슬람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미션스쿨을 설립하여 운영한다는 논란[137]으로 인하여 결국 2년도 채 안돼서 미완성 상태의 알리고등학교를 종교색이 없는 평범한 사학 재단으로 사실상 강제로 넘겨버리면서 흑역사가 되어버렸다. 이후에는 교명까지도 평범한 교명으로 변경하여 종교색이 없는 평범한 사립 고등학교로 남게 되면서 한국에서 이슬람 미션스쿨은 2년만에 영원히 사라지게 되었고, 그 이후로 한국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이슬람 미션스쿨이 신설된 사례는 없다.

되려 한국의 개신교 신자들은 이슬람권 나라에 개신교 선교를 나서면서[138] 한국 정부와 기업들을 난처하게 만들고 있다. 더불어 미국의 영향이 크고 한국에 신도가 없어서인지 이슬람을 테러 종교로 인식하는 것도 적지 않다. 게다가 외신 보도들도 이슬람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많이 하는 터라 더욱 좋게 보지 않는다.[139]

인천광역시에 이슬람 박물관이 세워졌다가 2년도 안돼 갑자기 문을 닫았던 일[140]이 벌어진 바 있다. 그밖에 중동 문화원도 문을 열었다가 반발로 문을 닫았더니만, 이번에는 아랍권의 반발과 기업들의 반한 감정 문제에 대한 반발까지 연루되자 부랴부랴 재개방하는 추태도 벌어진 바 있다. [중동 문화원 해프닝]

여담으로 한국에 처음으로 이슬람 중학교가 세워질 당시 포털에선 욕설들이 가득했는데, 당시 이 중학교 개교 행사에 참가한 세뇰 귀네슈 감독을 비난하던 일부 무개념도 보였다. 그래서 일부 귀네슈 팬들은 이런 비난에 FC 서울부터 테러리스트 감독을 해임하라고 건의하고, 테러 자금을 지원하는 한국도 아랍산 석유를 일절 불매하고 러시아 같은 나라에서 비싸게 주고 사오자고 비꼬기도 했다.

이슬람을 바라보는 국내 보수적 개신교 단체의 시각은 매우 좋지 않다. 한국장로교총연합회에는 '이슬람대책위원회'라는 단체가 있으며 여기서 이슬람선교훈련원이란 단체도 만들었다.

한국의 이슬람 중에서 한국인 이맘도 존재한다. 이주화 이맘과 이행래 원로 이맘이 대표적.

10.1 '할랄 단지' 사건

전북 익산시가 수천억원의 예산을 들여 50만평 단위의 할랄 단지가 건설되고 할랄 인증을 위해 이맘 100만명이 들어올 계획이며, 정착하는 이맘들을 위해 개인당 수백만원의 정착 지원금이 지급될 예정이다. 또 그들을 위한 이슬람 학교 및 병원 등 이슬람 시설들이 설립 준비에 있으며 전북익산은 이슬람화될 가능성이 높다.

...는 괴악한 루머가 2016년 1~2월, 인터넷과 SNS 등을 중심으로 퍼져 나갔으며, 이때문에 익산시와 정부가 곤혹을 치르기도 했다. 사실 이는 명백한 선동으로, 사업 하나로 무슬림 100만명이 들어온댄다. 우리나라 인구가 5000만명인데?[141] 한국의 식품 수출을 늘리기 위한 종합연구시설인 국가식품클러스터가 익산에 건설되는 건데, 여기에 이슬람권에 대한 수출을 위한 할랄단지가 포함되어 있는 것. 그 외엔 이슬람과 아무 관계가 없으며 이에 대해 정부에서 정부에서 해명했고 JTBC도 이에 대해 사실 확인을 위한 기사를 내었다.

2015년 중반부터 개신교 언론인 국민일보나 크리스천투데이 등에서 이에 대한 기사를 내보내기 시작한 걸로 보아 루머의 출처는 개신교계로 추정된다. 개신교계는 국가식품클러스터 사업이 시작할 때부터 맹렬히 비난했으며 할랄푸드가 '대한민국을 공격하기 위한 이슬람의 공세'라고 주장했고 KBS의 할랄사업 다큐멘터리 방영 때에도 비난기사를 내보냈다. 20대 총선에 출마한 기독자유당의 경우 주요 공약 중 하나로 할랄단지 반대를 내걸기도 했다.

그러나 기존 나무위키 설명에선 오로지 "개신교가 주도"해서 할랄 단지를 반대한 것이라고 단정적인 서술로 점철되어 있었지만 한국에서 이슬람 문화에 반감을 가지는 것은 개신교계만이 아니다. 한국갤럽조사연구에 따르면 2014년 기준으로 한국의 개신교인 비율은 20%대 초에 불과하다. 20%대 초면 굉장히 많은데? 동아시아 기준으로 보면 높은 비율이긴 하지만 그 외엔 개신교와는 무관하며 50%는 아예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다. 따라서 할랄 단지에 대한 반감이 개신교가 주도한 것 내지는 개신교계가 대다수라고 하는 건 추측성 서술에 불과하다. 오히려 할랄 단지 사건이 인터넷에서 마구 퍼지는 것은 전 세계에 극심한 공포와 민폐를 끼치는 이슬람 근본주의 때문에 한국의 인터넷 여론 상당수가 이슬람에 대해 적대적인 시각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제노포비아 현상이 꽤 강하게 나타나는 넷상에서 선동용으로 퍼지기 쉬운 과장성 괴담성 루머 요소가 곁들여져 더욱 쉽게 선동당하는 것.

11 문화 갈등

가족 제도 문제에서는 중혼, 근친혼 같은 문제로 인해 서구 사회 및 비이슬람 문화권의 상당수 사회들, 그리고 대한민국 사회와 갈등을 빚는다. 2007년에는 사촌과 결혼한 이슬람도 임란 알리가 한국 국적을 얻었으나 한국에서는 8촌내 결혼이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아내를 한국에 초청할 수 없다는 것에 항의하고 언론 보도를 탄 사건이 있었다. [사촌과 결혼… 귀화인 혼인무효 위기 (한겨레)]

2011년 한겨레의 보도에 따르면 파키스탄 출신의 무함마드 아심(36) 씨는 한국인 신미선(29) 씨와 이슬람 식으로 결혼하였다. 하지만 무함마드 아심은 파키스탄에 이미 아내가 있기 때문에 혼인신고를 할 수 없었다. 이슬람 율법에서는 4명까지 부인을 두는 것을 허락하지만 한국 민법은 중혼을 금지하기 때문이다. [한국인 무슬림 (한겨레)] 그러나 알고보니 무함마드 아심은 '파키스탄 탈레반 출신의 중범죄 테러범이었다

한겨레 인터뷰 당시만 해도 선량한 이민자로 보였던 남편의 행보는 철저한 페이크였고, 첫째 아내를 구타하고 폭력과 폭언을 일삼았으며, 비무슬림들은 짐승과 같으니 죽여도 된다. 내가 널 무슬림으로 만든 걸 감사히 여겨라 따위의 등의 망언을 쏟아낼 뿐 아니라 신미선씨를 강제로 시켜 온갖 범죄와 사기행각을 치고, 신미선씨에게도 온갖 변태적인 부부간 성행위를 강요했다고 한다. 파키스탄에서 이슬람계 인사들에게 도움을 구해보았으나 "무슬림은 남의 가정사에는 간섭 안한다, 그냥 참아라" 수준의 병크만 계속할 뿐이었고 이후 남편을 따라 호주로 간 신미선씨는 죽음의 위협까지 무릅쓰고, 호주 여성난민의 집에 피신했다고 한다. 웃긴 건 남편도 선량한 이민자를 가장하고 호주에서 보호를 받고 있다는 것.[##][142] 이처럼 과격한 무슬림의 결혼에서 피해 받은 한국인 여성들의 문제가 많이 일어나고 있어서 심지어 한국 대사관에서는 결혼 사기에 대한 위험성 경고 글을 공지에 올리기까지 했다.

미국에서 유명해진 사건이 하나 있다. 다정한 매너를 가진 인텔리 무슬림 의사와 결혼한 미국 여성이 남편과 함께 남편의 고향인 모 국가로 돌아갔는데 귀국하자마자 남편은 폭력적인 이슬람 남성으로 사람이 돌변해서 아이들(특히 딸을)을 이슬람 방식으로 세뇌교육을 하려 했다. 미국인 아내가 이에 항의하자 "그럼 혼자 떠나고 아이들은 두고 가라"는 협박을 받았고 아내는 아이들과 함께 필사의 탈출을 해서(잡히면 남편 가족에게 명예살인 당하기 쉬우니까) 미국 대사관으로 피신했다. 이 이야기는 책으로 쓰여졌고 그것을 기반으로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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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솔로몬의 딸 (Not Without My Daughter, 1991)이란 제목으로 개봉한 영화가 바로 그것인데 한국개봉당시 극장 간판에 호메이니를 괴물같이 그려서 주한 이란 대사관이 항의하는 일이 벌어진 적이 있다. 덕분에 서울 상영관에서 이 간판이 내려지고 새로 고쳐 그리던 소동이 일어난 바 있다.

