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서 왕 궁정의 코네티컷 양키

A Connecticut Yankee in King Arthur's Cou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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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자문학의 본좌로 유명한 마크 트웨인이 쓴 타임슬립대체역사소설.

아서 왕의 궁전에 떨어진 19세기의 미국인이 과학기술을 통하여 중세 영국을 현대 사회로 만드는 전형적인 이고깽 소설의 선구작.

"좋았던 옛날(good old days)"를 그리워하는 오래된 대략 로마 제국 멸망 이후 중세를 거쳐 그 시대까지 내려온 사고방식을 공격하는 작품. 예를 들어 멀린이 지혜로운 마법사가 아닌 고루한 늙은이로 그려지는데, 주인공은 멀린에게 기상청을 맡긴 뒤 실제 날씨와 다른 예보로 명예를 실추시켜 견제한다. 여러 의미에서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등에서 엿보이는 당대의 시대의식이 짙게 반영된 작품이기도 하다.

중세에 대한 비난과 폄하는 이미 당대 역사계의 트렌드였다. "나는 중세를 비난하기 위해 중세를 공부한다"라고 말한 학자가 나왔을 정도. 기사들을 말 탄 깡통 취급하는 것이 새롭다는 의견도 있지만 기사도 로맨스물의 흥행과 별개로 기사가 가진 군사적 능력에 대한 폄하에 가까운 시선은 심각했고, 이런 시각은 심지어 20세기까지 이어져 패튼이 자신의 저서에서 중기병의 갑옷을 '자기위안의 산물'이라고 평가하는 데까지 이르른다. 작가가 내비친 기독교와 기타 미신적인 요소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 특히나 로마 멸망의 이유를 기독교의 보급에서 찾는 시각은 기번을 위시한 많은 학자들의 주장을 아주 얄팍하게 인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대가가 쓴 소설이긴 하지만 새로운 구석은 없는, 그냥 흥밋거리 작품이라는 것.

거기다 작품 자체에 대한 비판도 많다. 사료 조사 결과 이 당시 마크 트웨인 말고도 다른 듣보잡 작가들이 이와 비슷한 이고깽 타임슬립 역사대체물을 꽤 많이 만들어서 팔고 있었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최초의 대체역사소설'이라는 칭호는 빛이 바랜다는 것. 게다가 이 소설이 나왔을 당시 마크 트웨인은 사업 실패로 빚더미에 올라 있어서 돈을 구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던 상태였다. 즉 '사회 비판'을 목적으로 썼다기 보다는 그냥 '돈 좀 벌어보려고 이고깽 썼을 뿐이다'는 비판이 만만치 않다. 실제로 당시 비평계에서도 이 소설에 대해 비슷한 비난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도 워낙 마크 트웨인이 거물 작가이다보니 다른 이런저런 3류 이고깽 대체역사물보다는 훌륭한 필력이 돋보이긴 하지만...

허클베리 핀의 모험 같은 밝은 작품과, 비관적인 분위기의 후기 작품 사이의 전환기격의 분위기가 나기 때문에 마크 트웨인 개인의 문학관 면에서는 중요하게 연구되는 작품.

영화로 제작된 적이 있고,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된 적 있다. 한국에도 정발되어 있으니 관심 있으면 사서 보자.

전체적인 스토리를 설명하자면, 19세기 미국 코네티컷에 사는 주인공 행크 모건은 거대한 무기 공장의 수석 작업반장이다. 어느 날 주인공은 쇄석기에 머리를 다치고 정신을 잃는데, 깨어나보니 왠 중세식 갑옷을 입고 말을 탄 기사가 자신을 창으로 위협하고 있었다. 주인공은 기사에게 잡혀가면서 목격한 중세식 고성과 주변 인물들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이 6세기 아서 왕이 실존하는 카멜롯에 타임슬립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기사에게 잡혀온 주인공은 수상쩍은 놈으로 몰려 화형당할 뻔하지만, 일식을 예견해 위기를 넘기고, 자신이 알던 현대 문명의 이기를 통해 세계를 뒤바꿔놓아 자신이 살던 시대의 문명으로 끌어올리기 시작한다. 현대 문물을 보급하면서 국민들은 교육을 받고 계몽되어 가며, 멀린은 실추되어 비웃음받는 신세로 전락하고, 주인공은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으면서 잘 먹고 잘 살게 된다.

