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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체스터 시티 FC 엠버서더 | |
순지하이 (孫繼海, Sun Jihai) | |
생년월일 | 1977년 9월 30일 |
국적 | 중국 |
출신지 | 랴오닝 성 - 다롄시 |
신장 | 183cm |
포지션 | 수비수[1] |
소속 클럽 | 다롄 스더 (1995~2002) 크리스탈 팰리스 FC (임대) (1998~1999) 맨체스터 시티 FC (2002~2008) 셰필드 유나이티드 FC (2008~2010) 청두 블레이즈 (임대) (2009) 구이저우 런허 (2010~2014) 충칭 리펀 (2014~2015) 베이징 란허 (2015~) |
국가 대표 (1996~2008) | 80경기 1골 |
순지하이는 수비진 모든 위치뿐만 아니라 제가 원한다면 미드필더로 활약할 수 있는 선수입니다. 완전 프로정신으로 똘똘 뭉친데다가 본인의 몸상태를 최고로 유지하는 방법도 알고있는 선수죠.제가 정말 원하는 스타일의 선수입니다. - 스튜어트 피어스 -
목차
1 소개
중국 축구선수 중에서 EPL에서 가장 성공한 선수.
맨시티가 중국 시장을 확고히 장악하는 데 큰 기여를 한 선수.
중국의 축구선수로 주포지션은 측면수비수이다. 그는 2002년부터 2008년까지 맨체스터 시티에서 활약하며 역대 중국 선수들 중 EPL에서 가장 오랫동안 활약한 중국 선수로 기억되고 있다. 중국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데려온 선수일 뿐이라는 부정적인 평가도 있지만 EPL에서 130여 경기나 출장하며 쏠쏠한 활약을 한 것을 보면 단순히 마케팅용 선수라고 볼 수는 없다. 사실 박지성도 처음 맨유에 입단했을 때 같은 소리 들었다 또한 그는 인성이 훌륭해서 중국의 후배 선수들에게 존경받았고 같은 아시아계 선수들에게도 귀감이 되었다. 한국에서의 이미지도 비교적 좋은 편이다.
2 선수 경력
2.1 다롄 스더/크리스탈 팰리스 (1995~2002)
순지하이는 1995년 18살의 나이에 중국 슈퍼리그의 명문 구단인 다롄 스더에 입단했다. 그리고 1995년 5월 28일에 데뷔전을 치뤘다. 다른 뛰어난 중국 선수들이 그랬듯 이 그도 브라질의 중국 유스 트레이닝 캠프에 들어가서 가르침을 받고 싶어했다. 그러나 잠재 기량이 부족하다는 판정을 받고 캠프에 입소하지 못했다.
이에 순지하이는 크게 실망했지만 곧 보란듯이 성공하겠다는 생각으로 악착같이 연습했다. 이러한 노력은 빛을 발휘했고 얼마 안가 리그 최고의 탑풀백으로 거듭났다. 그는 좌우측 풀백을 모두 소화하며 4년간 71경기를 소화하고 1골을 기록했으며 매 시즌 10개 이상의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의 에이스로 거듭났다. 다롄 스더는 순지하이의 활약을 앞세워 리그에서 2번 연속 우승했고(1996년, 1997년) 중국 슈퍼컵도 1997년에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이렇듯 엄청난 활약을 선보인 순지하이를 맨처음 주목한 팀은 크리스탈 팰리스였다. 1997년 8월, 순지하이는 크리스탈 팰리스와 1년 임대 계약을 체결했다. 영국 축구 리그 역사상 최초의 중국 선수였다. 1998-99시즌 리그컵 대회에서의 데뷔전을 시작으로, 크리스탈 펠리스에서 전반기 23경기를 모두 선발 출전하여 좋은 활약을 해줬다.
그러던 중 다롄이 리그에서 꼴지로 추락하자, 순지하이는 1999년 1월에 임대 복귀하여 팀을 꼴지에서 구원했고 이후 2000년에 24경기 2골, 2001년에 28경기 3골을 기록하며 팀의 2연패에 절대적으로 공헌했으며 중국 FA컵에서도 2001년에 우승을 차지했다.