영화만 보면 "너무 인종차별적 내용이 아니냐??"고 할 수 있는데 원본 책을 읽어보면 더하다.[143] 심지어 영화를 보면 그래도 이란이나 무슬림에 대하여 조금은 중립적인 태도를 보이는데 예를 들면 남편이 미국에서 살면서 이란인, 무슬림이라고 차별당하여 미국생활을 지겨워하던 묘사가 나오긴 한다. 하지만 중반부로 넘어가면서 남편이 악마같이 돌변하는 묘사가 나오고 비록 결말은 미국으로 가면서 미국이 더 좋은 나라라고 하는 결말이긴 하지만. 참고로 2002년 Without My Daughter라는 다큐멘터리영화가 만들어진 바 있는데 바로 이 영화에 나오는 실제 남편의 증언과 주장으로 솔로몬의 딸에 대하여 반론하는 영화이다. 더불어 제작은 미국이나 미국인이 아닌 핀란드에서 제작했으며 감독도 핀란드인(이란에서 협조를 하긴 했지만). 더군다나 감독은 이런 영화의 배경 때문에 관객들이 무조건 이슬람은 악마, 미국은 정의라고 오해하기 딱이라 사전에 이란에 가서 그 남편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듣고 영화를 만들게 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

교육 문제에서도 갈등이 있는데 같은 기획보도에서 2003년 한국에 귀화한 상기했듯이 탈레반이었던 무함마드 아심은 한국에 이슬람 종교 학교를 세우고 파키스탄에서 이슬람 학자까지 데려왔으나 교육청에서 대안학교 인가를 내주지 않아 2007년 말에 문을 닫아야 한다는 소식을 알렸다. 지금보면 그야말로 교육청의 신의 한 수. 이때 이슬람 학교가 계획대로 열렸었다면 지금쯤 어떤 참사가 벌어지고 있을지...[144]

무함마드 아심의 장남 알리는 2003년 당시 16살이었고 차남 모하스는 14살이었는데 늦게 입학한 탓에 각각 중학교 1학년과 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하지만 두 아이는 교과를 따라가지 못해서 매일 숙제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쿠란 공부만 챙겼으며 집에 있는 책이라고는 쿠란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 뉴스를 보고 많은 네티즌들은 현실적으로 현대 사회에서 아동을 방임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라며 무함마드 아심을 비판했다. 학력 사회 운운하며 이들을 두둔하는 주장이 있으나, 애시당초 한국이든 해외든 세속화/근대화된 중진국~선진국 중에 기초적인 교육과정도 이수하기를 거부하고 이슬람 쿠란 따위나 공부했을 때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나라는 존재하지 않는다. 굳이 한국만의 문제가 아닌 것이 세계 세속 국가 어디서든 이슬람 교육만 받고 정작 현대 사회에 필요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자란다면 결국 이들은 사회 하층민으로 전락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알아둘 점은 무함마드 아심의 고향인 파키스탄탈레반이 생겨난 곳이며 이슬람 국가들에게도 맛탱이 간 이슬람 극단주의 국가라는 비난을 받는 곳이기에 파키스탄과 서남아시아 이슬람인들의 이런 태도를 보고 모든 이슬람인이 이렇다고 섣불리 단정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터키인도네시아에서 중혼은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다. 그나마 다른 아랍 국가들과 가까운 터키 동부쪽에서 중혼이 종종 있지만 법적으로 금지되어 밤중에 서둘러 결혼하거나 아내가 아닌 친척이라고 정부기관 조사에서 거짓말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물론 걸리면 엄격하게 처벌받고 결혼도 무효화된다. 하지만... 터키는 이슬람 국가들 사이에서도 증오를 사고 있는 별종 국가이고 오히려 터키 정도의 정교 분리가 이루어지고 있는 이슬람 계열 국가야말로 극소수다. 이슬람 국가들 입장에서 터키는 굉장히 이질적인 국가라는 것. 인도네시아는 이슬람에서도 변방인지라 소위 세속주의 이슬람이 주류인 양 일반화시키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이슬람 국가의 근본주의 창궐 문제와 한없이 낙후된 여성 인권 문제는 하루이틀 이어진 문제도 아니고 중혼 등의 문제 또한 그 중 하나임은 분명하다.

제사 문제의 경우 제사가 전통인지 아닌지는 해석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슬람에서 제사는 시르크로 취급된다. 한국에서 이슬람는 이것에 대해 공식적으로 입장은 밝히지 않았지만 이슬람에서 제사는 부정적이다. (순니파에서) 수피즘에선 제사가 허용된다고는 하지만.[145] 제사를 드리는 무슬림도 있지만 한국이 비이슬람사회니까 가능한 일이다.[146] 그리고 될 수 있다면 드리지 말아야 한다고 보고 있다.

이슬람 vs 비이슬람 거주국가와 문화,종교관의 차이로 인한 법적갈등은 이미 전 세계구급으로 수십차례나 언급이 되어서 더이상 자세히 적을 필요도 없지만, 신원확인등을 요구해야 하는 자리에서도 니캅 등을 벗지 않는다던가, 프랑스 등에서는 급식이 할랄푸드 아니라고 단체로 급식 배식거부를 한다던가(!), 이슬람식 여성할례를 서구사회에서 인권탄압이라고 금지시키니 방학을 이용해 이슬람권 나라로 자녀를 데리고 가서 바득바득 할례시키고 온다던가, 종교적 명예살인행위가 엄연히 불법인 나라에서 전혀 서슴치 않고 태연히 가족 살해를 저지름으로서 강력범죄사건을 뻔뻔하게 일으키는 등 거주국가내의 무슬림들과 비 무슬림들과의 마찰이 지역을 가리지 않고 대단히 심각하다. 예를 들어 시리아 난민을 대량으로 받아들인 유럽권, 특히 독일에서는 이 골수 무슬림들의 횡포로 인해서 독일내에 한참전부터 거주하던 무슬림 2~3세대나 유학생들이 안좋은 취급을 받거나, 독일 내의 인종차별주의자들의 좋은 활동핑계거리를 제공하기 때문에 독일정부가 골머리를 썩히고 있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2016년 현재까지 시리아에서 독일로 망명해 온 무슬림 가운데에서는 난민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즉 살기 위해) 기독교로 개종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는 듯 하다. 기사에서 "일부 개종은 종교적 이유에 의한 것이 아니기는 하지만 내가 세례를 줬던 사람들은 근 100% 난민 승인을 받았다"는 목사의 증언이나, "개종이 난민 승인을 얻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지만 진짜 이유는 이슬람은 용서하지 않는다는 것"개종 안 하고 쫓겨나거나 개종하고 같은 무슬림한테 살해되거나 죽는 건 매 한가지이라는 한 개종한 무슬림의 인터뷰는 어떻게 보면 섬뜩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씁쓸해지기도 하는 이야기. 덕분에 기독교로 개종한 무슬림들은 시리아로부터 같이 망명해 와서 같은 난민캠프에 살며 이슬람을 버리지 않던 주민들로부터 "배신자" 취급을 받으며 살인, 강간범죄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고.[#]

12 창작물에서의 이슬람

창작물 내에서의 이슬람의 위상은 미묘하다. 사우스파크같은 미국의 TV 방송에서는 이슬람에 대해 부정적인 면을 다루기도 한다.[147]

원래도 취급이 좋지 않았지만 9.11 테러나 2010년대 다에쉬의 대두 이후 전반적으로 무슬림이나 이슬람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묘사되는 경향이 더 강해졌는데 대부분의 테러리스트를 보면 아랍 출신으로 묘사된다. 한편 대부분의 무슬림들이 이슬람의 묘사에 굉장히 호전적으로 반응하며, 조금이라도 비판적인 경우 정당한 비판일지라도 살해위협을 받기 때문에[148] 창작물에서도 가급적이면 묘사를 기피하는 경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149]

대표적인 사례가 악마의 시 사건인데 1988년에 인도 출신의 작가인 살만 루시디가 악마의 시를 출간하자 이란의 호메이니는 이슬람에 대해 부정적으로 다루었다는 이유로 작가를 포함해 악마의 시를 번역, 출판하는 것에 관여한 모든 사람을 죽여야 한다고 파트와(종교적 판결, 선언)을 내렸다. 그 뒤 일본에서 악마의 시를 일본어로 번역한 사람이 피살된 사건이 일어났으며, 루시디 본인을 포함해 출판 및 번역에 관계된 사람들은 생명의 위협을 받아야 했다. 이후 1998년에 이란 정부에서는 루시디에게 이제는 괜찮다는 듯한 요지의 외교적 발언을 했으나 파트와를 선언한 호메이니가 1989년에 사망했기 때문에(...) 선언자만 철회할 수 있다는 규정에 의해 파트와 자체는 풀리지 않은 상태다.

특히 일본제 서브컬쳐에서는 이슬람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있어봐야 겨우 몇몇 캐릭터의 프로필에 '출신: 중동 어디어디 국가' 라는 식으로 묘사하는게 전부고,[150] 그나마도 그들의 무슬림으로서의 모습은 거의 묘사하지 않는다. 죠죠의 기묘한 모험에서도 이슬람계 캐릭터는 무함마드 압둘우루무드 압둘이 전부였고 그나마 무함마드 압둘도 이슬람적 느낌은 잘해야 캐릭터 디자인에서 중동적 외모가 조금 드러나거나 돼지고기를 기피하는 모습 정도가 전부. 스트리트 파이터 4하칸은 터키 출신이라면서 아예 대놓고 중동스럽게 생기지도 않았다.[151] 종교에 관해서 다루는 대표적인 라이트노벨인 어떤 마술의 금서목록에서도 이슬람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는다. 작가인 카마치 카즈마와 전격문고 편집부는 이슬람에 대해 자료가 방대하고 테러리즘의 위협을 예로 들며 짧게 언급했다. 기독교에 대해 거의 판타지스럽게 묘사하는 것과는 반대다.

특히 미소녀 지상주의로 흘러가는 요즘의 일본제 애니메이션, 라이트노벨, 에로게, 만화에서는 수녀, 무녀[152] 등은 모에 아이템으로 잘만 활용하지만 이슬람은 나오지 않는다. 잘해봐야 하렘이나 무희 정도. 근데 사실 하렘도 아랍 이슬람보다는 튀르크 문화권에서 따온 부분이고 일반적으로 알려진 중동의 무희 역시 아랍이 아니라 페르시아 쪽에서 따온 부분이다. 즉, 하렘이나 무희는 이슬람적 요소라고 보긴 힘들고 정말 사실적으로 묘사하려면 여캐들에겐 히잡이나 차도르를 씌워야하며 외간 남자들 앞에선 절대 벗으면 안 되는데 서브컬처 창작자들에겐 모험도 이런 모험이 없다.

