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야마 요시히로/각종 논란

아키야마 요시히로 또는 추성훈에 대한 각종 논란들.

1 국적

그의 국적에 대해서는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일단 법적인 국적은 일본이다. 다만, 그것과 별개로 스스로 가지고 있는 정체성이 어떠한지는 논란의 대상이 되는데,

외국에서 그를 부르는 명칭 특히 예를들어 셔독에 등재된 선수명이 Yoshihiro Akiyama인 것만 봐도 그의 정체성은 한국보다는 일본인 쪽에 가깝다는 주장이 있다. 귀화를 했기에 사회적인 순응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그가 활동하는 격투기는 엔터테인먼트의 성격을 띄고 있기에 귀화명을 반드시 한국식으로 하지 않아도 링네임등으로도 자신이 한국계라는 정체성을 표시할 방법은 많으며 게다가 추성훈 이전에 손정의(손 마사요시)나 한창우(마루한) 같은 일본 재벌계 기업인도 귀화시 자신의 성이나 본명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마당에 추성훈은 한국이외에는 Yoshihiro Akiyama로 활동하며 UFC에서도 별명으로 쓰는 Sexy Yama도 그렇고 추성훈이라는 귀화전 한국 이름은 한국에서만 쓰는 예명에 가깝다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재일교포의 작명법을 알아보면 이러한 주장과 달리 한국계 정체성을 포기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현재 추성훈의 일본명 秋山 成勲(추산성훈)은 秋成勲(추성훈)의 한자이름에 뫼 산(山) 자를 하나 추가해서 일본풍으로 만든 후 일본식 독음으로 읽는 것인데, 이 이름은 일본 내에서도 굉장히 어색한 이름이다. 成勲을 '요시히로'라고 읽는데, 원래 일본 인명에서 成. 勲을 '요시', '히로'라고는 잘 읽지 않는다.[1] 즉 아키야마 요시히로라는 일본 이름은 추성훈이라는 한국 이름과 사실상 동일하다. 링네임이나 별명으로 한국인임을 표시하는 방법도 있다고 하는데 위에 언급된, 손정의도 마사요시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고, 야구선수 장훈도 하리모토 이사오라는 일본이름을 가지고 있다.

도복과 트렁크에는 각각 일장기와 태극기가 동시에 새겨져 있다. 'Time to Say Goodbye'에 맞춰 입장하는 장면과 더불어, 승리하고 난 뒤에 이 두 국기를 두들기는 퍼포먼스를 보여주기도 하며, UFC 진출 이후에도 트렁크에 양국의 국기를 모두 새기기도 했다. 또한 2007년 데니스 강 전에서 승리를 거둔 후 마이크웤에서 "우리 대한민국 최고!"라고 외치기도 했다.

하지만 태극기와 일장기를 두드리는 퍼포먼스 등은 그가 한국과 일본 양측을 대상으로 하는 마케팅의 일환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한참 종합격투기에서 활동할 때 두 국가가 가지고 있는 서로의 반감에도 불구하고 양 국가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면서도 환영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한국에서는 차별을 당하고도 꿈을 향해 노력하는 그의 순수한 이미지라면, 일본에서는 보기드문 탈 아시안급의 근육마초적인 이미지 + 일본을 대표하는 무술인 유도 베이스라는 점이 크다. [2]

견해에 따라서는 필요에 따라 한국과 일본을 번갈아가며 양다리를 걸친다는 인상은 지우기가 힘들었고, 이제는 경기주기가 너무 길고 격투가로서 하향세라서 슬슬 잊혀지고 있다가 2013년 이후 예능으로 더 유명해지면서 격투기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딸바보인 한국계 일본인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대다수가 되었다.

2 유도선수 시절

2.1 일본 귀화 전

2.1.1 한국활동 시작시기

일반적으로 알려진 추성훈의 이미지는 KBS스페셜 추성훈 혹은 아키야마 이야기에서 방영된 내용이다. 일본에서 태어난 재일교포 4세로서 일본에서 유도를 했으나 일본 국적이 아닌 추성훈은 국가대표가 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추성훈은 98년 4월 한국 국가대표가 되기 위해 현해탄을 건너 부산시청에 입단해서 구슬땀을 흘리며 훈련에 매진하며 훈련뒤에는 동료랑 아리랑을 부르며 한국어 공부를 하는 내용이 방영된다.

