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 캐나다 143편 불시착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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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기의 평상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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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리 공군기지에 비상착륙을 한 모습

통칭 '김리 글라이더'로 불리는 사건.
The Gimli Glider, Air Canada Flight 143

항공사고 요약도
발생일1983년 7월 23일
유형연료부족
발생 위치김리 공군기지
탑승인원승객 : 61명
승무원 : 8명
사망자-
생존자전원 생존
기종Boeing 767-233
항공사에어 캐나다
기체 등록번호C-GAUN
출발지캐나다 몬트리올 국제공항
도착지캐나다 에드먼턴 국제공항

1 개요

1983년 7월 23일, 캐나다 몬트리올을 출발해 에드먼턴으로 향하던 에어 캐나다 143편 보잉 767-233, C-GAUN기가 고도 41000 피트에서 비행 중 연료 부족으로 김리 공군기지에 불시착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미국 NASA의 화성 기후 궤도선 실패와 함께 영미식 야드파운드 단위와 SI 단위를 혼동해 생긴 사고의 예로 유명하다.

기장과 부기장이 엔진이 멈춘 비행기를 글라이더처럼 활공시키는 기지를 발휘해 승객들을 전원 구했기에 김리 글라이더 사건 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US 에어웨이즈 1549편 불시착 사고와 비슷한 케이스로 글라이더 방식의 활공을 사용하여 비상착륙한 사례이며, US에어웨이즈 사고와 더불어 조종사들의 순간대처능력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로 등장한다.

그리고 엄밀히 말하면 완전히 대파된 사고라기보단 일부 파손된 준사고이다.[1]

2 사고경위

다큐멘터리 항공 사고 수사대 시즌 5에서의 재현 영상(영어). 한국에서의 방영 제목은 "위기의 활주로". 원본 축약판

2.1 이땐 아무도 몰랐어

보잉 767기는 연료탑재정보시스템을 통해 급유를 하는데 당시 해당 기체의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상태였다. 대신 연료계측봉으로 직접측정을 하여 급유를 마쳤는데 문제가 여기서 일어났다.몬트리올에서 에드먼턴으로 가기 위한 연료량을 계산하던 중 파운드 단위와 SI 단위를 헷갈린 것이다. 당시 에어 캐나다파운드법에서 SI 단위로 전환하는 중이었고 해당 기체는 에어 캐나다 최초의 SI 단위 사용 기체였다.

당시 비행에 필요 연료량은 22,300 kg이었는데, 몬트리올 도착 시점에서 비행기에 남은 연료량은 7,682 리터였다. 만약 연료가 순수한 물이라면 1 리터가 1 kg이지만, 물이 아니라 기름이므로, 리터와 kg 단위를 환산할 필요가 있었다. 기름 1 리터 무게가 0.803 kg이므로, 필요한 추가급유량을 올바로 계산하면 아래와 같았다.

(22300 - 7682 × 0.803) / 0.803 = 20088 [L]

그러나 당시 직원은 습관적으로 기름 1 리터가 1.77 파운드라는 것으로 계산을 해버렸다.

(22300 - 7682 × 1.77) / 1.77 = 4916 [L]

즉, SI 단위로 계산하면 연료 20,088 리터를 급유받아야 했지만, 파운드 기준으로 계산해버린 탓에 4,916 리터만 급유 받았다. 비행기에 연료 7,682 리터가 있었으므로, 새로 급유된 연료를 합치면 12,598 리터(약 10,116 kg)이었다. 자동적으로 연료량을 산출해주는 연료탑재정보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체 컴퓨터에 연료량 22,300 kg을 수동으로 입력하였으나, 실제 연료량은 입력된 수치의 45%에 불과했다. 지상작업요원은 숫자가 이상하다고 느끼고 3번이나 다시 계산했지만 끝내 잘못을 눈치채지 못하였고, 비행기는 이륙하였다.

중간 경유지인 오타와에서 다시 연료량을 측정했지만 남은 연료량을 2만 400 kg으로 잘못 측정하고 그대로 에어 캐나다 143편은 목적지를 향해 이륙했다.