풀 메탈 패닉의 주인공 사가라 소스케 정도가 무슬림 주인공의 전부. 쿠란을 암송할 정도라지만 작중 무슬림으로서의 정체성이 딱히 부각되게 묘사되지는 않는다.[153][154][155] 기동전사 건담 00의 주인공 세츠나 F. 세이에이는 중동 출신이지만 무신론자이기 때문에 무슬림은 아니다.

한가지 특이한 사항으로는 에로게 메이커인 앨리스 소프트가 챔피언 소프트라는 이름을 쓰던 당시에 마지막으로 발매된 PC-98용 게임이 이슬람을 다루었다. 리뷰를 보면 의외로 흥미롭고 재미있는 게임이었다.

메이플스토리자쿰은 이슬람의 지옥에서 자라나는 나무인 زقوم(Zaqqum)이 유래다. 때문에 자쿰퀘스트 관련 NPC들은 죄다 중동쪽 복장을 하고있다.[156]

일본 매체물은 이슬람에 관심이 없고 보기가 드물지만 서구권에서 제작한 매체물에서는 흔하게 등장은 한다. 하지만 서구권은 이슬람공포증이 있는곳이다보니 서구권의 매체물에서 이슬람은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경향이 많다. 특히 이슬람 극단주의의 추태로 인해 이슬람이 게임물에서 더욱 안좋게 묘사된다. 그예로 카운터 스트라이크(Counter-Strike) 클로즈 컴뱃(Close Combat: First to Fight), 아메리카스 아미(America`s Army), 배틀필드 시리즈에서 적이 무슬림으로 많이 나온다. 커맨드 앤 컨커 제너럴에서도 이슬람인 GLA 진영을 테러집단으로 묘사했다. 중세 판타지의 경우 이슬람은 유럽의 서구권보다 뒤쳐지며 종속되었다는 식으로 많이 나온다. 아예 서구한테 멸망당해 그들의 국민으로 살며 용병, 유목민으로 생계를 이어간다는 설정까지 종종 볼수 있다.[157][158] 능력치 또한 서구권보다 더 약하게 나온다.[159] 그러다보니 이슬람권에서는 서구의 게임을 굉장히 혐오하는 사람이 많다. 특히 이런식으로 이슬람을 막장 광신도들, 테러 집단, 서방에 종속된 노예로 묘사한다며 비난한다. 이슬람 국가들은 아예 이 게임들을 금지한다. 물론 이 게임들이 이슬람권보다 비이슬람권에서 잘팔리고 이익도 거기서 많이 나오다보니 서구의 게임제작사들은 그런거 신경안쓰고 마음놓고 이슬람을 부정적으로 표현한다. 그래서 이는 이슬람 국가들에게 반서구 감정을 더 강하게 만드는 원인제공을 하기도 한다. 일례로 미국과 이란의 관계가 험악하던 조지 부시 대통령 당시 미국 쿠마 게임사에서 미국 특수부대가 이란의 핵시설을 파괴한다는 내용의 이란 강습(Assault on Iran)을 만들어 이란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2003년에는 페트릴라 엔터테인먼트에서 퀘스트 포 사담(Quest for Saddam)이라는 게임을 제작하여 이라크와 이슬람권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왜냐면 이 퀘스트 포 사담이 미국 특수부대가 그 당시 대통령이던 사담 후세인을 사살한다는 내용을 담았기 때문이다. 이때문에 이슬람권에서 반미감정이 심해졌다.

이 반이슬람 게임에 대항하기 위해 이슬람권도 가만있지 않아 알 카에다의 선전 기관인 세계 이슬람 매체에서 부시 대통령을 죽인다는 퀘스트 포 부시를 제작하여 배포하였다. 이외에도 이란의 반미 학생단체 ‘Union of Islamic Student Societies(UISS)’이 이란 특수부대가 미국으로 쳐들어가 미국에 억류된 이란인 핵 과학자를 구출하는 내용의 게임을 만들었다. 또 2000년대 초반부터 이슬람권에서는 이른바 `돌 던지는 자(The Stone Throwers)`불리우는 온라인 게임이 제작되었다. 이 게임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핵심인물들을 맞추는 게임이다. 당연히 이 게임들은 너무나 저질인 쓰레기 게임에다[160] 세계적으로 금지된 게임이지만 유독 이슬람권에서는 성공하였다. 그것도 청년층에게 가장 인기가 있었던 것. 그만큼 서구 게임 제작사들의 반이슬람 묘사에 대한 분노가 크다는 의미다.

이슬람에 대해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작품은 의외로 스페인 미니어쳐 게임인피니티 정도다. 여기서는 이슬람이 근본주의에서 탈피한 모습으로 나오는데 이슬람을 호의적인 시선으로 크게 재해석해서 등장시켰다.

12.1 이슬람에 관한 창작물

13 읽을 거리

14 인터넷 접미사 ~슬람

이 문단은 슬람(으)로 검색해도 들어올 수 있습니다.


이슬람에서 따 온 인터넷 은어 접미사. 무슬림에서 따 와 ~슬림이라고도 하나 이는 잘 쓰이지 않는다.

불특정 집단이 특정한 대상에 대해서 종교적으로 까지 보이는 불합리하고 맹목적인 추종, 옹호, 열광 등의 행동을 보일 때 사용한다. '고리타분하고 꽉 막혔다'는 뉘앙스를 주므로 여기서 말하는 '~슬람(~슬림)'은 이슬람 극단주의 등 이슬람에 대한 부정적인 면에서 나온 것이다.

14.1 예시

  • 개슬람 : + 이슬람. 사실 다른 대상을 욕하는 게 아니라 개독교에서 나온 말로, 이슬람 자체를 욕하는 말이다.(개독과 달리 이슬람 전체를 욕하는 뉘앙스가 강하다.)뱀발로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이슬람에서는 개를 더러운 동물로 보고 매우 혐오하며, 말레이시아에서는 개를 만지는 것조차 하람(부정한 행위)으로 정의했다. 이슬람권에서 병크스러운 사건이 터지면 한 술 더 떠 미개슬람이라고도...
  • 나치슬람 : 나치 + 이슬람. 서구권에서 이슬람을 비하할 때 쓰는 말이다. 개슬람의 서구 버전. 실제로 前 메이저리그의 선발투수였던 커트 실링무슬림이 나치보다 못하다는 비하 발언을 했다가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 도슬람 : 리그 오브 레전드의 악성 유저인 롤독(교)(롤+개독/기독교)에 대치되는 개념으로 만들어진 단어. 원래는 악성 도타유저를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언제부턴가 일반적인 도타 유저들도 자신을 도슬람이라 칭하더니 어느샌가 도타 유저 및 팬덤 전반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 리슬람 :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 리븐을 사용하는 유저들이 리븐은 너프하면 안 된다고 하면서 별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대고 실드를 치는 양심없는 유저들을 비하하는 단어. 실제로 리븐은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챔피언으로, 다른 암살자 챔피언들과 비교해서 너프를 해야할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라이엇 측에서 계속 내버려 두기 때문에 논란이 계속되는 것. 리븐 유저들은 '리븐은 엄청 어려우니까 그 점 감안해서 내버려 두는 거임'이라는 이유를 대기도 하는데, 그런 것이라면 당연히 리메이크된 갱플랭크도 너프를 하면 안 됐었지만 갱플랭크의 화약통 데미지가 말이 안 된다는 등의 소리가 나오면서 결국 난도질 당하였다. 그런데 실제로 티어가 올라갈수록 라인전에서부터의 리븐 대처법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OP캐릭터가 아니고 그래서 리븐 너프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내가 상대할 때 너무 세니까 반드시 너프해서 관짝에 묻어야 해!"라는 말들은 롤 커뮤니티의 집단 병리 현상에 가까워 보인다.[163]
  • 쉐슬람 : 다만 쉐슬람은 자신이 쉐보레 차량을 타고 다니면 자기 자신을 쉐슬람이라 칭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 특슬람 : 레이 커즈와일의 저서 '특이점이 온다'에서 유래한 드립을 치는 유저들을 비꼬아 특슬람이라고 부른다. 특슬람의 선지자는 알파고, 특슬람의 타크비르는 '특이점이 온다!'라 카더라

14.2 과도한 사용

맘슬람(맘충) 등 단순히 특정 대상에 대한 과도한 추종이라는 뜻이 아닌 단순히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는 대상이거나, 단순 비하적 의도로, 또는 자신이 하지 않는 게임 유저들에게 ~슬람이라는 등 무작정 ~슬람을 붙이는 사람들이 있다.