시청자 입장에서는 추성훈이 생전 처음으로 한국에 온 것처럼 보여지지만, 추성훈은 이미 고교시절부터 한국의 유도 시합에 틈틈히 참여하고 있었으며 일본에서 대학재학시절인 96년에 전국체전 은메달을 얻은 전적이 있다. 96 전국체전 한국일보 2000.12.01

2.1.2 일본으로부터 스카웃 제의

KBS에서 방영한 추성훈 혹은 아키야마 이야기와 과거 신문기사에서도 지속적으로 제기된 이야기로서, 정식으로 귀화하기전 추성훈이 일본으로부터 귀화를 전제로한 스카웃 제의를 여러차례 받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추성훈 본인이나 가족들이 이야기하는 것 말고는 뚜렷한 출처가 없어 이를 확실히 증명할 길이 없다. 반대로 한국의 애국심에 호소하려고 지어낸 일화라는 의혹도 있지만, 이역시 확실치 않다.

2.1.3 조인철과의 대결과 편파판정

다큐멘터리에서는 용인대 파벌이 아닌 한 대표는 힘들다는 루머를 언급하고 그렇기에 추성훈은 한국 유도에 몸담던 시절 학연과 파벌로 피해를 봤고, 이 피해 때문에 일본으로 귀화했다고 알려져있다. 마침 90년대 중반부터 꾸준히 활동하던 추는 96 전국체전에서 '한판패'를 당해 금메달을 넘겨주어야 했는데 그 사람이 바로 그의 앞을 가로막은 라이벌이었던 조인철이었다.

항상 추성훈의 파벌논란이나 편파판정이 논란이 될때 거듭 거론되는 것이 바로 조인철인데, 부산에서 열린 아시아 선수권 선발전에서 조인철과 추성훈이 벌인 경기를 두고 편파판정논란이 꽤 크게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대로 조인철이 단순히 파벌과 편파판정의 득을 본 선수라고 하기는 어려운 것이 조인철은 이미 검증된 강자였다. 추성훈이 한국에 오기전부터 조인철은 고교 2학년 시절 고교유도 4관왕을 시작으로 94 세계 청소년 유도 선수권 은메달을 시작해 95 아시아 선수권 은메달, 96 올림픽 동메달, 97 세계 선수권 금메달, 98 아시안 게임 금메달로 이미 검증된 선수였으며 76년생으로 75년생인 추성훈보다 한살 나이도 적었다. 또한 97년에는 세계 랭킹 1위를 찍는 등 당시 세계정상급의 기량을 증명했었다.조인철 랭킹
반면에 한국에 오기전의 추성훈은 일본대학 선수 5위에 불과했다. 추성훈 랭킹

게다가 이후에도 00 시드니 올림픽 은메달과 은퇴를 얼마남기지 않고 추성훈과 경쟁하던 시기에 01 세계선수권 금메달을 전경기 한판승으로 얻는 등 조인철의 기량은 뛰어났다. 편파논란이 있는 경기나, 조인철이 추성훈에게 졌던 경기가 유독 부각되서 그렇지 둘의 대결 전적은 6전 4승으로 조인철이 우위였다.

또한 조인철이 은퇴한 후 02 아시안 게임 선발전에서 추가 일본국적을 가지고 맞붙은 한국 선수는 조인철의 동문 후배인 김기수와 김기수의 부상으로 대타출전한 안동진이다.

김기수는 경기실적으로나 커리어로나 조인철보다 조금 떨어지는 선수였고 스스로도 조인철보다 못했다는 것을 인정했다. 김기수 인터뷰 그리고 귀화전 추성훈과 전적 2승 2패의 전적과 02 아시안 게임에서도 막상막하의 경기를 보여준 안동진 역시 조인철을 한번도 꺾지 못했다. 조인철

또한 추성훈 본인도 02 아시안 게임 우승 후 일요신문 543호 인터뷰에도 스스로의 실력부족을 언급했다. 또한 추성훈을 지도한 권성세 감독(인하대 졸)도 추성훈에게 쓴소리를 했다. 인터뷰

―일본으로 귀화한 진짜 이유가 무엇인가. 알려진 대로라면 국내 유도계의 심한 텃세와 해외파 출신에 대한 차별 때문이라고 들었다.

▲그런 부분이 없진 않았지만 그게 전적인 이유는 아니다. 텃세 운운하는 말은 내가 한 얘기가 아니다. 난 실력이 안됐다. 세계선수권자였던 조인철(25·용인대 조교로 은퇴 전까지 추성훈을 상대해서 1패만 했던 국내 유도계의 1인자)[3]은 분명 세계적인 타이틀을 가질 만한 큰 선수였고 난 그를 이길 실력이 모자랐다. 조인철을 이은 권영우도 강한 선수였다. 사실 조인철이 은퇴하면 그 자리는 내 차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국 유도는 뿌리가 깊었고 선수층이 두터웠다. 안되는 건 안되는 거였다.
(중략)
한편 권성세 한국 유도대표팀 감독은 “유도계의 텃세는 추성훈한테만 있는 일이 아니다. 전기영, 윤동식 등 모두 힘든 환경에서 유도했고 1인자 자리를 차지했다. 추성훈의 귀화 이유는 실력 부족을 인식한 최후의 선택”이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게다가 그의 자서전 '두 개의 혼'에도 언급되지만, 일본귀화의 큰 원인은 태릉선수촌의 훈련방식에 적응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실제로 추성훈의 자서전을 보면 밥먹고 선수촌에서 운동만하는 군대식 훈련에 힘들었다는 내용을 볼 수 있다.

