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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os cultores Scientia coronat.학문의 여신은 그녀를 따르는 자들에게 영광의 관(冠)으로 보답하나니.
미국 뉴욕주 시라큐스에 위치한 4년제 사립대학으로 1870년 설립되었으며 13개 대학원과 단과대학으로 구성되어 있다. 학교의 상징색은 주황색. 미국 47대 부통령 조 바이든, 미드의 신 에런 소킨,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보컬 루 리드 등 여러 유명인사가 이곳을 나왔다.
1 역사
원래 감리 성공회 교회에 의해 제네시 웨슬레얀 신학교로 1831년 뉴욕주 리마에 설립되었다가 1850년 일반학과를 받아들여 대형 교육재단으로 탈바꿈한다. 이 여파로 새로운 학교부지를 탐색하고 있던 중, 시라큐스와 연결되게 된다. 이 당시 시라큐스 역시 본 지역에 유치할 대학을 물색하고 있었는데 그 와중에 표적이 된 대학이 에즈라 코넬(Ezra Cornell)과 앤드류 딕슨 화이트(Andrew Dickson White)가 공동으로 설립한 코넬대 이었다. 그러나 에즈라 코넬이 거절했는데 이유는 젊은시절 시라큐스에서 목수로 일하던 중 급료를 털려먹은 적이 몇번있었던 경력이 있어서 좋지 않은 추억을 갖고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시라큐스를 가리켜 '소돔과 고모라'라고 여겼을 정도였으니..
결국 코넬 대학교는 뉴욕주 중부에 위치한 카유가 호 가 있는 이싸카(Ithaca)에 설립하게 된다. 그러던 중 제네시 칼리지로 탈바꿈한 제네시 신학교를 설립한 목회자들 가운데 시라큐스로 학교를 이전하는 문제로 분열이 생기기 시작하고 결국 코넬 대학교 공동 설립자 중 하나였던 주 의원인 에즈라 코넬을 통해 당시 기부토지 대학설립법안이었던 모릴 기부토지 법안을 지지한다는 조건으로 2만 5천불을 기부금으로 받게되었고 아울러 1869년 뉴욕주를 통해 시라큐스로 대학부지 이전을 수락받았으나 현 부지가 있던 리마시가 법원의 금지법령을 앞세워 시라큐스로의 이전을 막아 금지법령이 해제된 1875년까지 리마시에 존속하게 된다. 1870년 3월 24일, 시라큐스 대학으로 재창립됨과 동시에 시라큐스 시정부로 부터 10만 달러를 학교설립 지원금으로 받게된다. 이후 동대학의 전신이었던 제네시 대학총장으로 재직하던 다니엘 스틸(Daniel Steele)목사가 시라큐스 대학 행정 수장으로 임명되고, 대학 재단이사로 있던 조지 F. 콤스탁(George F. Comstock)이 50에이커 농지대를 대학교 부지로 기부한다. 그후 학교는 계속 확장을 거듭하고 록펠러의 오른팔로 불리던 존 더스틴 아치볼드(John Dustin Archbold)통해 그가 사망하기까지 6백만불을 기부금으로 받게된다. 이후 학교는 더욱 확장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여담으로 80년대 초만 해도 시라큐스 대학교는 아이비리그 안부러운 뉴욕주의 잘나가는 사립학교였으며 IBM의 지원으로 당시 컴퓨터 학과가 생긴 몇 안되는 학교이기도 했다. 그러나 대학 행정부의 방탕한 재정관리와 특히 아직까지도 미국내 농구경기장 중에서 최대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것으로 유명한 엄청난 규모의 캐리어 돔을 짓는데 돈을 쏟아부으면서 90년대 중반에는 심각한 재정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그리하여 당시 명성이 상당했던 교수진 상당수의 은퇴를 권유했고 일예로 컴퓨터 학과는 심지어 통폐합이 되었으며 (현재는 부활하여 전자공학과 소속) 학교측에서는 수익을 높이기 위해 대부분 학비를 그대로 내는 학부생을 정원보다 많이 받기 시작하였고 교수와 대학원생은 채점으로 밤샘한다 자연히 합격률이 올라가면서 랭킹도 떨어지기 시작한다. 다행이 최근들어서 다시 옛 명성이 살아나는 듯하지만 학생수를 늘려 학비로 재정을 충당하는 습관은 최근까지도 계속 되었는데 특히 요즘에는 중국의 소득수준이 높아짐에 맞추어 중국 부유층 자제들을 대거로 받아들이고 있는 추세이다. 학교 주차장에 ㅎㄷㄷ한 고급 스포츠카들이 즐비하다.