15 관련 문서

가나다순 정렬

  1. 좀 더 설명하자면, 이 SLM 어근에서 파생된 단어 중 하나가 비무슬림에게도 유명한 'salaam'이다. 흔히 평화라고 번역되지만, 정확한 의미는 '(하나님에게) 복종함으로써 얻는 마음의 안식과 평온함'을 의미한다. 무슬림들이 인사할때 '앗살라무 알라이쿰'(평화가 당신께 함께 하기를)이라는 인삿말이나 유대인들이 쓰는 동일한 의미의 '샬롬 알레이헴'. 기독교인들은 '샬롬' 만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성경에서 부활한 예수가 제자들 앞에서 "평화가 너희와 함께"라고 말한 것도 이런 셈족 언어의 전통에서 이해하면 된다. 예수가 생전에 썼던 아람어도 셈족 계통의 언어다.
  2. 다만 한국 이슬람교 중앙회에서는 '회교'는 잘못된 명칭이니 이슬람이라고 불러줄 것을 요청한다.[#] 비신자는 '그게 무슨 차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당사자들이 요청하는 만큼, 가급적이면 이슬람이라고 불러주자.
  3. 고려가요 쌍화점에 "회회(回回)아비"가 등장하는데 회족 출신이거나, 이슬람(회교) 신자로 고려에 온 장사꾼(그러니까 회족이 아닌 민족일수도 있음)이라는 등 견해가 갈린다. 쌍화점 문서에서는 위구르인으로 소개되어 있다. 여담이지만 서양인이라면 국적 불문하고 죄다 미국사람이라 부르던 시절도 있었다 참고로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하면서 한족을 제외한 56개 소수민족을 거느리게 되었는데, 회족(후이족으로도 표기)과 위구르족은 별개의 민족으로 분류한다. 성(省)과 동등한 행정단위인 민족자치구로 닝샤 후이족 자치구와 신장 위구르족 자치구도 별개로 존재한다.
  4. 4번째는 바하이교 쯤 될 것이다
  5. 기독교에서 야훼 또는 여호와라고 부르는 그 하느님이다. 이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으나, 무슬림들은 기독교의 하느님과 알라는 같은 대상이라고 말하고 있다.
  6. 다른 종교에서도 가장 위대한 신의 이름을 부르는 건 금지되거나 꺼려하는 행위인 경우가 많다. 유대교에서 창조주를 아도나이(주)로 돌려 말한다던가, 고대 그리스에서 제우스크로노스의 아들로 칭하는 등.
  7. 연속되는 자음을 처리하는 언어의 특성상 축약되어 ALLH로 표기, '알라'라고 읽힌다. 신비주의자들은 이 세 글자인 알리프(A), 람(L), 하(H)를 성스러운 글자라고 생각하기도 해서 터키에서는 튤립(터키어로 Lale)을 신성한 꽃으로 여기기도 했다.
  8. 다만 유대교기독교의 유일신인 야훼(여호와) 역시 보통 '야훼' 또는 '여호와'라고 하지 '신'을 붙여서 '야훼신', '여호와신' 등으로 표현하지 않듯이, '알라신' 자체도 틀린 표현은 아니지만 웬만하면 '알라'라고 부르는 게 바람직하다고도 볼 수 있다.
  9. 천사의 모습에 대한 기독교의 가장 보편적인 인식은 '영적인 존재이므로 필요에 따라 여러 모습을 취한다'이다. 즉 필요에 따라 남성의 모습으로도, 여성의 모습으로도, 혹은 인간이 아닌 모습으로도 나타난다.
  10. 본래 한 종교의 경전은 처음 쓰여진 이외의 언어로 번역하는 것이 터부시 된다. 불경 중 중요한 구절은 중국어음차를 이용해 표기하거나, 라틴어로 된 성경을 읽는 근본주의 가톨릭 신자가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11. 조금 쉽게 설명하자면, 하느님이 인간들에게 자신의 말을 전해주고, 무지한 인간을 위해 예언자들을 통해 약간의 특수한 능력을 보여주기도 했는데, 이게 자꾸 곡해되고 왜곡되어 하느님의 말씀은 엉뚱하게 해석되고, 예언자인 예수를 신처럼 숭배하는 현상이 일어나자 마지막으로 아예 '베껴적고 달달달 외우기만 하면 천당에 갈 수 있는 모범답안'으로 인간에게 쿠란을 준 것이다. 그래서 쿠란의 번역을 금지하는 만큼 사도 무함마드가 평범한 인간에 불과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12. 대표적인 예로는 중앙아시아를 들 수 있다.
  13.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14. 하지만 한국인 무슬림 측에 따르면, 그들의 공동체에서 알라를 하나님이라고 정의하며 같다고 주장한다.
  15. 이런저런 매체를 통해 노출되는 '이슬람 종교인' 내지는 '스승'들이 서로 완전히 다른 소리를 한다든지, 서구의 문화적 배경을 오래 접해온 무슬림들과 중동 현지에 사는 무슬림들의 생각이 완전히 다르다든지 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16. 유대인과 기독교인
  17. 그래서 이슬람은 기독교를 우상숭배를 금지한다면서 자기네들이 우상숭배를 하고 있다고 깐다.
  18. 이란이라크는 이슬람 문화권에서 시아파가 다수인 몇 안 되는 국가들이다.
  19. 이슬람권에서 가장 세속적인 지역으로 꼽히는 중앙아시아에서도 예외적으로 페르가나 계곡 지역은 와하브파가 득세하고 있다. 우즈베키스탄 동부, 키르기스스탄 남부 일부가 해당한다. 하지만 이 쪽이 지역사회 차원에서 규율을 엄격하게 적용하는 성향이 있지만 우즈벡과 키르기스라는 나라 전체적으로 보면 세속적 성향이므로 실제로는 사우디아라비아처럼 꽉 막힌 사회까지는 아니다.
  20. 시조격인 메블라나 루미(1207~1273)가 지은 시를 봐도 이렇다. "오라 그대가 무엇을 믿든 믿지않든, 불을 섬기든, 뱀을 섬기든, 신을 많이 믿든, 십자가를 섬기든 누구든지 오라…. 여기는 절망의 문이 아니다. 모두가 신에게 가는 길이자 모두가 용서받고 모두가 화목하게 지내며 모두가 자신의 신앙을 존중받아야 하는 곳이다."
  21. 여기서 아타튀르크 집권기에 수피종단을 금지화 시킨 맥락을 좀 더 설명하자면, 오스만 제국 당시 예니체리들이 가장 많이 따르던 종단이 바로 이 수피종단이었다. 특히 벡타쉬파 같은 경우는 기독교와 이슬람의 전통을 융합시켜 발전해왔기 때문에 원래 기독교인이었던 예니체리들이 손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종파였고, 그래서 예니체리가 사라지고 오스만 제국이 멸망한 이후에도 한동안 강력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이 자꾸만 오스만 제국의 부활을 주장하며 충돌을 일으키자 금지먹은 것.
  22. 무함마드가 이슬람을 만들기 이전, 아랍인들은 여러 신들을 섬기는 다신교를 믿었다. 자세한 사항은 아랍 신화 문서 참조.
  23. 예를들어, 무슬림이 쿠란을 만지거나 예배를 하기 전에 반드시 해야하는 복잡한 세정의식(우두, 구쓸)은 원칙상 흐르는 물로 씻어야만 온전히 수행한 것으로 인정된다. 그래서 모스크에 보면 세정용 수도꼭지가 꼭 있다.
  24. 현재의 은행들 중에도 맡기는 사람은 이자를 받는 쪽과, 보관 수수료를 내는 쪽이 있다. 그것을 유목민족이 생물인 말 따위를 맡긴다고 한다면 이자를 받기보단 차라리 수수료를 내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리고 상업과 금융을 배척하자고 이자를 못 받게 했다고는 하기 힘든 것이 무함마드가 성공한 배경 중에는 부유한 상인이었던 부인의 영향도 있다. 쿠란이나 하디스를 보면 상업을 할 때 가져야 할 윤리에 대해서도 많이 설명하고 있다.
  25. 가부장적인 면은 원래 그랬다고 하지만, 그걸 바꾸지 않았다는 점.
  26. 물론 기독교를 믿는 국가라 해도 아일랜드나 필리핀처럼 식민통치를 당한 국가는 존재하다.
  27. 때문에 종교개혁 이후 나온 신흥 기독교 종파들, 즉 개신교 종파들의 경우 이슬람의 영향으로 우상으로 오해되거나 변질될 수 있는 것마저도 매우 싫어한다. 성상과 성인들에 대한 공경을 거부하는 것도 이 영향.
  28. 이슬람의 율법을 엄격하게 지키는 국가에서는 인형(人形)의 반입도 금지되며, 허락이 된다 해도 목을 떼어내야 한다는 듯하다. 예를 들자면 빅잠은 가능하지만 건담은 불가. 라스트 슈팅의 건담은 괜찮을지도 모르겠지만. 이것도 나라마다 기준이 다른건지 [이집트에서는 넨도로이드도 반입이 가능한 모양이다.] 사실 이집트 국내에서도 야시장이나 백화점 등지에서 고대 이집트를 소재로 한 피규어들을 팔기도 하는 걸보면 이집트는 확실히 기준이 느슨한듯.
  29. 시아파의 경우에는 성상을 사용하기도 한다.
  30. 그래서 정교회나 유대교 밀레트에서 해결하기 힘든 재판의 경우, 무슬림이 아닌 경우에도 많은 이들이 하나피파 법관에게 가서 재판을 받곤 했었다.
  31. 같은 아브라함 종교계열인 기독교와 달리, 쿠란에서는 신과 인간은 만날 수 없다고 말한다. 반대로 개신교는 개인과 신이 직접 교감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신부나 성모 마리아 같은 중재인을 두지 않는다.
  32. 특히 성차별적이거나 전근대적 또는 비합리, 비윤리적인 구절 등