예컨데 한국이든 일본이든 운동기량이 높은 선수끼리 선수부를 형성해서 훈련을 시킨다고 해도 태릉선수촌은 마치 군대와 같이 단체트레이닝과 공동트레이닝에 집중하는데 비해 일본은 개별 훈련에 더 중점을 두는 것이 전통이었고 추성훈도 여기에 더 익숙한 상태였다. 구체적으로 일본에서는 선수 개개인이 알아서 훈련하고 자신의 기량을 보완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단체나 집단에서 개개인의 방식을 크게 간섭하지 않은 환경이었으나, 한국은 비교적 강압적인 분위기 하에 공동훈련을 하며, 훈련의 량 또한 일정이상의 할당량[4]을 채울 것을 강요받았다. 추는 여기에 적응 하는 데에 큰 어려움을 겪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아시아 선수권 선발전에서 조인철과의 대결에서 판정논란이 있었고, 추가 인터뷰 외적으로 그경기의 판정논란에 대해 파벌이 원인일 것이라고 개인적으로 불만을 표출한 것이 일견 타당할 수 있으나. 그 경기 외에도 선수촌에 적응하지 못하였던 개인적인 문제와 실력부족 문제등이 추성훈의 귀화선택에 적지않게 영향력을 끼쳤으므로 단순히 파벌과 이로인한 편파판정 문제만으로 귀화를 결정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2.1.4 역차별

많은 이들이 잘 모르는 일이지만 추성훈은 실제로 일본으로 귀화하기 이전에 한차례 귀화 소동을 벌인적이 있다. 그가 출전해 전경기 한판승으로 금메달을 얻은 01 아시아선수권 대표에 선발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권영우와 1, 2차 선발전 점수에서 큰 차이를 보이지 않은 가운데 대표선발권을 쥔 국가대표 코칭스태프와 유도회 상임이사들이 대부분 권영우의 손을 들어줬기 때문었다. 이 결과를 추성훈은 편파로 받아들이고 일본으로 귀화하겠다는 소동을 벌였는데 결론적으로 “기회를 줘야 한다”는 김정행 대한유도회장(용인대 졸)의 의지에 따라 최종적으로 국가대표 명단에 포함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런데 이 상황은 파벌을 떠나 추성훈은 비판을 면하기 힘든 사건이었는데, 왜냐하면 원래대로라면 출전 가능한 3등에 들었음에도 추성훈에게 자리를 양보한 권영우(한양대)는 용인대 출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추성훈과 똑같이 편파판정을 당하고도 3위를 한 권영우가 도리어 추성훈에 의해 피해를 입은 것이다. 마침 추성훈에게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냈던 김정행씨 역시 용인대 출신이었는데, 이렇게 되면 이사건으로 추성훈은 용인대 파벌 김정행의 실력행사에 힘입어 정당한 노력으로 그자리에 올라갔던 비용인대 출신 권영우의 노력을 도둑질한 것이 된다.

2.1.5 파벌차별의 존재여부와 논란

게다가 용인대가 파벌로 말이 많아도, 위에서 추성훈에게 기회를 주었던 김정행 회장 재임당시 행적을 보면 추성훈 측의 주장처럼 파벌의 힘을 이용하는 비상식적인 집단이라고 몰아세우기도 애매하다. 실제로 00 시드니 올림픽 선발전시 동점으로 재대결을 하게된 정부경(한체대)과 최민호(용인대)의 경우 판정을 배제한 서든데스에 협회측도 이례적으로 주심에 남자대표팀 박종학 감독을 배정하는 등 신경을 많이 쓴 흔적을 보였다. 결과적으로 용인대가 파벌의 힘을 이용하여 편파판정 하려 했다면, 용인대 출신인 최민호가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될 대표선수로 뽑혀야 됐지만, 결국 마지막에 웃은 사람은 한체대의 정부경이었다. 정부경

국내에 연고도 없는 재일 교포이기 때문에 국가대표 선발에 차별을 받았다는 주장도 나올 수 있으나 추성훈이 한국에서 활동하는 시기 100kg 이상에서 재일동포 출신의 강의계라는 선수가 01 세계선수권 대표로 선발되었고 03 세계선수권도 출전한 기록이 있다. 강의계

물론 국내 유도계에서 파벌의 존재나 영향력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반대로 용인대가 아닌 선수나, 추성훈과 똑같이 교포인 사람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친것도 사실이기 때문에 추의 귀화가 사실은 파벌때문이 아니라는 의혹을 피하기 어렵게 만든다.