2.2 대체 엔진이 어떻게 된거야

온타리오주 레드레이크를 지나며 41000 피트 상공을 비행하던 중 기체 경보 장치가 경고음을 4번 내며 왼쪽 엔진의 연료공급에 이상이 생겼다는 경보를 내보냈다. 기장은 연료 펌프의 고장으로 판단하고 연료 펌프의 스위치를 내렸다. 기체 컴퓨터는 충분한 연료량을 표시하고 있었지만 잘못된 정보에 의한 값이었다. 다시 한 번 4회 경고음이 발생한 후 기장은 긴급착륙을 결정했다. 그 후, 왼쪽 엔진이 정지하고 오른쪽 엔진만 가동하는 상태로 기체는 하강하기 시작했다.

조종사들은 엔진 재시동을 시도하며 긴급착륙지인 위니페그공항의 관제관과 긴급착륙 연락을 취했고 한창 강하중 기내 경보장치가 경보음을 내며 엔진이 모두 정지되고 조종실에 전력 공급이 끊겼다. 당시 고도는 2만 8000 피트. 상공에서 엔진이 뚝 멈춰버린 것이다!

비행기는 다시 하강하기 시작했고 조금이라도 방법을 찾지 못하면 큰 사고가 날 지경이었으나 다행히도 램 에어 터빈이 가동하여 전력과 유압을 공급했고 일부 아날로그 계기는 사용 가능한 상태로 착륙에 필요한 최소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파일럿들은 긴급 대응 매뉴얼(Quick Reference Handbook)을 펼쳐 양쪽 엔진이 모두 정지했을 때의 대응책을 찾았지만 해당 상황의 대응책은 없었다. 어? 어어? 있을 리가 없지 그 와중에서 기체는 계속 220 노트 속도로 활공하자 부기장은 고도계를 통해 긴급착륙지인 위니페그까지 착륙할 수 있을지 계산했지만 10 해리당 5000 피트를 강하 중이었기에 위니페그에 착륙하기란 불가능했다.

2.3 경험에서 나온 아이디어

결국 부기장은 캐나다 공군 시절 근무하던 김리 공군기지가 근처라는 것을 생각해내고는 김리 공군기지에 비상착륙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김리 공군기지는 지방 공항으로 바뀌었고 그날 활주로 상에선 자동차 경주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조종사들은 랜딩 기어의 잠금을 해제하여 자체 무게로 랜딩기어가 내려오도록 시도했다. 랜딩 기어가 내려오고 공기 저항이 증가하여 속도가 줄어들자 램 에어 터빈의 효율이 떨어져 기체 조작이 더욱 어려워졌다. 기체가 김리 공군기지에 가까워지자 기장은 김리 공군기지에 착륙하기엔 고도가 너무 높음을 알아차리고 글라이더 조작법을 응용하여 기체의 고도를 낮추는 아이디어를 냈다. 당시 기장은 글라이더 비행이 취미였기 때문에 경험을 살려 활공을 시도하기로 한 것이다.[2]

2.4 겨우겨우 착륙


기장의 의도대로 비행기는 활공하며 고도를 낮추기 시작했다. 당시 기체의 고도가 어느정도였나면 강하중 골프 코스 위를 비행했는데 승객이 인터뷰에서 "골퍼가 몇 번 클럽을 쓰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라고 대답했을 정도. 결국 김리 공군기지에 터치다운한 에어 캐나다 143편은 모든 힘을 다해 속도를 줄였다. 이에 의해 랜딩기어의 타이어 두 개가 터져나갔고 노즈 기어가 아직 고정된 상태가 아니었기에 기수부분은 땅에 닿은 채 그대로 활주로 위를 달리다 활주로 끝 수백피트 거리에서 겨우 정지했다. 만약 노즈 기어가 제대로 펼쳐져서, 착륙시에 접히지 않았더라면 그대로 활주로를 벗어났을지도 모르고, 활주로 위에 있던 사람들이 제때 피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일례로 항공사고 수사대를 보면, 활주로 위에서 자전거를 타던 아이들이 시속 200 마일(약 시속 300 km)로 달려오는 비행기를 피하려고 죽도록 달리는 모습을 봤다는 기장의 증언이 있다. 기장에 따르면 아이들이 대략 1000 피트(약 300 m) 앞에 있었다는데, 아이들의 공포에 질린 얼굴이 보일 정도로 가까웠다고.[3] 그래도 다행히 자전거 타던 어린이들을 포함한 활주로의 모든 사람들도 다치지 않았고, 하늘의 도움인지 승객 61명 중 부상자도 사망자도 없었다. 단, 착륙 후 기체 앞부분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승객들은 기체에서 전원 비상탈출했다.