하지만 거기까지의 전개를 후려치듯이, 반전이 일어난다. 주인공이 아이의 요양을 위해 타국에 가게 되는데, 이것도 의사를 시켜 주인공을 다른 나라로 보내버리기 위한 함정이었다. 이 때 아그라베인이 란슬롯이 주식 조작을 통해 아그라베인을 파산시킨 것에 대한 보복으로 란슬롯과 기네비어의 불륜을 고발한다. 모든 것이 원래의 전설대로 진행되어 주인공이 돌아왔을때는 아서 왕이 죽은 것은 물론, 교회가 주인공과 그 세력을 전부 파문시키고, 과학 문물을 금지시킨 상태였다. 계몽되어 가던 국민들도 막상 '파문'이라는 말에 겁먹고 전부 원래대로 돌아가고, 어릴 적부터 새 교육을 받아 자신을 따르는 52명의 소년과 측근만 남는다.

주인공은 이때까지 만들어 놓은 공장 등 모든 과학 문물을 폭탄으로 날려버린 후, 요새에 틀어박혀 공화정을 선포한다. 그리고 교회가 동원한 기사 2만 5천을 폭탄과 전기 울타리, 기관총으로 모조리 학살하지만, 결국 요새 주변을 가득 채운 기사의 시체로 인해 병에 걸려 요새 안의 사람들은 전부 죽고, 주인공은 몰래 숨어들어온 멀린의 마법에 의해 13세기 동안 잠들게 된다.

결국, 첫 머리에서 노인이 된 주인공에게 이야기를 듣던 마크 트웨인(작가)은, 그가 악몽 속에서 영영 못 보게 되어버린 아내와 아이를 찾으며 죽어가는 것을 지켜본다. 이 결말이 '더 좋은 세상'을 위한 주인공의 노력이 오히려 많은 죽음에 둘러싸여 자신을 파멸시키는 결과로 나타나는, 주인공 자신이 가진 전제주의적 속성을 비판하는 것이란 말도 있다.

초반부터 주인공이 문제 없이 놀랄만큼 잘 활약하고, 국민들도 주인공을 따라 빠르게 계몽되어 가면서 술술 잘 풀리기에 먼치킨 주인공이 미개한 중세를 계몽한다! 는 스토리인 줄 알았다가 이러한 반전에 충격 먹은 사람들이 많다. 이 점을 근거로 이 소설이 당대 사회상을 비판하는 목적으로 쓰였다는 주장도 있으나, 위에서 말했듯이 이에 대한 논란이 많아 불확실.

애니메이션은 원작과 좀 다르다. 멀린이 이끄는 기사들을 원작에서 쓰인 총과 폭탄 대신 철제 갑옷을 입었다는 점을 이용해 초대형 자석에 달라붙여 버리는(...) 코믹한 장면도 더러 있으며, 그렇게 기사들을 격퇴하고 주인공은 공화국의 승리를 축하하지만 죽은 척하던 기사의 철퇴에 맞아 기절하고, 멀린이 주인공을 재운 뒤 마법을 걸면서 너는 졌다고 비웃는다. 요새에 남아있던 사람들은 원작과 다르게 죽지는 않았으나 멀린 등장 이후로 언급되지 않아 어떻게 되었는지는 나오지 않는다.

그렇게 주인공은 19세기 미국 코네티컷의 자기 집 침대에서 깨어나고, 간호사가 자신을 간호하면서 괜찮다고 말하고 있었다. 자신이 꿈을 꾼 것인가 혼란해하던 주인공은 간호사에게 백과사전을 가져다달라고 하고, 사전에서 아서 왕 부분을 찾아보는데 아서 왕이 오토바이에 기댄 채로 신문을 읽는 사진을 보고 자기가 꿈을 꾼 게 아니라고 알 게 되며 끝난다. 원작에 비하면 나름 해피 엔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