2.1.6 편파판정을 위한 맞춤전략 논란

“조인철이나 최선호 모두 쟁쟁한 실력을 갖고 있는 세계적인 선수 입니다. 그런데 성훈이하고 경기를 할 때면 일단 방어적인 자세를 취 합니다. 성훈이는 못 돌리면(한판승) 진다는 생각에 무리한 공격을 하다 힘만 엄청 쓰죠. 경기가 끝날 즈음 지친 성훈이가 조금이라도 잘못을 했다 싶으면 바로 지도를 줍니다. 결국 승부는 그렇게 끝나는 거죠. 유도를 조금 아는 사람이 경기를 보면 심판이 편파판정을 한다 는 걸 금방 눈치 챌 수 있을 겁니다.”(이 부분은 추성훈과 유종호 감독의 주장.) 오마이뉴스

추성훈측의 주장을 들으면 추성훈을 상대하는 용인대 선수는 추성훈에게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고 판정 혹은 후반에 지친 추성훈에게 실점을 당하게 만드는 외통수로 몰아간다고 주장하지만 권영우(한양대)의 언급을 들으면 다르게 받아질 수 밖에 없다.

추성훈도 뛰어난 선수였지만 권영우에겐 유독 약했던 것 같다. 권영우는 추성훈과 상대 전적에서 3승1패로 앞섰다. 그는 “(추)성훈이 형은 기술은 좋지만 체력이 강하지 않다. 초반에 ‘간’을 좀 보다 후반에 승부를 걸면 이길 수 있었다”고 말했다. 2001년 대표 선발전에서 추성훈은 권영우에게 쓴맛을 봤다. "추성훈이 두려워한 권영우 “후반에 승부 걸면 쉽게 이겨”

권영우의 주장대로라면 추성훈은 체력이 약해서 방어적으로 가다가 후반전에 이길 수 있다는 점을 언급하고 있다. 권영우가 용인대가 아닌 한양대 출신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용인대 출신만 편파판정을 위해 추성훈을 상대로 장기 방어전을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한마디로 추성훈의 약점인 체력을 노린거라면 용인대 선수들도 권영우와 마찬가지로 전략적인 경기운영을 했을 뿐이지 편파판정을 노리고 그러한 경기운영을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또한 추성훈은 용인대 에이스급에게만 약하지도 않았다. 추성훈은 용인대 김기수에게 6전 전승을 기록하기도 했다. 실제로 김기수가 02 아시안게임 대표로 선발되었을때 김기수의 스태프들은 추성훈의 승리를 예측한게 중론이었다. 김기수

2.1.7 귀화전까지

이후 추성훈은 2000년 11월 1차, 2001년 3월 2차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각각 2위와 3위를 했고 마지막인 2001년 6월 3차 선발전은 배탈로 불참했다. 그런데 3차 선발전은 그 동안 성적과는 관계없이 최종 선발전에서 3위안에 들어야만 세계선수권 대회에 참가할 수 있었다. 즉 1, 2차 선발전 1위라고 해도 3차에서 3위내로 들지 못하면 바로 탈락인 것이다. 3차 선발전 선발전당시 기사 내용 추성훈은 복통으로 경기를 참가하지 못하였고, 그저 관중석에서 바라만 봤다. 이경기를 마지막으로 4달뒤 추성훈은 일본으로 귀화한다.

2.2 일본 귀화 후

2.2.1 도복의 미끄러움 논란

추성훈이 종합격투기 시절 경기 전 추성훈이 몸에 로션을 바른 사쿠라바 사건으로 부각된 것으로 추성훈이 고의적으로 도복에 기름칠을 한다는 논란이 있다. 실제로 02 세계선수권 일본예선에서도 논란이 있었다. 올림픽(1996)·세계선수권(1997) -71kg 우승자 나카무라 겐조는 추성훈과의 경기에서 같은 항의를 했었고, 2003년 2월 4일 일본 후지티비의 ‘정크스포츠’에 유도선수로서 출연한 추성훈은 “방한용 속옷을 미끄럽게해 게임을 유리하게 진행한다”는 발언을 하는 등 추성훈의 ‘미끄러운 도복’은 다분히 의도적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데일리안

또한 홈그라운드인 오사카에서 열린 03 세계 유도 선수권에서 추성훈은 2회전부터 4회전까지의 대전 상대인 프랑스, 몽골, 터키로부터 "유도 도복이 미끄러진다"는 항의를 받고 도복 교체 후 2연패해서 세계 선수권 5위로 입상조차 실패하는 등 절대강자의 이미지는 없었다. 이후에도 2004년 일본 선발유도선수권에서 -81kg 준결승 진출에 그치면서 올림픽행은 좌절됐고 그는 종합격투기(MMA)를 택한다.