  33. 살라트는 기도를 올리기 전에 손을 잘 씻어야만 한다. [모스크 안에서 손발을 씻는 모습] (마치 병원에서 가르쳐주는 식으로 꼼꼼하게 씻는다. 미드 홈랜드 1화에 잘 묘사되었다.) 그리고 언제나 메카가 어느방향인지 알아야하므로 위생과 방위라는 신자들의 번영에 기본이 되는 요소를 품고 있는 것이다.
  34. 대부분의 신자들이 '알라께서 지켜주실 것이니 질병 따위는 두렵지 않다'고 하며 신경을 안썼기 때문.
  35. 한때는 지하드, 즉 성전이 들어간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었다.
  36. 우주정거장은 하루에 지구를 16바퀴 돌기 때문이다. 원칙은 그렇지만, 이에 대해 말레이시아 율법학자들은 '기도는 개인 능력대로' 하라고 지침을 내렸다.
  37. 그외에도 예배 중에 개가 앞을 지나가면 그 예배도 무효가 된다. 근데 우습게도 고양이는 괜찮다고. 이건 무함마드가 개는 싫어하고 고양이만 좋아해서 개인 호불호에 따라 예배규정을 이런 식으로 만든 거다(...).
  38. 아주 사소한 피 흘림이 아니면 무조건 해야 된다고 한다.
  39. 샤워기 없이 손으로 물을 떠서 전통적으로 하는 방법도 있다.
  40. 예를 들어 양말을 벗어야 한다거나(...) 단 필수는 아니다
  41. 수니파 5번, 시아파 3번(시아파도 기본적으로 5번이다. 3번이라고 오해를 받는 것은 수니파는 예배를 정확하게 다섯 번으로 나누어 하는 반면에, 시아파의 경우 두번째와 세번째를 연달아 하고 네번째와 다섯 번째를 연달아 하기 때문이다. 즉, 모르는 사람이 보기엔 3번만 예배를 하는 것 같지만, 여기서 두 번째와 세 번째는 한 번의 예배가 아니라 약간의 숨을 돌리고 하는 두 예배가 합쳐진 것이다.)
  42. سجادة, sajjāda
  43. الوضوء, al-wuḍūʼ‎
  44. 경건한 것도 좋지만, 건조한 지방에서 물을 헤프게 쓰다간 진짜로 신을 만나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45. صلاة‎, Salat
  46. 하렘과 어원이 같다. 므흣한 그 하렘의 의미는 '금'남구역이에 해당한다.
  47. 이건 종교적인 것과 실질적인 어려움이 합쳐진 것. 종교적으로는 예수가 악마를 가두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질적으로는 사막이라 안그래도 먹을게 풍족하지 않은 상황에서, 인간과 동일한 먹이를 먹는 경쟁관계의 동물을 키우기는 어려웠다는 점. 소나 낙타처럼 풀만 먹고 노동력이라도 제공하면 모를까, 고기만 얻는 짐승을 굳이 귀한 음식 먹여가며 키우려면... 게다가 돼지는 때때로 진흙탕에서 굴러 몸을 씻어야 하기때문에 물도 엄청나게 필요하다.
  48. 한국 이슬람 중앙성원 홈페이지에 올라온 질문에는 이런 것도 있었다. 질문자가 중동 출신인지 동남아 출신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외국인 무슬림인데, 한국에 와서 사귄 친구에게 선물로 초코파이를 받았다. 새로 사귄 친구에게 받은 첫 선물이라 일단 받고서는 이게 이슬람 율법에 허용되는지 확인해보려고 질문한 것. 그런데 초코파이 마쉬멜로우에 돼지기름에서 추출한 성분이 섞여 있으니(...)
  49. 사실 알콜이라는 단어 자체가 아랍어 알쿨(الكحل, al-kuḥl, "화장먹, 아이라이너 같은 가루")에서 나온 단어다.
  50. 보통 '밖에서 공식적으로' 먹는 것이 기피되는 편이다. 율법의 원칙과 현실의 욕구 사이에서 적당히 타협한 것. 당연히 원칙적으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집에서 술이나 돼지고기을 먹을때 "이 정도는 알라께서 봐주실거야. 그 분은 자비로우시니까." 하면서 먹는 신도들도 많다. 물론 이건 이 음식들을 쉽게 구하는 한국에서의 얘기다. 아랍국가에서도 이 음식들을 구할 수 있다면 이렇게 될지 모를 일이지만. 참고로 이집트나 시리아, 레바논 같은 경우 기독교인이 공존해서인지 먹을 수 있다고 한다. 실제로 시리아와 이집트에서 돼지고기임을 알고도 거리낌없이 먹는 무슬림들을 본 한국인 거주자 글도 있다.(…) 캐나다 등 비이슬람권 국가에 온 젊은 무슬림 유학생들이 돼지고기를 먹는 사례도 있다. 유학 오기 전까지는 돼지고기 맛을 몰랐을 텐데 어찌 맛을 아느냐고 물어보았더니 답하기를 "중국인 친구들이랑 어울리면서 돼지고기 맛있는 줄 알게 됐다"나.
  51. 가을이 아니다! 이슬람력은 계절의 변화와는 무관한 순수 태음력이라 반드시 태양력(그레고리력)의 9월 및 계절의 변화와 일치하지 않는다. 이슬람력과 태양력은 대개 1년에 10일씩 오차가 발생하므로 해마다 오차가 누적되면서 라마단은 일정한 주기에 따라 어느 계절이든 거치게 된다. 이슬람력 문서 참조.
  52. 한달동안 아무것도 안먹고 버틸 인간이 어디있을까.
  53. 애초에 다이어트를 목적으로 단식을 하는 것은 아니니 상관없다. 단식을 함으로써 정신 상태를 맑고 순수하게 만들면 천사의 속성에 접근할 수 있다고 보았고, 또 굶주린 사람들에게 사랑과 자비를 베풀어줄 수 있는 동기를 유발시킬 수 있다고 생각해서 하게 된 것이다.
  54. 굶으면 살찌기 더 쉽다. 몸이 양분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는 양분이 들어올때 축적해두려고 하기 때문. 굳이 식사량으로 살을 빼려면 단식하지 말고 차라리 소식을 하는게 효과가 있다.
  55. 이슬람 계율의 엄격함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굶어죽지 말라고 음식 보내줬으면 아무거나 쳐먹을 일이지 저렇게 뻗대고 거부하다니 배은망덕하다"라는 취지로 분개한 사람들이 많았다. 물론 이는, "돕고자 하는 행위라고 할지라도 무엇을 어떻게 해줘야 하는지 제대로 알아보고 그에 맞춰서 해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라는 반대 견해에 폭풍까임을 받았다. 궁핍한 상황에서 도와주고자 하는 선의는 좋았으나, 무슬림에게 돼지고기 먹으라고 건네주는 것은 모멸의 행위에 가깝다. 거지조차도 아무렇게나 돈 던져주면 다 좋아하지는 않는다 베풂의 기본 정신은 "내가 생각하는 호의"에 기준해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존중하기에 그가 처한 어려움을 인지하고 돕고자 한다"는 존중과 소통에 기반한다.
  56. 실제로 쿠란엔 직접적인 동성애 금지 조항은 없다. [참고] 그러나 쿠란에 준하는 제2경전인 하디스에 동성애 금지가 나와있기에 사실상 동성애는 이슬람 교리상 죄다.
  57. 이 구절은 남편의 아내에 대한 구타가 무죄가 되는 근거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위험하다는 주장이 있다. 일부 학자들은 무함마드가 아내를 때린 남편을 규탄하였다는 기록을 근거로 때리는 것이 아닌 이혼을 제안하라는 말이라고 해석하기도 하지만, 때리다가 맞다는 주장이 유력하다. [영문 위키 문서] 및 [위키이슬람 문서] 참조.
  58. 아랍어로 "아드라부 안후나"라고 쓰여 있는데 이는 현대 아랍어 문법으로는 해석이 애매하다. 아드라부 란 문구로 시작할 경우는 보통 멀리하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지만 뒤에 안후나라는 부분이 구분하는 한정성 때문에 사전대로라면 이 문구는 때리다라는 문구로 해석이 될 수밖에 없다. 또한 한국어 쿠란에서는 저 아내를 때리라는 단락에 '가볍게'라는 원문에도 없는 첨언을 달아 번역했다가 욕을 먹기도 했다.
  59. 하지만 동시대 비잔틴 제국이나 게르만 사회도 이슬람 수준의 여성인권은 보장되는 수준이었다. 이슬람이 무슨 전근대에 대대적인 여권신장을 초래했다느니 식의 이해는 금물.
  60. 여종 혹은 포로로 잡히거나 사온 이교도 여자 성노예
  61. 만일 주위에 물이 있다면 소위 '깨끗한 상태'가 되기 위해선 우두(팔, 다리와 얼굴을 씻기), 혹은 구쓸(샤워)를 해야 한다. 여성과의 사심없는 가벼운 접촉 정도는 괜찮다지만(무함마드도 예배 전에 부인과 가벼운 키스를 했다는 기록때문에 괜찮다고 주장) 조금이라도 사심이 있었다면 바로 세정의식을 다시 해야된다. 한마디로 이슬람에서 여성을 대하고 만졌을 때는 화장실에서 똥을 쌀 때와 마찬가지로 더러운 상태로 취급된다는 것(!).
  62. 헤로도토스가 살던 시절에도 나온 걸 보면 이슬람이 생기기 아득한 옛날부터 있었던 걸 알 수 있다.
  63. 인도 토속 종교가 카스트와 지참금같은 힌두교의 신분제도, 여성 인권침해 등의 요소들을 죄다 받아들여 여성차별 종교가 되어버린 사례에 비추어 볼 때, 이슬람이 없었더라도 아랍 전통적 여성 차별 인식으로부터 또다른 여성탄압종교가 탄생했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64. 하지만 이슬람은 첩에 대해서는 제한을 두지 않아 사실상의 성노예제도 및 하렘 운영은 가능했다는게 함정.
