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한의 역대 황제 | |||||
20대 상제 유륭 | ← | 21대 공종 안제 유호 | → | 22대 소제 유의 |
묘호 | 공종(恭宗) | |
시호 | 효안황제(孝安皇帝) | |
연호 | 영초(永初, 107년 ~ 113년) 원초(元初, 114년 ~ 120년 4월) 영녕(永寧, 120년 4월 ~ 121년 6월) 건광(建光, 121년 7월 ~ 122년 3월) 연광(延光, 122년 3월 ~ 125년) | |
성 | 유(劉) | |
휘 | 호(祜) | |
생몰기간 | 94년 ~ 125년 4월 30일 | |
재위기간 | 106년 9월 21일 ~ 125년 4월 30일 |
安帝
생몰년은 94년~ 125년, 재위기간은 106년~125년
전황제보다는 아니지만 이 사람도 나이가 어린 13살에 즉위했다. 장제의 손자이며 아버지는 청하효왕 유경이다.[1]
107년, 흉노의 위협으로 인해 서역의 영향력을 상실하고 다시는 회복하지 못했다. 111년에는 중앙과 지방의 대신들에게 지덕이 겸비한 인재를 천거하라고 했는데 그 때 장형은 천거를 받게 된다.
105년에는, 고구려 왕자 수성이 다시 한을 쳐서 요동을 회복하는 등 요동땅을 둘러 싼 전쟁이 시작되었다. 121년에 안제가 파견한 유주자사 빙환과 현토군수 요광, 요동태수 채풍등이 모두 왕자 수성이 이끄는 고구려,백제와 예의 연합군에 패했다. 121년, 왕자 수성이 채풍을 죽이고 한의 군사를 격파했다.
125년, 불과 32살에 안제는 요절했고 소제가 그 뒤를 이었지만 200일만에 죽고 그 다음엔 안제의 아들인 순제가 왕위를 이은다.
- ↑ 장제의 서자로 귀인 송씨 소생이며 원래 장제의 태자였다. 그러나 송귀인이 피살된 뒤에 청하왕(淸河王)이 되었다. 아들이 황제가 된 후 덕황제로 추존되었으며 그의 부인이자 안제의 어머니 좌씨도 효덕황후로 추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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