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티즈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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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마티스.(1869.12.31 ~ 1954.11.3)
"당신은 무엇이 되고 싶은가?""마티스가 되고 싶다." - 앤디 워홀
프랑스의 화가.
야수파의 창시자로 유명하다. 원래 파리에서 법학을 전공하였으나, 병에 걸려 요양을 하는 동안 어머니가 사주신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면서 자신의 진로를 바꾼다. 그의 아버지는 생계가 불확실한 화가가 되는 것에 반대했지만. 끝내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림을 배웠다. 1892년 파리의 장식 미술학교에 적을 두고, 미술학교 수험준비를 하면서 아카데미쥘리앙에서 부그로의 지도를 받았다.
그러나 그 아카데믹한 가르침에 만족할 수 없어 루브르 미술관에서 모사(模寫) 등을 하는 사이 G. 모로의 눈에 띄어 그의 미술학교 교실로 입학하였다. 그 후 1900년 이후에는 세잔풍(風)을 도입하여 극도로 구성적인 포름과 어두운 색조로 전향하였으나, 1904년 시냐크 ·크로스와 함께 생트로페에 체재하게 됨으로써 신인상파풍을 짙게 받아들였다.
이 새로운 교우관계가 이듬해에 시작된 야수파(포비슴) 운동의 강렬한 색채의 폭발로 나타나게 되었다. 드랭 ·블라맹크 등과 함께 시작한 이 운동은 20세기 회화의 일대 혁명이며, 원색의 대담한 병렬(竝列)을 강조하여 강렬한 개성적 표현을 기도하였다. 1908년경에는 강한 색채 효과를 억제하는 한편, 새로이 전개된 피카소를 중심으로 한 입체주의(큐비즘)의 방향으로 눈을 돌린 적도 있었다.
그러나 1910년의 뮌헨 ‘근동미술전’의 인상, 1911∼1913년 두 번에 걸친 모로코 여행으로 왕년의 포브 시대와 다른 장식적인 현란한 색채를 사용하여 특히 아라베스크나 꽃무늬를 배경으로 한 평면적인 구성이나 순수색의 병치(竝置)로 독특한 작풍을 창조하였다. 이 무렵의 작품으로는 《목련꽃을 든 오달리스크》가 있다. 티치아노처럼 그도 나이가 들면서 더 왕성한 활동을 했다. 더 붓을 들 수 없어지자 색종이를 오려서 작품 활동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