  65. 잠자리 횟수까지 모든 것을 공평하게 해야 한다고 명시하였다.
  66. 쿠란의 해석은 후대의 해석을 따르도록 쿠란이 지시하고 있어서 여성 권리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해석해도 문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는 것에 대해 [남성의 기득권 유지가 목적이라는 분석]이 있다.
  67. 그 이유도 가관인게, 서구 남성이랑 연애를 하거나, 비무슬림과 결혼했다는 이유, 그리고 다른 종교로 개종하거나 조금이라도 진보적으로 나가 밉보였다는 이유(!) 등이다. 사실상 답이 없는 수준.
  68. 당장 1970년대의 이집트, 이란,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시리아와 현재의 모습을 비교해보자. 서구화와 아랍 민족주의, 서양식 근대화로 인해 (정치적 자유와는 별개로)상당히 평등한 수준이었던 중동-남아시아권 여성인권이 소위 '이슬람주의 세력'이 국민적 지지를 얻고 주도권을 쥔 뒤부터는 21세기로 나아갈수록 전근대 중세에 가까운 수준으로 나날이 퇴보하고 있다. 반면 독재 시절에도, 민주화 성공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이슬람 세력을 배척하는데 성공한 튀니지같은 나라는 중동 지역에서 가장 평등적인 가치관이 자리잡혀있다는 점을 대조해보자. 이런 큼직큼직한 예시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상황에서 여성인권 악화에 이슬람이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 자체가 무리수다.
  69. 그리고 이를 가장 극렬하게 보여주는 것이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이중잣대다. 이슬람 극단주의샤리아명예살인 문서 참조.
  70. 이는 헤즈볼라의 특성이 이슬람주의 단체의 탈을 쓰고는 있지만 실상은 세속적 아랍 민족주의자들이기 때문이다. 탈레반이나 알 카에다 같은 세력보다는 온건한 편이다.
  71. 대표적으로 이란의 사회주의 성향 이슬람 조직인 '무자헤딘 할크' 등이 있는데, 이들은 당연히 이란 대다수 이슬람계에서 이단 취급받고 호메이니 시절에 철저히 왕따당하고 박살났다. 현실은 시궁창.
  72. 사우디에서 공부하고, 사우디의 지원을 받은 많은 국제사회 무슬림들도 자국으로 돌아가서 여성할례를 이슬람적인 행위라고 주장하는 개소리 및 병크를 툭하면 일으킨다.
  73. Kurban과 발음이 비슷한 폴란드어 Kurwa는 씨발이란 뜻이다.
  74. 2등 국민으로 차별받는 기독교도와 유대교도
  75. 샤리아에 의한 비무슬림 탄압과 차별 및 세금폭탄 부과와 비무슬림 양육권 빼앗기 등
  76. 로버트 스펜서 저, 《정치적으로 왜곡된 이슬람 엿보기》 163p.
  77. 즉 비무슬림 가정을 파탄냄과 동시에 비무슬림 타종교인 자손의 종교를 어떻게 해서든 이슬람으로 만드려는 교묘한 수작이다.
  78. 이건 조금만 생각해보면 결국 무슬림들에게만 철저히 유리한 제도다. 전근대 사회에서 아내의 종교는 남편을 따라가게 마련인데, 대놓고 무슬림 남성이 비무슬림 여성을 상대적으로 취하기 쉽게 만드는데다 경우에 따라선 일부다처제까지 허용하니...
  79. 더욱이 이 결혼 차별 문제는 근본주의적인 이슬람 국가들에서는 말할것도 없고 말레이시아 같은 비교적 온건하다고 자부하는 나라에서까지 심각한 인권문제가 될 정도로 21세기 현재까지 철저히 현재진행형이다.
  80. 십자군 전쟁 이전에도
  81. 기독교에 대한 이슬람권의 반감과 적개심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82. 즉, 선교가 금지인 나라. 사실 선교가 금지인 나라는 이슬람권 국가를 제외하고 꽤 있는 편이고 이 정도면 진정한 종교의 자유라고는 볼 수 없지만 형식상으로는 어느정도 종교의 자유를 인정해 주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 있으나, 실질적으로 대다수 강성 이슬람 국가에서 비이슬람으로로 개종한 사람은 주요 무슬림 커뮤니티에서 극심한 핍박이나 린치를 받고 지구상 어느 종교권보다도 가혹한 사회매장이 기다리고 있다는 점을 볼 때 현대 기준으로 위 이슬람 국가들이 꽤 종교자유를 인정해준다는 말은 설득력이 없다.
  83. 카자흐스탄이나 우즈베키스탄 등의 중앙아시아 쪽 국가들은 보통 세속주의적이라고 하지만 이 동네는 이슬람을 포함한 모든 종교가 엄격하게 통제받고 있는 쪽에 가까우며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는 나라라 보긴 힘들다.
  84. 비무슬림들의 눈치를 봐서라도
  85. 이 신성모독이란 것도 무슬림들 기준에서 판단되는, 대단히 자의적인 기준이다. 일례로 나이지리아에서는 기도하는 무슬림들 앞으로 기독교인 여자가 단순히 그냥 지나갔다는 이유신성모독이라며 기독교도에 대한 유혈폭동이 일어난 적도 있다. 그럼 뭐 타종교인은 무슬림이랑 마주치면 존경을 표하며 기어서 가야 신성모독이 아닌가...?
  86. 실제로 이집트에서는 해마다 지즈야를 낼 돈이 없는 많은 극빈층 콥트 정교회 기독교인들이 무슬림으로 반강제로 개종당하는 걸로 유명하다.
  87. 근데 사실 이슬람 내 세속주의가 힘을 잃지 않았던 20세기 중후반만 해도 중동에서조차 수니파-시아파 무슬림 사이의 결혼은 크게 문제시되지 않았다. 당사자들도 "같은 무슬림인데 뭐 어때.." 같은 식으로 생각하고 말았다고. 그러나 갈수록 이슬람 근본주의가 부상하고 수니-시아파간 종파갈등이 극심해지면서 지금은...
  88. 2014년 ICM 영국,독일, 프랑스 무슬림 ISIL 지지여부 여론조사 자료 통계. 단적으로 말해 영국에서는 길가다 마주치는 무슬림 중장년 10명 중 한명이, 프랑스에서는 이슬람 청년들 4명 중 1명IS 추종/지지자라는 것이다. 괜히 파리 테러런던 지하철 폭탄 테러가 아무 이유없이 일어난 게 아니다.
  89. 다만 ISIL 정도로 극단적으로 가면 무슬림들의 반응 역시 대부분은 부정적이거나, 파키스탄처럼 극단적인 지역에서도 '모른다' 정도가 주된 반응이었다. 물론 ISIL의 극단성을 감안하면 위에 언급된 10-20%도 우려할 만한 수준이지만. [#]
  90. 실제로 한 80대 영국인은 동런던 술집에서 맥주를 마시다가 무슬림들에게 쇠야구방망이로 구타당해 죽었는데 이 영국인을 살해한 무슬림들은 이슬람 권역에서 술 마신 영국인 잘못이라고 우기지만 실제로 그 술집은 런던에서 150년동안 있었던 토박이 술집이고 죽은 영국인은 그 술집 60년 단골이었다. 정작 살인을 저지른 무슬림들은 이민온지 얼마 되지 않은 신출내기들이었다.
  91. 다만 이슬람법을 국법으로 도입하는 것을 지지한다고 응답한 무슬림들 중에서도 배교자 처형 등의 극단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의견이 크게 갈렸다. 카자흐스탄 같은 경우에는 샤리아 지지자(10%) 중 배교자 처형을 지지한다는 비율은 4%에 불과했고, 인도네시아(샤리아 지지자 중 18%)처럼 샤리아 지지자가 70%가 넘어가는 나라들 중에서도 이런 극단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지지율이 낮은 경우도 있었다. 물론 샤리아 지지자가 99%에 그 중 79%가 배교자 처형을 지지한 아프가니스탄 같은 사례도 있지만. 조사 대상국 전체로 보면 샤리아 지지자에만 한정해도 배교자 처형까지 지지한다는 비율이 과반을 넘긴 나라는 19개국 중 6개국에 그쳤다.[#]
  92. 다른 종교권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를 보면, 이스라엘 유대인 중 유대교 율법을 국법으로 지정하는 데 찬성하는 비율은 29%였다.[#]
  93. 중국의 오호십육국 시대 당시 비한족들이 유교 대신 불교를 선호했던 이유와 같다.
  94. 그 대신에 인도는 힌두교가 득세하는 곳이 되었다.
  95. 시크교같은 인도 소수 토착종교도 이때 광신적 이슬람 세력에게 정말 잔혹한 탄압을 당했다. 시크교 여성과 유아살해는 예삿일이었고 도저히 위키에 쓸 수 없을정도로 잔인한 핍박을 해댔다. 무굴제국의 종교공존을 말그대로 박살낸 천하의 개쌍놈들.
  96. 이슬람 치하에서는 탄압을 피하려고 이슬람으로 개종한 기독교인들까지 있었다. 나중에 무슬림들을 추방하고 나서야 기독교로 다시 돌아갔다.
  97. 사실 프랑스 뿐만 아니라 다른 유럽 열강들도 식민지에 이런 방식을 했다. 일본 역시 마찬가지.
  98. 당시 무슬림들은 무역상, 천문학자, 의사 등으로 활동하였고 유학자들도 많이 배출되었다. "유교와 이슬람은 사실 같은 종교"라고 주장하는 무슬림도 있었다.
  99. 한편 반란 진압을 위한 경비 지출로 인해 19세기 중반 발생한 대기근을 대처하지 못해 화북 지방에서 2천만명이 아사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에 신하들이 반란 토벌 시 대규모 병력 투입을 반대하기도 했다.