2 학부 및 학과
신문방송학과 (S.I. Newhouse School of Public Communications), 행정학 및 공공정치학과 (Maxwell School of Citizenship and Public Affairs), 도서관 및 정보학과, 그리고 건축학과는 전미 5위이내의 최상위권에 속하고, 경영학 학부(Whitman School of Management), 음대 (Setnor School of Music)등도 강세를 보이고 있다. 그 외에도 교육학, 자연과학, 문학 및 철학과도 현재 랭킹은 중위권이지만 전통적인 명문으로 토비아스 울프, 조지 선더스 등 세계적인 석학들이 교수진에 포진되어 있다.
3 캠퍼스
언어학당 (Hall of Languages): 인문학 계열 학과가 이용하고 있으며 대학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에도 가끔 나온다. 앞에는 펜암 비행기 격추사고의 희생자를 추모하는 자리가 마련되어 있다.
파일:Halloflang.jpg
크라우스대학건물 (Crouse College): 현재 음대건물로 쓰이고 있다. 언덕 꼭대기에 있어서 그런지 흔히들 호그와트건물 이라고 부른다. 참고로 초창기에는 여대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Crouse Women's College 라고 써있다.
파일:Crouse.jpg
카네기도서관 내부 (Carnegie Library Reading Room): 원래는 학교의 메인 도서관이었으나 현재는 수학과가 대부분 차지하고 있는 건물이다. 한쪽으로 아직도 일부 도서관으로 쓰인다. 가끔 흰머리의 수학자들이 낑낑대며 저 책상에서 시험지 채점을 하는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파일:CarnegieLibraryPan.png
뉴하우스 방송학과 건물 (Newhouse School of Communication): 유명한 신문방송학과가 있는 뉴하우스의 신관이다. 구관은 옆에 보이는 회색 건물인데 I.M. Pei 가 디자인하였다.
그러나 이 학교를 다닌다면 평상시에는 이렇게 눈이 덮혀있는 광경만 보일 것이다. 구름이 하도 많이 껴서 우울증 걸린다. 4월까지 눈 온다.
파일:Snowcuse.jpg
4 대학 운동팀
시라큐스 오렌지 |
Syracuse Orange |
현재 애틀란틱 코스트 컨퍼런스 소속으로 미식축구와 농구 그리고 라크로스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다.
4.1 역대 마스코트
1933년부터 1978년에 원주민 차별 문제로 인해 폐지할 때까지 사용하던 The Saltine Warrior. 통칭 'Big Chief Bill Orange'.
1978년부터 1980년까지 사용한 로마 검투사 마스코트.
1980년부터 현재까지 사용하는 마스코트인 Otto the Orange.
4.2 농구
농구장으로 사용될 때의 캐리어 돔.
2대 감독 에드 돌라드 (1911~1924 재임. 1964년 작고.) - 내셔널 챔피언(토너먼트 이전) (1918)
3대 감독 루 안드레아스 (1924~1950 재임.[1] 1983년 작고.) - 내셔널 챔피언(토너먼트 이전) (1926)
4대 감독 마크 걸리 (1950~1962 재임. 1990년 작고.) - NCAA 토너먼트 8강 진출 (1957)
5대 감독 프레드 루이스 (1962~1968 재임. 1994년 작고.) - NCAA 토너먼트 8강 진출 (1966)
6대 감독 로이 댄포드 (1968~1976 재임. 현재 생존.) - NCAA 토너먼트 4강 진출 (1975)
본교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감독으로 칭송받는 짐 뵈하임 감독 (1976~ 현재 재임중.) - NCAA 토너먼트 우승 (2003), NCAA 토너먼트 4강 진출(2013, 2016)
시라큐스 스포츠의 심장.