착륙 시 기체에 가해진 충격이 크지 않았기에 김리 공군기지로 파견된 에어 캐나다의 정비반이 단 2일만에 기체 수리를 완료하고 해당 기체는 다시 하늘을 날 수 있었다. 그리고 2007년까지 24년이 넘는 세월을 멀쩡히 날아다녔다.

3 세월이 지나고

  • 이후 이 여객기도 은퇴비행을 한 후 비행일정을 마감했다. 2008년 1월 24일, 해당 기체는 몬트리올에서 애리조나까지 페리 비행을 마치고 퇴역한 후 모하비 공항에 보존되어 있다. 이날의 마지막 비행에는 사건 당시 기장이었던 밥 피어슨과 마리스 켄텔 부기장, 그리고 당시 승무원 3명이 함께 탑승했다고 한다.
  • 이날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을 중심으로 소박한 기념식을 가지곤 하는 모양. 위 영상은 30주년 관련 영상이다.
  • 전술했듯 이 사건은 US 에어웨이즈 1549편 불시착 사고와 비견되는 기적의 항공사고로 손꼽히고 있다.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US 에어웨이즈 불시착 사건은 상공에서 버드 스트라이크가 일어나 추락을 앞둔 비행기를, 기장과 부기장이 글라이더처럼 활공시켜 허드슨 강에 착륙시키는 용기를 발휘해 승객들을 전원 구했다. 재미있는 점은 에어 캐나다 사건의 밥 피어슨 기장과 US에어웨이즈 사건의 슐렌버거 기장 둘 다 글라이더 활공의 능력자라는 점이다.
  • 또한 비슷한 오래 전 사고로 엔진이 멈췃을 때 글라이더 활공식으로 강에 안착하여 사고를 막은 사례가 있긴 있었다. 아에로플로트 항공 네바강 불시착 사건이 그것인데 과거 서방세계와 적대관계였었던 공산권의 일화이기도 하고 워낙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 조용히 묻혀졌지만 US에어웨이즈 사건 이후 에어캐나다 비상착륙 사건과 함께 다시 한번 세상에 알려졌다.
  • 시뮬레이션을 통해 다른 기장들에게 같은 상황을 수 차례 재현시켜 보았으나 착륙에 성공한 사례는 없고 모두 추락했다고 한다. 원체 가벼운 글라이더도 아니고 무게가 적잖게 나가는 여객기로 활공을 하는 것 자체가 보통 글라이더로 활공하기보다 쉽지 않다. 그런 점을 감안해보면 이때 모두가 무사했던 것이 그야말로 천우신조였음을 알 수 있다. 어렵사리 용기를 내서 활공을 시도한 기장과 부기장의 수고도 무시할 순 없겠지만.
  • 이 사건은 1985년 리더스 다이제스트에서 "2만6천피트 상공에서 연료가 떨어져(Out of fuel at 26,000 feet)" 라는 제목으로 실리기도 했다. 이후 90년대에 한국어 버전으로 나온 리더스 다이제스트에도 번역되어 삽화와 함께 실렸는데 거기서 실린 정보를 보고 이 사건을 처음 알게 된 위키러들도 있었다고 한다.

4 관련 유사 사고

  1. 후술하겠지만 사고 이후 손봐서 다시 비행했다.
  2. US 에어웨이즈 1549편 불시착 사고에서의 기장도 글라이더 비행이 취미로 무동력 상태에서의 조종에 능숙했다.
  3. 그래도 이 때 자전거를 타고 죽도록 도망쳤던 소년들은 이렇게 변했다. 이제는 한 점 추억거리가 된 듯.