3 격투기 데뷔 후

3.1 보습제 논란

추성훈의 최악의 흑역사.

2006년 12월의 대결에서 사쿠라바는 파운딩을 당하는 내내 심판에게 '미끄럽다.'라며 어필을 했다. 그러나 심판은 계속 경기를 진행시켰다. 경기 후에도 사쿠라바는 심판에게 계속 항의했으나, 심판은 추성훈의 몸을 직접 만져보고 괜찮다는 의미로 추성훈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논란은 계속해서 커졌다. 당시 다니카와 사다하루 FEG(K-1 주최사) 프로듀서는 '추성훈의 몸에서 기름 같은 것은 나오지 않았다. 급소를 찌르거나 하면 모를까 사쿠라바의 주장만으로는 부정으로 판단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라고 밝혔다. 추성훈 측은 2007년 1월 1일 기자회견을 열어 몸이 미끄러웠던 것은 다한증으로 인한 땀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1월 11월 다시 가진 기자회견에서 경기 전 크림을 발랐으며, 이 크림은 바셀린이나 글리세린 성분이 포함된 것으로, 추성훈이 평소 다한증 때문에 사용해온 것이었다. 그는 오일 성분이 아니면 괜찮은 줄 알고 있었으며, 주최사인 FEG는 카메라 앞에서도 당당하게 바른 것으로 보아, 악의는 없다고 판단했다. 다만 다한증 때문에 몸이 미끄러웠다는 것에서 크림을 발랐다는 점이 뒤늦게 발각되면서 그의 이미지는 순식간에 떨어지게 된다.

사실 옛 영웅인 사쿠라바를 새로운 영웅인 추성훈이 쓰러뜨리는 것이 모두가 원하는 시나리오였기 때문에[5] 이러한 찝찝한 결과는, 히어로즈 규정 상 경기 전 몸에 뭔가를 바르는 것은 금지되어 있던 점과 합쳐져 그는 규정 위반 판정을 받아 경기는 무효 처리되고, 파이트머니 전액을 몰수당했다. 이윽고 1월 17일, FEG는 자사가 주최하는 경기에는 출전을 금지한다는, 매우 이례적인 처분을 추성훈에게 내리게 된다. 이는 사실상 추방과 다름없는 판정이었기 때문에, PRIDE로의 이적설까지 나돌게 된다.

이 과정에서 일본의 여론은 추성훈에게 큰 실망의 목소리를 보냈다. 게다가 히어로즈의 스폰서가 떠나고 중계를 담당했던 방송국에 비난 여론이 날아오는 등 파장이 커졌다. 모델인 그의 일본인 여자친구(지금은 아내)까지 비난의 화살을 맞아야 했다.

게다가 K-1에서 사용하는 글러브와 외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글러브 안에 너클을 넣은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는 짤방까지 돌아다녔는데, 이건 아무래도 혐한 여론까지 겹친 지나친 디스다. 맨주먹으로 때리는 것과 너클로 때리는건 전혀 다르다. 진짜로 너클을 넣었다면 사쿠라바는 죽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 경기에서 사쿠라바는 약 200대를 맞았다고 하는데 그 200대를 너클 낀상태에서 맞았다면...

이에 한국에서는 사쿠라바가 일본의 레슬링 영웅이기 때문에 그렇게 괘씸죄를 씌우는 것이 아니냐는 반대 여론이 일어나기도 했다. 2006년 김태영 선수와 경기 당시 김태영 선수가 몸에 바셀린을 발랐다가 경고를 받는 걸 직접 봤을텐데 로션을 바르는게 잘못된 것인지 몰랐을 리가 없다는 말도 있다. 결정적으로 징계를 받기 전 병명이 다한증이 아니라 피부 건조로 바꾸었다. 이와 관련된 그의 변명주장은 자서전에서는 손바닥과 발다박에만 땀이 많은 피부건조로 최종 정리되었다.