이곳은 전미 대학농구 선수권대회에 단골로 진출하는 대학농구 전통의 강호이다. 뉴욕 주 최대의 대학스포츠팀이며 북동부 대학농구에서는 코네티컷 허스키스와 북동부 최강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강호.시라큐스 대학 남자농구팀을 강팀으로 이끈 감독은 짐 뵈하임(Jim Boeheim)감독이다. 대학농구 현역감독 통산 최다승 2위, 디비전 I 통산 858승으로 6위, 빅 이스트 컨퍼런스[2] 최다 우승 감독 1위같은 쟁쟁한 기록을 가진 그야말로 넘사벽급 감독 중 한명,
다만, 짐 뵈하임은 전형적인 대학농구 특화형 감독이기 때문에 뵈하임 시대 이후 NBA에서 성공한 시라큐스 동문들의 숫자는 매우 적은데, 이는 시라큐스 대학교가 철저하게 2-3 지역방어를 중심으로 한 단순하고 안정적인 전술만 사용하기 때문에 시라큐스 동문들이 프로에서 대인방어경험 부족등을 문제로 NBA 적응에 어려움을 겪기 때문, 이때문에 우수 고교생 리크루트에도 어려움을 겪는 편이다. 뉴욕 닉스 소속의 카멜로 앤서니가 대표적인 시라큐스 동문이며 NCAA 우승을 이끈 최고의 스타.[3]
2015년 기준으로 현재 재임 중인데 2014-15시즌 도중에 2001년부터 10여년간 발생했던 학업 미수행, 추가 부수입, 약물 검사 정책 미이행 등 여러 가지 규정 위반 사항이 발각되면서 인해 108승 기록 말소, 향후 4년간 3명씩 총 12명의 장학생 발탁 금지라는 중징계를 받았고, 짐 뵈하임 감독도 9경기 동안 벤치에 앉지 못하는 징계를 당했다고 한다. 참고. 그리고 뵈하임 감독은 2017/18 시즌을 끝으로 은퇴할 거라고 발표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대학교 경기장의 이름이 캐리어 돔(Carrier Dome)인데 캐리어는 에어컨 제조사로서 명명권을 확보했다. 그런데 경기장에 에어컨이 없다. 이거 무슨 붕어빵에 팥없는 시츄에이션?
4.3 풋볼
시라큐스 풋볼팀의 역사를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비디오 (1989)
파일:RRTEeoP.jpg
풋볼 경기장으로 사용될 때의 캐리어 돔.
22대 감독 벤 슈워츠월더 (1949~1973 재임. 1993년 작고.) - 코튼 볼 클래식 우승 (1959), 오렌지 볼 2회 진출 (1952, 58), 슈가 볼 진출 (1964)
24대 감독 딕 맥퍼슨 (1981~1990 재임. 현재 생존.) - 슈가 볼 진출 (1987(무승부)), 피치 볼 우승 (1989)
25대 감독 폴 패스콸로니 (1991~2004 재임. 현재 휴스턴 텍산스 수비라인 코치로 재직중.) - 피에스타 볼 우승 (1992), 오렌지 볼 진출 (1998)
이곳은 농구 중심의 학교라서 그런지 인지도가 떨어지지만 나름 강호이며, 도노반 맥냅, 마빈 해리스 등이 대표적인 동문이다.
그러나 이곳도 농구팀과 마찬가지로 같은 이유로 인해 2004년과 2006년 시즌(총 11승)의 기록을 박탈당한 바 있었다.
5 여담
- 1983년에 일어났던 팬암항공 공중폭파 테러사건이란 쓰라린 아픔을 지닌 대학이다. 본교 소속 학생 35명이 유럽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오던 중에 비명에 간 것.
- ↑ 1943/44 시즌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중단.
- ↑ 애틀란틱 코스트 컨퍼런스로 옮기기전 까지는 빅 이스트 소속이었다.
- ↑ 해당 항목에도 나와있지만 앤서니는 순전히 고향에 대한 사랑때문에 타 대학의 입학제의를 쿨하게 씹고 시라큐스로 진학했다. 뉴욕 시티에는 농구팀이 있는 대학교가 세인트 존스 대학교 (뉴욕)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