2.2 맨체스터 시티 (2002~2008)
중국에서 이룰 걸 다 이뤘다고 판단한 순지하이는 2002년 2월 200만 파운드의 이적료를 기록하며 맨체스터 시티로 이적했다. 그는 코벤트리 시티를 상대로 4:2로 승리한 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뤘다. 그는 이 경기에서 탁월한 수비력과 공격적인 태클을 선보이며 시티 팬들을 만족시켰다. 이후 그는 로테이션급 선수로서 간혈적으로 출전하였고 그때마다 좋은 경기력을 선보여 맨시티 팬들로부터 2002년 9월 이달의 최고의 선수로 선정되기도 했다. 순지하이는 이 시기에 버밍엄 시티와의 경기에서 골을 기록하며 팀의 2:0 승리에 기여했다. 이로서 그는 EPL 역사상 최초로 골을 기록한 중국 선수로 기록되었다.
순지하이는 2002-03 시즌에 리그 28경기, FA컵 1경기, 리그 컵 2경기를 포함하여 총 31경기에 출전하여 2골을 기록하며 훌륭한 활약을 선보였다. 또한 2003-04시즌에, 그는 이전 시즌보다 더욱 좋은 활약을 선보였다. 리그 33경기, FA컵 3경기, 리그컵 1경기, 그리고 유럽 대회에 5경기를 출전하여 총 42경기에서 2골을 기록했다. 경기 수만 봐도 알겠지만 그는 이 시기 로테이션을 넘어 핵심 멤버로 자리잡았고 팀내 수비진 중 수비력이 좋은 편에 속했으며 성실한 플레이로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2004-05시즌 리그 6번째 경기에서, 그는 선수 경력에서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첼시의 공격수 아이두르 구드욘센이 깊은 태클을 가하는 바람에 십자인대가 끊어지고 만 것이다. 그는 결국 리그를 조기 마감할 수 밖에 없었다. 이후 순지하이는 아버지의 헌신적인 도움을 받으며 재활훈련을 무사히 치르고 2005-06 시즌에 로스터에 합류하는데 성공했다.
순지하이는 2005-06 시즌에 리그 29경기에 출전하였지만 이전에 비해 기량이 많이 떨어진 모습을 보였다. 이후 맨시티에 부임한 스벤 예란 에릭손감독은 그의 출장빈도를 줄였고, 순지하이는 2006-07시즌에 주로 교체로 13경기 출전했고 2007-08시즌에도 교체 멤버로서 14경기에 출장했다. 2007-08시즌이 끝난 뒤 그는 재계약 불가라는 팀의 통보를 받고 2008년 6월 2일에 챔피언십 팀인 셰필드 유나이티드로 이적했다.
2.3 셰필드 유나이티드 (2008~2010)
순지하이는 쉐필드 유나이티드에 입단한 뒤 카드를 많이 받아 출전 정지 징계를 몇번 받은 것 빼고는 어느 정도 좋은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11월 이후 부상이 재발하는 바람에 제대로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고, 후반기에 들어서는 경기를 거의 뛰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는 리그에서 겨우 12경기를 출전했다. 이후 순지하이는 중국으로 복귀하기를 희망했고 2009년에 중국 슈퍼리그 소속 클럽인 청두 블레이즈로 임대를 간후 1년간 활약하고 2010년에 셰필드와 계약이 만료되자 중국으로 돌아갔다.
3 중국으로 복귀한 이후
2010년 1월 8일, 순지하이는 중국 슈퍼리그의 팀인 구이저우 런허에 입단했다. 그는 즉시 팀의 주장이 되었고 2010년부터 2014년까지 4년간 매년 20경기 이상 출전하여 팀의 정신적인 지주로서 활약했다. 그러다 2015년, 구이저우 런허는 팀을 리빌딩하는 차원에서 고액 급료를 받고 있던 순지하이를 충칭 리펀으로 이적시켰다. 순지하이는 2015년 한해 동안 충칭 리펀에서 28경기를 출전했다. 이후 순지하이는 2016년에 충칭 리펀의 선수 겸 코치로 복귀하여 코치 연수를 받고 있다. 그리고, 2016년부터 베이징 란허로 이적한 듯 하다.
4 국가대표 경력
순지하이는 1996년 12월 6일 우즈베키스탄과의 평가전에서 국가대표 데뷔전을 치뤘다. 1999년에는 시드니 올림픽 대표로 뽑혔지만, 한국과 예선 1차전에서 거세게 판정 항의[2]를 하다 FIFA로부터 1년간 국제경기 출전금지, 1개월간 국내경기 출전금지 처분을 당했다.