종합격투기에서 바셀린, 크림은 최악의 반칙 행위중 하나다. UFC에서는 안면에 한하여 바셀린 도포를 금지하지 않지만 어디까지나 불필요하게 안면커팅이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서이고, 입식타격이면 몰라도 관절기가 허용되는 종합에서 바셀린은 치트키나 다름없다. 일례로 PRIDE에서는 안면에조차 도포를 허용하지 않았다.

이정도로 끝난것도 FEG가 한일 양국의 시장을 생각해서 그런 것이다. 한국 뿐 아니라 일본 팬들 역시 그의 복귀를 바라고 있었기 때문인데, FEG 공식 홈페이지에서 있었던 여론 조사에서 추성훈의 복귀를 바라는 팬들의 의견이 약 60%였다. PRIDE 해체 이후 DREAM과 SRC가 만성적으로 겪고 있는 중량급의 인재부족을 생각하면 이해가 가능할 듯.

이렇게까지 추성훈이 비난을 받게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누구나 이기길 바랬던 그의 승리 뒤에 비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어눌한 한국어에서 알 수 있듯이 일본에서 그는 추성훈이 아니라 아키야마 요시히로이며, 재일교포라기보다 한국인의 피가 섞인 일본인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그리고 일본인이 선호하는 유도 베이스의 선수이지만 타격없는 지루한 그라운드 경기만을 하지않는 선수였기 때문에 그의 인기는 상당히 높았던 편. 그러한 그가 정당하지 않은 방법을 썼기에 그 누구보다도 배신감이 컸을 듯 하다.

추성훈은 이 사건 이후 기자 회견에 나올 때마다 사과를 했으며, 그 후에도 평생 이 잘못을 안고 가겠다며 책임을 지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이 사건 이후 혐한성이 큰 2ch에서는 추성훈의 반칙왕 이미지가 더더욱 부각되게 되었고, 누루야마(미끄러운 아키야마)라는 별명을 부르며 까고 있다. 참고로 크림 사건 이전 일본에서 불리우던 별명은 '반골의 유도왕'.

다만 국내에서는 학연, 혈연의 피해자 이미지가 더 강해졌고 사쿠라바는 가해자, 비열한 선수 취급을 받게 되었다. 애초에 대부분 한국인은 사쿠라바가 어떤 선수인지는 잘 모르는 것도 있고, 재일교포가 차별 받았던 것은 대부분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추성훈 또한 출신에 따른 희생양이 되었다는 이미지가 강한 것으로 보인다.[6] 사실 사쿠라바는 일반적인 피해자기 때문에 이런 사실을 알면 황당할 수 밖에 없을 것. #

4 추성훈의 불편한 진실?

2008년 하반기 경[7] 재일 교포로 추정되는 필자 미상의 아키야마, 추성훈의 진실이라는 글이 돌기 시작했다. 해당 글은 신뢰의 호불호가 갈리지만 K-1 히어로즈 및 드림 내에서의 전적이나 유도 선수 시절 기사 등을 볼때 많이 이미지가 덧붙여진 것은 사실이다. 때문에 현재는 격투 갤러리에서 가장 많이 까이는 선수 중 하나가 되었다. 극도로 싫어하는 팬들은 추키야마라고 부른다.

내용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 유도 시절 차별을 받긴 했지만, 다른 선수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오히려 추성훈은 재일교포 우대로 용인대에 입학할 수 있었다.
  • 기존 선수의 은퇴로 1군 진출이 유력해졌으나 병역의무를 피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일본에 귀화하였다.
  • 부산 아시안게임당시 획득한 금메달은 명백한 편파판정으로 딴 것이다. 그렇게 혐오하던 용인대와 같은 편파판정 혜택을 받은 추성훈은 깔 자격이 없다고 주장한다.[8]
  • 과거 유도선수 시절의 유도복 비누칠 논란 이후 성적이 시원치 않았다고 한다. 일본 귀화후에도 그렇지만 아테네 올림픽 대표 선수로 뽑히지 못한 건 애초에 실력이 없다는 것.
  • 추성훈은 극우파이다.[9][10] 또한 민족학교 출신도 아니고 한국에 올때까지 한국어도 거의 못하는 그가 한국을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그냥 일종의 마케팅이다.
  • 추성훈이 로션을 바른 것은 고의였으며, 후에 있던 모든 해프닝은 그의 전 매니저 박지일이 관여한 일종의 연극들이다.[11]
  • 추성훈이 K-1과 재계약하지 못한 이유는 상대를 선택할수 있는 권리를 요구했기 때문.

한줄로 요약하자면 '추성훈은 박지일이 만들어준 애국마케팅을 이용한 일본인 사기꾼. 이라는 내용이다.

