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련항목 : 제1차 세계대전
침몰하는 독일 대양함대 소속 바이에른급 전함 1번함 바이에른과 2번함 바덴.
1 개요
제1차 세계대전 직후인 1919년, 독일제국 해군 대양함대가 집단으로 자침한 사건. 비록 억류된 상황이었다고는 하지만, 역사상 이런 대규모 함대가 스스로 자침한 일은 유례가 없었던 큰 사건이었다.
2 배경
제1차 세계대전이 독일의 항복으로 끝난 직후인 1918년 말엽 이후부터 승전국들은 전후처리 문제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패전 국가들의 국가 해체와 국방력 약화, 새로운 국제질서 성립 등이 논의되는 과정에서도 즉각적이면서 실질적인 전리품으로서 승전 열강들이 탐내고 있던 것은 바로 독일 대양함대였다.
유틀란트 해전 때도 별로 손해를 입지 않았고, 대전이 종결될 때까지 전력을 고스란히 유지했으며, 영국 다음 가는 세계 제2위의 막강한 수상함대 전력을 보유한 독일 해군은 승전국인 영국의 지시로 주력함대를 영국 본토 북단의 천혜의 군항 스캐퍼플로(Scapa Flow)로 이동시킨 상황이었다.
해전의 핵심이 여전히 거함거포주의이던 이 시기에, 독일이 보유한 온갖 종류의 전함들은 결코 가만히 둘 수 없는 막강한 전력이었다. 이들 전력을 독일로부터 압류하고, 이를 자국 함대에 편입시켜 전력을 증강시키고자 하는 것이 연합국들의 공통된 바람이었다. 특히 프랑스가 열성적이었는데, 전쟁 전에 만들어둔 주력함 70만톤 계획안이 전쟁으로 파탄난 것을 일거에 만회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독일 해군의 자존심은 결코 이를 용납할 수 없었다.
3 자침
억류된 독일 대양함대를 지휘하고 있던 루트비히 폰 로이터(Ludwig von Reuter) 제독은 영국 함대의 눈을 피해가며 억류된 모든 함정들에게 자침 준비를 지시하며 기회를 노렸다. 때마침 1919년 6월 21일, 스캐퍼플로의 영국 함대가 훈련을 위해 대대적으로 출항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예정대로 영국 함대가 출항하자 로이터 제독은 오전 10시 30분, Z 상황(자침)을 알리는 11호 명령을 내렸다.
명령을 수신한 독일 각 함의 잔존승무원들은 일제히 해수밸브를 열고 자침을 시작했다.
이 사실을 기지 요원으로부터 전달받은 영국 함대가 부랴부랴 스캐퍼플로로 돌아와 자침을 막으려고 했다. 이 과정에서 자침을 끝까지 수행하려던 독일 해군을 공격하는 불상사가 발생하기까지 했으나, 이미 대부분의 배들은 해수가 가득 차서 해저에 착저하여 자침이 끝났거나 이미 해수가 너무 많이 들어와서 침몰을 막을 수 없는 상태에 빠진 지 오래였으므로 좌초에 그친 배 몇 척을 건지는 걸로 끝났다.
4 결과
단 몇 시간만에, 당시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강력한 해군 함대가 자침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소멸했다.
침몰한 전함만 카이저급 전함 5척, 쾨니히급 전함 4척, 바이에른급 전함 2척 총 11척이며 만재배수량 기준 총 톤수는 30만톤이 넘는다. 모두 하나같이 드레드노트급 전함이며 독일의 최신예함이었다. 특히 바이에른급은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에 버금가는 15인치 주포를 탑재한 신예 초드레드노트급 전함이라서 그 당시에도 매우 아까워하는 사람이 많았다.
설상가상으로 여기에 더해서 순양전함 5척이 추가로 자침했으므로 총 톤수 40만톤을 그냥 넘긴다. 게다가 순양함 8척과 구축함 50척도 같이 자침했다. 이로서 독일 대양함대는 소멸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뒤늦게 온 영국 함대가 발악하며 이미 침몰한 배들을 건져올리고 수리하려고 애썼으나, 이미 착저시의 충격으로 바닥이 파손되었거나 해수의 대량유입으로 인해 내부가 망가져서 대부분의 함선이 수리 불가 판정을 받았다. 따라서 이들 함선들은 순차적으로 인양돼서 고철로 해체되거나 방치된다.
5 반응 및 영향
영국 + 프랑스 : "야이 그 아까운걸 왜 버려!!!"
영국은 독일 해군의 집단 자침에 괘씸해 했으나 내심 이 자침을 반긴 측면이 있었다. 독일 대양함대의 주력함 배분 문제를 두고 열강들 간에 갈등이 있었는데, 자침 사건으로 이 갈등이 자연적으로 해소(…)되고, 특히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인 프랑스에게 전리품이랍시고 전함을 넘겨주는 일을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독일 전함들을 놓친 프랑스 입장에선 아이고 내 배~ 하는 한탄이….
당사자인 독일 국민들은 상당수가 크게 비통해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내부로부터의 중상이 한참 떠돌고 있던데다, 그런 소문이 아니더라도 자국의 자존심이던 막강한 함대가 스스로 비극적인 결말을 선택했으니 비통하지 않을 수 있나…
이후 신생 독일공화국에게 드레드노트 전함 8척의 보유를 인정하려던 영국의 입장이 강경자세로 돌아서게 되면서, 독일 내에 남았던 베스트팔렌 급과 헬골란트 급들도 모두 몰수처분 당한 후 해체되어 매각대금이 배상금으로 지불되었다. 덕분에 독일에 남은 것은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전드레드노트급 구식전함 몇척에 불과했다.
하지만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설령 독일공화국이 드레드노트 전함 8척을 보유했다 하더라도 이후 몰아닥친 대공황으로 벌어진 정치적 공황과 정치적 혼란으로 독일 해군이 이 8척을 유지하기란 쉬운일은 아니었을테고, 설령 유지했다 하더라도 이후 2차대전에 들어선 이미 구식 함선에 불과하며[1] 개수를 했다 해도 결국 비스마르크급이나 샤른호르스트급 처럼 쫒겨 다니거나 숨어살다가 결국 얻어 맞고 침몰하는 신세를 면하긴 어려웠을것이다.
이 날 이후로, 독일은 대양함대의 위용을 되찾지 못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
한편, 제2차 세계대전 초기, 한 척의 유보트가 이곳에 침투하여 리벤지급 전함 로열 오크를 격침시킨다. 자침 사건 이후로 독일 해군의 한이 서린 곳이자 이후로 번듯한 수상 함대를 소유하지 못하게 된 독일이 잠수함으로 적 군항 한복판에서 적 수상함을 격침시키는 아이러니한 사건이었다. 이 작전이 기획된 이유와 결과는 유보트 항목 참조.
사건 현장인 스캐퍼플로는 2차세계대전까지 영국 본토 함대(Home fleet)의 주요 거점으로 사용하였으나, 전쟁이 끝나고 영국 해군의 규모가 크게 축소되면서 사실상 폐쇄된 상태이다.
이때 침몰한 함선의 일부는 방사선 관련 정밀기기의 부품으로 재활용되기도 한다. Low-background steel 이라고 불리는 것으로 현대에 제철/제강으로 나온 철강은 2차대전 이후 여러번 행해진 핵실험의 영향으로 극미량의 방사선 물질이 섞여 나오기 때문에[2] 이런 정밀기기에 사용하기 곤란하다. 따라서 자연방사능 수치에 근접하는 이 함선의 철강을 이용해 재활용하는 것. 비슷한 예로 일본의 옛 전함 무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