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락공주

安樂公主, 684 ~ 710. 이름은 이과아(李裹兒)이다.

당나라공주. 측천무후의 손녀이며, 당중종위황후의 막내딸. 당예종태평공주에게는 조카, 당현종에게는 사촌 여동생이 된다.

아버지 당중종이 할머니 측천무후에 의해 폐위되어 유배지로 떠나는 도중에 태어났다. 제대로 된 출산 준비를 할 수 없어 낡은 천으로 아기를 감쌌는데, 그래서 '과아'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감쌀 과(裹)'에 '아이 아(兒)')

안락공주가 14세가 되던 698년에야 당중종 일가는 비로소 유배에서 풀려나게 되었고[1], 705년에 당중종은 다시 황제로 즉위했다. 안락공주는 할머니 측천무후의 조카 무삼사(武三思)[2]의 차남 무숭훈(武崇訓)과 결혼했고, 무숭훈이 죽자 무연수(武延秀)와 재혼하였다.

어려서부터 아름답고 영특하여 총애를 받았던 안락공주는, 많은 부와 권력을 누렸다. 그녀는 매관매직을 일삼아 거두어들인 뇌물로 재산을 모았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했다. 또한 백성들의 농토를 빼앗았고, 백성들을 자신의 노비로 삼아 부렸다. 권력욕도 강하여, 아버지 당중종에게 자신을 황태녀로 책봉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당중종은 이를 거절했고,[3] 이에 안락공주는 앙심을 품게 되었다.

안락공주는 어머니 위황후와 짜고서 아버지 당중종을 독살하기에 이른다. 이어 그들 모녀는 여황제-황태녀가 되려 하였다. 측천무후처럼?? 그러나 이 계획은 성공하지 못했다. 안락공주의 고모 태평공주와 사촌오빠 이융기에 의해 정변이 일어나, 안락공주ㆍ위황후ㆍ무연수 일당은 살해되었다.[4] 야사에 의하면, 안락공주가 화장을 하며 눈썹을 그리고 있던 도중 반란군이 쳐들어와 그녀의 목을 쳐, 안락공주는 눈썹을 똑바로 그린 얼굴로 죽었다고도.(…)

위황후와 안락공주 모녀는 황후공주의 지위를 잃고 폐서인이 되었으며, 대역죄인으로 취급되었다. 이후 이융기의 아버지 이단이 당예종으로 즉위했다.
  1. 당중종은 이 유배 시절에 많이 힘들어했으나, 아내 위황후의 격려로 기운을 냈다고 한다.
  2. 위황후와 정치적 협력자 사이를 넘어, 간통하는 사이까지 되었다.
  3. 안락공주의 고모 태평공주측천무후에게 자신을 황태녀로 책봉해달라고 청했다가 거절당한 적이 있다.
  4. 이때 상관완아도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