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세이 안토노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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Алексей Иннокентьевич Антонов
Aleksei Innokentievich Antonov
알렉세이 인노켄티예비치 안토노프
1896년 9월 9일~ 1962년 6월 16일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소련군 장군. 1942년부터 1944년까지 소련군의 부참모장으로 근무하여 작전 입안과 실행 부분에서 소련의 승리에 공헌했다.

포병 장교의 아들로 태어난 안토노프는 프룬제 군사대학보로실로프 참모대학을 나온 전형적인 엘리트 장교였다. 대숙청으로 인해 상관들이 죄다 목이 날아가자 안토노프는 본의 아니게 쾌속승진을 거듭하게 되었다.

독소전쟁이 발발하자 안토노프는 소련 남부전선군과 남서전선군의 참모로 활동하다가 1942년에 부참모장에 임명되었다. 안토노프는 총참모부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되었는데 다름아닌 이오시프 스탈린을 달래고 설득하는 일이었다.

스탈린은 총군부사령 게오르기 주코프와 충돌이 잦았으며, 주코프에게 무척 기분이 상해 자신의 계획을 관철시키려 하거나 꼭 필요한 작전도 재가해 주지 않으려는 나쁜 버릇을 가지고 있었다. 대개 총참모장 알렉산드르 바실렙스키가 스탈린과 주코프의 갈등을 조율하고 스탈린을 설득했으나, 바실렙스키의 설득도 먹히지 않을 정도로 스탈린이 고집불통으로 나올 때 주코프와 바실렙스키는 안토노프를 투입했다. 안토노프는 교묘한 말솜씨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설득력 있는 발언으로 뿔나서 고집을 부리는 스탈린의 마음을 풀어줘서 결국 스탈린이 주코프의 의견에 수긍하도록 만드는데 언제나 성공했다.

이는 주코프와 바실렙스키가 안토노프를 "총참모부에 절대 없어서는 안될 사람."으로 평가받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스탈린이 개인적으로 안토노프를 총애하도록 만들었다. 안토노프는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천왕성 작전의 실행에 깊이 관여했고, 얄타 회담에 소련군의 대변인으로 참석했다. 이 회담에서 안토노프는 독일군의 주요 도로들을 서방 연합군이 폭격해서 소련군을 도와줄 수 있다고 주장했는데, 이 주장은 훗날 드레스덴 폭격으로 현실화되었다.

1944년에 그의 직속상관인 바실렙스키가 스탈린의 미움을 사 해임되자 안토노프가 총참모장 자리에 올랐다. 총참모장으로 베를린 전투의 작전 입안에 개입했고, 전쟁이 끝난 후에는 캅카스 군관구 사령관을 거쳐 바르샤바 조약군의 총참모장이 되었고, 1962년 사망할 때까지 조약군 총참모장 직위를 유지했다.

"전승훈장"을 받은 17명 중 한 명인데, 유일한 대장이다. 즉 나머지는 다 대원수 아니면 원수였다는 소리.

사후 여타 장군들과 마찬가지로 소련의 영웅들이 묻히는 크렘린 벽 묘지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