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톤 곤칼베스 다 실바


아싸 나 또 여행간다~!!

이름아일톤 곤칼베스 다 실바 (Ailton Goncalves da Silva)
생년월일1973년 7월 19일
국적브라질
포지션스트라이커
신체조건177cm
소속팀이피랑가 FC (1993~1994)
SC 인테르나시오나우 (1994~1995)
모지 미링 (임대) (1994~1995)
산타크루즈 FC (1995~1996)
과라니 FC (1996~1997)
티그레스 데 라 우안 (1997~1998)
베르더 브레멘 (1998~2004)
FC 샬케 04 (2004~2005)
베식타쉬 JK (2005~2006)
함부르크 SV (임대) (2006)
FK 츠르베나 즈베즈다 (2006~2007)
그라스호퍼 클럽 취리히 (임대) (2007)
MSV 뒤스부르크 (2007~2008)
FC 메탈루르흐 도네츠크 (2008)
SC 라인도르프 알타흐 (2008~2009)
캄피넨세 클루베 (2009)
충칭 리판 (2009)
KFC 위어딩겐 05 (2010)
FC 오번노일란트 (2010~2011)
리오 브랑코 EC (2011)
BFV 하시아 빙엔 (2012)

1 개요

브라질 축구선수로 나무위키내에서 저니맨의 대표적인 거물이다.
너무 커서 범접할 수 가 없어!!!

역마살
원클럽맨은 20년을 뛰어도 날로 먹을 수 있는데 반해 저 놈의 표 한 번 적는 게 저렇게 길기도 쉽지 않다.

2 경력

브라질의 축구선수로 베르더 브레멘 시절 이동국의 동료였다. 분데스리그 탑 스트라이커로 219경기를 뛰며 106골을 득점했다. 분데스리가 용병 득점기록 공동 4위를 차지하고 있다.[1] 브레멘의 한 차례의 분데스리가 우승, 두 차례의 포칼컵 우승을 이끌며 팀의 전성기를 만들어냈으며 , 거기다 03~04 시즌 득점왕을 차지하며 그 해의 독일 올해의 선수마저 독식해, 미하엘 발락의 독일 올해의 선수 3연패를 저지했다. 발락이 다음해 독일 올해의 선수를 수상한다는 걸 생각해 보면 사실상 4연패를 저지한 셈.[2] 그의 독일 올해의 선수 수상은 최초로 비독일인 수상이기도 하다. 전성기의 아일톤은 빠른 발과 튼튼한 몸에 개인기와 골결정력까지 겸비한 훌륭한 공격수였다.

그의 역마살은 베식타쉬 JK에서 6개월 만에 함부르크 SV 임대로 독일에 돌아간 시절로부터 시작되는데 이때 터키에서 브라질 축구선수가 생활하기에는 문화적으로 쉽지 않다는 발언을 남겼다. 여기서 그쳤으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세르비아의 FK 츠르베나 즈베즈다에서 다시 1년을 못 버티고 6개월만에 스위스의 취리히로 임대생활을 가게 된다. 07년 분데스리가의 MSV 뒤스부르크와 계약해서 뛰게 되나 이 당시 33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연이은 방랑생활을 거듭하던 아일톤의 몸은 그야말로 돼지처럼 불어 있었다. 당연히 별 기회도 못 받던 아일톤은 지각 사태까지 일으키는 소동을 벌이고, 돼지 같은 몸만 아니었다면 나이상으로 아직 충분히 활약이 가능하던 아일톤은 2008년 겨울 해고당하며 분데스리가와 영원히 작별하게 된다.

아일톤은 남은 07~08 시즌을 우크라이나의 메탈루르흐 도네츠크와 계약하며 보내게 된다. 이후 오스트리아의 라인도르프 알타흐에서 1년을 보내게 되고, 브라질의 캄피넨세 클루베에서 잠깐 뛰다가 남은 09년 시즌을 보내게 위해 중국의 충칭 리판으로 향한다.

남은 2010년 반시즌은 독일 6부 리그의 KFC 위어딩겐 05과 함께하며 10경기 가량을 뛰며 3경기 당 1골 정도의 좋은 기록을 남기고 위어딩겐은 3위로 시즌을 마친다. 아직 1년 계약이 남았음에도도 불구, 아일톤은 5부리그 팀 FC 오번노일란트로 이적하게 된다. 그러나 오번노일란트는 클럽의 재정이 파탄나면서 리그 성적과 관계없이 5부리그에서 6부리그로 강등당하는 참사가 일어나고 만다.[3] 그리고 아일톤은 2011년 2월 오번노일란트와 상호 합의하에 계약을 해지하고, 브라질의 리오 브랑코에서 축구를 하게 된다. 12-13시즌은 다시금 6부 리그의 하시아 빙엔과 계약한 아일톤이었으나, 하시아 빙엔은 그 시즌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패배하며 7부 리그로 떨어지고야 만다.

40에 다다른 지금 아일톤은 통산 192골을 기록하고 있다. 과연 200골을 채울 수 있을지도 귀추가 주목되는 부분이다. 돼지만 안 됐어도 충분했을 텐데

3 기타

전성기 시절 화려했던 기량에도 불구하고 국대선수로조차 뽑히지 않았는데 지나치게 개인기에 의존해 조직력을 깬다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그리고 극심한 포워드 기근에 시달리는 2010년대 이후와 달리 90~2000년대에는 이상할 정도로 공격자원이 넘쳐났다. 하지만 분데스리가 득점왕이 되면서 국대를 한 번도 뛰어 본 적이 없다는 이 특이한 경력이 관심을 끌게 되는데, 그건 바로 조국 브라질이 아닌 카타르에서였다. 2004년 카타르에서 아일톤에게 거액의 금액을 미끼로 귀화를 권유했고 그도 무척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브라질 국대 선수 경력이 없기에 거리낌도 없었다. 카타르에선 월드컵 예선까지는 100만유로(14억7천만원), 카타르대표팀에 계속 남을 경우 매년 40만유로(4억6천만원)를 받는 조건을 제시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FIFA에선 아무런 상관도 없는, 자신이나 부모 국적조차 없고 심지어 카타르에서 리그조차 1경기도 안 뛴 몸으로 귀화한다는 건 인정할 수 없다고 반대했으며 그가 귀화한다고 해도 카타르 국대선수로 자격을 인정할 수 없다고 못박으면서 결국 귀화는 없던 것이 되었다.

  1. 스위스의 스테판 샤퓌자(228경기 106골)와 동률. 1위는 클라우디오 피사로(190골), 2위는 지오반니 에우베르(260경기 133골), 3위는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121골).
  2. 독일 올해의 선수 3연패는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다른 나라에 비하면 독일은 수비수나 골키퍼도 올해의 선수 수상 확률이 높기 때문에 더욱 어렵다. 2연패를 이룩한 선수들만 해도 귄터 네처, 제프 마이어, 마티아스 잠머, 올리버 칸에 발락을 더해 5명뿐이다. 베켄바우어게르트 뮐러조차 2연패는 실패했다.
  3. 위어딩겐은 착실히 승격을 거듭해 13~14시즌 4부 리그 소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