  100. 연금술을 뜻하는 'alchemy'와 대수학을 뜻하는 'algebra'는 모두 아랍어에서 온 말로써, 각 단어의 앞에 붙은 'al-'은 아랍어에서 자주 사용되는 말이다.
  101. 대표적인 예가 무슬림의 순진함. 물론, 이 작품의 경우는 노골적으로 감독의 신성모독의도가 엿보이는 부분이 있었지만, 그동안 기독교가 신성모독적인 매체에 보인 태도와는 격이 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다. 현대사회에서 종교라는 권위가 약해지고, 풍자의 대상이 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면도 있지만, 그러한 풍자화는 기독교든, 불교든, 이슬람이든 피할 수 없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보다 유연한 적응이 필요해보인다.타종교인들은 종교 비판/왜곡 매체에 반대할망정 폭동을 일으키지는 않지 않는가
  102. 20세기 초 미국의 금주법에서도 그렇지만, 당시 아랍인들에게 술이란 '포도주'가 전부였다. 나머지 알콜음료는 술이라는 인식이 없었으며 실제로 무함마드도 생전에 차갑게 만든 대추야자술을 즐겨마셨다는 하디스의 전승이 있다.
  103. 마찬가지로 이슬람과 무관한 몽골이 말젖을 발효시킨 술인 아이락(보통 쓰이는 마유주라는 일본 한자어는 옳지 않는데 아이락은 말젖 말고도 양젖이나 염소젖으로도 만들기 때문이다)을 애들이고 어른이고 남자고 여자고 물처럼 마신 것도 비슷한 경우다. 즉 유목민들에게 술은 금지할 수 없다는 것은 어디건 같은 셈이다.
  104. 2005년 10월 파키스탄에서 일어난 지진으로 7만여명이 목숨을 잃을 당시 부상을 입고 매몰된 건물이나 산사태로 묻혀진 사람들은 하필 라마단 기간이라고 음식을 거부하다가 죽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당시 인명 구조를 위해 해외 각지에서 파견된 구조대는 어쩔 줄 몰라했는데, 사정을 잘 아는 터키 구조대가 "라마단에 스스로 죽으려고 단식하는 건 이슬람에서 가장 금기시하는 자살이다."고 설득하자 사람들이 물과 음식을 받아먹었다. 당시 한국 구조대가 쓴 책인 <슈끄람! 파키스탄>에서 발췌.
  105. 문서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명목상은 세속국가다. 하지만 사실상(de facto) 국교가 이슬람이니.
  106. 인도네시아가 네덜란드 식민지였던 시절 네덜란드인들이 세운 하이네켄 맥주 공장이 시초라고 한다.
  107. 원래는 말레이시아가 영국의 식민지였던 시절 싱가포르에서 생산하던 싱가포르 맥주였는데 생산 공장을 말레이시아 본토로 이전하면서 말레이시아 맥주가 되었다.
  108. 맥주 정도는 어느 식당이나 마트 등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수도 자카르타나 쿠알라룸푸르를 비롯해 요그야카르타, 메단, 이포, 푸트라자야, 우중판당, 팔렘방 등 일부 대도시 지역에도 술을 파는 바와 클럽, 호텔, 식당, 관광지등이 넘쳐나는데 이는 다른 기독교 세속국가의 유흥가, 호텔, 식당, 관광지 등과 별반 다를 게 없다.
  109. 터키와 튀니지, 알제리, 모로코, 이집트, 보스니아,알바니아, 요르단 같은 경우 전통적으로 터키는 튀르크족이 음주가무를 즐기던 민족이기도 했고 수피즘과 알레비즘같은 이슬람 신비주의가 정착해 토속화된 결과 술에 대한 금기가 많이 흐려졌다. 특히 오스만 제국시대 기독교 동방정교를 믿는 그리스인, 아르메니아인, 불가리아인, 세르비아인등 술문화가 있는 기독교도 타 민족들과 함께 살게 되면서 음주에 대한 인식이 관대로워졌는데다 오스만 제국 멸망후 들어선 터키 공화국 정부가 강력한 서구화,세속주의 정책을 추진하여 터키의 종교적,사회적 분위기가 더욱 더 세속화되면서 음주에 대한 이슬람의 종교적 금기가 완전히 무너져버렸다.이집트는 이슬람이 전래되기 전인 고대 이집트 시기에 맥주를 먼저 만들어서 먹었을 정도로 술 문화가 있었고 알제리와 모로코, 튀니지, 요르단, 보스니아, 알바니아 역시 전통적으로 포도주문화가 있었던 고대 그리스와 로마제국의 직간접적인 영향권에 속해 있었다.
  110. 방글라데시 사채업자들은 살인적인 이자로 인해 돈을 못 갚는 집안의 아이를 데려와 아동노동을 시켜 임금을 이자 대신 가로채는 경우가 허다하다. 노벨 평화상을 받은 그라민 은행의 무함마드 유누스가 채무에 대한 이자를 금지한다는 교리를 무시한다고 강력하게 비난했다. 웃기는 것은 그런 사채업자들과 그들의 뇌물을 받아먹은 성직자들이 그라민 은행이 이자(정해진 이자)를 받는다고 비난하는 것.
  111. 낙태에 대해 다소 부정적으로 보는 부분이 있기는 하다.
  112. 공산정권 치하에서 강력하게 세속화가 되었다지만 알바니아는 무슬림들이 과반수 이상을 차지하는 나라다.
  113. 이쪽은 아예 신정 국가다. 하지만 출산율 감소속도가 기존의 영미권과는 비교도 할수없이 빨라서 1980년대 후반에 5명대였던 출산율이 불과 2000년대 들자 1명대로 떨어졌고 현재도 1명대 후반정도의 출산율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경제난과 생활고로 삶이 어렵다보니 청년층은 출산을 기피하여 출산율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어 실질적으로 인구감소가 일어나고 있다.
  114. 다만 일부 이슬람국가에서 되려 출산율이 상승하기도 했는데 이를테면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을 예로 들수있다. 다만 이쪽은 소련 붕괴 이후의 경제난으로 출산율이 감소했다가 경제사정이 어느정도 풀리자 다시 증가한것에 가깝고, 이는 이슬람 국가가 아닌 러시아도 비슷한 추세를 나타내고 있다. 한편 알제리도 출산율이 2000년대 초반 2.4명까지 떨어졌던 출산율이 2000년대 후반들어 2.8명까지 올라가기도 했는데 이쪽도 내전이 끝나고 경제가 2000년대 들어 크게 회복된 지역.
  115. 이거 없으면 레바논은 지금도 기독교 다수국이다. 왜냐하면 다른 국적 가진 기독교인 레바논인 수가 무려 레바논 본국인구보다 많은 900만이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이슬람 출산율, 이민, 난민보다도 이게 가장 큰 원인이다.
  116. [참고] 1985년 이슬람 비율 75%, 2014년 59.4%, 1985년 기독교 비율 25%, 2014년 40.5%
  117. 한국은 정부의 무지한 산아 제한 정책으로 출산율이 심하게 빠르게 가라앉은 편이다.
  118. 그런 지역은 기독교인들도 상당하다. 때문에 기독교와 이슬람 사이의 종교분쟁이 끊이질 않는다.
  119. 프랑스령 마요트를 포함
  120. 서유럽 국가 중 무슬림 비율(%)이 가장 높다.
  121. 약 200만명이 넘는 무슬림이 살고 있다
  122. 이태원동 등에 살고 있으며 대부분이 이슬람 국가 출신 외국인이다. 한국 거주 무슬림의 증언에 의하면 한국인 신자는 3만명 정도 된다고 한다.
  123. 냉전때 서독의 고도 경제 성장기 과정에서 외국인 노동자 신분으로 터키에서 독일로 이주,정착해온 터키계와 90년대 유고슬라비아 내전 당시 전란을 피해 보스니아와 코소보 등 구 유고 지역에서 독일로 이주해 온 알바니아계, 보스니아계 한정그리고 시리아계 예약 추가
  124. 위구르인과 회족, 후이족 등의 소수민족. 2%정도 된다. 더불어 소수라고 해도 중국의 인구가 워낙에 많은 탓에 1000만명이 넘는다.
  125. 파타니 나라니왓 송크흘라 등의 말레이인 거주 지역은 이슬람 지역이다. 이 지역은 원래 소규모 에미르국가가 존재했는데 타이가 삼켰다. 현재 태국 정부군과 말레이계 이슬람 분리주의 반군 세력 등이 전투를 치르면서 혼란을 겪고 있다. 승병도 있다.
  126. 미얀마에서는 로힝야족이라는 아랍상인의 후손인 무슬림이 있다. 미얀마는 지금 무슬림과 불교도간의 갈등이 있다.
  127. 참족이 무슬림이다. 참족은 베트남 캄보디아에 거주하며, 참파를 세웠던 민족이다.
  128. 남쪽 민다나오 섬의 모로인들이 무슬림이다. 역사적으로 민다나오는 술루왕국의 술탄이 통치하는 등 일찍이 스페인에 복속된 북부의 섬들과 다른 길을 걸어왔으며 이로인해 오늘날도 북부지역과 심한 갈등을 겪고 있다.
  129. 재일 터키인 및 아랍인들 등.
  130. 다만 섬으로 잘못 그려져 있다.
  131. 근데 이 묘사는 그리스인들이 에티오피아인들을 묘사한 문장과 너무 흡사하다. 에티오피아인들은 죄수들을 금으로 만든 족쇄로 채우며 100년 이상 장수한다는 지상락원이라는 등등.
  132. 튀르크계, 아랍계
  133. 출처 : <이희수 교수의 이슬람>