다만 확인되지 않은 내용이 많아 논란이 있기 때문에 걸러들을 필요가 있다. 게다가 주요 음모론에 대해서는 독자들에게 알아서 찾아보라는 투로 적혀져 있다.

이 소스를 전부 가지고 있다는 전 매니저 박지일이라는 인물 자체가 미스터리한 인물인데 일본 기자들이 그에게 기사 소스를 요구하는 데 엄청난 돈을 요구한다는 루머가 있다. 한 기자는 박지일과 직접 만나 대화를 해 봤는데 이 인간 말이 앞뒤가 안 맞아서 기사화시키지 않았다고 한다. 사실 국내에서 박지일이라는 인물이 가지고 있다는 소스가 정식으로 기사화 된 것은 강대호 기자의 기사가 전부다. 나머지 기사들은 그냥 위 필자 미상의 글을 기사로 풀어 쓴 것이 전부.

이 글이 돌면서 추성훈의 이미지가 많이 깎여나가고, 디시인사이드 격투 갤러리를 중심으로 안티가 많이 늘어났다. 이런 분위기를 살짝 반전시킨 것이 바로 UFC 이적. K-1 재계약 결렬 사유가 상대를 선택하는 권리였다는 것이 저 글을 통해 알려져서 '떡밥만 먹으며 적절히 돈 벌다 은퇴하는게 아니냐'는 안티들의 조소를 받았다. 당시 추성훈의 위치를 고려하자면 진짜 저 연금 시나리오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추성훈의 지지기반이 거의 없다시피한 UFC로 이적함으로써 일본 격투기계에서 그가 차지하는 위치를 포기하는 것이 되었기에 까는 여론이 어느정도 줄어들었다. 또한 UFC에서 추성훈이 상대한 선수들이 하나같이 탑급 파이터들이었기에 예의 '상대를 가린다'는 오명을 약간 벗게 되었다.

추성훈의 국내 매니지먼트를 담당하고 있는 추성훈의 외삼촌은 이 이야기에 대해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하였으며, 이러한 이야기가 계속 제기된다면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밝혔다. 관련 기사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이런 추성훈 측의 주장이 나온 이후 한동안 격투계 전반을 들끓게 했던 추성훈의 진실 관련 떡밥이 많이 사그라들었다. 2014년 기준으로는 격갤 등지에서 싫어하는 사람만 까고 거의 언급 자체가 되지 않을 정도.

또한 다른 글의 주장에 의하면, 2005년 방영하였던 KBS 스페셜 "추성훈 혹은 아키야마 요시히로"라는 방송은 FEG와 박지일의 공동 합작품, 즉 추성훈의 한국 진출을 위한 포장용 프로그램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해당 프로그램을 담당하였던 PD는 사실이 아니다는 의견을 밝혔고, FEG 대표 다니가와 사다하루는 그런 프로그램이 있는지도 몰랐다는 의견을 밝혔다.

vs 미사키 전도 워크 의혹이 일었다. 추성훈 자신의 명예 회복을 위한 연극이었다는 것. 실제로 미사키가 경기가 끝나자 마자 바로 마이크를 준비해온 것도 있고...그러나 이후 추성훈이 미사키에게 한 발언(무릎팍도사에도 나온 유명한 '쫓아가야죠!' 발언)들을 보면 설득력이 부족하다.

"추성훈의 신화 설계사"로 알려진 박지일은 2007년 일본에서 이런 책을 내려다가 실패했다고 한다.

위키피디아의 박지일 항목

독도에 관한 질문을 받았는데 답이 우리 모두의 것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상대에 대한 배려 따위 없는 기레기들의 수준낮은 질문을 그것도 일본 현지에서 던져서 논란이 되는 것. 그는 한국인의 정체성이지만 일본 국적자이기도 해서 외줄타기를 하는 듯한 상황이다. 김장훈마저도 저 대답에 대해서 고심 끝에 내린 우문현답이라 칭했을 정도로 매우 예민한 질문이다. 한국 국적이 아닌지라 나름대로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지만 속으로는 한국인의 정체성을 가진 것이 맞고 그러한 행동을 몸소 실천하는 사람이므로 독도 사태는 전적으로 기레기의 잘못이다.

5 추성훈 혹은 아키야마 이야기

한 때 KBS에서 추성훈에 대한 다큐멘터리 <추성훈 혹은 아키야마 이야기>를 방영한 바 있다. 현재는 유튜브에도 등재되어 있어 언제든지 내용의 확인이 가능한데 대표적으로 논란이 되는 방송내용분량을 꼽자면 밑의 두 영상이 있다.

