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게미츠 마모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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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시게미츠 마모루(重光葵)
생몰년월일1887년 7월 29일 ~ 1957년 1월 26일
비고제2차 세계대전 극동 국제 군사재판 A급 전범[1]
"지옥이 우리 앞으로 다가왔다.."

- 사이판 함락 소식을 들은 후

1 개요

시게미츠 마모루는 일본의 정치인이자 외교가로 활동했던 A급 전범이다. 그는 오이타 현에서 출생했다. 오이타현 오노군 미에 마치[2]에서 오노 군수를 지내는 아버지 나오마사(直愿)와 어머니 마츠코(松子)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그러나 어머니의 친정(시게미츠가 본가)에 아이가 없어 입양된 시게미츠가 26대 당주가 되었다. 구제 기쓰키 중학교[3], 구제 5 고등학교 독법과를[4] 거쳐서 1911년 도쿄 제국 대학 법학부를 졸업한다. 이어서 외무부에서 관료 생활로 출세길에 올라 중국 공사가 되었다. 이후 윤봉길 의사의 훙커우 의거에 휘말려서 오른쪽 다리를 부상당했고[5] 이후 미주리 호의 갑판에 오를 때도 다리를 전다.

1943년, 제2차세계대전 중에 시게미쓰 마모루는 외무상이라는 고위직에 오른다. 1944년 , 그는 외무상에 이어서 대동아장관을 겸한다. 1945년, 일본이 갑자기 패망하자 일본의 전권 대사로서 미국에 대한 항복 문서에 조인한다. 1946년, 도쿄 전범 재판에서 A급 전범 중 유일하게 금고 7년형을 받았다. 물론 도고 시게노리라는 A급 전범도 20년의 유기 금고형을 받았지만 그는 감옥에서 사망했다.

1950년, 시게미쓰 마모루는 형기를 마치지 않고 가석방 된다. 이어서 개진당 총재와 일본 민주당 부총재 등을 거쳐 다시 외무상이 되었다. 1957년, 시게미쓰 마모루는 가석방된지 7년만에 사망하였다.

2 역사

2.1 USS 미주리 함 함상 항복 문서 조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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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분 38초에 시게미츠 마모루가 서명하는 장면이 나온다.

1945년 9월 2일, 시게미쓰 마모루는 미합중국 해군 전함 USS 미주리 함에서 이루어진 항복 문서 조인식에 일본대표로 참여하였다. 시게미쓰 마모루는 특유의 절뚝거리는 다리로 입장하여 항복 문서에 날인하는 장면을 연출하였다. 이장면은 오랫동안 기록 영화에서 반복되어 사용됐으며 가장 유명한 장면 중 하나로 기록되었다.

시게미쓰 마모루가 절뚝거리는 걸음을 걷게 된 이유는 바로 윤봉길 의사와 관련이 깊다. 1932년 4월 29일, 시게미쓰 마모루는 중국 상하이 천장절 축하연에 참여하였는데 그때 윤봉길 의사의 폭탄 공격을 받았다. 그 후 시게미쓰 마모루는 한쪽 다리를 잃어버렸고 의족을 착용해서 절뚝거리게 되었다.

2.2 쿠릴 열도: 존 포스터 덜레스 미 국무장관과 대화

1956년 8월 18일, 미국의 존 포스터 덜레스 국무장관은 런던에서 시게미츠 마모루 일본 외무대신을 만났다. 그는 쿠릴 열도와 관련하여 시게미츠 마모루에게 아래와 같이 발언했다.

“만약 일본이 2개 섬(쿠릴 열도)으로 만족한다면, 미국도 오키나와(당시 미국의 신탁통치 중이었다)에 영원히 머물 것이다.”[6]

이런 미국의 경고에 일본 정부는 ‘2개 섬 우선 반환론’에서 ‘4개 섬 일괄반환론’으로 선회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러시아와 평화조약이 보류되었다.

3 롯데가와의 연관성?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의 부인인 시게미츠 하츠코가 시게미츠 마모루의 조카라는 설이 있다. 신격호 회장이 시게미츠 하츠코와 결혼하면서 성을 처가쪽으로 바꾸어 일본식 이름인 '시게미츠 타케오'로 정했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롯데그룹 측은 시게미츠 하츠코는 시게미츠 마모루와 친인척 관계가 아니며, 원래 이름은 '다케모리 하츠코'였다고 반박했다. 다케모리 하츠코가 신격호 회장과 결혼하면서 신격호 회장의 일본 성인 '시게미츠'로 입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1] 롯데그룹에서는 이 사실에 대해 그동안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다가', 경영권 다툼으로 국내 여론이 악화되자 이 부분을 공식적으로 부인했다.

4 관련 항목

  1. A급 전범
  2. 현재 오이타현 분고오오노시
  3. 오이타 현립 키츠키 고등학교
  4. 독일 법학과
  5. 부상이 심해서 나중에 절단당해 의족 신세 지고 말았다
  6. 동북아 영토분쟁의 ‘숨은 손’은 미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