2002 FIFA 월드컵 명단에 포함되어 월드컵 경기를 치뤘다. 그러나 조별 예선 1차전인 코스타리카전에서, 그는 상대 선수의 깊은 태클로 인해 무릎 부상을 입었고 결국 그는 월드컵에서 더 이상 뛰지 못했다. 순지하이는 그후에도 중국 대표팀에서 활약했지만 2008년 6월 7일, 그는 카타르와의 2010 월드컵 지역 예선 경기에서 출전했으나 무리한 태클을 가하는 바람에 퇴장을 당했고 결국 1:0으로 지고 말았다. FIFA는 그에게 5경기 출전 정지 징계를 내렸고 이후 그는 더 이상 중국 대표팀의 부름을 받지 못했다.
5 평가
순지하이는 중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축구선수였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떤 이들은 그가 동팡저우처럼 마케팅용으로 영입된 선수일 뿐이라고 평가절하하지만, 그와 동팡저우를 비교하는 것은 이 분에게 매우 큰 실례를 저지르는 짓이다. 동팡저우는 친선 경기 몇번이랑 리그에선 딱 한 경기 뛴 게 전부지만 순지하이는 맨시티에서 6년간 130여 경기를 출전했으며 그 중 2002년부터 2004년까진 팀의 핵심 멤버로서 활약했다. 만약 그가 십자인대가 끊어지는 치명적인 부상을 입지 않았다면 그의 EPL 인생은 더욱 훌륭했을 지도 모른다.
이처럼, 순지하이는 맨시티가 EPL 승격 이후 본격적으로 상위권으로 정착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그가 맨시티에 막 입단했을 당시의 맨시티는 EPL에서 이제 막 승격한 팀인지라 강등권이나 다름없는 약체팀으로 손꼽혔다. 그래서, 순지하이는 약체팀 시절의 맨시티에서 꽤 긴 시간 동안 쏠쏠한 활약을 선보였고 그 덕분에 맨시티는 성공적으로 잔류하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 만수르가 맨시티를 인수하기 이전의 중위권 전력을 유지하고 강등되지 않도록 도움을 준 것도 사실이기 때문에, 만약에 맨시티가 전력을 유지하지 못하고 강등되었다면 만수르가 구단 인수를 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맨시티의 보드진이 그를 엠버서더로 임명하고 각별한 대우를 해주면서 맨시티의 현지 팬들도 그에게 갈채를 보내는 것은 괜히 그런 것이 아니다. 확실히 순지하이는 박지성이 EPL에 데뷔하기 이전까지 가장 성공했던 아시아 출신 축구선수로 볼 수 있다.
또한, 그는 인간성에 대해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물론, 심판판정에 거칠게 항의하거나 상대 선수 머리 끄댕이를 쥐어 흔들거나 살인태클을 날리다가 징계를 먹기도 했다. 다만, 필드 밖에서 그는 자신의 성공은 스스로가 잘나서가 아니라 팀이 막 승격한 약체였기에 더 많은 기회를 부여받을 수 있었던 것이라면서 겸손함을 잃지 않았고 중국인 선수들이 EPL에 들어올 때면 각별하게 대접을 해주고 EPL에서 살아남는데 필요한 조언도 많이 해줬다.
또한, 그는 박지성과 이영표에게도 존경의 뜻을 밝히기도 했는데 박지성을 아시아 최고의 축구 선수로 칭송했고 이영표 또한 훌륭한 선수라고 평가했다. 그래서인지 머리끄댕이 잡힌 대박애비 팬들만 빼고 중국에 대한 감정이 대체로 좋지 않은 한국인들에게도 순지하이는 비교적 좋은 이미지로 기억되고 있다.
6 수상
6.1 클럽
- 다롄 스더
- 중국 슈퍼 리그 우승: 1996, 1997, 2000, 2001
- 중국 FA컵 우승: 2001
- 중국 슈퍼 컵 우승: 1997
- 맨체스터 시티
- 챔피언쉽 우승: 2001-02
- 구이저우 란허
- 중국 FA 컵 우승: 2013
- 중국 슈퍼 컵 우승: 2014
6.2 개인
- 중국 축구협회 주관 올해의 영 플레이어 상 수상: 1998
- 중국 슈퍼리그 올해의 팀에 선정: 1997, 2001
- 중국 FA슈퍼컵 MVP 수상: 2014
- 잉글랜드 명예의 전당 입성: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