굳이 당시 다큐멘터리의 문제점을 꼽자면, 극중이야기의 전개가 실력보다는 파벌의 희생양이며, 파벌만 없었으면 국제대회에서 입상하고 우수한 성적을 거둬 세계제패가 가능할 것이라는 식으로 진행된다는 점이다.

구체적으로는 두 동영상을 관람하면,추의 "세계1등이 되는게 제 꿈입니다"라는 인터뷰 내용을 보여준 뒤, 부산 아시안 선발대회에서 파벌의식으로 피해를 보아 억울해하는 장면을 클로즈업 해준다. 다음으로 전개되는 장면은 국적을 변경한 추성훈이 한국의 강자인 안동진을 꺾는 모습을 보여주며 마치 파벌만 없었으면 한국에서의 성적은 더 좋았을 점이라는 것을 굳이 부각시키고 있다. 안동진이 약자는 아니지만 다큐멘터리에서는 안동진이 김기수의 부상으로 대리출전한 2진이라는 점은 전혀 언급치 않으며, 그후 추가 유도에서 지속적인 하락세를 띄였다는 점 역시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유도시절 부진이나, 국적변경후 거둔 성적의 허실등을 언급하지 않는다. 마치 다큐멘터리만 보면 추가 세계제패가 가능한 강자인 것 처럼 착각이 들 정도인데, 추가 강자이긴 했지만, 실제의 기량이나 실적으로 세계제패를 이루지 못했다.

이후 실제의 추는 유도계에서의 하락세를 겪고 격투계로 이전을 한 것이 사실이지만, 다큐멘터리에서는 기량하향세를 겪었다는 점을 언급하지 않고 유도관계자가 아키야마를 위한 체육관을 지어주겠다며 도면까지 건네줬다는 사실만 언급하고 이후 격투기로 전향한 것만을 비추어 주어 마치 '유도시절에도 경쟁력이 뛰어난 상승세의 선수가, 새로운 도전을 위해 격투기선수로 전업하였다'는 식의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구성 및 연출하였다.

다큐멘터리라기 보다 추성훈의 홍보방송이라고 봐도 무관할 정도의 극중 전개와 편집이었고, 실제로 방송출연 때마다 파벌로 인한 피해사항을 언급하다보니 오늘날 추성훈의 이미지를 구축하는데 크게 공헌한 다큐멘터리로서 논란이 많다.
  1. '요시'는 그란도 시즌 '좋다'라는 뜻으로 주로 吉, 善, 良 등에 해당하고, '히로'는 '넓다'라는 뜻으로 주로 広, 宏, 弘, 博 등에 해당한다. 각각 成, 勲과는 별 관련 없는 의미이다.
  2. 실제로 일본은 유도 베이스 선수가 대체적으로 종합격투기에서 인기가 높고 푸쉬를 많이 해주는 편이다.
  3. 이 부분은 기자의 실수로 보인다. 추성훈은 00 코리아 오픈 한판승, 01 전국체전에서 유효승으로 승리했다.
  4. 훈련시간 측정기준이 다른 것도 한 몫 하는데 일본에서는 전략분석을 위해 비디오와 동영상을 시청하는 것조차 수련시간으로 포함하는 것에 비해 한국에서는 그렇지 않다.
  5. 더 파이팅에 비유하자면 다테와 일보의 관계.
  6. 물론 일부에서는 최소한 일본 격투기에서 한국인이 차별받을 일은 없다고 반박한다. 현대 일본 격투기의 시작이 된 프로레슬링의 역도산부터 Rings같은 종합격투기에도 한국계가 주축이 되어 시작을 열었는데 차별받을 이유가 없다는 것.
  7. 시기는 대충 K-1과의 재계약이 결렬될 무렵이었다.
  8. 또한 이 글에 의하면 다른 사람들은 "한국인이 금메달 따겠다"고 말했을때 박지일 혼자 "추성훈이 따겠군."이라고 말했다고...
  9. 베이징 올림픽 당시 해설에서 일본어를 섞어서 해설을 하자, 일본 극우들이 매우 좋아했다는 한 기자의 말을 인용하였으며, 과거에 친일적 발언을 많이 했다는 증거들이 있다고 주장한다.
  10. 근데 정작 일본의 극우 커뮤니티인 2ch에서는 한국인보다 더 한국인같은 놈이라고 까인다.
  11. vs 데니스 강과의 경기에서 얻은 승리까지 그의 입김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UFC 진출 시기에 데니스 강이 추성훈과의 경기를 앞두고 여러 부분(대전 상대가 갑자기 바뀌었다는 점, 경기 도중 손톱에 찔렸는데 아무런 제제가 없었다는 점 등)에서 불이익을 받았다고 밝히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