  134. “회회교도(回回敎徒)는 의관(衣冠)이 보통과 달라서, 사람들이 모두 보고 우리 백성이 아니라 하여 더불어 혼인하기를 부끄러워합니다. 이미 우리나라 사람인 바에는 마땅히 우리 나라 의관을 좇아 별다르게 하지 않는다면 자연히 혼인하게 될 것입니다. 또 대조회(大朝會) 때 회회도(回回徒)의 기도(祈禱)하는 의식(儀式)도 폐지함이 마땅합니다.” 조선왕조실록 세종 9년 4월 4일 기사 참조 [[1]]
  135. 다만 수요 측에서 대안이 널려있는 해외 건설과는 달리, 에너지 수입은 중동 입장에서도 한국은 매우 큰 손이다. 한국의 경제 규모는 환율, 성장률에 따라 대략 10~15위를 왔다갔다 하는데 에너지 수입은 원유 5위, 천연가스 11위, 그 외의 원자재도 일본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 수준이다. [[2]] 이는 한국의 산업구조가 제조업 및 에너지 다소비 위주이고, 천연자원이라고는 쥐뿔도 없는 나라이기 때문. 중동의 주요 산유국들의 수출국가 순위를 살펴봐도 한국이 3위 아래로 내려가는 경우는 없다. 즉 중동 국가들이 정치적인 이유로 한국에 천연자원 수출을 끊어버리면 일단 원자재 시장에서 거대한 혼란이 벌어질 텐데, 수요의 한 축을 담당하는 수출선이 사라졌으니 자연히 가격이 폭락할 테고, 재정수입 또한 급감할 것이다. 한국이 대책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라서, [100일 넘게 버틸 수 있는 비축석유]로 급한 불을 끄면서 다른 수입선을 찾으면 된다. 사실 이런 대책(?)을 논하기 이전에 주요 산유국들이 담합하여 가격을 올리는 경우라면 모를까 정치적인 이유로 특정 국가에게 수출을 중지하는 일은 생각하기 어렵다. 한국을 비롯한 주요 원유 수입국들은 대부분 산업 강국이자(원유를 대량 수입한다는 게 무슨 의미겠는가?) 군사 강국이기 때문에, 중동의 기름왕국들이 안보에 직결되는 어그로를 끌었다가는(...)
  136. 조희선, 영국, 프랑스, 독일 무슬림의 이주와 정착 및 갈등에 관한 연구: 한국 이주 무슬림과의 비교를 위하여, 韓國中東學會 論叢,第31-1號 韓國中東學會, 2010, 105-149
  137. 하지만 당시의 알리고등학교는 이슬람 미션스쿨이기는 했지만, 개신교 계열 미션스쿨처럼 학생들에게 이슬람을 강요하지는 않았고, 일주일에 한번 있는 교양수업에 강제성이 없는 이슬람 교리, 쿠란 낭독 정도나 신청자에 한해 이슬람 체험 활동 정도가 있었다고 한다. 물론 이걸 신청하는 이들도 거의 없었다고 하며 그 외에도 제2외국어 영역으로 아랍어를 선택할 수 있었다.
  138. 미국 다음으로 세계 2위이다. 인구 비율로 보면 미국을 압도한다.
  139. 먼나라 이웃나라 같은 책자에서도 "한 손에는 쿠란, 한 손에는 칼"이라는 이슬람에 대한 서구의 대표적인 악의적 묘사 표현이 그대로 나왔다(초기판). 학습서에서도 이런 걸 찾아볼 수 있었는데 그나마 요즘에는 그런 묘사를 찾아볼 수 없다.
  140. 사람이 많이 오는 것도 아니지만,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운영자금을 지원하겠다고 했음에도
  141. 더욱이 말이 안 되는 것은 이맘이 백만 명이라는 것이다. 이맘은 카톨릭의 신부나 개신교의 목사 정도로 보면 되는 사람들인데, 그런 사람들이 뭐하러 백만 명 씩이나 할랄 인증을 하겠다고 온다는 말인가? 그냥 이맘을 신부나 목사로 치환하면 얼마나 웃긴 소린지 알게 된다. 참고로 이 이맘 백만 명이 얼마나 굉장한 규모인지 설명하자면, 인구 7900만에 인구 98%가 무슬림인 터키의 이맘 수가 모두 합해서 10만 명이다.
  142. 하지만 이 글이 신빙성이 없다는 주장도 나왔는데, 신미선씨 본인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신미선씨인 것 처럼 글을 썼다는 것. 하지만 원글이 올라온 다음카페의 작성자를 확인하면 신미선씨 본인이 맞는 듯하다.
  143. 다만 그 책은 피해 당사자인 엄마가 쓴 책이므로 엄마의 시선으로만 작성되어 있음을 유념할 필요도 있다.
  144. 무함마드 아심이 한국에도 세우려 했던 이 종교학교는 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 식 '마드라사'이다. 이 마드라사는 그 지역의 테러범 양성소라 불릴 정도로 이슬람 극단주의의 온상으로 악명이 높다. 당장 세우려던 무함마드 아심부터가 파키스탄 탈레반 중범죄 테러범이었고.
  145. 우리나라 무슬림은 대부분 수니파이다. 시아파는 원리원칙에 집착하는 성향이 강해서 해외 다른 국가들에게 동화되기 힘든고로 해외 진출이 어렵다(기껏해야 고향에서 시아파 믿던 사람이 해외로 갔을 경우 정도). 실제로 아랍 국가 중 그나마 해외와 교류가 있는 국가들(사우디, 이집트, 터키 등)은 수니파가 절대 다수를 차지한다.
  146. 동시에 이슬람 극단주의의 행패가 존재할수 없는 곳이기도 하다.
  147. 트레이 파커와 멧 스톤은 이에 대해 무슬림 전체를 비하할 의도가 아니였다고 해명했다.
  148. 이슬람을 비판한 유럽의 언론인들이 경찰한테 신변 보호를 받았다.
  149. 혹은 사우스파크처럼 여기에 역자극을 받아 더 악랄하게 하는 경우도...
  150. 다만 중동 출신이라고 해서 전부 다 무슬림은 아니라는 점도 염두해 두어야 한다.
  151. 다만 스트리트 파이터는 원래 되도록 무국적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리고 실제로 터키인은 외모적으로 볼 때 아랍인보다는 동부 유럽인들과 비슷하게 생겼다. 터키인 문서 참조. 그리고 하칸은 어느 인간과도 비슷하게 생기지 않았다(...)
  152. 때로는 불교적인 요소를 여기에 융화시키기도 한다. 한국이나 중국에서도 무속신앙, 도교같은 전통 신앙이 불교와 어느 정도 융화된 것과 비슷하다.
  153. 돼지고기를 거리낌없이 먹긴 하나 이슬람 국가 중에서도 돼지고기를 먹는 지역이 있으므로 나이롱 신자라고 하긴 힘들다. 결혼하고 육식하는 일본의 불교 승려보고 땡중이라고 하지 않듯이 다만 소스케는 돼지고기와는 달리 술의 경우엔 매우 완강하게 거부한다. 가만 종교상의 이유뿐만 아니라 건강상으로도 입맛으로도 너무 안맞아서 안마시는 것이다. 게다가 텟사가 필름이 끊겼을때를 주제로 한 외전에서 술을 마신 텟사에게 '술을 마시면 마오처럼 됩니다. 이 일을 오래하려면 마시면 안 됩니다' 라고 말을 한 것 봐선 주변에 심각한 주정뱅이때문에 솔에 대해서 더 안 좋게 생각하게 되었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154. 하지만 얘는 아프간 출신이다. 그러나 오히려 그래서 소스케가 종교적으로 매우 유연함을 보이는 것일 수도 있는데, KGB의 소년 암살자 출신인 사가라 소스케를 키우고 그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 중 하나인 '마지드'는 묘사로 보면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전쟁의 아프간의 전설적 게릴라이자 영웅 아흐마드 샤 마수드에서 따 온것이 거의 확실하다. 실존인물 마수드는 이슬람 원리주의자임에도 불구하고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테러는 하지도 않았고 여성교육, 인권을 생각하고 타민족과의 포용(종교적 문제까지 포함해서)을 이야기하는 굉장히 깨인 인물 중 하나였다. 마수드가 살아있었으면 아프가니스탄이 지금과는 분명 달랐을 것이라는(긍정적으로) 평가가 주를 이룰 정도의 영걸. 즉 마지드 밑에서 성장한 소스케가 사상적으로 매우 유연한게 당연하다.
  155. 또한 소스케는 종교 이전에 '전투와 용병일'을 우선시하기 때문에 그런 행동방식을 보인다고 봐야한다. 군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임무완수와 생존이다(소스케의 이런 성향이 치도리 카나메와 사람들과의 교류로 완화되고 고쳐지는 것은 풀 메탈 패닉 작중에서도 중후반 이후다). 어느 환경에서 뭘 먹고 생존하게 될 지 예상하기 어려운데 돼지고기니 뭐니 하며 가리면 활동이 매우 어려워진다. 즉 종교 이전에 군인으로서의 마음가짐을 두었다면 별로 이상하진 않은 부분.
  156. 자쿰이 있는 엘나스는 메이플에서도 추운 지역이지만 자쿰은 폐광의 깊숙한 곳에 있다. 엄청 깊숙해서 용암이 다 드러날 정도이니 중동쪽 복장을 하는게 당연하다. 안그러면 쪄죽지(...) 근데 엘나스 시장의 창고기지는 뭐지?
  157. 일례가 워해머 판타지. 엘더스크롤 시리즈도 이슬람과 무슬림 모티브인 레드가드가 서구를 모티브로 한 제국에 종속되며 살았었다.
  158. 근데 오스만 제국과 사파비 왕조 페르시아가 쇠퇴하면서 이란과 터키를 제외한 이슬람 국가 대부분이 유럽 국가들의 식민지가 되었던적이 있기에 이런 모습이 나타나는게 틀린것만은 아니다. 현재도 이슬람 국가들 전체가 서구를 증오해도 군사력과 기술력, 경제력에서 상대가 안되기 때문에 서구의 눈치를 보는 형편이다. 특히 서구권한테 경제제재를 당하면 이슬람 국가들의 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